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평양선언이 제시한 3대 강령과 19개 이행공약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6.15 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과 방안을 함축적으로 서술한 두 조항과 당면과제를 풀기 위한 세 조항으로 이루어져 간소한 느낌을 주는데, 그에 비해 10.4 평양선언은 6.15 공동선언의 통일원칙과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강령과 이행공약을 열 가지 조항으로 서술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민족자주와 민족공조라는 통일의 원칙, 그리고 연합제안과의 공통성을 가진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방안을 제시하였고, 10.4 평양선언은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의 원칙에 따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한 3대 강령을 제시하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3대 강령이란 남북(북남)관계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발전시키는 통일강령, 평화강령, 경제강령이다. 10.4 평양선언에는 남북(북남)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통일강령, 평화강령, 경제강령이 전면적으로 반영되었고 그 3대 강령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공약이 담겨있다. 남북(북남)정부당국이 10.4 평양선언의 3대 강령과 이행공약을 실행에 옮기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될 것이다.

1. 10.4 평양선언의 통일강령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네 가지 이행공약

10.4 평양선언의 3대 강령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강령이다. 그 선언에 따르면, 통일강령이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그 선언을 적극 구현하는" 것과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북남)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키는" 것이다. 10.4 평양선언의 통일강령에 명시된 6.15 공동선언의 고수와 구현, 그리고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상호존중과 신뢰관계의 형성이란,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10.4 평양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은, 비록 통일강령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내용적으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통일강령을 서술한 조항들이다.

그런데 남측정부당국은 10.4 평양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이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으므로 무시해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통일기피증이 만연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10.4 평양선언의 제1항과 제2항이 선언적 의미에 지나지 않으므로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천박한 논리는 통일기피증에 걸린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은 10.4 평양선언이 통일강령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 강령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공약을 명시하였다는 사실 앞에서 공허해진다.

모든 강령에는 이행공약이 따르는 법이다. 이행공약이 없는 강령합의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10.4 평양선언은 통일강령의 이행공약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통일강령의 이행공약은 현 정세에서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실행할 네 가지 공약이다. 통일강령의 4대 이행공약은 아래와 같다.

1)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합의한 공약

2)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북남)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공약

3)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합의한 공약

4) 남북(북남)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한 공약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문제, 또는 "남북(북남)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이다. 이 추상적인 표현 속에 담겨진 통일강령의 내용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상설협의기구 창설이야말로 남북(북남)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남북(북남)관계를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최상의 전략과제이다.

남북(북남)정부당국은 10.4 평양선언의 통일강령에 따라 상설협의기구 창설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앞으로 몇 해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할 수 있으며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위업을 완성할 수 있다.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려면, 남북(북남)정부당국이 10.4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4대 이행공약을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4대 이행공약을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상설협의기구 창설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북남)해외의 통일운동세력이 총결집한 6.15 민족공동위원회는 4대 이행공약을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하는 대중적 여론을 나라 안팎에서 조성함으로써 남북(북남)정부당국이 4대 이행공약을 실행에 옮기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조국통일운동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준비하는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2. 10.4 평양선언의 평화강령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여섯 가지 이행공약

10.4 평양선언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구현할 평화강령을 제시하였다. 그 선언에 나오는 평화강령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는" 것과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은 비핵화강령이다. 물론 10.4 평양선언의 평화강령과 9.19 공동성명의 비핵화강령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요컨대, 10.4 평양선언의 평화강령은 남북(북남)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마감하고,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10.4 평양선언의 평화강령에서는 남북(북남)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제1과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제2과제가 구분된다. 그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방도가 서로 다르고, 과제를 해결하는 정치회담의 수준 역시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제1과제는 남북(북남)정부당국 사이에서 해결하는 것이고, 제2과제는 3자 또는 4자 사이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비핵화과제는 6자 사이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세우는 평화강령에는 이행공약이 따른다. 이행공약이 없는 강령합의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10.4 평양선언은 평화강령의 이행공약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평화강령의 이행공약은 현 정세에서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실행할 여섯 가지 공약이다. 평화강령의 6대 이행공약은 아래와 같다.

1)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한 공약

2) 한(조선)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준수하기로 합의한 공약

3)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공약

4)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공약

5) 국방부 장관과 인민무력부 부장이 만나는 군사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공약

6)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에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수뇌)들이 한(조선)반도 안에서 만나는 평화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공약

평화강령의 6대 이행공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북남)군사회담과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추진하는 것이다. 10.4 평양선언에서는 남북(북남)군사회담을 2007년 11월 안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이미 합의한 바 있다. 군사회담 추진일정은 어렵지 않게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낙관할 수 있는데, 문제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추진하는 것이다. 두 가지 쟁점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평화회담 참가자를 정하는 문제이다. 3자 평화회담을 주장해온 북측은 중국을 배제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였으나, 백악관은 명확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3자 평화회담의 정당성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중국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아니라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조선)전쟁에 참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인민지원군 지휘관들은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병사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모표와 흉장을 떼어내고 참전하였다고 한다. 그 까닭은 중국이 중미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조선)전쟁에 지원군으로 참전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조선)전쟁에서 중국은 주동의 지위가 아니라 지원의 지위에 있었다.

정전협정의 체결주체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 유엔군총사령관 겸 미국육군대장 마크 클라크로 되어있고, 협정조인식 참석자는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겸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과 유엔군대표단 수석대표 겸 미국 육군중장 윌리엄 해리슨이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측이 최고사령관과 국가원수의 지위로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던 것에 비해, 중국은 지원군사령관의 지위로 협정을 체결하였다는 점이다. 협정체결주체의 그러한 지위격차는, 협정체결의 실질적 주체가 북측이었음을 말해준다. 협정체결의 실질적 주체가 북측이라는 사실은,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의 수석대표를 맡은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 두 나라 군대의 대표단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한데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것만이 아니라, 1953년 7월 28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제1차 회의에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을 대표하여 출석한 수석위원은 조선인민군 중장 리상조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한국(조선)전쟁의 국제법적 당사자가 조선과 미국 두 나라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엔군총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체결주체로 되었다고 해서, 유엔이 한국(조선)전쟁의 국제법적 당사자로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체결주체로 되었다고 해서 중국이 자동적으로 한국(조선)전쟁의 국제법적 당사자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한(조선)반도에서 어느 쪽과도 군사적 적대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있다. 오늘 판문점에서 대치한 쌍방은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와 유엔군 모자를 쓴 주한미국군사령부이다. 이러한 오늘의 현실은 중국이 평화회담 참가자격을 갖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이 중국을 제외한 3자구도로 개최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평화회담을 개최하는 시기문제이다. 남측정부당국과 북측정부당국은 평화회담을 2007년 12월 이전에 개최하여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대선이 실시되는 2007년 12월 19일 이전에 판문점에서 평화회담이 개최되면 그것은 한(조선)반도 정세는 물론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의 파고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시대착오적인 대결정책을 고집해온 한나라당은 그 변화의 파고 속에 침몰하게 될 것이다.

3자 평화회담을 개최하려면 먼저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해야 하고,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려면 북측이 비핵화강령을 실행하는데서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북측이 취할 주동적인 조치란, 북측이 보유했다고 미국이 주장하는 무기급 플루토늄 50kg을 처리하는 방도와 일정을 미국과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진행할 실무단이 영변핵시설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들이 임무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처리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조미양자회담이 곧 열릴 것이다.

3. 10.4 평양선언의 경제강령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아홉 가지 이행공약

남측정부당국은 10.4 평양선언의 의의를 논할 때 통일강령을 완전히 무시하고 평화강령을 북방한계선(NLL) 철폐문제로 한정시키면서, 경제강령만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우는 경제강령은 10.4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경제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혁개방으로 북측을 유도하여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사회주의자력갱생을 무력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남북경제공동체'를 창설하려는 시장경제화강령이다. 그러한 시장경제화강령이 신자유주의세계화를 악착스럽게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남측정부당국이 내세우는 시장경제화강령은 북측이 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실현될 가망이 없는 공상적인 경제강령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측정부당국이 주장하는 '남북경제공동체' 창설방안이 북측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부정을 전제하였으므로 6.15 공동선언과 10.4 평양선언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10.4 평양선언이 제시한 것은 시장경제화강령이 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경제협력강령이다. 10.4 평양선언의 경제강령이 민족경제강령으로, 통일경제강령으로 되는 것은 자명하다. 북측의 제도개혁과 시장개방을 배제한 남북(북남)의 경제협력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10.4 평양선언의 경제강령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한" 것이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란 불균형한 민족경제를 바로잡아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뜻이다. 민족경제의 불균형한 현실은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고유한 의미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세계화를 광란적으로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에 결박당한 전형적인 신식민주의예속경제이므로 민족경제가 전혀 아니다.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민족경제로 되려면, 남측정부당국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에 기생하는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을 청산하고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추구해야 한다.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을 청산하고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추구할 때, 남북(북남)정부당국은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실현할 수 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대량수탈의 올가미를 조이는 판에 그 무슨 민족공동의 번영이 가능하겠는가. 남측정부당국이 주장하는 '남북경제공동체' 창설방안은,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을 청산하고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을 배격하는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10.4 평양선언의 경제강령에 배치된다. 10.4 평양선언이 제시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민족공동의 번영이라는 경제강령은,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을 청산하고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을 배격하는 과정에서 실현될 것이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실현하는 경제강령에는 이행공약이 따른다. 이행공약이 없는 강령합의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10.4 평양선언은 경제강령의 이행공약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경제강령의 이행공약은 현 정세에서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실행할 아홉 가지 공약이다. 경제강령의 9대 이행공약은 아래와 같다.

1)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공약

2)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합의한 공약

3)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림진강)하구 공동이용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공약

4)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이른 시일 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공약

5) 통행, 통신, 통관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합의한 공약

6)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문제를 협의,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한 공약

7)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조선협력지구)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공약

8)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공약

9) 기존의 남북(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북남)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공약

9대 이행공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총리급 남북(북남)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두기로 합의한 공약이다. 이것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우선 경제협력부문부터 상설협의기구를 내오기로 합의한 것이다.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 창설은 정치부문보다 앞서 경제부문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4. 두 종류의 상설협의기구와 각급 회담의 연속개최

6.15 공동선언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는데, 남측의 방안과 북측의 방안에 들어있는 공통성이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공통성을 뜻한다. 남측의 연합제안도 상설협의기구 창설을 지향하고,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도 상설협의기구 창설을 지향한다. 10.4 평양선언은 3대 강령과 이행공약을 제시함으로써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상설협의기구 창설의 공통성을 구체화하는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남북(북남)정부당국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상설협의기구 창설문제에 서로 상반된 목표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두 종류의 상설협의기구를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는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연합을 창설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이다. 명백하게도, 전자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후자는 평화적 영구분단을 지향한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것이 민족의 통일염원에 전적으로 부합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문제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상설협의기구를 어떻게 창설할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북남)정부당국은 상설협의기구 창설문제를 정치회담을 통해서 해결할 것이다. 상설협의기구를 강제로 창설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10.4 평양선언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정치회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나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정치회담, 군사회담, 경제회담을 개최하면서, 그 세 종류의 회담 위에 총리회담과 최고정치회담을 이중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문제해결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10.4 평양선언에 나오는 의회회담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정치회담이고, 국방부 장관과 인민무력부장의 회담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군사회담이고, 부총리급 회담은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기 위한 경제회담이다.

10.4 평양선언은 그 세 종류의 회담 위에 총리회담을 배치하였다. 10.4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총리회담 제1차 회의를 2007년 11월 안에 서울에서 갖기로 합의한 공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리회담에 제1차 회의라는 순번명칭을 안침으로써 그 회담이 일회성이 아니라 연속성을 갖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총리회담의 연속개최야말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지름길이 아니고 무엇인가.

놀랍게도, 10.4 평양선언은 총리회담만이 아니라 남북(북남)의 최고당국자가 만나 "남북(북남)관계 발전을 위해 현안문제들을 협의하는" 최고정치회담을 수시로 갖기로 합의한 이행공약을 명시하였다. 총리회담 위에 최고정치회담을 배치함으로써 상설협의기구 창설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통일의지를 표명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최고정치회담이 수시로 열리게 된다는 말은, 이번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이 수시로 평양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수시로 서울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치회담, 군사회담, 경제회담이 계속 열리고, 총리회담과 최고정치회담이 수시로 열린다 해도 남측정부당국이 6.15 공동선언과 10.4 평양선언에 배치되는 '남북경제공동체' 창설방안을 고집하는 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는 문제를 그 회담들에서 논의할 수는 있어도 해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설협의기구 창설문제는 남측에서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어야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제시한 통일의 원칙과 방안, 10.4 평양선언이 제시한 통일강령과 이행공약을 전면적으로 실행할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울 때,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상설협의기구가 창설될 것이며, 그 기구에 의해 통일의회를 구성하고 통일헌법을 제정하며 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는 평화통일의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0.4 평양선언이 제시한 3대 강령에 따라 정세를 변화시키려는 진보적 사회단체들과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정당의 집권전략수행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07년 10월 18일 작성)

* 이 글은 진보적 시사월간 COREA21 제8호, 2007년 11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