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학연구소 Center for Korean Affairs, Inc 

    이사장 이행우 / 소장 한호석

    통일학연구소는 1995년 3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설립되었습니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란 명칭으로 설립된 이후 통일학연구소는 조국통일문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연구,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 연구에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통일학연구소는 뉴욕주 주정부에 비영리 법인체로 등록되어 있으며  미주지역에서 통일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일학을 위하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998년 8월 2일에 열렸던 미주평화통일연구소 이사회 제6차 회의에서는 연구소의 이름을 통일학연구소로 바꾸고, 논문 발표지 『통일논의』도 『통일학 연구』로 바꾸기로 의결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통일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남(한국)의 학계에서는 북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지고 북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북한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에 북한학과가 생겨나고 북한학자라는 직함도 생겨났다. 얼마전 경남대에는 '북한대학원'이 세워졌는데, 정치행정, 경제협력, 사회개발, 통일정책의 4개 분야를 전공분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평소에 지북론(知北論)을 강조해 왔고, 나 자신도 지북론적 관점을 더 밀고 나가 1997년 11월 2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미주평화통일연구소 제1차 학술발표회에서 「북한학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그동안 북한학을 연구하면서, 그리고 북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써낸 글들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북한학이라는 개념이 어딘지 모르게 흡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미흡한 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이 물음을 놓고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이르게 된 결론은 북한학은 별도의 독자적인 학문 체계로 정립·발전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서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더욱 포괄적인 학적 체계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북한학이 미국학이나 일본학, 중국학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차이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북한학이 통일학의 체계 안에 일부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북한학의 발전에 대해 거는 우리의 기대요 전망이다. 만일 북(조선)의 학계에서도 남(한국)을 체계적, 과학적으로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남조선학이라는 학문체계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엄밀히 말해서 통일학이란 북한학만 포괄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학은 북한학과 남조선학이 만나 상호침투를 일으키는 그 현장에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최대한 발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통일학이 장차 어느때인가는 반드시 받아안아야 할 불가피한 운명이다.

    통일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느낌이 좀 어색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학문적 탐구의 분야가 더욱 세분화, 전문화되는 길을 밟아가고 있고, 지난 시기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학문 체계가 성립되고 있음은 두루 알려진 바다. 사람의 삶 전반에 걸쳐서, 그리고 사람과 세계의 관계 전반에 걸쳐서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학적 체계가 다양화,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미래학, 평화학, 관광학이 생겨났고, 바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바둑학도 있으며, 김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김치학도 나오는 판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한반도 전체의 질적 변화를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통일학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아무도 논하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는 통일연구, 통일논의, 통일문제라는 개념을 써왔지만 통일학이라는 개념은 쓴 적이 없다.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기관들도 여기저기 생겨났지만, 통일학이라는 개념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된 까닭을 짚어보면 몇 가지 손 끝에 잡히는 것이 있다.

    첫째로, 통일문제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로 정보분석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머무르려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통일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분야와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다종다양한 학문적 체계를 동원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통합·정리한 학적 체계로 성립시키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일학은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정보분석의 차원에서 접근하던 종래의 비좁은 접근법을 넘어서서 학적 체계로 발돋움하는 임무를 타고났으며, 다분야 제휴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로 자기의 틀과 바탕을 마련해야 하는 임무를 타고났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통일학은 그 테두리 안에서 철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 역사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이 제휴하는, 통이 큰 학문 체계로 자라날 것이다.

    통일학은 과학이다. 그 영역에는 사색과 탐구, 분석과 토론, 과학적 인식과 체계화된 지식이 들고나야 한다. 과학인 통일학은 경험적 지식과 이론적 지식을 모두 포함하면서,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잡아내고, 매우 복잡한 양상들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성을 발견하고 그 본질을 체계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통일학은 민감한 정치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해야 한다. 학문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이리저리 휘둘려서는 안되는 진리 탐구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관변화된 성격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이것은 남한 사회에서 통일문제 자체를 금기사항으로 만들어버렸던 불행한 시대가 낳은 현실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져서, 여러 학문 분야에서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신진학자들이 나왔다. 비록 그 수는 많지 않고, 연구성과에서 이러저러한 부족점과 결함도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이 신진학자들이 제각기 자기 전공분야에서 통일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통일문제 연구풍토는 관변학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출발점에 있는 셈이다.

    통일학의 발전 수준은 우리 사회의 통일의지를 가늠하는 정신문화적 지표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학이 가장 좋은 대접을 받는 학문으로 정립되고, 대학마다 통일학과가 개설되어 지망생들이 몰려들고, 능력있는 통일학자들이 생겨나고, 그래서 남북의 통일학자들이 학술토론을 벌이고, 이름난 통일학자가 통일부 장관이 되는 그런 세상으로 바꿔진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시대로 들어서는 희망의 문턱에 다가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통일학연구소는 그런 미래를 내다보며 자기의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는 통일학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길에 열성과 재능을 쏟아부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분단현실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더욱 통일시대를 갈망하고 있는 이 민족의 현실 앞에 바치는 우리의 진심이다. (1998년 8월)

 미주평화통일연구소의 설립배경과 목적에 대하여

 [설립취지문은 통일학연구소가 미주평화통일연구소란 명칭으로 처음 설립될 당시 발표한 것입니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를 설립하자는 논의와 실천은 '역사의 전환기'에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연 오늘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안팎의 정세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인식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역사의 전환기'라는 개념을 민족사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 우리의 인식이 대뜸 마주서게 되는 표지는 '통일시대의 개막'이다. 우리는 민족사의 전환을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시대와 달리, 통일시대는 통일문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식과 전망을 요구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인식과 전망이란 과학적 탐구와 분석에 의하여 가능한 일이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분단시대에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관점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통일논의는 민족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수행해야 할 민족사적 의무라는 당위성론의 주장으로 표출되는 데 그쳤다. 그렇지만 민족적 양심과 염원에 부응하는 것만으로는 통일문제를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과학적 인식이 없이는 통일실현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대중의 민족적 양심과 통일염원에 대한 호소력, 통일 당위성 주장의 대중적 설득력 등에 의존하면서 자족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통일시대로 넘어온 우리는 분단시대의 시대적 한계, 그 한계가 규정해준 사고방식과 인식의 한계에 붙들려 있거나, 그 한계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밀려나지 말고, 의식적으로 그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통일시대의 통일문제 연구가들이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도 통일문제에 대한 과감한 인식전환과 통일논의의 대안창출이다. 이것은 통일문제 연구가들의 현실인식능력과 인식수준에 관한 문제와 직결된다. 현실인식 능력과 수준을 높이는 문제는 연구활동, 조사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길 밖에는 없다. 조사활동이란 객관정세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 관찰, 분석, 정리하는 활동을 말하고, 연구활동이란 조사활동에서 밝혀진 정세의 실상을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전망하는 일이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는 바로 이러한 통일시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되었다. 전문적인 연구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는 생각이다. 지난 20여년을 헤아리는 미주통일운동사에서 운동단체들은 많았지만 조국의 평화문제와 평화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기관은 없었다. 미주통일운동의 역사적 발자취를 모아 정리한 자료도 없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미주통일운동 1세대들과 함께 그 역사도 영원히 사라지고 말 위기에 처해있다. 통일운동의 주객관적 정세를 분석해야 할 버거운 임무가 우리의 두 어깨에 무게를 싣고 있다. 21세기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과제도 시급하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는 바로 이러한 통일시대의 임무를 안고 태동되었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는 늦깍이다. 1990년대의 전환이 일어나던 시점에 이미 출발했어야 했을 터인데 너무 늦었다. 늦었지만 늦은 것을 탓하고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다. 누군가 통일시대의 시대정신을 않고 움직여야 했다. 미주평화통일연구소는 사람들이 '통일원년'의 위대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던 1995년 3월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틔운 작은 싹이다. 이 새싹에 물과 거름을 대고, 볕이 들게 하여 장차 열매가 영그는 나무로 키우는 일은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미주동포들에게 남겨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