남북(북남) 철도연결과 한(조선)반도 통일문제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은 누가 가로막았는가?
3. '서울행 통일렬차'와 평화협정
4.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과 '평화경제론'
5. '평화번영정책'과 특구식 점진적 흡수통합
6.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2007년 5월 17일은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가는 열차가 시험적으로 운행된 날이다. 일곱 해 전인 2000년 7월 31일 제1차 장관급(상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연결을 합의하고 같은 달 18일에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이 열렸으며, 2002년 4월에는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에 합의하고 같은 해 9월 18일 착공식이 열렸다. 그 동안 철도연결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5천454억 원이다.

이번에 남측의 시험운행열차는 경의선 철길을 따라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 27.3km를, 그리고 북측의 시험운행열차는 동해선 철길을 따라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 25.5km를 각각 왕복하였다. 문산역에서 개성역을 오간 열차시험운행은 1951년 6월 12일에 서울-개성 열차운행이 전쟁으로 중단된 이후 56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며, 금강산역에서 제진역을 오간 열차시험운행은 1950년 이후 57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한 차례의 시험운행에 그치고 언제 완전개통이 실현될 것인지를 기약하지는 못하였으나, 분단체제가 끊어놓았던 남북(북남)철도가 연결되었음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열차시험운행은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의선 시험운행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으로 들어설 때 남측 탑승자들은 손에 든 통일기를 흔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남측 탑승자들만이 아니라 노무현정부도 열차시험운행이 성사된 것을 두고 흥분하였고, 열차시험운행을 역사적 의미로 거창하게 포장하려고 애썼다. 노무현정부의 그러한 정치적 의도에 장단을 맞춘 자본주의언론시장은 열차시험운행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측의 일반대중에게 '철마의 기적소리'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현혹의 돌풍을 일으켰다.

그와 대조적으로, 열차시험운행이 실시된 날 북측의 분위기는 차분하였다. 너무 차분한 까닭에 북측이 열차운행을 꺼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왜 이러한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러한 대조적인 현상은 사람들의 망막에 비친 겉모습일 뿐이다. 겉모습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선뜻 말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망막에 비친 겉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을 일으킨 원인을 알아내야 시험운행열차의 기적소리 뒤에 감춰진 진실을 정확히 볼 수 있다.

2.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은 누가 가로막았는가?

2007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지역에 있는 통일각에서는 제5차 남북(북남) 장성급회담이 열렸다. 열차시험운행에 관한 군사적 안전보장문제를 합의하기 위한 회담이었다.

그 회담에서 북측은 열차시험운행과 관련하여 일회용 군사보장합의서 초안을 남측에게 제시하였고, 남측은 남북(북남)철도 및 도로 완전개통을 위한 항구적 군사보장합의서를 체결하자고 제안하였다. 남측 정부는 이미 2006년 2월에 '철도와 도로 개통에 관한 군사보장합의서' 초안을 북측에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은 남북(북남) 철도연결사업과 관련하여 남측정부와 북측정부의 이견이 팽팽하게 맞서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5차 남북(북남) 장성급회담은 2007년 5월 11일에 '장성급회담 군사보장 잠정합의서'를 채택하였는데, 그것은 일회용 군사보장합의를 요구하였던 북측의 의사가 관철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면, 남측정부는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과 그것을 위한 항구적 군사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는 반면에 북측정부는 그러한 조치를 합의하는 것을 꺼려하면서 자꾸 뒤로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북남) 철도연결사업에 대해서 남측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반면, 북측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명백하게도 정치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남북(북남) 철도연결사업에 걸려있는 정치문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남북(북남) 관리구역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문제이다.

남북(북남) 관리구역의 관할권을 행사하는 문제는, 한(조선)민족의 영토를 남북(북남)으로 갈라놓은 분단체제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가장 민감한 정치문제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정치문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남북(북남) 철도연결사업에 대해서 남측정부와 북측정부가 왜 그처럼 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노무현정부는 남북(북남) 철도연결사업에 남북(북남) 관리구역의 관할권을 행사하는 중요한 정치문제가 얽혀있음을 감추었고, 자본주의언론시장은 그러한 정치문제가 얽혀있음을 알지 못하는 일반대중을 현혹하고 흥분시키는 대중선동에 너무도 능숙하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남북(북남) 철도가 연결되는 지점은 비무장지대(DMZ) 안에 들어있고, 연결된 철도는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한다. 비무장지대와 그 지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에 관련된 정치군사적 문제를 규정하는 법적 구속력은 한국(조선)전쟁 정전협정(Armistice)에 속해 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에 대한 관할권은 정전협정 관리권을 쥐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웰 벨(Burwell B. Bell)이 주한유엔군사령관 이름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다. 남북(북남)이 연결한 철도가 지나는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은 남측정부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주한미국군이 직접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특수지역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관할권(jurisdiction)이란 군사적 점령에 의거한 지배권한을 뜻한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2004년 말부터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을 경비하는 군사적 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겨주었다고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넘겨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주한미국군 병사들이 수행하기 싫어하는 철책경비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겨준다는 뜻이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전시작전통제권(wartime operational authority)을 한국군에게 반환하더라도, 정전협정 관리권은 반환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정전협정 관리권을 틀어쥐고 있으면, 한(조선)반도가 전시상태에 들어갈 때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도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14일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북(조선)에게 보낸 서신에서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에 대한 관할권이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 있음을 남측과 북측이 인정하고 이를 문서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측은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남측에 넘겨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그 요구를 거부하면서 맞섰다. 결국 2000년 11월 17일 조선인민군과 주한미국군이 채택한 합의서 제1항에서는 "'쌍방은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일부 구역을 개방하여 그 구역을 북과 남의 관리구역으로 한다"고 정하였으며, 제2항은 "남북(북남)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들을 정전협정에 부합되게 북과 남의 군대들 사이에서 협의, 처리하도록 한다"고 정하였다.

남북(북남) 관리구역을 설정하는 실무문제는, 2002년 9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장과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이 채택한 합의서에서 해결되었다. 그 합의서에 따르면, 경의선 철길을 중심으로 하여 폭 250m의 통로를 남북(북남) 경계선까지 이어서 서해지구 남북(북남) 관리구역을 설정하였으며, 동해선 철길을 중심으로 하여 폭 100m의 통로를 남북(북남) 경계선까지 이어서 동해지구 남북(북남) 관리구역을 설정하였다. 그와 더불어, "남북(북남) 관리구역들에서 제기되는 모든 군사실무적 문제들은 남과 북이 협의, 처리한다"고 정하였다.

그런데 그 합의서는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 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이므로, 남북(북남) 철도 및 도로를 연결하는 공사를 끝마친 뒤에 육로통행에 관한 군사적 보장은 따로 합의해야 하였다.

육로통행에 관한 군사적 보장을 합의하는 데서 나서는 문제의 핵심은, 남북(북남) 관리구역이 정전협정의 규정을 받는가 아니면 받지 않는가 하는 데 있다. 북측은 남북(북남) 관리구역이 2002년 9월 17일 남북(북남)이 채택한 합의서에 의해서 설정되었고, 그 구역에서 제기되는 모든 군사실무적 문제들을 남북(북남)이 협의하여 처리하기로 합의하였으므로 주한미국군사령부는 관리구역의 통행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남북(북남) 관리구역도 정전협정의 규정을 받는 비무장지대의 일부이므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여전히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한다는 말은, 남북(북남)의 열차가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관리구역을 통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남북(북남) 관리구역의 통행에 대한 군사보장조치를 취하는 법적 주체도 당연히 주한미국군사령부로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억지논리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남북(북남)이 채택한 합의서를 무시하고 남북(북남) 관리구역의 통행에 대한 허가권과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여전히 틀어쥐겠다는 야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남(한국)의 인터넷언론 '통일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남측정부는 시험운행열차가 군사분계선을 지나는 장면을 현장에서 취재하려는 남(한국) 기자들의 사전요청을 받아들여 이를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 제기하였으나 묵살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한국) 기자들은 경의선이 지나는 도라산역에서 가까운 제2통문까지만, 그리고 동해선이 지나는 금강통문까지만 접근하도록 허용되었고, 따라서 시험운행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장면을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허가권 및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틀어쥔 조건에서 남북(북남)의 열차탑승자들이 통일노래를 부르며 철길을 오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허가권과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남북(북남) 철도가 연결되었으면서도 완전개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명백하게도, 철도의 완전개통을 가로막는 자는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웰 벨이다. 남(한국)의 국방부 뒤에서 점령군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이처럼 남북(북남)의 통행질서를 제멋대로 장악, 통제하고 있으므로 '통일열차'가 오가기는커녕 남북(북남)의 자주적 교류와 왕래마저도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남측정부는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군사보장조치를 취하는 권한을 갖지 못하였으므로 남북(북남) 군사회담에 아무런 실권이 없는 대령급 대표를 내보내려고 하였으나, 북측정부가 장성급 대표로 격상하자고 요구하여 제5차 장성급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이것은 북측이 군사보장조치를 취하려는 책임적이고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남측정부는 그 무슨 '항구적인 군사보장합의서'를 채택하자고 북측에 제안하면서 마치 자기에게 군사보장조치를 취하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세상을 속이고 있으나, 권한이 없는 무자격자를 상대로 해서 군사보장합의서를 채택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3. '서울행 통일렬차'와 평화협정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은 반드시 열차를 이용한 육로방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 이용하였던 바로 그 열차, 북측의 노동계급과 협동농민을 찾아가는 길에서 이용하기에 북측에서 '인민행 렬차'라고 부르는 바로 그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행 통일렬차'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그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열차를 이용해온 관행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북남) 최고위급회담을 몸소 준비하고 있었던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통일렬차'를 타고 역사적인 서울방문을 구상하였던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통일의지로 연결되는 것이다. 1994년 7월에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남북(북남) 철도가 연결되었을 것이고, 김일성 주석은 열차를 타고 서울을 방문하였을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열차를 타고 서울을 방문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금강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철도상 김용삼이 "수령님께서 예전에 철도연결에 관심이 높으셨다. 1994년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수령님께서 많은 열정을 바치셨다"고 말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행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며,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대수령에 대한 혁명적 의리를 지키는 정치문제, 그리하여 북측에서 어떤 경우에도 변경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정치문제로 되는 것이다.

2007년 5월 17일 오전 금강산역을 떠난 남행열차의 차체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68년 8월 9일에 몸소 오르셨던 열차"임을 알려주는 동판글씨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던 것, 그리고 남측 텔레비전방송이 보도한 영상을 보면, 남행열차 객차의 내부 전면 상단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사진이 있었던 것, 더욱이 북측 철도상 김용삼이 남측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이 렬차는 수령님께서 처음 타신 렬차이다. 이 렬차보다 좋은 것도 있지만 일부러 이 렬차를 가져왔다. 우리 수령님의 통일유훈을 관철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이 열차를) 가져왔다"고 밝힌 것은, 북측이 남북(북남) 철도개통사업을 통일유훈을 관철하는 정치문제와 결부시키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일성 주석이 처음 탔던 특별한 열차를 남행열차로 정한 것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살펴보면,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을 관철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하여 서울을 방문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렬차'에 대한 통행허가와 군사적 안전보장조치를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은 북측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에서 서울방문을 약속하였으나 일곱 해가 되도록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남북(북남) 관리구역 관할권은 북측이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을 자꾸만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장애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뒤집어보면, 자본주의언론시장이 전혀 말하지 않는 또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그것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남북(북남)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허가권 및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남측정부에게 넘겨주었다면, 그리하여 남북(북남) 관리구역이 정전협정의 법적 효력이 아니라 남북(북남)의 항구적 군사보장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받게 되었다면,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진작 실현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6.15 공동선언은 더 멀리 더 빠르게 전진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주한미국군이야말로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점이다.

한국(조선)전쟁 정전협정은 제2의 한국(조선)전쟁을 억지하는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북(북남) 관리구역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로막는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고 있으므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peace treaty)으로 대체하여야 남측정부가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남북(북남) 관리구역 통행에 대한 허가권 및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넘겨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남북(북남)이 자주적으로 교류하고 왕래할 수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면,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한(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2.13 초기조치 합의는 9.19 공동성명을 실현하는 지름길을 밝혀준 정치적 합의이므로 우선 2.13 초기조치 합의를 서둘러 이행하는 것이 문제를 빨리 풀어나가는 관건적 문제로 된다.

그런데 2.13 초기조치 합의는 부쉬정부가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넣어둔 북(조선)의 예치금 2천500만 달러를 이른바 '불법자금'이라고 제멋대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바람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불법자금'의 누명을 벗기고 북(조선)의 국제금융결재를 원상복귀시키는 모든 책임은 당연히 부쉬정부에게 있다.

지금 부쉬정부는 '불법자금'의 누명을 벗기는 해결조치로서 미국계 민간은행에 그 예치금을 송금한 뒤에 북(조선)이 그 은행으로부터 제3국 은행으로 이체하는 방도를 실행하려고 미국계 민간은행을 설득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부쉬정부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은행들이 부쉬정부로부터 '불법자금'이라는 낙인을 받은 예치금을 덜컥 받았다가 방코 델타 아시아처럼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꺼리는 바람에 부쉬정부의 설득이 쉽사리 통하지 않고 있다.

2.13 초기조치 합의를 자기 임기 안에 이행하려고 서둘렀던 부쉬정부는 시작하자마자 자업자득의 곤경에서 빠진 것이다. 부쉬정부는 2.13 초기조치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침략전쟁에서도 자업자득의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이라크전선에서 미국군 전사자는 날마다 끝없이 늘어나고, 워싱턴에서 부쉬의 정적들은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며 야단법석을 치고 있다. 요즈음 부쉬정부는 자업자득의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쉬정부가 일단 자업자득의 곤경에서 벗어나면, 2.13 초기조치 합의는 이행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한(조선)반도의 비핵화과업은 9.19 공동성명이 가리키는 실행단계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비핵화의 길로 들어설 때,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남북(북남) 관리구역에 대한 허가권 및 군사보장조치 발동권을 남측정부가 행사할 수 있게 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실현되는 새로운 전망이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경우 주한미국군의 존재근거가 사라지게 될 것임을 우려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평화협정이라는 용어를 극구 피하고 그 무슨 '종전협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놓고, 종전협정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체결하되 평화협정 체결은 먼 미래의 과제로 무한정 미루려는 간계를 꾸미고 있다. 그것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종식을 선언하여 마치 평화체제로 전환된 것처럼 세상을 속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였으니 북(조선)의 핵무장을 하루빨리 해제해야 한다는 공세를 들이대고, 정작 시급히 추진해야 할 평화체제 수립은 사실상 무한정 연기함으로써 결국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전쟁전략을 변함없이 밀고 나가려는 간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분리하려는 부쉬정부의 간계는,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려는, 그리하여 주한미국군을 영원히 한(조선)반도의 점령군으로 남겨두고 '핵우산 방위공약'의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한 북침돌격대로 평택기지에 재배치하는 제국주의전쟁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생각할 때,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지만, 북(조선)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전략을 밀고 나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정전협정이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의 말대로 '종전협정'으로 대체될 것인지, 아니면 한(조선)민족이 추구하는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인지 하는 데 있다. 9.19 공동성명이나 2.13 초기조치 합의를 내오는 과정에서 입증된 것처럼,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 역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과정을 주도하는 북(조선)의 정치역량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과 '평화경제론'

2007년 5월 17일 남측 문산역에서 열린 남북(북남) 열차시험운행 기념행사에서 통일부 장관 이재정은 "한반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종합적 물류망을 형성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북측 금강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건교부 장관 이용섭은 "한반도에서 유럽대륙까지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면 물류비용이 줄고 수송기간이 단축돼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물류거점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남과 북의 철길이 열리면 평화가 열리고 경제가 열린다"고 논평하였다.

한편, 남측 문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북측 내각 책임참사 권호웅은 축사에서 "이제 저 렬차는 민족의 념원과 지향을 안고 통일의 리정표를 향해 달릴 것이며, 앞으로도 북과 남이 몰고 가는 통일의 기관차가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의 궤도를 따라 달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성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금강산역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철도상 김용삼은 "북녘의 금강산역을 떠나는 동해선 시험운행렬차는 남녘의 제진역에서 멈춰서게 되지만 멀지 않은 앞날에 삼천리 강토를 내달리는 통일렬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인용한 두 종류의 발언내용이 말해주는 것은, 남북(북남) 열차운행을 바라보는 남측정부 당국자의 인식과 북측정부 당국자의 인식이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측정부 당국자는 남북(북남) 열차운행을 경제협력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북측정부 당국자는 그것을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날 오전 기념행사가 열리기 직전, 북측 내각책임참사를 맞아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남측 통일부장관은 "오늘 남북이 힘을 모아 민족의 염원이었던 분단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은 남북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승리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을 때, 북측 내각책임참사는 "아직까지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지 마시라"고 응수하였다. 통일부장관의 생각과 내각책임참사의 생각이 뚜렷이 갈라서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인식차이는 이튿날인 2007년 5월 18일 통일부장관 이재정이 남(한국)의 라디오방송과 진행한 대담에서 한층 더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남북(북남) 철도를 현대화하는 것은 "얼마의 액수가 들어가든 우리 경제를 위한 투자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투자는 "국제사회가 같이 개발자금을 투입하거나 차관으로 하는 방법으로 해야지, 우리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통일부장관이 남북(북남) 철도연결을 한(조선)반도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이 아니라 남(한국)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투자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라디오방송 도중에 나온 즉흥적 발상이 아니다. 그는 2007년 3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사회단체 강연에서도 "남북 간에 (지금까지는) 지원과 협력, 교류에 치중해왔는데 이젠 한반도를 하나로 생각하고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구상하며 내다볼 단계이다. 이젠 남북 간에 경제공동체를 논의할 단계에 왔다"고 말했다. 통일부장관이 생각하는 남북(북남) 철도개통의 의의는 남북(북남) 경제협력을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로 밀고 나가는 결정적인 계기라는 데 있다.

남북(북남) 경제협력이라는 개념을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으로 확장시킨 사람은, 지금 범여권 대선주자들 속에서 움직이는 정동영이다. 정동영은 통일부장관으로 일하던 2005년 12월 19일 전세계 언론인 100여 명이 참석한 워싱턴의 전국언론협회(National Press Club)에서 연설을 통해 이른바 '평화경제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평화경제론'을 주장하면서, 대미관계에서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대북관계에서는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진하여 2020년까지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으며, 개성공업단지를 '평화경제론의 상징'으로 추켜세웠다. 그는 워싱턴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저명한 미국인 학자와 만나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북(조선)이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2020년까지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고, 평화공존→국가연합→통일국가로 이어지는 3단계 접근법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동영의 '평화경제론'은 그의 후임자 이종석에게 계승되었다. 이종석은 통일부장관으로 일하던 2006년 5월 3일 서울에서 열린 민간단체 초청 토론회에서 국가연합이 건설되는 단계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남북 간에 경제공동체적인 성격이 심화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앞서 2006년 4월 5일에 열린 통일교육협의회 강연에서 그는 북(조선)에서 "인권개선은 시장경제가 발달하고 개방경제체제로 가면서 주민의식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이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고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정동영-이종석-이재정으로 이어진 '평화경제론'의 정책적 근거는 2003년 8월 국정홍보처가 펴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자료나 2004년 3월 청와대 국가안보회의가 펴낸 '참여정부의 안보정책구상'이라는 자료에 제시되어 있다. 그 두 가지 자료는 평화체제 수립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이라는 양대 전략목표를 논하였다. 노무현정부가 말하는 평화체제 수립론이란, 북침전쟁 시나리오를 연습하는 주한미국군을 그대로 두고 남북(북남)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자는 허황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국제금융자본이 남북(북남) 경제협력통로를 통해 북측에 밀려들어가는 단계, 북측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남측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단계, 북측에서 개방과 개혁이 돌이킬 수 없게 심화되는 단계,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남측이 동북아시아 경제중심의 지위를 차지하는 단계,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바꿔놓고 남북(북남)이 두 개의 나라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국가연합체제를 형성하는 단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교체되고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건설되면 자연히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실현되는 길이 열리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은, 한(조선)반도 통일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편견의 소산이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교체되고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건설된다고 해도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없다면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중국 서남부의 장족자치구와 베트남 접경지역에서는 8.5평방미터 규모의 경제합작구가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이 앞으로 더욱 확대, 심화, 발전된다고 해도 그 두 나라는 절대로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협력과 통일정부 수립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례는 그것만이 아니다. 1965년에 일어났던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42년 동안 끊겼던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열차운행이 2007년 6월에 재개될 것이다. 인도는 방글라데시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끊어진 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철도가 연결되고 경제협력이 강화된다고 해서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통일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국-베트남의 관계에서나 인도-방글라데시의 관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적대관계에 있는 인접국들이 지난 시기의 대결관계를 청산하고 경제공동체를 건설한다고 해서 통일을 지향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문제는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문제와 차원을 달리 하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경제공동체를 수립하는 문제가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문제와 분리되는 경우, 경제공동체 건설은 한(조선)민족을 두 개의 나라로 분리해놓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평화적 영구분단체제를 수립하려는 목적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은 반통일적으로 된다.

한(조선)반도 통일문제의 핵심은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다.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조국통일운동사의 궤도에서 이탈한 채, 남북(북남) 경제협력을 추진하여 자본주의시장경제로 통합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면 통일정부를 수립할 필요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측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의 목적은, 북(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고 북(조선)의 사회주의자립경제를 신식민주의예속경제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오늘 남측정부가 북측과의 경제협력을 통해서 노리는 최종목적은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변질, 와해시키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통합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5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정동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측이 베트남처럼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다리는 열차는,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구상을 싣고 달리는 통일열차가 아니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을 싣고 달리는 '북한개방열차'이다.

5. '평화번영정책'과 특구식 점진적 흡수통합

최근 범여권 대선주자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국무총리 출신의 정치인 이해찬은 2007년 5월 23일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남북 경제공동체 전망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에서 그가 내놓은 것은 평화체제 수립→남북경제공동체 건설→남북연합체제 수립→남북합중국 또는 통일한국으로 이어지는 4단계 방안이다. 그가 풀어낸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북한의 경제개발은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지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합적 사고와 상생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전략적 과제"라는 그 자신의 설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측정부는 평화통일정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어 일반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이름만 바꾸어서 그대로 계승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한국)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노리는 것은 지난 시기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사회민주주의세력이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사회주의체제를 변질, 와해시키기 위해 동원하였던 '접촉을 통한 변화(Change through Rapprochement)'이다. 여기서 말하는 접촉이란 남북(북남) 열차운행을 뜻하고, 변화란 북(조선)의 개방과 개혁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번영정책'은 남북(북남) 철도를 연결하여 북(조선)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개방과 개혁으로 유인, 변질시키겠다는 정책이다. 이처럼 '평화번영정책'이 '접촉을 통한 변화'를 노리는 것은, 1963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책략가 에곤 바(Egon Bahr)가 베를린에서 행한 정치연설에서 처음으로 내놓았고, 여섯 해 뒤인 1969년에 제4대 총리로 집권하였던 독일의 저명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가 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점진적으로 변질, 와해시켜 자본주의시장경제로 통합하기 위하여 추진하였던 이른바 '동방정책(Ostpolitik)'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것이다. 당시 독일연방공화국의 집권당이었던 독일사회민주당이 추진하였던 목표는, 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주의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 그 정권과 교류, 협력하여 경계심을 풀어놓게 만든 뒤에 사회주의체제를 점진적으로 변질시키고 결국 조용히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2005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에 나선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Friedrich-Ebert-Stiftung) 남(한국)사무소(Korea Cooperation Office) 소장 피터 가이(Peter Gey)가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지원은 "동독정권의 생존이 아니라 붕괴에 기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것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제국주의세력이 사회주의체제를 봉쇄와 압박으로 붕괴시키려고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세력은 사회주의체제를 '접촉을 통한 변화'로 와해시키려고 한다. 붕괴냐 와해냐 하는 접근방법이 다를 뿐, 그 양대 세력이 지향하는 반사회주의적 전략목표는 다르지 않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은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으나, 남측정부가 남북(북남)관계에서 노리는 '접촉을 통한 변화'는, 2006년 3월 17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바란다"고 하면서 "변화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은 북한이 스스로 개방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던 주한미국대사 알렉산더 벌쉬바우(Alexander Vershbow)의 반사회주의적 전략목표와 여전히 일치되어 있다.

지금 노무현정부의 '평화경제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세력이 워싱턴의 제국주의국가권력과 손잡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뒤에 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주의체제를 변질, 와해시켜 결국 자본주의시장경제로 통합한 것처럼 독일식 점진적 흡수통합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이 자발적으로 워싱턴의 제국주의국가권력과 손잡고 스스로 자본주의시장경제에 통합된 것처럼 북(조선)을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하여 20-30년에 걸쳐 특구식 점진적 흡수통합을 추진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통일 이후 남북한 경제통합방식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남측정부에게 유리한 것은 특구식 점진적 흡수통합인데, 그러한 유형의 흡수통합을 실현하려면 13-22년 동안 3천억-5천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남북(북남) 철도가 완전히 개통되면, 그것은 저들이 꿈꾸는 특구식 점진적 흡수통합구상을 한층 더 자극할 것이다. 남북(북남) 경제협력이 심화될수록 북(조선)으로서는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가하는 봉쇄압박책동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한국)정권이 취하는 변질와해책동에도 경계해야 할 필요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개성공단을 오가는 물류수송열차와 금강산을 오가는 관광열차를 '북한개방'이라는 종착역으로 몰아가려는 헛된 꿈에 젖어있다는 점에서,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보겠다는 정동영식 발상은, 한(조선)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기본원칙, 곧 서로 다른 체제를 상호존중하는 원칙을 부정하는, 그리하여 6.15 공동선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통일적 발상이다.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구상은 지난 시기 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주의체제나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와 오늘의 북(조선) 사회주의체제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북측의 표현을 빌리면, '오뉴월의 개꿈'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6. 글을 맺으며

위의 논의를 통해서 이르는 결론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길에서 두 가지 전략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전략적 과제 가운데 첫 번째 과제는,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을 가로막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군시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비무장지대 안의 남측지역을 직접적으로 점령하고 관할권을 행사하면서 남북(북남) 철도의 완전개통을 가로막고 있는 한,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두 가지 전략적 과제 가운데 두 번째 과제는, 남측의 신식민주의정권을 자주적 민주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국가권력이 '요청'이라는 이름으로 내려보내는 지시에 굴종하는 신식민주의정권이 존속하는 한,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논하면서, 남(한국)의 진보적 정권교체를 지향하는 민주주의혁명을 함께 논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서 자명해진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북남) 열차시험운행이 실시되기 하루 전날인 2007년 5월 16일 주한미국대사 알렉산더 벌쉬바우는 통일부장관 이재정을 만나 남북(북남)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는 일정에 제동을 걸었고, 노무현정부의 고위당국자를 만난 주한미국대사관 참사관은 쌀 40만톤을 차관형식으로 제공하기로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합의한 경제협력사업을 북(조선)이 2.13 초기조치를 이행할 때까지, 다시 말해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할 때까지 '유보'하라고 '요청'하였다. 위에서 논한 대로, 2.13 초기조치가 이행되지 못하는 까닭은 부쉬정부가 '불법자금'으로 규정해놓은 방코 델타 아시아의 북(조선) 예치금을 북(조선)이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기 때문인 데도, 부쉬정부는 2.13 초기조치 이행문제와 남북(북남)관계 개선문제를 부당하게 연결시키면서 남북(북남) 경제협력에 제동을 걸었다. 부쉬정부의 '요청'을 전달받은 노무현정부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지난 시기 빌리 브란트가 이끌었던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정권은 워싱턴의 제국주의국가권력과 손잡고 독일민주공화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점진적으로 변질, 와해시키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정권처럼 백악관의 지시에 굴종하지는 않았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백악관의 지시에 굴종하는 신식민주의예속성의 족쇄에 묶여있으며, 따라서 실시하기도 전에 파산을 예고할 것으로 보인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해체와 주한미국군의 완전철군, 그리고 신식민주의정권의 전면적 교체라는 두 가지 전략적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남(한국)의 민주주의혁명은 서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주적 평화통일과 민주주의혁명은, 어느 것이 선후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통일적으로 수행하는 21세기 최고의 정치과업이다. (2007년 5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