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합의위반과 정치적 병리현상
2. 로만손 손목시계를 차고 군사분계선을 넘다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색이 흐렸던 까닭

1. 합의위반과 정치적 병리현상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6월 30일, 민족의 통일열기가 뜨거웠던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을 방문한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주필을 원산에서 만나 대담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이고, 나 자신으로선 수령님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북과 남이 함께 노력할 때가 되었습니다." (월간 말 2000년 8월호, 58쪽)

민족의 간절한 통일염원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해서 남북(북남)이 함께 힘쓸 것을 역설하였던 그의 말에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향한 의지와 열정, 확신과 결심을 느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관과 통일의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도 일곱해 전에 열렸던 제1차 최고정치회담에서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민족의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러한 의도는 제2차 최고정치회담을 앞두고 평양에서 진행된 준비사업에서 관철되었을 것이다.

그 준비사업의 기본방침은, 2007년 8월 5일 국가정보원 김만복 원장과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이 공동으로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북남)합의서'에서 엿볼 수 있다. 그 합의서는 "역사적인 6.15 남북(북남)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발전시켜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갈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하면, 제2차 최고정치회담의 기본방침은 평화, 번영, 통일에 관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 평화, 번영, 통일에 관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자고 합의한 때로부터 두 달 뒤, 평양방문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를 출발하기 직전에 발표한 출발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출발성명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 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국민여러분, 이번 정상회담은 좀 더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이 될 것입니다. 지난 2000년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면 이번 회담은 그 길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을 치우고 지체되고 있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회담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제들이 논의되겠지만, 무엇보다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는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줄임) 이번 회담이 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회담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경제협력은 많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국제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남북 간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 장애도 적지 않습니다. 이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는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노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2일)

출발성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6월에 있었던 제1차 최고정치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가 말한 '남북관계의 새 길'이란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향한 새 길이라는 뜻이다.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향한 길에는 아직 여러 장애들이 놓여있으므로, 이번 회담에서 그 장애를 제거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싶다는 것이 평양방문길에 오른 그의 생각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그가 기대하는 성과는 첫째 "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부문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고, 둘째 경제협력을 가로막는 "남북 간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경제협력의 본격적인 속도를 내는 경제부문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방문 목적을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전 11시 30분 평양에 도착하여 발표한 도착성명도 출발성명의 연장이었다. 그는 도착성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줄임) 평화를 위한 일이라면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나갑시다."고 말했다. 출발성명과 도착성명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출발성명에서 언급한 남북(북남) 경제협력문제가 도착성명에서는 빠지고 한(조선)반도 평화정착의 중요성만 강조하였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날 저녁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주최한 공식만찬에서도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입에 담지 않았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되풀이해서 강조하면서도 통일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통일문제 대한 의식적인 회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북남)합의서'에서 규정한 제2차 최고정치회담 의제설정의 3대 방침인 평화, 번영, 통일 가운데서 통일부문을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의적으로 배제한 일종의 합의위반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발언에서 드러난 이와 같은 통일문제 회피의도는 그가 처음으로 드러낸 것도 아니고, 유독 그만이 드러낸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의도는 오늘 청와대와 국회를 뒤덮고 있는 정책적 방침이자 정치적 대세이다. 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으로 출발하는 때에 맞춰 남측의 여러 정당들이 쏟아낸 논평들이 예외 없이 통일회피의도로 일관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변인 이낙연, 원내대표 김효석, 대선후보들인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범여권 장외주자 문국현 등이 내놓은 공식논평들에서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지향한 정치적 의지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그러하였으니, 민주당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창당 이후부터 반통일노선에 집착해온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으로 출발하던 날, 비난여론의 역풍이 두려워 그의 평양방문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공식발언을 자제하였으나, 방북수행단에 당대표자를 참가시키지 않음으로써 그의 평양방문을 반대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장 뚜렷하게 설명한 사람은 이재정 통일부장관이다. 최고정치회담의 주무부처인 통일부를 지휘하는 수장답게 그는 노 대통령의 평양방문 목적을 해설하는데 익숙한 면모를 보였다. 프랑스 일간지 르 휘가로 2007년 10월 2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경제공동체를 이룩하는 한편 나아가 동북아 차원의 공존공영의 질서와 안정적인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적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발언들, 그리고 여러 정당의 공식논평에서 드러난 통일문제 회피의도는 통일기피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적 병리현상이다. 지금 남측의 정부와 정당은 통일기피증이라는 중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처럼 통일기피증이 만연한 환경 속에서도 특별한 예외가 있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단대표로서 대통령의 평양방문 수행단 일원으로 방북길에 동행한 천영세 의원만이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이번 회담에서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를 진전시키는 성과를 내와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6.15 공동선언 2항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계승, 발전시켜 남북 정부 간 상설적 기구를 구성하는 성과를 내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였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기피증은 오늘 처음으로 생겨난 정치적 병리현상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고질적으로 만연된 병리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고질적 병리현상이 나타난 하나의 계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1차 최고정치회담이 열리기 석 달 전인 2000년 3월 9일에 발표한 베를린선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선언에서 그는 "우리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말하면서, 남북(북남)의 경제협력을 강조하였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회피적 발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표현만 달리해서 그대로 옮겨놓은 재탕발언이다. 일곱 해가 지났으나 민족의 최대 숙원인 통일문제에 대한 남측 최고당국자의 관점과 태도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중도개혁세력의 집권기는 통일기피증이 해소되기는커녕 한층 더 악화되어온 과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도착성명과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도착성명을 비교하면, 통일기피증이 더욱 악화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도착성명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남녘 동포의 뜻에 따라 민족의 평화와 협력과 통일에 앞장서고자 평양에 왔습니다. (줄임) 이번 저의 평양방문으로 온 겨레가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적어도 통일이라는 말을 도착성명에서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의 도착성명에서 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완전히 배제하였다.

2007년 10월 3일 국제평화기원 마라톤에 참가하려고 서울을 방문한 브라질의 유명한 마라톤선수 반데를레이 리마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갔는데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좋은 소식이라 함은 남북한이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며, 권력이나 힘이 개입되지 않는 평화적인 통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발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와대와 국회는 한(조선)반도의 정치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 운동선수의 직감보다도 훨씬 저열한 퇴행성 난치병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기피증이 이전보다 더 악화된 정치적 병리현상은,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관점과 인식이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1차 최고정치회담을 전후하여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언급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 들어가면서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6자회담의 성공'으로 규정하였다. 명백하게도, 그가 말하는 6자회담의 성공이란 부쉬정부가 추구하는 북(조선)의 일방적인 핵포기를 뜻한다. 이것은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에 대한 노무현정부의 인식수준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을 평화의 의미로 규정한 김대중정부의 인식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부쉬정부가 북(조선)에게 들이대고 있는 부당한 요구를 가감 없이 추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노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진전의 해법을 찾기는커녕 일곱 해 전보다 뒷걸음질하는 퇴행의 길로 돌아선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과제는, 부쉬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북(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 요구를 들이댄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과제는 한(조선)반도에서 조미 두 나라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응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고, 그에 따라 전쟁위험을 조성해온 주한미국군의 제국주의전쟁기제가 돌이킬 수 없게 불능화될 때, 바로 그러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부쉬정부의 대북정책을 추종하면서 6자회담의 성공을 횡설수설할 것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하여 이른 시일 안에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자는 제안을 부쉬에게 내놓는 것이다. 부쉬도 자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를 합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미 밝혔으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의 신속한 개최를 부쉬에게 제안하자는 의견을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 내놓는 것은 그가 부쉬의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요인으로 되어있는 주한미국군의 제국주의전쟁기제를 평화협정체결로 불능화하는 평화실현의 전략목표를 외면한 채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를 논하는 것은, 전쟁위험을 의도적으로 방치, 외면하고 사이비평화체제를 논하여 세상을 속이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는 제국주의전쟁위험을 제거하는 참된 평화가 아니라 그 위험을 방치, 외면하는 사이비평화이다.

2. 로만손 손목시계를 차고 군사분계선을 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그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방영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언론은 그가 손목에 차고 있었던 시계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평양으로 출발하던 날 손목에 찬 시계는 개성공업단지에 진출한 남측 기업이 생산한 시가 19만8천 원짜리 손목시계 로만손이다. 그는 평양방문을 위하여 자기가 찬 것 말고도 그 손목시계 9개를 더 선물로 준비하였다. 남북(북남) 경제협력을 상징하는 그 손목시계를 북측에 선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행동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남북(북남) 경제협력문제를 집중적으로 논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북남)의 경제협력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언하였다.

2007년 8월 5일에 남북(북남) 정부를 대표한 양측 인사들이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북남)합의서'는 이번 회담의 의제설정방향과 관련하여 민족공동의 번영을 언급하였으므로, 그 회담에서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경제협력문제를 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논한 남북(북남) 경제협력문제는 한(조선)민족의 공동번영을 지향하고 있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제기한 남북(북남) 경제협력이란 민족의 공동번영이 아니라 북측을 개방, 개혁으로 이끌어내려는 대북정책의 전략목표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대변하는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프랑스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과 베트남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관계정상화를 실현한 미국의 경험에 관해서 언급한 것만 보아도 저들의 대북정책이 추구하는 전략목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북측의 핵포기를 '6자회담의 성공'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북측의 개방, 개혁을 '남북경제협력'이라는 말로 표현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그의 정적들이 모여 있는 한나라당의 대북정책과 놀라우리만치 닮은꼴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즈음하여 내놓은 공식논평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포기와 개혁, 개방이라는 당면과제에 대하여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수 있도록 설득하고 유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평소에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면서도 대북정책에서는 북측의 핵포기와 개방, 개혁을 추구하는 동일한 전략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다만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동일한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방법론의 상이성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달러의 힘'으로 그 전략목표를 실현하려고 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압박공세로 그 전략목표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다르다.

노무현 정부가 '남북경제협력'을 크게 확대발전시켜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려고 하는 까닭은, 한나라당 식의 압박공세로는 북측의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은, 봉쇄와 압박으로는 체제붕괴를 실현할 없는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체제의 점차적인 와해과정이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주장하는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이란 민족의 공동번영이 아니라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는 체제의 점차적 와해를 뜻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측의 사회주의체제를 봉쇄와 압박으로 무너뜨리는 것 대신에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어 점차적으로 와해시키려는 것은, 워싱턴의 제국주의지배세력이 오래 전부터 논해오는 이른바 '정권교체' 또는 '체제변화'의 실천방도이며, '경제지원' 또는 '경제협력'이라는 구실로 자본을 침투, 확산시켜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무력화시키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려는 신자유주의세계화의 강령적 지침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이란,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이미 남(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체결하기로 합의해놓은 이른바 '자유무역협정'을 한(조선)반도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한(조선)반도 자유무역지대 창설방안'이다.

2007년 8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대화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내놓은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은, 남측의 중소기업이 진출하여 북측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개성공업단지의 제한적 수준을 뛰어넘어, 남북(북남) 두 정부가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상품, 서비스, 인력의 자유로운 교역을 막는 장벽을 제거하며 중소기업만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가진 대기업과 외국기업이 북측에 진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은 신자유주의세계화의 깃발을 든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독점자본과 남측의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이 연합하여 '북측의 자원개발, 공업기술개발, 농업진흥,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2003년 6월에 중국과 홍콩특별행정구가 체결한 이른바 경제협력강화협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을 모방한 '남북경제협력강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과 홍콩특별행정구는 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270여 개 품목이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서비스부문은 경영자문, 보안, 보험, 법률, 물류, 교환 등에서 탈규제 혜택을 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경제통합을 실현하여, 중국이 홍콩을 경제특구로 흡수한 것이다. 중국이 홍콩을 특별행정구로 흡수통합한 것처럼, 노무현 정부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은 남측이 북측을 자본주의경제특구로 흡수통합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방안'은 전형적인 흡수통합방안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합의하고 한(조선)민족 전체가 지지하는 민족의 공동번영이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번영과 흡수통합은 상호배치되는 개념이다. 흡수통합의 길에서는 절대로 공동번영이 실현될 수 없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입으로는 민족의 공동번영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경제적 흡수통합을 추진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손목에 찼던 그 조그만 시계는 민족의 공동번영을 배제하고 경제적 흡수통합을 추진하려는 대북정책의 상징이었다.

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색이 흐렸던 까닭

남측 언론들은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거행된 환영행사에 나와 노무현 대통령을 맞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색이 밝지 않았던 원인에 대해서 구구한 억측을 늘어놓고 있다. 이번에 남측 언론들이 노무현 대통령 환영행사를 일곱해 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 환영행사와 비교할 수 있도록 게재한 두 장의 사진을 대조해보면, 2000년 6월 13일 순안비행장에서 거행된 환영행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밝은 안색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맞았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2000년 6월 13일 아침 김대중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겨우 달걀 반숙 반쪽만 먹고 평양방문길에 올랐다. 역사적인 평양방문이 안겨준 심리적 흥분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는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데 점심식사는 잘 하셨는지를 정중하게 물었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상대의 회담전략과 협상전술은 물론이고 성격과 심리상태, 그리고 건강과 식사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에도 일곱해 전과 마찬가지로 그러하였다.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회담상대로 만나기 위하여 사전에 파악한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2000년 6월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출발하기 1주일 전,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대북정책조정관 웬디 셔먼을 청와대에 급파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주는 일종의 행동지침을 주기 위해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1차 최고정치회담에서 클린턴이 제시한 행동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행동지침을 줄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행동지침을 받지 않고서도 부쉬의 대북정책을 충실히 수행할 만큼 정치적으로 길들여진 추종자임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쉬의 대북정책을 충실히 추종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더 대화가 통하지 않는 회담상대를 맞게 되었음을 뜻한다.

제2차 최고정치회담을 앞두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분석해보면, 그가 추종하는 부쉬의 대북정책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하는 통일정책이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끌어내려는 부쉬의 대북정책을 머리속에 담고 평양으로 출발한 노무현 대통령을 회담상대로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으로 출발하던 날 아침, 그가 청와대에서 출발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을 남측에서 생중계로 방영한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유심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하였던 대로, 그가 출발성명을 읽어 내려갈 때나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 통일이라는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았음을 보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기피증에 걸린 회담상대를 어떻게 설득하여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셋째, 대통령 전용승용차를 선두로 하여 길게 늘어선 방북차량행렬이 청와대 경내에서 벗어나 서울 중심가를 지날 때 아무도 환송해주지 않아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남측의 분위기를 텔레비전 생중계 방송화면을 통해 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기 말에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곤경을 육안으로 확인하였을 것이다. 2000년 6월과는 판이하게 다른 남측의 분위기를 지켜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 나타난 회담상대는 2000년 6월의 회담상대와 너무 달랐다. 남측의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정치적 고립상태가 심해질수록 백악관의 비호와 후견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부쉬정부의 대북정책을 충실하게 추종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부지해야 하는 회담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선군정치의 붉은 기치 아래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해가는 혁명적 열기가 드높은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를 품고 찾아오는 회담상대를 텔레비전방송 생중계 화면을 통해서 바라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경은 매우 착잡하였을 것이다.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거행된 환영행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색이 밝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2007년 10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