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전방초소’일 뿐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도감청을 자행해왔다는 범행사실이 얼마 전에 드러나는 바람에 국제사회가 경악과 분노로 들끓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처럼 불법적인 도감청을 자행해온 미국의 범행이 말해주는 것은 미국이 세계패권(global hegemony)을 틀어쥐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틀어쥐고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며 군림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인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기축통화와 금융자본을 틀어쥔 강력한 재정운용력과 상품생산력

둘째, 핵무력을 중심으로 편제된 전지구권 타격력과 공격적 군사체계

셋째, 고도의 과학기술력과 그에 기초하여 세계적 범위로 확장시킨 교통통신망과 정보망

넷째, 넓은 영토와 거기에서 얻어내는 막대한 식량과 부존자원

다섯째, 세계패권을 유지하기에 적당한 3억1,500만 명의 인구

돌이켜보면, 기나긴 인류사에 출현하였다가 사라진 그 어떤 고대제국도 위에 열거한 여러 요인들을 두루 갖추지 못했다. 이런 측면을 보면, 미국이 틀어쥔 세계패권이 생각보다 탄탄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 패권을 위한 동서양 전초기지, 일본과 영국

눈여겨보는 것은, 미국이 자기의 세계패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서방과 동방에 각각 한 군데씩 전초기지를 구축해놓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서방전초기지는 유럽대륙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섬나라 영국이고, 미국의 동방전초기지는 동아시아대륙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섬나라 일본이다.

미국의 핵무기전문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이 2011년 4월 1일 미국과학자연맹(FAS) 웹사이트에 게시한 글에 따르면, 미국은 얼마 전에 성능을 개량한 핵탄두 W76-1을 영국에 곧 제공할 것이고, 영국은 자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들에 그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영국의 전략적 가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그처럼 최신개량형 핵탄두를 그 나라에 선뜻 넘겨주는 놀라운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미영관계는 일정한 수준의 핵무력까지 공유할 정도로 끈끈하게 결착된 매우 특수한 전략적 동맹관계다.

또한 핸스 크리스텐슨이 2008년 10월 21일 ‘미국과학자연맹’ 웹사이트에 게시한 ‘미국 공군전략사:1958.1∼1958.6’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 대만의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자 중국을 겨냥한 핵타격계획을 세웠고, 1958년 6월 30일에는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가데나(橫須賀)공군기지에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수소폭탄탄두인 MK-39와 그보다 경량급 열핵탄두인 MK-6을 배치했다고 한다. 미국이 일본 영토에 마음대로 핵무기를 배치하는 사실만 봐도, 미국이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1960년 1월 19일 미국은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면서 미국이 일본에게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고서도 일본 영토에 미국 핵무기를 마음대로 배치한다는 미일핵밀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 밀약을 체결해놓고서도 당시 일본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佐藤英作)는 1967년 12월 일본 국회에서 일본은 핵을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3원칙’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세계를 속였고, 그런 기만적인 비핵조치발표로 1974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사기극도 그런 희대의 사기극이 없다. 미국과 일본이 그런 핵밀약을 맺었으니, 지금 미국 핵무기가 일본 영토 안의 미국군기지 어디에 얼마나 많이 배비되었는지는 오직 미국군 최고지휘관만 알고 있다. 미일관계는 세계를 기만하는 핵밀약을 체결할 정도로 끈끈하게 밀착된 매우 특수한 전략적 동맹관계다.

그런데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은 영국과 일본에 각각 전초기지를 구축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자기의 서방전초기지 앞에 초소를 세워두었는데, 미국이 자기의 세계패권전략에 따라 전방초소로 간택한 나라가 영국과 북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일간지 <텔레그라프> 보도기사를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루드 루버스(Ruud Lubbers) 전 네덜란드 총리는 네덜란드 동남쪽 브라반트(Brabant)에 있는 볼켈공군기지(Volkel AFB)에 미국 핵폭탄 B61이 22발이나 배비되어 있다고 폭로했다. 미국이 핵무기를 유럽에 배비하였다는 소문은 아주 오랜 전부터 돌았지만, 미국 핵무기의 유럽배비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다.

미국이 자기의 세계패권전략에 따라 유럽에서 네덜란드를 영국 앞쪽에 세워둔 전방초소로 간택하였다면,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을 일본 앞쪽에 세워둔 전방초소로 간택했다. 한국 국민들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한미관계의 은폐된 진실을 알지 못해 일어나는 커다란 착시현상이다. 세계패권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을 지켜주는 일개 전방초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4자군사협력체 수립과정에서 드러난 하위동반자의 모습

2012년 6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이 1999년 말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을 일본에 먼저 제기했는데, 그 이후 일본은 한국의 그런 제안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2010년부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하자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일본은 왜 2010년부터 한국과의 군사협력관계를 본격화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을까? 그 까닭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세계패권전략을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그 무렵부터 적극 추종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군사협력관계를 본격화하려는 일본의 배후에서 움직인 미국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일본이 한국과의 군사협력관계를 본격화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2010년에 있었던 미국의 움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0년 당시 미국은 아래와 같이 부산을 떨었다.

2010년 7월 27일 미국은 한미연합전쟁연습에 동원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일본해상자위대 장교 4명을 승선시켜 당시 동해에서 실시된 한미연합전쟁연습을 참관하게 하였고, 같은 해 11월 29일에는 호주군 장교들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승선시켜 당시 서해에서 실시된 한미연합전쟁연습을 참관하게 했다.

그런 참관활동을 전개한 미국은 2010년 10월 29일 하와이에서 미국, 일본, 한국의 지상전력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비밀전략회의를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초에는 미국, 일본, 호주의 해상-공중전력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비밀전략회의를 진행했다.

미국의 그러한 움직임은 일본, 호주, 한국 3자 사이에서 새로운 군사협력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행동을 유발했다. 그리하여 한국과 일본은 2011년 1월 10일 서울에서 진행한 국방장관급 회담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한국과 호주는 2011년 12월 제1차 국방장관회담을 진행했고, 2012년 5월 14일에는 참모차장급 회의와 연합해상훈련을 정례화하는 방안과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회담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그로부터 14일이 지난 5월 28일에는 제주도 동북방 해상에서 처음으로 한국-호주 연합전쟁연습을 실시했다.

이처럼 2011년 초부터 2012년 상반기에 이르는 기간에 한국-일본 군사협력관계와 한국-호주 군사협력관계에 시동이 걸리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2012년 9월 27일에 부산에서 동남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해상에서 이른바 확산방지구상(PSI)해양차단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일본, 호주, 한국이 참가한 첫 번째 4자연합전쟁연습을 실시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미국이 미국, 일본, 호주, 한국이 참가하는 새로운 다국적 군사협력체를 수립하려고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유럽-대서양지역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다국적 군사협력체를 1949년 이후 계속 운용해왔는데, 아시아-태평양지역에는 그런 다국적 군사협력체가 없다. 그래서 미국은 유럽-대서양지역에서 그러한 것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도 자기가 관리하는 다국적 군사협력체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시야를 동북아시아-동중국해지역으로 좁히면, 미국, 일본, 한국이 참가하는 3자군사협력체가 수립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야를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넓히면, 미국, 일본, 호주, 한국이 참가하는 4자군사협력체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자기의 세계패권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다국적 군사협력체를 수립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미국은 이미 2007년 6월에 미국, 일본, 호주 3자 국방장관급 안보회의를 개최했고, 그 회의의 결정에 따라 같은 해 10월 17일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한 3자연합전쟁연습이 동중국해에서 실시됐고, 2008년 4월 18일에는 미국, 일본, 호주 3자 국장급 안보회의가 미국 하와이에서 진행됐다.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하는 3자연합전쟁연습은 2007년 6월에 처음 실시된 이후 해마다 계속 실시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미국은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하는 3각동맹체제를 수립해놓고, 거기에 한국을 받아들여 4자군사협력체를 수립하려는 속셈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은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하는 3각동맹체제 안에 한국을 끼워 넣음으로써 4자군사협력체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한미관계를 전략적 동맹관계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미국, 일본, 호주가 참가하는 3각동맹체제에 한국을 끼워 넣는다는 말이 좀 불편하게 들릴 것이다. 미국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우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동맹국처럼 보이지만, 세계패권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우 한국의 위상은 너무도 다르다. 이와 관련하여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솔직한 견해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2008년 7월 1일에 발매된 미국의 권위 있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현직 국무장관으로 기고한 ‘국익재고론(Rethinking the National Interest)’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본과 호주를 각각 ‘동맹국’으로 지칭하면서도 한국은 ‘동반자(partner)’라고 지칭했다. 한국 국민들은 한국을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한낱 주관적 상념일 뿐이다.

세계패권전략을 추구하는 미국은 자기의 동맹국과는 끝까지 함께 가지만, 동반조건이 힘들어지면 4자군사협력체에 끼워준 하위동반자와는 갑자기 결별하는 수가 있다. 미국은 자기의 하위동반자와는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별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결별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동반이냐 결별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한국과 미국의 상호이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이다. 미국이 한국에서 자기 이익을 챙겨가느라고 쏟아놓은 입에 발린 말만 곧이듣고 한미관계를 전략적 동맹관계라고 맹신해온 하위동반자의 최면상태에서 하루빨리 깨어나 자주독립정신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민중의 소리 2013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