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전환국면에로 끌려가는 미국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케리-아베 밀담과 미국의 굴욕적 패배

2013년 4월 15일 오전 11시 30분 일본 도쿄 니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총리관저회의실에서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과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가 회담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존 루스(John V. Roos) 주일미국대사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배석하였다. 회담시간이 어느덧 50분을 넘길 무렵, 아베 총리는 자신과 케리 국무장관이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서 배석자들에게 회의실에서 잠시 나가달라고 요청하였다. 느닷없는 퇴실요청을 받은 주일미국대사와 일본 외상이 회의실 밖으로 나간 뒤에 케리-아베 밀담은 7분 동안 이어졌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문제를 대외비로 논의할 때 밀담이라는 이례적인 회담형식을 취하게 된다. 언론에 알리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외상과 주일미국대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극비의 밀담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케리 국무장관과 아베 총리가 통역을 통해 나눈 밀담시간은 7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중요한 의제를 놓고 설왕설래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시간은 아니다.

케리-아베 밀담을 밖에서 지켜본 일본 언론매체들은 케리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북협상재개 의사를 전했고, 아베 총리는 미국의 그런 정책전환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보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케리 국무장관이 취재진 앞에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뒤에 두 사람의 밀담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케리 국무장관은 밀담에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의사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기밀사항을 언급하였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케리-아베 밀담에서 케리 국무장관이 언급한 기밀사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즉답은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아래에 열거한 일련의 정보를 정밀분석하면 밀담내용의 윤곽이 드러난다.

우선 지적하는 것은, 케리 국무장관과 아베 총리가 밀담을 나누기 약 일주일 전인 2013년 4월 초 어느 날 백악관국가안보회의에서 대북협상재개방침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2013년 4월 초 북미관계는 어떤 상황에 있었던가? 북과 미국의 무력충돌위기는 2013년 3월 중순부터 더욱 격화되었고, 4월 초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미증유의 대폭발로 치닫고 있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과 미국의 대북전쟁을 피할 수 없는 전쟁재발상황에 바짝 근접하였던 것이다.

당시 폭발 일보 직전의 전쟁재발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하면, 2013년 3월 28일 국가급 군사훈련 중이던 인민군은 동해와 서해 최남단수역까지 남진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과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하였고, 3월 29일 0시 30분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긴급 소집한 전략로케트군 작전회의에서 “미제와 총결산할 때가 도래하였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고 인정”하고, “전략로케트군의 화력타격계획을 검토하시고 최종 비준”하였으며, 3월 30일 오전 북측 정부, 정당, 단체가 합동으로 발표한 특별성명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판가리결전의 최후시각은 왔다”고 지적하고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간다고 천명함으로써 전시상황선포를 단행하였고, 4월 3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와 대함미사일 7기를 동해안으로 이동시켜 즉각 발사할 사격태세를 갖추었고, 4월 4일 오전 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한다”고 하면서 미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4월 5일 북측 외무성은 평양 주재 외국공관들에게 미사일 발사가 4월 10일에 예정되었으므로 긴급대피를 준비하라고 요구하였으며, 4월 9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대변인담화를 통해 남측에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소개 및 대피를 하라고 통보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2013년 4월 초 인민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작전지시에 따라 ‘조국통일반미대전’ 총공격준비를 완료하고 대기 중이었고, 실제로 6축 12륜 자행발사대에 탑재한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와 대함미사일 7기를 각각 타격목표들을 향해 조준하고 발사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작전계획대로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를 발사하였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던 미국군은 그 2기의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동해에 전진배치한 이지스구축함 2척에서 요격미사일을 마구 쏘았을 것이며,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미국군이 요격미사일을 쏜 이지스구축함 2척을 강력한 대함미사일 7기로 기습타격하여 격침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미사일교전은 북미전쟁의 대폭발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2013년 4월 10일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시작되는 ‘최후결전의 첫째 날’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2013년 4월 10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동안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으로 시시각각 떠밀리며 극도의 긴장과 공포에 빠져 들어갔다. 2013년 4월 15일에 있었던 케리-아베 밀담은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몰린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이 두려워 황급히 대북협상의 길을 택하였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다.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몰린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대북협상의 길을 택한 것은, 미국이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 앞에서 굴욕적으로 패했음을 의미한다. 왜 굴욕적으로 패했다는 표현을 쓰게 되는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군 군사훈련을 중지한 미국군 수뇌부의 다급한 후퇴행동, 그리고 당시 대북협상재개방침으로 전환한 백악관국가안보회의의 다급한 후퇴행동에서 패배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미국의 패배를 말해주는 위의 두 가지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굴욕적인 패배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2013년 4월 12일 케리 국무장관은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외교장관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몇 개의 군사훈련을 취소해 긴장완화에 기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건국한 이래 237년 역사에서 다른 나라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긴박한 대결상황에서 자국군 군사훈련 몇 개를 한꺼번에 중지하고 황망히 후퇴한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이변 중의 이변이다. 미국이 그처럼 상상하기 힘든 사상 초유의 후퇴를 2013년 4월 초에 실제로 행동에 옮겼으니, 어찌 미국의 굴욕적 패배라 아니할 수 있으랴!

미국의 굴욕적 패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2013년 4월 11일 버락 오바마(Bar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난 뒤에 “누구도 한반도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미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언론매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 발언을 건성으로 듣고 넘겼지만, 그 짤막한 발언은 그 동안 어떤 형태의 대북협상도 극력 거부해오며 북을 자극해온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 앞에서 기가 꺾여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고 하면서 정책방향을 180도로 전환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어찌 미국의 굴욕적 패배라 아니할 수 있으랴!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4월 18일 성명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

미국은 자국군 군사훈련 몇 개를 중지하면서 대북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2013년 4월 10일 이전에 북에게 시급히 알려야 하였다. 그렇게 하여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를 발사하려는 것을 중지시킬 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던 것이다.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대북정책을 전환하였다는 사실을 어느 경로로 북에 알렸을까? 2013년 3월 20일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한반도정세가 최악의 긴장상태에 빠진 당시에도 미국은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의 입장을 북한에 직접 전달하고 있다”고 취재기자들에게 말했는데,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바로 그 ‘뉴욕통로’를 통해 자기들의 대북정책을 전환하였다는 사실을 북에 알린 것으로 보인다.

‘뉴욕통로’를 통해 백악관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정책 전환에 관해 알게 된 북측 국방위원회는 2013년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에서 “사태의 심각성에 급해맞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지난 4월 11일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그 무슨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인 사태수습의사를 밝혔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성명을 통해 미국에게 요구한 세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열거하면, 대북도발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북에게 사죄할 것, 핵전쟁연습을 영구히 중단하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할 것, 남측과 그 주변지역에 전진배치한 핵전쟁수단을 전면 철수하고 재투입시도를 단념할 결단을 내릴 것 등이다.

누가 보더라도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조치는 세계의 면전에서 북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항복요구이므로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를 보고 질겁한 미국이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전향적 의사를 북에게 전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북측 국방위원회가 요구한 대로 무릎을 꿇고 항복할 만큼 치명적으로 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항복요구를 듣고서도 반론 한 마디 꺼내놓지 못한 채 듣지 못한 척하고 넘어갔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미국에게 보낸 항복요구는, 북이 반미대결전에서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날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항복문서에 들어갈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북은 반미대결전에서 달성하려는 최종 목표를 미국에게 미리 공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반미대결전에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에 찬 승리자의 모습을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전향적 의사를 북에게 알려주면서 위기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나기는 했지만, 막상 대북협상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동아일보> 2013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4월 29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한반도전문가 5명을 백악관에 불러 1시간 20분 동안 담화하면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에 관해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4월 초 북미대결전의 승리와 패배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조언 같은 것을 들어보려고 시도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전해준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2013년 5월 중순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미국 및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 차단’이라는 제목의 제1전략목표가 명시되었는데, “북의 국제적 지위개선과 관련해 북과 논의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항목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전략목표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이 전략목표는 국무부가 2014회계년도에 해당하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 기간에 달성하려는 목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무부가 위의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할 무렵인 2013년 5월 15일에 대니얼 러셀(Daniel R. Russel) 백악관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로 전보발령하였다. 미국 국무부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에 대북협상추진을 명시한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한 것과 거의 동시에 미국 대통령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를 임명한 것은 미국이 2013년 10월부터 대북협상에 나서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아사히신붕> 2013년 6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과 고위급회담을 시작할 예정이며, 글린 데비이스(Glyn T. Davies)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제3국에서 만나는 회담방식이 유력하게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9월 5일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취임 후 처음으로 시작한 동아시아 순방일정에 따라 먼저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는 9월 14일까지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전준비행동으로 보인다.

북의 대중특사파견과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 제안

2013년 5월 2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자신의 특사로 중국 베이징에 파견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특사를 파견한 목적은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방도를 중국에게 알려주고, 더 나아가서 북의 새로운 협상방도를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방도는 무엇이며, 그 방도를 전달받은 중국은 미국에게 어떤 경로로 그것을 전달하였을까?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아래에 서술한 여러 정보들을 정밀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통신사> 2013년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최룡해 특사는 중국방문 둘째날인 5월 23일 인민대회당에서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하면서 “중국이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크게 노력하는 것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조선은 중국의 그런 노력을 받아들여 각국이 대화의 길을 열어놓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2013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최룡해 특사는 5월 24일 오전 판창룽(范長龍)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나 회담하면서 “관련국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하였고, 같은 날 오후 최룡해 특사는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하고 “관련국들과 공동으로 노력하여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최룡해 특사가 중국 수뇌부와 연속적으로 회담하면서 남긴 발언내용이다. 그는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 판창룽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각각 회담하면서 6자회담이라는 말을 전혀 꺼내지 않고, 대화와 협상이라는 말만 하였다. <신화통신>은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서술하였지만, 그런 식의 서술은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중국 수뇌부의 의사에 부합되게 윤색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룡해-시진핑 회담에서 최룡해 특사는 6자회담이라는 특정단어를 꺼내지 않은 채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말하였을 뿐인데,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중국 언론매체가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이라는 표현으로 윤색하여 서술한 것이다. 반면에, 북측 언론매체들은 최룡해 특사의 방중활동을 신속히 보도하면서도 6자회담이라는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은 6자회담이 영구히 끝났다고 오래 전에 선언하였고, 올해에 들어와서는 핵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여 법제화까지 완료하였으므로, 북이 6자회담 재개를 이제 와서 언급할 아무런 이유도 필요도 없다.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은 어떤 것일까? 이 난해한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최룡해-시진핑 회담 이후 23일 지난 2013년 6월 16일 남측 언론보도에서 발견되었다. 2013년 6월 초순 중국을 방문한 남측 전문가들과 군부인사들이 중국의 “권위 있는” 군부인사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최룡해-시진핑 회담에서 최룡해 특사는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북이 중국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였다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그 보도기사는 명백한 오보다.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적 자주성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북은 다른 나라에게 자기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청원하는 저자세외교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북에게 있어서 핵보유국 지위는 다른 나라에게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북이 제3차 핵실험을 통해 자기의 핵능력을 시위한 것으로 획득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청원한 것이 아니라, 북의 핵보유국 지위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에 관해 언급한 것으로 해석해야 이치에 맞는다.

북의 핵보유국 지위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룡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기 한 달 전인 2013년 4월 20일 <로동신문>이 “앞으로 우리와 미국 사이에 군축을 위한 회담은 있어도 비핵화와 관련된 회담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 문장에 들어있는 군축회담이다. 다시 말해서, 최룡해 특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해 언급한 것이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서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에도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한 의사가 표명된 것으로 보인다.

북이 구상한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면, 2013년 6월 16일 북측 국방위윈회가 발표한 대변인 중대담화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중대담화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대립장을 내외에 밝힌다”고 하면서,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와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로 설정하고, “조미당국 사이에 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중대담화는 “조미당국 사이의 고위급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북이 한반도 군축,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이고 세계의 비핵화까지 포괄하는 의제를 논의할 고위급 군축회담을 미국에게 공식 제안한 것이다.

북은 이처럼 고위급 군축회담을 미국에게 제안하는 한편, 고위급 군축회담 문제를 놓고 중국과 의견을 조율한 뒤에 그것을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 제안하였다. <중국신문사전> 2013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8월 19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창완취안(常万全) 중국 국방부장을 수행한 중국 국방부 외사변실주임이 밝힌 것처럼, 창완취안 국방부장은 미국 고위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의 지도자가 관계국과의 대화의향을 밝히고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와 창구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측에게 “걸림돌과 조건 없이 대화에 응하라”고 촉구하였다. <중국신문망> 2013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8월 19일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창완취안 국방부장은 수전 라이스(Susan E. Rice)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하면서 “3자회담 또는 4자회담을 조건 없이 진행하기를 바란다는 조선의 지도자의 뜻을 미국에 전달하였다”.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을 앞두고 나타난 몇 가지 움직임

위의 서술내용을 읽어보면, 북은 6.16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를 통해 북과 미국의 양자회담을 미국에게 제안하는 한편, 8.19 중국 국방부장의 방미활동을 통해 3자회담 또는 4자회담도 미국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제안이 나온 것은, 북과 중국이 2013년 6월 16일부터 8월 19일까지 두 달 동안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방안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였음을 말해준다. 언론에 보도된 북과 중국의 의견조율과정은 아래와 같다.

2013년 6월 19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단장으로 한 북측 정부대표단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고 장예쑤이(張業遂) 중국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중국 측 정부대표단과 전략대화를 진행하였다. 북중관계에서 ‘전략대화’라는 공식명칭으로 진행하는 회담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북과 중국의 의견조율은 전략대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13년 8월 26일부터 8월 30일까지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하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회담하였다. 김계관-우다웨이 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하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방안을 놓고 북과 중국이 의견을 조율하며 실무준비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실무준비에는 새로운 형식의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대화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당연히 포함된다.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현재, 대화분위기 조성은 두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첫째, 이전에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북과 미국은 북을 관광하는 외국인을 안내하는 관광여행업에 종사하던 중에 미국 국가정보기관에 포섭되어 불법첩보활동을 벌이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중형을 받은 미국 국적의 범법자를 사면하여 미국에게 송환하는 조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2013년 8월 30일은 로벗 킹(Robert R. King)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위에서 말한 범법자를 송환하기 위해 방북하려고 하였던 날이었고, 동시에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2013년 8월 20일부터 실시한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런데 로벗 킹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방북하기 직전, 북은 그의 방북초청을 철회하였다. 2013년 8월 3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폭격훈련을 연속적으로 실시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기 때문에 그의 방북초청을 철회하였다고 밝혔다.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를 언제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켰는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2013년 8월 29일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가 대변인담화에서 B-52H 전략폭격기 출몰사건을 폭로한 바 있다. 2013년 8월 15일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FB)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밤중에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야간폭격훈련을 실시하였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시작한 다음날인 8월 21일에는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대낮에 또 다시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폭격훈련을 실시하였고, 8월 27일에는 미국 본토 마이너트공군기지(Minot AFB)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대륙간 장거리비행 끝에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폭격훈련을 실시하고 괌으로 돌아갔다.

직도폭격장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63km 떨어진 수역에 있는 무인도다. 미국 본토에 있는 전략폭격기발진기지 두 곳 중의 한 곳인 마이너트공군기지는 미국 본토 노스대코다(North Dakoda)주에 있는데,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 예하 제5폭격비행단의 제23폭격비행대대와 제69폭격비행대대가 그 기지에서 B-52H 전략폭격기를 운용하고 있다.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직도폭격장까지 직선거리는 3,100km이고, 노스대코다주의 마이너트공군기지에서 직도폭격장까지 직선거리는 9,540km다.

미국에게 고위급 군축회담을 공식 제안한 북은 미국이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감행한 것까지는 참았지만, 전략폭격기를 연속적으로 동원하여 북을 겨냥한 장거리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었으므로,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초청을 전격 철회한 것이다.

<미국의 소리> 2013년 9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를 다시 초청해주면 좋겠다고 북에게 요청하였다. 북은 미국의 그러한 요청을 머지않아 받아줌으로써 대화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예견된다.

둘째, <자유아시아방송>과 <CBS노컷뉴스> 2013년 9월 5일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은 6자회담 수석대표들과 관련국 전문가들이 함께 참석하는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를 6자회담 개최 10주년과 9.19 공동성명 발표 8주년에 즈음하여 9월 18일 베이징에서 중국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개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중국이 북과 의견을 조율하여 추진하는 사전조치다.

북은 중국이 제안한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참석할 것이라고 즉각 응답하였지만, 미국은 응답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미국이 참석응답을 주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으므로, 미국을 추종하는 남측과 일본도 덩달아 미적거릴 수밖에 없다. 북이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허락하면, 미국도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하겠다고 응답할 것으로 예견된다. 2013년 9월 6일 벤 로즈(Ben Rhodes) 백악관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협상재개문제에 관한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런 예상은 없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최근 북미관계의 변화상황을 바라보면 전환국면에로 끌려가는 미국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주민보 2013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