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반도의 통일경제과 동북아시아의 평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개성공업지구의 ‘정치실험’과 민족통일경제의 건설전망
     1-1)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친화관계를 갖는 새로운 유형의 경제
     1-2)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경제
2. 연방공화국 건설과 비동맹 자립경제 건설
3.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1. 개성공업지구의 정치실험과 민족통일경제의 건설전망

개성공업지구(KIC)는 2004년 12월에 처음으로 생산을 개시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8년 9월 말 현재, 북측 노동자 3만3천688명이 83개 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50여 개 공장이 신축 중이다. 기업체의 평균 근로자수는 400명 선이며, 월평균 생산액 증가율은 16%이다. 2008년 5월 말 현재, 개성공업지구의 총생산액은 3억7천383 달러, 총수출액은 7천919만 달러이다. 개성공업지구 제1단계 개발이 예정대로 2010년에 마무리되면, 북측 노동자 8만-10만 명이 450개 기업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남측의 시장예찬론자들은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남측 자본의 ‘대북진출’이라고 주장하면서 개성공업지구를 북측 노동계급을 위한 ‘자본주의 교육장’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과 인식은 궤변이 아니면 왜곡이다.

물고기가 물이 없는 데서 살 수 없듯이, 자본은 시장경제가 없는 곳에서 존재할 수 없다. 북측에는 계획경제를 보조하는 특수시장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시장경제는 없다. 따라서 시장경제가 없는 북측에 남측 자본이 진출하였다는 저들의 주장은 자기들의 시장경제론과도 어긋나는 허황된 궤변이다.

또한 개성공업지구를 ‘자본주의 교육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왜곡이다. 이를테면, 2008년 11월 13일 통일부 장관과 만나 간담회를 가진 개성공업지구 기업대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들을 “사상무장이 투철한 근로자들”이라고 묘사한 것만 봐도, 남측 기업들이 그들에게 자본주의를 교육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왜곡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남측에는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남북경제협력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대북협력론자들이 있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에 대한 남측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대북협력론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머지,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남북경제협력의 성과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물론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남북경제협력의 성과라고 말하는 대북협력론자들의 견해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쪽만을 바라보는 일면적 견해이다.

대북협력론자들이 말하는 남북경제협력이라는 개념은, 남측의 자본 및 기술을 북측의 토지 및 노동력과 결합시킨 이윤창출활동을 규정하는 협소한 개념이다. 물론 자본, 기술, 토지, 노동력이 결합되면서 기업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기업활동에서 이윤을 내는 것은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윤창출 이상의 목적을 추구하는 특수경제활동과 이윤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경제활동을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북경제협력의 본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남북경제협력의 본질은 이윤창출을 넘어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특수성에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경제협력은 남북교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교역이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에서, 또는 나라 안의 경제집단들 사이에서 실현되는 일반경제활동인데, 남북교역은 그러한 일반경제활동이 아니라 남북의 특수관계에서 전개되는 특수경제활동이다.

남북교역이 특수경제활동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산활동이 아니라 교환활동에 그치는 것이다. 경제의 핵은 교환이 아니라 생산이므로, 남북경제협력의 발전전망은 남북상품교환을 넘어서 남북공동생산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은 남북의 상이한 경제가 상품교환의 낮은 단계를 벗어나서 어느덧 공동생산의 높은 단계로 나아간 획기적인 사변이다. 남북공동생산의 목적은 남측의 자본 및 기술을 북측의 토지 및 노동력과 결합시키는 이윤창출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도, 민족통일경제를 건설하는 전략사업, 다시 말해서 통일공화국의 경제적 기초를 놓는 중요한 전략사업이다.

진보정치운동은, 대북협력론자들의 협소한 시야를 뛰어넘어, 개성공업지구 건설과정에서 움트는 통일공화국 경제건설의 미래를 전망할 필요가 있다. 만일 진보정치운동이 개성공업지구 건설과정에서 민족통일경제의 청사진을 그려내지 못하면, 장차 통일공화국의 경제건설전망은 어두워질 것이다. 만일 남북이 민족통일경제를 건설하는 노력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조선)반도에 세워질 통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가 난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운동은 나라를 통일하는 과업을 남북정치기구를 창설하는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민족통일경제를 건설하는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세계금융시장이 파산하는 대혼란 속에서 남측의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지금, 그리하여 시장경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진보정치운동이 그 모순을 극복할 사회경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일으켜야 할 지금, 낡은 시장경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치실험’이 개성공업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업지구에서 진행되는 ‘정치실험’이 과연 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할 사회경제적 대안으로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진보정치운동에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복귀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상호협력이라는 사상 최초의 ‘정치실험’이 개성공업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업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상호협력이라는 ‘정치실험’이 성공하는 경우, 북측의 계획경제는 세계 사회주의경제건설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개성공업지구가 성공단계로 들어서면 민족통일경제를 건설하는 확실한 전망이 열릴 것이며, 통일공화국의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1-1)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친화관계를 갖는 새로운 유형의 경제

기존의 좌파적 관점은 시장경제를 폐기하고 계획경제만 살리는 전략만 예상하고, 기존의 우파적 관점은 계획경제를 폐기하고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전략만 생각한다.

그러나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을 택하고 다른 한 쪽을 버리는 양자택일은, 연방제 구성원리에 따라 평화통일을 실현하여야 할 한(조선)반도의 당면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한(조선)반도에 세워질 통일공화국의 경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공존, 공리, 공영을 추구하는 경제이어야 한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대립관계에서 어떻게 공동생산이 가능한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개성공업지구 건설의 ‘정치실험’에서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의 ‘정치실험’이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낸다면,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동으로 생산할 수 있음이 현실로 입증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인류역사에서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발전전망을 열어놓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새로운 발전전망은 민족통일경제의 발전전망이다.

그렇다면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동생산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개성공업지구 건설과정을 살펴보면, 두 경제의 공동생산은 중소기업부문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이 집중된 주요산업부문은 북측에서는 국방공업, 남측에서는 군수공업과 직간접으로 연관되므로 오늘과 같은 대립적인 남북관계에서 주요산업부문의 공동생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성공업지구에서 진행되는 중소기업부문의 공동생산은 경공업제품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경공업제품을 생산하는 개성공업지구 기업들은 중소기업부문에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동생산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해답을 준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동생산을 실현하려면, 상호대립관계를 뛰어넘어 상호협력관계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두 경제가 대립관계에 놓이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해소하여야 한다.

두 경제가 대립관계에 놓이는 까닭은, 계획경제에서 자본가들이 계급적으로 청산되고 노동계급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반면, 시장경제에서는 자본이 임노동을 지배하면서 자본가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두 경제의 대립관계는 노동계급과 자본가 사이에서 형성된 사회계급적 대립관계의 직접적인 반영이다.

그런데 만일 노동계급이 자본가를 계급적으로 청산하는 경우, 시장경제도 철폐되고 남북의 체제대립관계도 완전히 소멸되겠지만, 그러한 좌파적 급진주의는 현 시기 한(조선)반도의 사회정치적 현실이나 계급역량관계와 무관한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한(조선)반도의 특수상황에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대립관계를 뛰어넘어 협력관계로 전환하려면,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차단하고 자본가의 배타적 이윤획득을 억제하며, 다른 한편 노동계급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익을 증대시키는 수밖에 없다.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차단하고 자본가의 배타적 이윤획득을 억제한다는 말은, 사회적 생산활동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는 뜻이다. 민주적 통제(democratic control)란 고용권, 해고권, 노동조건보장권, 임금보장권을 시장경제에 맡겨두지 않고 노동계급의 이익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와 더불어 생산관리권(기업경영권) 행사과정에 경영인(자본가)들만이 아니라 노동자 대표들도 참가하여야 기업의 생산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개성공업지구에서는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어떻게 차단하고, 자본가의 배타적 이윤획득을 어떻게 억제하고 있을까? 개성공업지구는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업지구법’에 의하여 관리, 운영된다. 그 법에 따르면, 개성공업지구에 참가하는 남측 기업은 북측 법인체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북측 법인체로 등록하게 되어 있다. 개성공업지구에 참가한 기업의 법적 지위가 북측 법인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업지구 기업의 법적 지위가 북측 법인체로 되어야 하는 까닭은, 북측이 남측 법인체를 법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성공업지구에서는 북측이 북측 법인체로 등록된 남측 기업을 법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업지구 기업의 법적 지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성공업지구 기업의 고용체계, 임금체계, 노동관리체계를 누가 정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체계들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성공업지구에 참가한 남측 기업이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아니라 북측의 최고인민회의이다.

2003년 9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을 ‘결정 제2호’로 채택하였다. 개성공업지구 기업의 고용체계, 임금체계, 노동관리체계는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 의해서 운영된다.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동생산에 참가한 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법적 근거이다. 북측에서 설치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동생산에 참가한 기업을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 따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실무기구이다.

구체적으로,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은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 노동시간과 휴식, 노동보수, 노동보호, 사회문화시책에 관한 법이다. 남측에서 쓰는 개념으로 말하면, 근로기준법이라 할 수 있다.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제13조는 “기업은 종업원 대표와 협의하고 모든 종업원에게 적용하는 노동규칙을 작성하고 실시할 수 있다. 노동규칙에는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노동보호규정, 노동생활질서, 상벌기준 같은 것을 밝힌다”고 규정하였다. ‘노동규정’에 나오는 종업원 대표는 노동자 대표인데, 노동자 대표가 기업과 협의하여 노동관리체계를 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 대표는 직장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노동자 인원배치, 작업지시, 출퇴근 통제 등의 권한을 일상적으로 행사한다.  

‘노동규정’에 따르면,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정하며, 노동자의 임금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낮게 정할 수 없다. 또한 노동자는 해마다 14일 동안 정기휴가를 낼 수 있고, 중노동이나 유해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2-7일 동안 보충휴가를 낼 수 있고, 임신한 여성노동자는 60일 동안 산전휴가, 90일 동안 산후휴가를 낼 수 있다.

‘노동규정’에 따르면, 노동자와 그 가족은 국가가 실시하는 사회주의적 사회문화시책 곧 무료교육, 무상치료, 사회보험, 사회보장을 받게 되어 있다. 또한 기업은 북측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월임금 총액의 15%를 사회보험료로 매달 북측에 납부하여야 하며, 북측 노동자는 월임금에서 일정한 몫을 ‘사회문화시책금’으로 계산하여 북측에 납부하게 되어 있다.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자본가의 배타적 이윤획득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시장경제는, 자본가를 계급적으로 청산한 계획경제에 대해 적대성을 제거하고 친화성을 가질 수 있다.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시장경제와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소멸된 계획경제 사이에서는 공동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은 남측 자본의 ‘대북진출’이나 북측의 ‘시장개방’이 아니라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동생산에 관한 ‘정치실험’이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개성공업지구의 ‘정치실험’은 두 경제의 공동생산이 가능함을 현실로 입증하였다.

1-2)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경제

기업 대 기업의 생존경쟁은 무한경쟁이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끊임없이 착취할 수밖에 없다. 개인으로서의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인정을 베풀 수 있지만, 사회계급으로서의 자본가는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자를 계급적으로 착취할 수밖에 없다. 착취는 자본가 개인의 도덕적 선택문제가 아니라 사회계급의 구조적 문제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의 현실이다.

그런데 시장경제에는 그러한 일반적 현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현실도 있다. 자본, 자원, 기술의 제한성과 취약성에 묶여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개발도상국들의 시장경제에서 특수한 현실이 돋보인다. ‘중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남측의 시장경제도 자본, 자원, 기술의 제한성과 취약성에 묶여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남측의 시장경제가 그러한 제한성과 취약성을 넘어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두 갈래이다. 한 갈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경제를 희생시킴으로써 기업경제의 수탈적 성장을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갈래는 자본, 자원, 기술이 풍부한 선진자본주의나라에 경제적으로 예속됨으로써 기업경제의 기생적 성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경제예속성은 세 가지 측면, 곧 금융, 기술, 교역에서 나타난다.

남측 시장경제에는 선진자본주의나라에 대한 경제예속성이 고착되어 있다. 이를테면, 외국계 자본이 남측에 대출한 자금을 회수하면 환율과 주식이 폭락하는 금융시장 마비사태가 일어나고, 그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남측 정부와 기업이 ‘방어’에 나서면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국가부도위기에 빠지게 되고, 국가부도위기에 빠지면 기업경제가 연쇄적으로 파산하게 되며, 결국 대량실업사태로 귀결되어 민생경제를 파탄되는 것이다.

특히 남측 경제의 대미예속성은 치명적인 파산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떨어지면, 석달 뒤에 남측 경제성장률은 0.83% 포인트, 총수출 증가율은 1.8% 포인트, 대미수출 증가율은 4.1% 포인트가 각각 떨어지게 되어있다. 또한 남측 경제의 대일예속성도 대미예속성 못지 않게 심각하다. 대일무역적자는 2006년도에 254억달러, 2007년도에 299억달러였는데, 올해는 1월부터 10월까지만 해도 289억8천500만달러로 늘었다. 같은 기간 대일수출액은 242억2천600만달러였다. 지난 10년 동안 대일무역적자 총누적액은 2천억달러가 넘는다.

남측이 자랑하는 자동차산업 역시 경제예속성에서 예외로 되지 않는다. 남측의 자동차산업은 생산량 순위로 따지면 세계 5위에 올라있는데,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회사 순위에는 남측의 자동차 부품회사가 단 한 곳밖에 들어있지 않다. (주)만도가 76위에 올라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측의 자동차 생산이 외국산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생산한 뒤에 외국에 되파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술 및 교역부문의 경제예속성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해외에 수출하는 차종 ‘베라쿠르즈’의 핵심부품 100개는 모두 외국산 제품이다. 이를테면, 차체, 연료분사장치, 베어링장치는 독일제이고, 변속기, 발전기, 점화코일, 램프, 안테나는 일본제이고, 강우감지기, 좌석안전띠, 사륜구동장치는 미국제이고, 배기장치는 프랑스제이고, 에어백장치는 스웨덴제이다. 남측에서 5대 제조업부문의 수입부품 의존율은 자동차가 그나마 23.0%로 가장 낮은 편이고, 선박 32.2%, 디스플레이 34.7%, 무선전화기 39.8%, 반도체 44.0% 등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남측 경제에서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수출입경제의 비율은 94.2%나 된다. 이 비율은 2002년 71.6%, 2003년 75.8%, 2004년 86.2%, 2005년 85.2%, 2006년 88.3%로 해마다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수출의존이란 경제예속을 완곡하게 표현한 용어이다.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속경제가 외부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위기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를테면, 1997년에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이 연쇄적으로 파산하고 태국 통화와 인도네시아 통화가 국제외환시장에서 폭락하면서 11월에 이르러 남측 경제를 강타한 치명적인 외환위기는 이듬해 남측의 경제성장률을 -6.7%로 떨어뜨렸고, 공식실업률을 7.0%로 끌어올리는 미증유의 대파국을 몰고 왔다. 이러한 경제파탄은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고, 1996년 10월 25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외무장관(당시) 공로명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도널드 존스턴(Donald J. Johnston)이 남측의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협정서에 서명함으로써 남측이 29번째 회원국으로 된 때로부터 불과 1년만에 일어난 것이다. 이 경험이 가르쳐준 것은, 남측의 시장경제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만큼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이, 경제예속에서 벗어나는 길도 아니고 민생경제를 보장하는 길도 아니라는 점이다.

민생경제 희생과 기업경제 예속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기업들이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성장은 사실상 민생경제의 희생과 기업경제의 예속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남측의 경제현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만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을 보장해주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다른 기업들과 무한경쟁을 벌이는 자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시장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민생을 보장하면 다른 기업들과의 무한경쟁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보장하는 민생경제는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경제로 되어야 하는데,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경제를 자립경제라 한다. 민생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립경제노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민생경제의 자립적 성장은 역사적 필연이다.

통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는 마땅히 민생경제성장이 중심이 되는 자립경제로 되어야 한다. 통일공화국의 경제가 민생을 희생시키거나 다른 나라에 예속된 경제로 전락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통일공화국의 경제를 건설하려면, 남측의 중소기업경제가 민생적 자립경제로 체질을 개선하여야 한다.

남측의 중소기업경제는 전체 기업경제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진한다. 전체 기업경제에서 중소기업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99.9%이며, 전체 노동계급 가운데서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계급의 비율은 86.5%이다. 이것은 중소기업경제의 체질을 민생적 자립경제로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남측의 중소기업경제 체질을 민생적 자립경제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성공업지구 건설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차단하고 자본가의 배타적 이윤획득을 억제하는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여야 한다. 그와 더불어 중소기업의 수출의존적 체질을 제거하고, 중소기업의 생산활동목표를 내수시장의 안정적 공급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중소기업경제가 자립적 기반을 마련하고, 자급적 성격을 확대, 강화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 교육, 의료에 직결된 민생경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를 증대하면 내수가 확대되고 자립적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개성공업지구에서는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중소기업경제가 건설되고 있다. 장차 통일공화국에서 실시될 중소기업 경제정책의 3대 핵심개념은 자립성장(self-supporting growth), 민주적 통제(democratic control), 민생(public welfare)이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의 발전전망은 자립성장, 민주적 통제, 민생을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통일공화국 경제의 청사진에 비춰진다.

2. 연방공화국 건설과 비동맹 자립경제 건설

남북이 합의하여 한(조선)반도에 세우게 될 통일공화국은 비동맹 중립국(non-aligned neutral state)으로 될 것이다. 비동맹 중립국이란 어떤 신비한 나라가 아니라, 1955년에 영세중립(perpetual neutrality)을 선언하고 독립한 오스트리아 같은 국제적 지위를 가진 나라를 말한다. 오스트리아는 1995년에 영세중립을 포기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통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는 대내적으로는 민주적 통제경제(democratic control economy)이고,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자립경제(non-aligned, self-supporting economy)이다. 한(조선)반도가 통일된 이후 통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체제는 어떤 나라와도 동맹관계를 맺지 않게 될 것이다.

통일공화국의 경제가 비동맹 자립경제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민생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조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조치란, 소수 자본가가 지배해온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고, 수출의존형 구조가 지배적인 중소기업을 내수시장공급에 집중하도록 개조하는 것이다. 경제의 조립생산-수출의존적 체질이 제거되므로 주변나라와 특별한 경제동맹관계를 맺을 필요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남측 경제의 고질적인 조립생산-수출의존적 체질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한일자유무역협정 같은 경제동맹관계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현재 날로 악화되어 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파산위험이 높은 남측의 조립생산-수출의존형 경제가 통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로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통일공화국의 경제가 비동맹 자립경제로 된다는 말은, 그 경제가 자본주의세계시장에 대한 교역관계를 단절한다는 뜻이 아니다. 비동맹 자립경제는, 시장예찬론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고립화되고 폐쇄된 경제가 아니다. 지난 냉전시기 유럽에 존재하였던 비동맹 중립국들의 경제는 고립화되고 폐쇄된 경제가 아니었다.

만일 통일공화국의 경제가 자본주의세계시장에 대한 교역관계를 단절하고 고립폐쇄상태에 들어간다면 발전할 가능성도 없고, 심지어 생존할 가능성조차 없을 것이다. 통일공화국의 경제정책은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조립생산-수출의존 경제노선을 배제하는 정책이지, 자본주의세계시장과 교역하는 것을 배제하는 정책은 아니다. 조립생산-수출의존 경제노선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수출을 전면적으로 중단한다는 뜻이 아니다. 조립생산-수출의존 경제노선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자국의 경제적 요구에 맞춰 수출을 계속한다.

통일공화국에서 건설될 경제의 성격만큼 중시해야 할 것은, 통일공화국 경제건설의 정치적 의의이다. 통일공화국 경제건설의 정치적 의의는 대내외적으로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다.

통일공화국 경제건설의 대내적 의의는, 그 경제가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에서 통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로 된다는 데 있다. 또한 통일공화국 경제건설의 대외적 의의는, 그 경제가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를 실현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로 된다는 데 있다.

만일 한(조선)반도에 통일공화국을 건설하기 이전부터 민족통일경제의 기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통일공화국 건설 이후 경제를 급속히 성장시킬 수 없고, 통일과정에서 비동맹 중립화(non-aligned neutralization)도 실현하기 힘들어진다. 비동맹 자립경제라는 물질적 기초를 마련하지 못한 경우, 통일공화국의 비동맹 중립화 정치노선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통일공화국의 물질적 기초는 짧은 기간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동맹 중립화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면 당장 실현될 수 있지만, 비동맹 자립경제는 정치적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짧은 기간에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통일경제 건설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개조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통일공화국의 민족통일경제는 통일공화국이 건설된 이후에 세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가 통일되기 이전부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따라 나라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세워가는 것이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비동맹 자립경제의 지향으로 생각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만일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실패하면 민족통일경제를 세우지 못하게 될 것이고, 민족통일경제 건설이 실패하면, 통일공화국 건설도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현 시기 남북이 힘을 합하여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당위성과 필연성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그처럼 중요한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추진하려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여야 하는데, 그 두 선언을 이행하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북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을 침체상태에 빠뜨린 것은 전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책임이다. 북측이 거듭 전하는 ‘경고신호’를 이명박 정권이 무시하고 반북대결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으므로, 2008년 12월 1일 이후 북측이 개성공업지구를 폐쇄하는 마지막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3.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한(조선)반도의 남측이나 북측이 주변국과 동맹을 맺을 때, 남북관계가 대결로 치닫게 되고,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위협을 받게 되며,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게 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조선)반도의 역사적 경험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것처럼, 한미동맹은 전쟁억제요인이 아니라 긴장고조, 평화파괴, 충돌촉발의 요인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포섭된 신식민주의체제가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예속으로 되며, 전쟁위험이 상존하는 정전상태에 미국이 자국군대를 주둔시키면 그것은 안보를 위한 동맹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동맹으로 된다. 명백하게도, 한(조선)반도에서 동맹과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 한(조선)반도는 주변국들의 상충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지역이므로, 주변국들 가운데 어느 한 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그 나라의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와 반대로, 한(조선)반도가 주변국과의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비동맹 중립화를 실현할 때, 한(조선)반도에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철폐됨으로써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가 실현되고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감소될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일동맹 강화와 중러관계 밀착 사이에 조성되는 팽팽한 긴장구도가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 미국의 갈등관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날로 증강되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한다고 하면서 미국은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국무장관의 정책자문에 응하는 국제안보자문회의(ISAB)는 산하에 중국의 군사전략 문제를 담당한 실무반을 설치해놓았는데, 최근에 국제안보자문회의가 작성한 보고서 초안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가 중국을 겨누어야 할 것임을 처음으로 논하였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미일동맹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5년 2월 19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일안보협의위원회(SCC)는 미일동맹의 전략목표를 ‘일본열도 방위’를 넘어서 세계적 범위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2008년 9월 25일 미국은 최신형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미국 태평양군 함대와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가 함께 사용하는 해군기지인 일본 요꼬스까항에 배치하였다. 일본은 미국 영토 밖에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배치된 유일한 나라이다. 또한 미국은 워싱턴주의 포트 루이스(Fort Lewis)에 있는 미국 육군 제1군단사령부를 일본의 자마기지로 이전하여, 일본 육상자위대와 함께 통합작전사령부를 창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면, 중국은 그에 대응하여 러시아와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게 된다. 지난 냉전시기에 중국과 러시아는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최근에는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 군사협력관계는,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여 중국을 자극할수록, 그리고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동진확대하여 러시아를 자극할수록 더욱 밀착되고 있다. 이를테면, 2008년 10월 11일부터 26일까지 중국인민해방군 동해함대 소속의 러시아제 최신예 구축함으로 편성된 함대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하여 러시아 태평양함대와 함께 북태평양에서 해상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일동맹의 군사적 패권에 대응하기 시작한 첫 사례이다.  

이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동북아시아에서 남측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대미관계에서 자기의 예속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한(조선)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설치해놓은 ‘화약고’에 들어앉아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중국과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을 일으키면, 중국은 주한미국군기지와 주일미국군기지를 공격할 것이고, 한(조선)반도는 자동적으로 전쟁에 휘말려들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러시아와 일본이 혹카이도 근해에서 무력충돌을 일으키면 미국은 미일동맹군의 대러시아 군사작전에 한미연합군을 동원할 것이고, 그에 따라 한(조선)반도는 자동적으로 전쟁에 휘말려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한미동맹을 ‘안보동맹’이라고 믿는 맹신에 사로잡혀, 무턱대고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것은 자해적 안보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미정권의 비극이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한, 남측의 대미관계는 자해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측은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측 자체의 안보를 위해서도 한미동맹을 맹신하는 자해적 안보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남측이 미국과 맺은 동맹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해서 적대관계로 전환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동맹 중립을 선언하고 한미관계를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전환한다는 뜻이다.  

남측이 한미동맹을 폐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측도 조중동맹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조중동맹은 말이 동맹이지 무기판매나 합동군사훈련도 찾아볼 수 없는 ‘지상동맹(紙上同盟)’에 지나지 않으므로 북측이 조중동맹을 폐기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남측과 북측이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을 동시에 폐기함으로써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가 완성된다.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는, 남측과 북측이 각기 외국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고, 남측과 북측에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측은 외국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고, 외국군도 주둔하지 않으므로, 문제는 남측에서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좁혀진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주한미국군이 주둔하는 한,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는 불가능하며, 동북아시아의 분쟁위험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군사문제는 한미동맹을 폐기하는 정치문제이다.

한미동맹을 폐기하려면 한미동맹의 존재근거부터 제거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존재근거를 제거하는 조건은 조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관계가 발전하여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는 것이다. 조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발전이 모두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요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결정적인 요인은 조미관계 정상화이다.

조미관계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그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여야 한다.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려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철군과 비핵화는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뒤바꿔놓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단계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는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킴으로써 한미동맹의 존재근거를 제거하는 비동맹 중립화 과정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비핵화 과정과 비동맹 중립화 과정은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조미관계 정상화만이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도 한미동맹의 존재근거를 제거하는 요인으로 된다. 남북관계가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게 될 때, 한미동맹은 존재근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평화와 통일을 지향한다는 말은, 남북이 정치적 으로 합의하여 통일공화국 건설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통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남북의 정치적 합의에는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를 실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장차 남북이 합의하여 한(조선)반도에 건설하게 될 통일공화국은 비동맹 중립국이 될 것이다. 남북이 정치적으로 합의하여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유형의 비동맹 자립경제를 건설한 통일공화국만이 비동맹 중립국으로 될 수 있다.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비동맹 자립경제 건설의 지름길이라면, 주한미국군 철군은 비동맹 중립화의 지름길이다. 개성공업지구 건설과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조선)반도를 비동맹 중립화로 이끄는 두 개의 전진궤도이다.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를 실현하는 관점에서 볼 때, 개성공업지구 건설과 주한미국군 철군은 미일동맹과 중러협력관계의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역할을 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요인으로 된다. 민족통일경제를 물질적 기초로 갖는 한(조선)반도의 비동맹 중립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할 것이다. (끝)

* 이 글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8 파리국제정책포럼 셋째날인 2008년 12월 8일 포럼에서 발표한 발제원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