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 무엇을 논하였는가
3. 추상적 개념 속에 통일강령을 담다
4. 평화강령 실천을 공약하다
5. 평화강령과 비핵화강령을 구분하다
6. 자유경제무역거점을 배격하고 남북(북남)경제협력거점을 지향하다
7.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2007년 10월 4일은 60년을 헤아리는 한(조선)민족의 통일운동사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뜻깊은 날이다. 그 이정표를 공약형식으로 표기한 역사적인 문서가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나는 그 선언을 줄여서 '10.4 평양선언'이라 부른다. 선언을 발표한 날짜와 발표한 곳을 약칭으로 삼는 것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일인데, 남측 언론들은 발표날짜만 얹혀서 '10.4 선언'이라고 부른다. 청와대 안보실장 백종천은 '2007 남북정상선언'이라고 불러달라고 언론들에게 요청하였는데, 그 약칭은 북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10.4 선언'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편향적인 오류로 된다.

또한 나는 남측이 정상회담이라고 부르고 북측이 단독회담이라고 부르는 회담을 최고정치회담(supreme political talks)이라고 부른다. 이번 회담이 2000년 6월에 이어 일곱 해만에 열린 최고정치회담이므로 제2차 최고정치회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고정치회담을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회담과 구별하여 후자를 고위급정치회담(high-level political talks)으로 부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최고정치회담은 남측의 자본진출과 북측의 '경제회생'을 위한 경제회담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정치회담으로 되었다. 이것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의 준비, 진행, 결속을 산만하게 보도한 남측 언론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분량의 정보들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나서 내린 나의 결론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이번 회담에 임하면서 경제협력에 관해서 많은 준비를 했고 실제로 회담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던 것처럼, 그는 남측의 자본진출과 북측의 '경제회생'을 위한 경제회담을 진행하려고 사전에 준비도 많이 해갔고, 회담현장에서 애도 많이 썼지만, 그 회담은 명백하게도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정치회담으로 귀결되었다. 총리급이나 장관급(상급)이 만나 실무문제를 처리하는 회담과 달리, 최고당국자가 만나는 회담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이 있는데, 그러한 필연성을 무시하고 경제회담을 진행하려고 시도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상 자체가 애초에 무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새로운 정치적 합의가 나올 것을 기대하였던 사람들 가운데는, 10.4 평양선언이 6.15 공동선언이 천명한 통일문제에 관한 원칙만 재확인하고 강조하였을 뿐, 조미관계의 급진적 발전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급변시키는 현 시기에 통일문제를 해결할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를 내오지는 못하였다고 생각하고 아쉬움을 느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조미관계의 급진적 발전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급변시키고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최고정치회담이 열렸는데, 그 회담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합의를 내오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남측 정부당국과 남측 언론들은 10.4 평양선언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자의적인 취사선택으로 가공하고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한 '정보'를 쏟아놓는데 자기들의 선전역량을 총동원함으로써 대중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휘저어놓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의 앞장에 서 있는 사람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의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측 경내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10.4 평양선언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진전된 합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2007년 10월 5일 청와대에서 제2차 최고정치회담 이후 첫 번째로 소집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10.4 평양선언은 "남북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전단계로서, 전면적인 경제관계를 선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특히 경제협력사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상호이익이 되는 투자적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것으로, 이를 위한 장단기 투자계획을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수립하도록 하라"고 각료들에게 지시하였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왜곡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뒤섞어놓은 '정보의 홍수' 속을 헤치고 나아가, 10.4 평양선언에 담겨진 참된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제2차 최고정치회담에서 무엇을 논하였는가

백화원 초대소에서 최고정치회담을 시작하였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나라의 통일문제를 설명하였다. 나라의 통일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국가연합기구 창설방안만을 머릿속에 주입 받아온 회담상대를 설득하려는 그의 설명은 차라리 호소에 가까웠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무현 대통령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준비기획단'이 펴낸 '2007 남북정상회담 합의 해설자료'를 읽어보면, 자주문제와 통일문제에 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설명을 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남측 정부당국이 "국익을 위해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를 병행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이 남북관계 진전은 물론 6자회담 및 북미, 북일관계 개선에 기여하였다"는 엉뚱한 발언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 시기 한(조선)민족이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정신으로 해결해야 할 나라의 통일문제란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문제, 그리고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 창설하는 문제를 뜻한다. 지금까지 남측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아서는,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방안 확정문제와 상설협의기구 창설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통일방안을 합의하려고 하였다면, 그것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되었을 것이다. 일곱 해 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6.15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완강히 거부하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합의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개념을 제시하였으므로,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합의할 통일방안이 연방제 통일방안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연방제 통일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면서, 북측이 거부감을 느끼는 개방개혁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더 완고하고 경직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를 미리 파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합의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의도한 것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공인하는 정치적 합의를 내오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한 공약을 내오는 것이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한 공약을 내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북(북남)정부당국이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뜻한다.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은, 남측의 진보정치세력이 추구하는 조국통일운동의 당면목표일 뿐 아니라,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발표된 김영삼 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 이른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도 들어있다. 이 글에서 중시하는 것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문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통일강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사실이 북측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지만, 그의 통일강령은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돐 기념 평양시 보고회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의 발언을 통해서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할 것임을 지적한 안경호 서기국장의 보고발언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10.4 평양선언을 읽어보아도, 상설협의기구 창설에 관한 내용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까닭은, 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중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통일강령을 그 선언에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상적 개념 속에 들어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을 읽어내야 10.4 평양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방안을 제안하였다. 그는 평양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대국민 보고연설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해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해상평화공원, 그리고 해주공단개발과 이를 개성공단, 인천항과 연결하고 한강 하구의 공동이용을 묶어서 포괄적으로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하고 그리고 경제적 협력을 해나가는 포괄적인 해결방안으로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해주를 거점으로 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방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다. 1999년 10월말에 평양을 방문한 현대그룹총수 고 정주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해주공업단지 창설방안을 설명한 적이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방안은 이전에 나왔던 해주공업단지 창설방안을 한층 더 확대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듣기 좋은 수식어로 치장하여 내놓은 그 방안은, 뉴욕금융시장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일간지 월 스트릿 저널 2007년 10월 5일자 기사에 나온 정곡을 찌른 표현을 빌리면, 남측이 미국, 일본과 손잡고 북측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한 개방개혁의 실천과제이다.

회담상대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기는커녕 달러의 힘으로 그것을 와해시키려는 개방개혁의 본색이 회담현장에서 드러나자 긴장된 토론이 벌어졌다. 평양방문 둘째 날 옥류관에서 오찬 인사말을 하면서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어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고 실토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미루어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성공업단지가 '개방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왜곡하는 남측 정부당국의 부당성을 지적, 비판하면서 개방개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방개혁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양방문 둘째 날 옥류관에서 오찬 인사말을 하면서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개성공업단지를 찾아가 "그 동안 개성공단이 잘 되면 북측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은 남북이 하나되고 함께 성공하는 자리이지 누구를 개방, 개혁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불편한 것만 해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개방개혁이라는 말을 삼가면서 다른 말을 골라쓰는 용어선택의 배려가 아니라, 대북투자를 확대하여 시장경제를 촉진함으로써 북측의 사상과 체제를 점차적으로 와해시키려는 대북정책의 부당성이다.

이와 같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충돌의 결말이다. 10.4 평양선언은 그 충돌의 결말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문서이다.

3. 추상적 개념 속에 통일강령을 담다

남측 정부당국과 남측 언론들은 무시하려 애쓰고, 남측의 진보적 정치활동가들 가운데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10.4 평양선언에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합의가 담겨있다. 선언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은 사람들은 선뜻 믿지 못할 말이지만, 놀랍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은 10.4 평양선언에 공약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우선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정해진 제목부터 범상한 것이 아니다.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을 그 선언의 제목에 일상적 의미로 안친 것이 아니다.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은 10.4 평양선언이 가리키는 총적 방향을 규정한 핵심개념이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강령을 공약형태로 표현하여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 앞에 제시한 열쇠말이다. 이 열쇠말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원래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은 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것이다. 그 선언의 전문은 제1차 최고정치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북남)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그 개념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던 안경호 서기국장의 2000년 10월 보고발언에도 들어있으며, 2007년 8월 5일 김만복 국정원장과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이 각기 "상부의 뜻을 받들어"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북남)합의서'에도 들어있다. 그 합의서는 제2차 최고정치회담이 "역사적인 6.15 남북(북남)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 발전시켜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에서 시작하여 안경호 서기국장의 보고발언을 거쳐 10.4 평양선언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기된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이 지시하는 의미는 남북(북남)관계의 정치적 발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북남)관계 발전은 곧 남북(북남)관계의 정치적 발전이다. 남북(북남)관계는 정치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므로, 10.4 평양선언은 남측에서 흔히 쓰는 관계개선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관계발전이라는 개념을 택하였던 것이다.

남북(북남)관계의 정치적 발전은 남북(북남)관계 정상화로 나아가는 질적 변화를 뜻한다.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면 그것이 곧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전까지 남북(북남)관계는 비정상적 관계이며, 연방제 통일을 실현해야 남북(북남)관계가 정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북(북남)관계가 발전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것이고, 남북(북남)관계가 정상화되면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관계(relation)를 법적으로 규정하여 공고하게 만든 것이 제도(system)이므로, 남북(북남)정부당국이 남북(북남)관계를 발전시킨다는 말은 남북(북남)관계 발전을 제도화(systematize)한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강령에 따르면, 남북(북남)관계 발전을 제도화하는 것이 바로 상설협의기구 창설이다. 그러므로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북남)관계 발전, 상설협의기구 창설, 낮은 단계의 연방제 실현이 통일강령의 동일한 의미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세쌍둥이 개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강령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인 것이다. 10.4 평양선언의 제목에 나와있는 남북(북남)관계 발전이라는 개념이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강령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10.4 평양선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전문(前文)이다. 전문은 선언의 앞머리에 보기 좋게 얹어놓은 장식물이 아니라, 선언을 채택하게 된 경위, 배경, 목적을 가리켜주는 조타수이다. 이를테면, 헌법전문에는 그 아래에 나오는 모든 헌법조항을 성립시킨 헌정사적 경위, 정치적 배경과 근본목적이 밝혀져 있다. 10.4 평양선언도 예외가 아니다.

10.4 평양선언의 전문은 네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세 문장은 그 선언을 채택하게 된 경위와 배경을 밝혀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언이 추구하는 목적을 밝혀준 네 번째 문장이다. "쌍방은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북남)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문장에 따르면, 10.4 평양선언을 채택한 목적은, 명백하게도,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북남)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함이다.

조타수 역할을 하는 전문은 10.4 평양선언의 합의사항 전체를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10.4 평양선언에 나오는 여러 합의사항들은 전문이 규정하는 방향에 따라서 정리된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합의사항 가운데 일련번호를 달아놓은 것은 8개이지만, 맨 마지막에 있는 두 개의 합의사항은 그 앞에 있는 8개 합의사항에 부속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합의사항으로 인정해야 할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10.4 평양선언의 합의사항은 모두 10개라고 보아야 한다. 남측 정부당국도 10.4 평양선언에 8개의 본항이 있고 2개의 별항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10.4 평양선언에 나오는 10개의 합의사항은 전문에서 지정한 대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북남)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내온 일련의 공약들이다. 그 공약들은 한결같이 남북(북남)관계를 발전시켜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문제와 결부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임기가 넉 달 밖에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중적 지지마저 잃어버려 쇠약해진 노무현 정부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를 명시적으로 합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는,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조미관계 발전이 본격화되고 나서 남측에 들어서게 될 차기 정부와 정치적으로 푸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의도한 것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준비조치를 합의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10.4 평양선언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일곱 종류의 준비조치를 아래와 같이 명시하였다.

3-1) 남북(북남)정부당국은 정치적 신뢰를 쌓음으로써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다.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서로를 불신하면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10.4 평양선언에서 "남과 북(북과 남)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북남)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한 합의사항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준비조치로 해석해야 추상개념 속에 들어있는 실질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2) 남북(북남)정부당국은 6. 15 공동선언의 이행의지를 갖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정부당국자들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지만,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10.4 평양선언은 이 문제를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는 합의사항으로 표현하였다. 6월 15일을 기념하는 것은 2000년에 있었던 역사적 사변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상설협의기구 창설이라는 미래의 대사변을 준비하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3) 남북(북남)정부당국은 내부문제 불간섭원칙을 확고하게 지킴으로써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다. "남과 북(북과 남)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북남)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는 10.4 평양선언의 합의사항은, 장차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내부문제 간섭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고 내부문제 불간섭원칙을 지키기로 공약한 것이다.

3-4)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각급 정치회담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남북(북남) 사이의 각급 정치회담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각급 정치회담을 제도화하려면 법률적, 제도적 장치부터 통일지향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상대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붙들고 있는 정부당국과 함께 상설협의기구를 내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10.4 평양선언에서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나가기로" 공약한 것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기존의 정치적 요구를 넘어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새로운 정치과제를 지향한 것으로 평가된다.

3-5) 상설협의기구에는 남북(북남)정부당국은 물론 남북(북남)에 있는 정당들, 사회단체들도 참가하여야 한다. 따라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남북(북남)의 정당들이 정치회담을 시작하여야 하며, 남북(북남)해외 사회단체들의 협의체로 결성된 6.15 민족공동위원회도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하는 기존의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 지위, 기능, 역할을 한층 더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남북(북남)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공약한 10.4 평양선언의 합의사항은, 상설협의기구가 명실공히 전민족적 의사를 민주주의적으로 수렴하는 정치협의기구로 창설될 것임을 예고한다.

3-6)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남북(북남)정부당국과 상설협의기구의 관계문제를 확정해야 한다. 이것은 상설협의기구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는 것이다.

2000년 10월에 있었던 안경호 서기국장의 보고발언에 따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창설되는 상설협의기구는 그 법적 지위가 남북(북남) 두 정부의 법적 지위보다 높다. 이것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상설협의기구의 결정을 집행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뜻이며, 상설협의기구의 결정이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상설협의기구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는 중대사는 남북(북남)에서 각각 의회의 동의와 비준을 거쳐야 하므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는 남북(북남) 의회의 정치적 합의가 중요한 과제로 나서게 된다. 10.4 평양선언이 남북(북남)의회회담을 개최할 필요성을 지적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이 남북(북남)의회회담을 개최하자고 처음으로 제의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85년 4월이었고, 1988년 7월에도 국회연석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남북(북남)의회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예비접촉이 1985년 7월과 9월에 있었고, 1988년 9월과 1990년 1월에는 남북(북남)의회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접촉이 성사된 바 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남북(북남)의회회담은 성사될 수 없었다. 남북(북남)의회회담 개최문제를 22년만에 다시 10.4 평양선언에서 공약함으로써 정책적 일관성을 견지한 북측 정부당국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3-7)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남북(북남)정부당국의 정치회담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정치회담이 확대, 발전되어 정치협의기구가 창설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기존의 장관급(상급)회담이 정세변화에 민감하여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평가하면서 총리급회담을 제안하였다. 그 제안은 "남과 북(북과 남)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북남)총리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1차 회의를 금년 11월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는 합의사항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최고정치회담을 정례화하자고 제안하자, 그 회담을 정례화할 것이 아니라 수시로 진행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10.4 평양선언은 "남과 북(북과 남)은 남북(북남)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수뇌)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는 공약을 담을 수 있었다.

4. 평화강령 실천을 공약하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는 것은,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필수조건이다. 통일강령에서 바라보면, 평화는 평화통일의 필수조건으로 된다.

명백하게도, 한(조선)반도에서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통일실현과정과 한국(조선)전쟁의 정전체제를 해체하는 평화실현과정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나라의 통일을 평화통일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정전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라가 평화적으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와 정전체제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관계로 얽혀있다는 말은, 나라의 통일과정에서 분단체제의 해체와 정전체제의 해체가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어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나라를 통일한다는 말은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를 연속적으로 해체한다는 뜻이다.

통일강령에 따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통일하려면, 상설협의기구를 내오는 것과 함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평화체제를 세워야 한다. 전쟁위험이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를 옥죄는 조건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10.4 평양선언이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을 실천하는 문제를 두 개의 관계로 구분하여 규정하였다는 점이다. 두 개의 관계란 남북(북남)관계와 조미관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은 남북(북남)관계와 조미관계에서 동반적, 상응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이 남북(북남)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동반적, 상응적으로 실천된다는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연설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바 있는 종전선언 방안을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2007년 9월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로부터 받은 요청을 이번에 행동에 옮겼다는 뜻이다. 당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는 한국(조선)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서명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한국(조선)전쟁을 종식해야 하고 종식할 수 있다는 결심을 표명하면서, 자신의 희망과 결심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탁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그를 통해서 전해진 부쉬의 요청을 듣고 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종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전에 한미 간에 논의한 바 있는 종전선언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쉬의 제안이 성사되도록 노무현 대통령이 "한번 노력해 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부쉬의 제안이 성사되도록 노력해보라고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부쉬에게 보내는 자신의 결심도 표명하였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이행하기로 공약한 평화강령을 논한다. 남북(북남)정부당국은 10.4 평양선언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여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아래와 같이 공약하였다.

4-1) 남북(북남)정부당국은 전쟁반대원칙과 불가침원칙을 준수하기로 공약하였다. 전쟁반대와 불가침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평화강령의 행동지침이다. 10.4 평양선언은 "한(조선)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다. 어떤 전쟁도 반대한다는 말은 제국주의침략전쟁과 반동적 내란을 모두 반대한다는 뜻이다.

4-2)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정치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철폐하자는 제안을 내놓지 않을까 예상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철폐제안에 대비한 수정제안을 준비해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측에서 일반대중이 알고 있는 북방한계선에 관한 인식내용에 대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물론 남측에서 일반대중이 알고 있는 북방한계선에 대한 정보는 왜곡된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해한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과 달리 북방한계선 철폐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까닭은 두 가지이다.

첫째, 북방한계선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불법적인 조치이므로, 그 조치를 철회하는 최종결정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있다. 따라서 북방한계선 철폐권한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과 철폐문제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북방한계선 철폐문제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폐기하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간, 해주에서 한강(림진강)하구에 이르는 해역을 '평화번영수역'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에는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이 들어있으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방한계선 철폐문제를 구태여 거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0.4 평양선언에서는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기로 공약하였다. 원래 공동어로수역은 2007년 7월에 열린 제6차 장성급(장령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제안한 것이다. 이번에 남측이 수정제안하고 북측이 동의한 '평화번영수역'이란, 해양수산부장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모든 무력행동이 배제되는 포괄적인 평화지대로서, 군함이 드나들 수 없고 공동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 행동과 해양생태계 보전활동만 가능한 수역인 것이다. 이것은 '평화번영수역'을 창설할 경우 북방한계선이 사실상 무력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4-3)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문제"를 협의하기로 공약하였다. 이것은 남북(북남)의 군사당국자들이 남북(북남)경제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안전보장조치를 협의한다는 뜻이다. 비록 합의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군사적 안전보장조치에 관한 협의는 남북(북남)군사실무회담과 장성급(장령급)회담에서 이미 진행된 바 있다.

4-4) 위의 실천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 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공약하였다.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군사회담은 2000년 9월에 제주도에서 한 차례 열린 바 있는데,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제2차 군사회담을 열자고 합의한 것이다.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개최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 남북(북남)군사회담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조미 정부당국이 실천할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이 따로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0.4 평양선언에 담겨진 평화강령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실천할 평화강령과 조미 정부당국이 실천할 평화강령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통일부장관 이재정이 2007년 10월 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한(조선)반도 안에서 북측, 남측, 미국의 정상(수뇌)들이 참가하는 3자구도로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부쉬의 제안에 공식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안한 한(조선)반도 3자 평화회담 개최문제는, 10.4 평양선언에 들어있는 한(조선)반도 평화강령의 여러 실천지침들 가운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조선)반도 평화문제는 조미수교회담,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6자회담이라는 세 종류의 수준이 서로 다른 정치회담에서 동반적, 상응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6자회담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되었고,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자회담 제안으로 실현가능성이 열렸으며, 6자회담과 평화회담의 진전결과에 따라 조미수교회담이 성사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조미수교회담은 조미 두 나라만 참가하는 양자회담이고, 한(조선)반도 평화회담과 6자회담은 조미관계가 주도하는 다자회담이다. 이 세 종류의 회담 가운데서 남측 정부당국이 당사자로 참가할 수 있는 회담은 한(조선)반도 평화회담과 6자회담이다. 10.4 평양선언은 남북(북남)정부당국 사이의 공약이므로, 조미수교회담에서 해결하여야 할 평화문제에 관해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 평양선언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형식을 취하면서 부쉬에게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공식 제안하였다. 위에서 논한 대로, 북측의 공식제안은 북측, 남측, 미국 3자 정상(수뇌)들이 한(조선)반도 지역에서 만나 평화회담을 갖자는 것이다. 북측이 중국을 배제한 3자 평화회담을 제의하였을 때, 놀란 쪽은 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남측 당국자들이었다. 남측 당국자들은 한중관계에서 일어날 외교적 파장을 걱정해서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평화회담을 10.4 평양선언에 넣자는 수정안을 내놓았고, 그에 따라 3자 또는 4자평화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는 표현으로 정리되었다. 국정원장 김만복은 2007년 10월 8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 참석하여,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북측이 평화회담 개최장소로 휴전선 인근지역을 제안하였다고 밝혔다. 휴전선 인근지역이란 판문점을 뜻하는 것이다.

주한미국대사 알렉산더 벌쉬바우는 2007년 10월 8일 통일부장관 이재정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평화회담이 올해 안에 성사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받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 조미관계가 주도하고 남측이 참가하는 형식의 판문점 3자 평화회담이 가까운 시일 안에 성사될 것으로 예상한다.

2007년 10월 5일 외교통상부장관 송민순이 기자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 남측 정부당국은 남측, 북측,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4자평화회담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정관념이다. 평화회담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정치회담이므로 한(조선)반도에서 적대관계를 형성한 당사자들 사이의 회담으로 되어야 하는데, 중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으므로 평화회담에 참가하는 당사자로 될 수 없다.

부쉬정부는 4자평화회담을 생각해오다가, 최근에 3자회담구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은 6자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10월 2일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가 직접 당사국들인지는 완전히 확정된 게 아니다. 다만 확정된 것은 미국 입장에선 평화체제 달성을 위해 우리의 몫을 기꺼이 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0월 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모임 오찬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주한미국대사 벌쉬바우는 "처음에는 3자라는 용어를 북측이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남측이 3자회담을 요구했었고, 결국 지금의 3자는 한(조선)반도에 군사력을 배치한 남북과 미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부쉬정부가 이번에 6자회담의 외피를 쓰고 진행된 조미양자회담을 거치면서 3자회담구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발상의 전환은 조미양자회담에서 북측의 설명을 듣고서 일어난 변화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자평화회담 제안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이 세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지만, 부쉬정부는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 중국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조선)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한 '외교공적'을 중국과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고 싶은 정치적 욕구가 발동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한(조선)반도 평화문제를 조미양자회담에서 해결하자는 북측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면서 제국주의전쟁위험과 반동적 봉쇄책동을 다자회담구도로 은폐하기 위해 6자회담을 고집해온 부쉬정부는, 정작 한(조선)반도 평화회담구도를 정해야 하는 오늘에 와서는 자기들이 세워놓은 다자회담구도에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되었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한(조선)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는 근본목적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유지해주고 제국주의전쟁위험을 몰고 오는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고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폐기시킴으로써 제국주의전쟁기제를 불능화하여 평화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주한미국군의 존재근거를 박탈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중국이 평화체제 수립과정에 개입하면 그 과정이 불가피하게 다자화, 국제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한(조선)반도 평화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분리될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다. 중국이 동북아시아 안보협력회담에 당사자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인정하면서도,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에서는 중국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셋째, 남측 정부당국은 이번 6자회담 중에 열린 조미양자회담에서 중국배제론이 거론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이전에 클린턴정부가 내놓았던 4자회담구도만을 종전대로 외우고 있는데, 부쉬정부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받으면 중국의 눈치를 살피기는 하겠지만 3자회담구도를 따를 것이다. 문제는 자기를 배제하려는 조짐을 간파한 중국의 반발이다. 아니나 다를까 10월 5일 주한중국대사 닝푸쿠이는 "중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력을 발휘하여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고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3자구도로 진행하는 문제는 조미양자회담에서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평화강령과 비핵화강령을 구분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화강령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6자회담을 성과적으로 결속하여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을 것이다. 새로운 국면이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해결할 조미수교회담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평화강령과 비핵화강령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화강령과 비핵화강령을 구분하였다. 평화강령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남측 정부당국과 일정하게 공조할 수 있지만, 비핵화강령을 실현하는 과정은 조미양자회담으로 진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문제는 조미양자회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6자회담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최종적으로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양자회담에서 결속할 문제이지 남북(북남)의 최고정치회담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남측 정부당국이 개입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안도 내놓을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남북출입관리소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연설에서 꺼낸 아래와 같은 발언은, 그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를 언급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드러내주었다.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풀고 있고, 지금 막 잘 풀려나가고 있는데, 저더러 자꾸 '북핵 문제 해결하고 와라, 해결하고 와라' 하는 것은 말하자면 문제해결의 타작마당은 따로 있는데 저더러 따로 어디서 또 타작마당을 벌이라는 얘기가 되니까, 저로서는 부담스럽게 생각이 됐습니다."

그런데 2007년 10월 1일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 탐 케이시는 기자들에게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가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최고정치회담에서 비핵화문제를 논하면서 비핵화에 관한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내라고 주문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핵화의지를 직접 확인해오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부쉬정부의 그러한 의도를 파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부쉬에게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를 재확인하여 그의 의심을 풀어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관해서는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진행한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보고연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김정일 위원장께서 아무 이의 없이 북핵문제에 대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점, 그리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중요한 선언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될 원칙으로서 재확인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어서 좋고, 이것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북핵 폐기에 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이니 만큼 이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부쉬에게 전하는 비핵화 실현의지는, "남과 북(북과 남)은 한(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10.4 평양선언의 공약형태로 표현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핵화 실현의지를 전해듣고 반색하는 것은 부쉬정부이다. 2007년 10월 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모임 오찬간담회에 들어가기 직전에 기자들과 만난 주한미국대사 벌쉬바우는 "북한이 완전 비핵화를 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 6자회담 합의이행을 약속한 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에 있어 중요한 계기를 주었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실현의지를 전해듣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2007년 10월 7일 부쉬정부는 6자회담의 합의사항과는 별도로 대규모 식량과 병원용 발전기 등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알렸다.

6. 자유경제무역거점을 배격하고 남북(북남)경제협력거점을 지향하다

2007년 10월 1일에 발행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보도한 것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시야에서 보면 북측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투자대상지"로 보인다. 남측의 기업들은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북측을 주목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각도 완전한 닮은꼴이다. 2007년 7월 19일 민주평통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방경제시대가 열리면 베트남 특수, 중동특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지적하였고,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베트남 특수, 중동 특수에 이은 세 번째 특수는 북쪽에 있다"고 말했다.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위험한 투자대상지를 매력적인 투자대상지로 바꿔보려고 애쓴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북이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공동번영의 구상을 미리 준비한 바에 따라서 상세하게 밝히고, 경제협력을 좀 더 체계적으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또한 그는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하고 안정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하고 안정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은, 남측 정부당국이 자유경제무역거점을 통하여 북측에 들여보내려고 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뜻한다. 이것은 북측의 경제특구에 진출한 남측의 "기업들이 시장경제원칙 아래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특구라는 이름으로 자유경제무역거점을 창설하고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제도화를 허용하는 경제개혁을 단행하라는 요구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경제무역거점을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그럴듯한 말로 바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하였고,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문제는 10.4 평양선언에 공약형태로 포함되었다. 이에 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간에 논의되어 오던 각종 경협사업들이 정상 간 합의로서는 좀 이례적이라고 할만큼 매우 구체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곱해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했던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문제를 이번에 자기가 해결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 성과를 두고 만족감을 느낄 만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끔 북방경제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 스스로 말하면서도 너무 까마득해서 혹시 허황된 주장 아닌가 하는 그런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번 우리 합의를 기초로 해서 앞으로 협력관계를 좀 속도 있게 발전시켜 나가면 북방경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 그 이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이름을 좋은 이름으로 붙여야겠습니다만 - 우리 한국경제에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방안은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해주항 개방과 해주지역 경제특구 건설, 한강(림진강)하구 공동이용을 내용으로 한다. 노무현 정부는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을 가리켜 '평화와 번영을 결합한 새로운 평화경제사업'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화경제사업'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는 "남북경협도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새롭게 발전하는 경제공동체 건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평양방문 직후에 노무현 대통령은 북측에 자유경제무역거점을 더 많이 만들자고 합의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경제특구를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서 북측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조건에서 남측이 경제특구를 너무 많이 한꺼번에 공세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라고 생각해서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는 한 군데만 더 늘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제안에 대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인 반응이다. 2007년 10월 5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청와대 대변인 천호성은 이번 최고정치회담에 관해 언급하면서, 오전까지만 해도 경제협력확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후에 속개된 회담에서 갑자기 입장을 바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경제협력확대방안을 대부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을 바꿔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제안을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그의 주장은 겉만 훑어보고 속을 알지 못하는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10.4 평양선언에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문제가 공약형태로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6-1) 남포항에 조선협력단지를 설립하는 문제는, 남측 정부당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추가개방'이 아니라 북측이 대우조선해양에게 남포수리조선소 확장사업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을 이번에 10.4 평양선언에 넣은 것이다. 이번 최고정치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해의 남포항과 함께 동해 쪽에도 선박공장을 공동으로 설립하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그 대상지로 안변항을 지목하였다. 그리하여 남포항과 안변항이 남북(북남)이 합작하는 조선협력단지로 선정된 것이다.

6-2)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고 백두산 관광사업을 허용한 것을 금강산 개방에 이은 '추가개방'이라고 주장하지만, 백두산은 금강산과 달리 북측의 혁명역사와 직결된 곳이고 예로부터 한(조선)민족의 발생지로 인정되고 있어서 자연경관이 빼어난 금강산 관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북측의 시각에서 보면, 백두산 관광은 관광투자를 허용한 경제적 측면보다는, 남측 인민들이 '혁명의 성산'과 민족의 발생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정치적 측면이 더 돋보인다.

6-3) 10.4 평양선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해주지역에 제2의 경제협력거점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첫 번째 경제협력거점은 개성지역에 설치된 바 있다.

남측 연구기관들의 평가에 따르면, 해주는 시설규모가 작으면서도 고용효과가 높은 수출지향형 경공업과 전기, 전자산업에 적합한 지역이라고 한다. 해양수산부장관 강무현은 2007년 10월 5일 대언론설명회에서 2015년까지 2천200억 원을 들여 해주항을 2개 컨테이너 선석을 포함해 8개 선석, 하역능력 480만t 규모로 단계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또한 현대경제연구원은 북측이 해주지역 경제특구에서 얻게 될 경제적 효과가 83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전혀 다르다. 그가 해주지역에 경제협력거점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남북(북남)경제협력이 중대한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북(북남)관계가 확대, 발전되어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가 창설되면, 그 기구 앞에는 한(조선)민족의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경제협력강령을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수행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제기될 것이다.

따라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남북(북남)경제협력의 목적과 원칙을 합의해야 하며, 지금부터 남북(북남)경제협력의 경험을 쌓고 성과를 내와야 할 것이다. 10.4 평양선언이 명시한 남북(북남)경제협력의 목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며, 10.4 평양선언이 명시한 남북(북남)경제협력의 원칙은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한 것도 아니고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남측의 항만공사는 최근 해외항만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중인데, 투자지역으로 확정한 대상들에는 베트남과 스리랑카 이외에 해주가 있다. 남측 정부당국과 남측 언론들은 해주항 개방을 내세우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방안을 가장 큰 성과로 추켜 올리지만, 그들의 시야에 보이는 해주는 남북(북남)경제협력거점이 아니라 남측 자본의 해외투자대상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은 대북투자 자유화, 금융자본 진출, 시장경제적 상호의존, 점진적 시장경제화, 경제통합 완성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그것은 또한 북측을 개방과 개혁으로 유도하여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한(조선)반도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남측 정부당국에게 있어서 경제협력은 곧 개방과 개혁이다.

개방과 개혁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북측에 들여놓는 것이며,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도입은 북측의 자립경제노선을 약화, 마비시키고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변질, 와해시킬 위험을 불러온다. 북측을 개방하여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들여놓으면 북측의 사회주의생산관계가 차츰 변화되고 그에 따라 북측의 사회계급관계도 변화된다. 오늘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경험에서 드러나듯이, 이미 오래 전에 소멸된 자본계급과 중산층이 개방개혁으로 다시 출현하고, 그들의 준동에 의해 체제와해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주한미국대사 벌쉬바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혁,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질까봐 우려하는 것 같으나 북한이 살 길은 개혁, 개방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은 북측이 사는 길이 개방과 개혁을 단행하여 스스로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것밖에 없다는 망언 중의 망언이다. 2007년 9월 25일 뉴욕에 있는 코리아협회 초청연설에서 "한미공동으로 북한에 경제적으로 진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의 대북정책을 적극 추종하고 있다.

둘째,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은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남측 정부당국이 말하는 '남북경제공동체'란 분단체제를 두 나라로 갈라놓아 민족분열을 합법화, 영구화하는 국가연합기구의 다른 표현이며, 남측 정부당국이 말하는 통일비용은 흡수통합비용의 다른 표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형태의 흡수통합도 거부하고 6.15 공동선언의 평화통일강령을 계승하는 10.4 평양선언에 서명해놓고서도, 여전히 흡수통합을 정당하다고 믿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이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이행시키는 국가연합기구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북남)경제협력강령은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건설되는 연방통일국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개성공업단지와 해주공업단지가 남북(북남)경제협력거점으로 될 것인가 아니면 자유경제무역거점으로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북측이 자본주의경제개혁을 단행하는가 단행하지 않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북측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자본주의경제개혁을 단행하면 개성공업단지와 해주공업단지는 당연히 자유경제무역거점으로 될 것이고, 그것을 단행하지 않으면 남북(북남)경제협력거점으로 될 것이다.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의 혁명적 기치를 들고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북측이 자본주의경제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남측의 재벌기업들도 알고 있다. 삼성, 현대, 에스케이, 엘지 등 4대 재벌기업이 북측에는 아직 자본, 기술집약적 산업에 투자할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남측 정부당국이 제기한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또한 개성공업단지 창설 이후 여섯 해가 되었는데 아직 1단계 계획조차 완결되지 못한 까닭도, 북측이 자본주의경제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있는 남측의 대기업들이 개성공업단지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있는 코리아경제연구소(KEI)의 의회통상담당 국장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방안이 "북측에게 제한적 개방만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남측 경제를 성장시키는 효과는 적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전면적인 체제개혁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북남)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려면 몇 십 년이 걸릴 것이므로, 북측에 추가로 경제특구를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전면적인 경제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으로, 그의 주장은 북측이 자본주의경제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없음을 반증한다.

7. 글을 맺으며

결론을 말하면, 10.4 평양선언의 핵심내용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정치공약이며, 상설협의기구 창설을 지향한 실천적 합의이다. 이 글에서 논한 대로, 10.4 평양선언에서는 그러한 정치공약과 실천적 합의가 추상적 개념으로 표현되었거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합의형태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건성으로 읽으면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은 추상적 개념과 상반적 해석이 가능한 합의형태 속에 담긴 참된 의미를 찾아내야 하며, 그 의미를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 대중이 10.4 평양선언의 진실과 만날 때, 그 선언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위대한 실천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 선언의 이행을 대중과 함께, 대중 속에서 준비하는 것은 현 시기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이다. (2007년 10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