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연방제론의 오류와 연방제 통일론의 재인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3)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4) 남북의 통일방안과 체제통합론의 간접적 연관성

(5) 연방제 통일 반대론의 오류

(6) 누가 이 역사적 임무를 맡을 것인가

(1) 들어가는 말

역사적인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이 평양에서 곧 열리게 된다. 이 회담을 계기로 칠천만 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녀노소의 차이, 계급계층의 차이, 국내와 해외라는 거주지역의 차이를 넘어서 한결같다. 지금 유월의 대지는 조국통일을 향한 전민족적인 열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열망 속에서 남(한국)의 사천만 동포는 북(조선)의 동포를 삼천리 강토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형제자매로 재확인하는 건강한 동족의식을 회복해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북(조선)의 동포가 '적대자'로 보이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도착증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동족으로 보이는, 이 지극히 당연한 현실인식에 이르기까지 민족적 양심은 반세기가 넘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물론 아직도 남(한국)에는 동족에 대한 증오, 혐오, 불신이라는 정신도착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의 변화방향이 동족의식의 복원을 지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변화는, 반통일세력의 탄압 때문에 연방제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었던 국가보안법체제의 암울한 시대를 과거사의 뒤안길로 밀어내고 있다. 이제 민족대단결운동은 연방제 통일론에 관한 논의를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더 깊이 있게 진행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남(한국)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연방제 통일론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이 반연방제론의 오류와 논리적 모순을 지적·비판하려는 것은, 연방제 통일론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를 넘어서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둔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다.

연방제 통일론을 단지 투쟁구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민족대단결운동이 반통일세력에 맞서싸우기 위한 투쟁구호로 연방제 통일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연방제 통일론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냐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방제 통일론은 몇몇 통일운동가들이 자기의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 사적 고안물이 아니다. 그것은 8·15 이후 반세기 동안 국토분할과 민족분열이라는 분단체제의 재난과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민족대단결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전민족적으로 총화한 바탕 위에 정립된 통일운동시대 최고의 정치강령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분단시대의 연방제 통일론과 식민지시대의 자주독립론을 견주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자주독립이라는 투쟁목표를 제기하고 싸웠던 항일민족해방운동이 8·15 해방공간에 들어와서 자주독립의 문제를 현실과업으로 수행해야 했을 때, 그것은 매우 복잡·간고한 과업이었다. 자주독립의 과업이 얼마나 복잡하고 간고한 과업이었던가는 당시의 역사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민족대단결운동이 연방제 통일론을 투쟁목표가 아니라 당면한 수행과업으로 인정했을 때, 연방제 통일론은 매우 복잡한 현실문제들이 얽혀있는 과업으로 다가오게 된다. 8·15 해방공간에서 자주독립과업이 식민지시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청산이면서 동시에 자주독립시대를 열어가는 변혁과 창조의 역사로 전개되어야 했듯이, 연방제 통일의 과업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연방제 통일은 분단과 예속의 낡은 시대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청산이면서 동시에 통일과 자주의 시대를 열어가는 변혁과 창조의 역사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볼 때, 오늘 민족대단결운동은 연방제 통일론에 관한 연구를 더 깊이 진행하고 그것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널리 전파하여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방공화국이라고 하면, 스위스 같이 단일한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중앙연방권력을 세우면서 지방자치권력을 고도로 발달시킨 나라, 또는 미국 같이 단일한 체제의 군소국가들이 하나의 연방권력 아래 통합되면서 수립된 나라를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연방국을 건설하기 이전에 이미 체제의 단일성이 존재해있었던 조건에서 연방국을 세웠던 나라들은, 오늘에 와서 굳이 연방국임을 강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런 나라들의 연방제란 군소국가들이 분산상태를 벗어나 연방화의 원리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과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었을 뿐, 일단 연방국이 수립된 뒤에는 고도로 발달된 지방자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는 의미만이 남게 된다.

그러나 민족대단결운동의 조국통일론이 말하고 있는 연방국의 개념은 다르다. 한(조선)반도의 연방제 통일론은 단일한 연방권력 아래에서 지방자치권력을 어떻게 발달시키느냐 하는 스위스형 연방제론도 아니고, 단일한 체제의 군소국가들이 어떻게 하나의 연방권력 아래 통합되느냐 하는 미국형 연방제론도 아니다. 민족대단결운동의 연방제 통일론은 적대관계에 있는 남북이 어떻게 두 개의 지방자치정부를 포괄하는 단일한 중앙연방정부를 수립하여 통일연방국을 건설하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주장하는 중국의 통일론을 보자. 중화민족도 한(조선)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대만의 통일문제에서 연방제 통일의 원칙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중국-대만의 연방제 통일론과 한(조선)반도의 연방제 통일론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강대한 중국이 약소한 대만을 통합하려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만을 현행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자체의 군대를 보유하면서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하는 특별행정구로 포섭하려는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연방제 통일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이 연방화의 원리에 따라 대만을 평화적으로 수복하는 지역통합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한(조선)반도의 연방제 통일은 남북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통합·수복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새로운 중앙연방정부와 지방자치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통일연방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배경, 그리고 정치적 의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거나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회의하고 있다.

(2)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남북관계는 적대적이다. 오늘의 남북관계가 적대적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착각하는 몇몇 사람도 있지만, 그런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남북관계가 경쟁관계라고 한다면, 상호경쟁이 치열하다고 할지라도 '적대적 공생'이 가능할지 모른다.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라는 세간의 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대치와 교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적대관계에서는 공멸이 아니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만이 선택으로 남아있을 뿐이며 공생은 어떤 형태로든지 가능하지 않다. '적대적 공생관계'란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이 서로 상대쪽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전술적 측면을 제멋대로 해석함으로써 조작해낸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이 제각기 상대쪽의 내분, 결함, 모순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전술을 동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적대세력을 이용하여 공생을 추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대세력을 이용하는 전술의 목적은 상대와 공생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를 불리한 정세로 몰아넣고 상대를 약화시켜 종국적으로는 타도·정복하기 위함이다.

통일실현의 의지와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상호 모순관계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연방제에 의한 통일실현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을 공격·파괴하고 타도·정복하려는 대결주의와 적대성이 남북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한, 연방제 통일실현은 고사하고 대화와 협상조차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연방제 통일론이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해소하고 통일연방국 건설로 나아가는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먼저 연방제 통일론이 남북관계의 적대성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연방제 통일론은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을 아래와 같이 네 각도에서 파악하고 있다.

1)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이중적이다. 여기서 이중적이라는 말은 남북관계의 적대성이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각각 유지·관리하는 두 권력 사이의 적대성이면서 동시에, 이 두 체제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적대성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2) 그런데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은 체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쌍방의 권력관계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파괴의지와 타도·정복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공격·파괴의지와 타도·정복의지의 주체는 체제 그 자체가 아니라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권력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상대쪽이 자기와 다른 체제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공격·파괴하고 타도·정복하려는 게 아니다. 남(한국)은 북(조선)을 '반국가단체'로, 북(조선)은 남(한국)을 '미제의 괴뢰'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공격·파괴하고 타도·정복하려는 것이다. '반국가단체'나 '미제의 괴뢰'는 체제문제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정치적 개념들이다.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노동자국가와 자본가국가 사이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와 '미제의 괴뢰' 사이의 적대관계에서 발생되고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3)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체제의 적대성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북(조선)은 '남조선 괴뢰정권'은 물론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도 거부·배격하고 있고, 반면에 남(한국)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은 물론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도 거부·배격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체제의 적대성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반연방제론자(이 경우에 연방제 불가론자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들은 체제의 적대성을 국가의(또는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에서 생겨나는 필연적 산물이라고 본다. 국가(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구의 총체)는 계급지배의 도구이며 장치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사이좋게' 손잡고 단일한 국가권력을 창출·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로지 계급투쟁에서 승리한 특정계급이 패배한 다른 계급들을 지배하는 독점적인 국가권력을 창출·유지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국가 안에서는 다양한 사회계급들이 모순관계로 존재할 수 있지만,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계급은 해당 사회의 계급관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지위를 가진 계급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이 다른 계급들을 지배·착취하는 권력구조를 창출하게 된 것이 바로 국가의 성립과 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관계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적대성은 국가권력을 장악·독점하려고 투쟁하는 계급적 대립관계로 전환·대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해소하는 길은 반드시 계급투쟁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둘째, 체제 사이의 적대성은 계급관계의 적대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원래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사이의 적대성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적 적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북관계에 존재하고 있는 체제의 적대성은 남(한국)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계급관계의 적대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관계에 존재하고 있는 체제의 적대성은 남(한국)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계급관계의 적대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와 남(한국)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이 상호대립적이 되거나 상호모순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가 동일성의 원리로 결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서 형성된 계급이 아니라, 남(한국)의 자본가계급에 대립하는 모순관계 속에서 형성된 계급이다. 따라서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와 남(한국)의 노동자계급의 상호관계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김세균 교수는 남북관계에 존재하고 있는 적대성을 "계급모순의 가장 첨예한 형태"라고 보는 체제 적대성론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는 단순히 '민족적 대단결'에 의해 해결될 수 없고, 남북한의 적대적인 두 체제 간에 성립해 있는 '체제모순'이 특정한 방향으로 해결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을 '반국가단체'와 '미제의 괴뢰' 사이의 적대성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사이의 적대성으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생겨난 오류다.

4) 남(한국)의 사회변혁을 추진하는 민족민주운동과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민족대단결운동을 혼동하거나, 어느 한 쪽에 다른 한 쪽을 편입·용해시켜서는 안 된다. 남(한국) 체제의 계급모순을 해결하는 사회변혁의 과제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민족대단결운동의 과제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데서 생겨나는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민족대단결운동이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의 일부로 편입·용해될 수 있다고 보는 김세균 교수의 논리는 명백히 오류다. 그는 "남한의 민주변혁이 얼마만큼 진척되는가가 통일한국이 얼마만큼 남북한 주민 모두의 생존권과 행복을 보장하는 진정한 민주공동체가 되는가를 기본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통일운동을 어디까지나 남한의 민주변혁운동의 일환으로 확고히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세균 교수의 견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논리적 오류에 빠져있다.

① 그는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이 추구하는 전략목표, 성격, 임무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민족대단결운동의 전략목표, 성격, 임무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에 빠져있다.

② 그는 남북 사이의 "국력 격차의 심화 등으로 말미암아 통일과정의 주도권은 이미 남한에게 넘겨져 와있다"고 하면서 남(한국)의 정권과 자본이 마치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매우 심한 착각에 빠져있다. 그는 남(한국)의 정권과 자본이 민족대단결운동을 짓누르고 있는 국가보안법체제 안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반통일세력이며, 애초부터 미국의 지배력 아래서 창출되고 육성되어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구분할·지배정책(이른바 Two-Korea Policy)을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추종하고 있는 대미예속세력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자세하게 논할 것이다.

둘째,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이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민족대단결운동의 일부로 편입·용해될 수 있다고 보는 오류다. 연방제 통일이 실현된다고 해서 남(한국) 체제의 계급모순이 자동적으로 해소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자동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말은, 남(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은 남(한국)의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족민주운동세력의 투쟁에 의해서 진행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연방제 통일의 실현 여부와는 상관 없이 남(한국)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로 남아있을 것이며, 따라서 통일연방국의 남쪽 지방자치지역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계급모순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기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실현 이후에도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남(한국)사회를 변혁하는 사회변혁운동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연방제 통일이 실현된 뒤에 남(한국)에서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이 중심이 된 민족민주운동세력이 투쟁을 통하여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할 것인가, 아니면 변혁하지 못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의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연방제 통일론의 범위가 아니라 남(한국)의 사회변혁론에서 따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연방제 통일을 논하면서 남(한국) 체제의 계급문제 해결과 분단문제 해결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남북관계에서 권력의 적대성을 해소하는 문제와 체제 사이의 계급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문제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반연방제론자들은 단일체제의 통일국가는 세울 수 있지만, 이원체제의 통일연방국은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통일연방국 수립 불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일체제의 통일국가는 연방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연방제론에서는 단일체제 연방국과 이원체제 연방국 사이의 차이점이 아주 뚜렷이 강조되고 있다. 김세균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두 개의 적대적인 사회체제가 두 개의 국가를 지니며 서로 공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나의' 국가 아래 두 개의 적대적인 사회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유토피아 중의 유토피아다. (줄임) 실제로는 한 사회 내부에서 두 개의 적대적인 사회체제의 상호공존을 보장하는 국가체제란 지금까지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점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부인하는 부르주아세력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이 글에서 강조점이 찍힌 곳은 체제의 적대성이다. 상호 적대관계에 있는 두 체제를 어떻게 한 국가의 틀 안에서 비적대적인 공존관계로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 아니 더 나아가서 성립 불가론이 바로 이 반연방제론의 핵심논지다. 그러나 김세균 교수의 반연방제론은 남북관계 적대성의 본질이 체제의 적대성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적대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체제의 적대성을 해소하고 단일체제로 통합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가 아니라 체제 단일화라는 체제변혁과 지역통합의 문제다. 적대적인 두 체제를 하나로 단일화하는 체제변혁은 불가피하게 체제 사이의 적대성을 자극하여 갈등과 충돌을 불러오게 된다. 한(조선)반도에서 이러한 체제의 갈등과 충돌은 미국과 일본의 자동적인 무력개입을 불러옴으로써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체제의 적대성을 완전히 해소하고 단일체제로 통합하는 것을 통일문제라고 보는 견해는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민족문제이지 체제변혁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방제 통일론은 통일문제를 체제 통합의 문제로 보려는 견해를 반대한다. 힘의 팽팽한 균형상태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체제변혁과 체제단일화라는 것은 한 쪽이 다른 쪽을 강제로 흡수통합하는 통일전쟁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동서독의 체제통합을 역사적 선행경험으로 들면서 전쟁에 의한 강제적, 폭력적 체제통합을 피하고 평화적으로 체제를 통합하는 것이 어째서 가능하지 않느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부분은, 동서독의 체제통합은 허약한 동독 사회주의 체제가 강력한 서독의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추진된 점진적 체제변질과정을 거쳐 종국적으로 와해됨으로써 흡수통합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오늘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가 옛 동독처럼 남(한국)의 점진적 체제변질과정을 거쳐 와해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연방제 통일론을 반대하고 평화적인 체제통합론을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화적인 체제통합론이 지니고 있는 맹점은 분단독일의 전략환경과 한(조선)반도의 전략환경의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고 있다. 냉전시기 독일의 분단현실과 달리 오늘 한(조선)반도의 분단현실은 아래의 네 가지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내적 측면의 차이다. 남(한국)은 서독처럼 강대하지 못하고, 북(조선)은 동독처럼 허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체제의 내구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는 동서독처럼 힘의 불균형 상태에 있지 않다. 정치력과 군사력은 북(조선)이 남(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강하다. 북(조선)의 정치·군사력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북(조선)이 냉전시기에 이미 소련과 중국에 대한 독자노선을 정립했고, 조선로동당의 통일적 지휘체계 안에서 전당, 전군, 전민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강고하게 결합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동독은 소련의 '위성국'이었고,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통일사회당은 동독을 통일적 지휘체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한 편, 남(한국)의 정치력은 미국의 동북아 지배권 안에 묶여있고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남(한국)의 정치권은 이합집산, 부정부패 같은 고질적인 병폐가 심해져 대중은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해 불신과 무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치력의 강약문제는 사회조직력, 사회통합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아주 다르게, 군사력을 보더라도 남(한국)은 북(조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른 한편, 경제력은 남(한국)이 1980년대 중반 이후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이후 북(조선)이 경제난에 빠져들자 남(한국)의 경제력 우위가 더 돋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11월 이후 남(한국)의 경제력은 구조적 위기를 겪으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계에 편입되었으며, 그로써 경제력 회복의 전망도 불투명하게 되고 말았다. 반면에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경제력을 차츰 회복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나아간다면, 앞으로 몇 해 안에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주변열강의 이해관계가 교차·충돌하는 측면에서 보면, 분단독일과 한(조선)반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분단시기의 독일은 원래 소련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교차지대였으나, 소련이 와해되고 그 계승국인 러시아가 친서방적 자본주의화로 나아가면서 독일은 주변열강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교차지대가 더 이상 될 수 없었다. 일종의 공백이 생겨난 것이다. 서독은 바로 이 공백상태를 이용하여 동독을 흡수통합할 수 있었다. 만일 소련이 와해되지 않고 동독에 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행사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독일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분단현실과 견주어보자면, 한(조선)반도는 중국과 미국, 중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교차수준을 넘어서 상호충돌하는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중국의 국력이 차츰 팽창함으로써 이러한 충돌양상은 앞으로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동서독은 전쟁 경험이 없었으므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45년의 분단시대에 비적대적 협력관계를 그런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한국)과 북(조선)은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까닭에 극도의 적대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한(조선)반도는 중무장한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열점(熱點)이며, 지금도 종종 크고 작은 교전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넷째, 동독은 미국과 전쟁을 한 경험이 없으므로 반미의식이 거의 없었으나, 북(조선)은 미국과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인 교전관계에 있었고, 지금도 정전상태에 있기 때문에 반미의식이 엄청나게 강하다. 또한 미국은 동독에 대해서 강한 적대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북(조선)에 대해서는 강한 적대의식을 가지고 무력을 동원한 살벌한 대치와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북(조선)을 심히 자극하는 5027 작전계획과 핵전쟁급 합동군사훈련이 한(조선)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동독과 미국은 준전시상태에서 대치하고 있지 않았으나,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는 정전협정에 의한 준전시상태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측면을 따져볼 때, 한(조선)반도에서도 독일처럼 평화적인 체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 없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의 분단현실과 달리 한(조선)반도에서 체제 적대성을 해소해야 통일이 실현된다고 보는 견해는 한 쪽이 다른 쪽을 강제로 흡수통합하기 전에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통일전쟁론으로 흘러가게 된다.

요컨대 민족대단결운동의 연방제 통일론은 남북관계가 적대성을 넘어서 비적대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로써 얼마든지 하나의 연방국 안에서 공존·공영할 수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남북관계가 비적대적인 관계로 들어서게 된다면, 한(조선)반도에 이원체제 연방통일국을 건설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게 된다.

(3) 남북관계의 적대성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앞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적대성이란 두 체제 사이의 적대성이 아니라 두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권력 사이의 적대성임을 밝혔다. 그러므로 남과 북에서 각각의 체제를 유지·관리하고 있는 권력 사이의 적대성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면, 남(한국) 안에 존재하는 계급모순이 해결되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연방제 통일은 실현될 것이며 이원체제 통일연방국을 건설할 수 있다. 연방제 통일론은 남북의 두 권력이 상대방에 대한 공격·파괴의지와 타도·정복의지를 포기한 상태에서 이질적인 두 체제가 공존할 수 있으며, 그러한 공존상태를 한 주권국가의 틀에 담아낼 수 있다는 통일연방국 수립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 권력 사이의 적대성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1) 남북의 권력관계를 적대적 관계에서 비적대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한 원리적 해답은 간단·명료하다. 그것은 남북의 권력이 상호인정·상호존중의 원칙에 따라서 통일연방국을 세우자는 정치적 합의에 도달하고 이를 실행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체제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상호인정과 상호존중이라는 말은 남북의 현존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그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현존 권력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현존 체제(제도)를 상호인정·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그 체제를 유지·관리하는 현존 권력도 상호인정·존중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합의하지 못했다. 남북의 현존 권력에 대해서는 상호 불가침을 합의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남북기본합의서는 불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남북의 권력관계에 존재하는 적대성을 제거하는 문제는 두 권력주체가 결단을 내려 정치적 화해를 이루는 문제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남북의 권력은 하나의 중앙연방권력으로 통합되어 통일연방국을 건설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정치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북(조선)은 이미 연방제 통일을 유일한 통일방안으로 천명하였고 이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므로, 남(한국)의 권력이 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하는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남북권력 사이의 정치협상이 그 해결방도가 된다. 전민족적인 기대와 요구가 남북최고당국자회담에 집중되고 있는 까닭은, 그 회담에서 통일방안문제를 논의·합의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한국)의 권력이 아무리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해도 남(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이를 방해하거나 반대하면 성사되기 힘들다. 반대의 논리도 성립한다. 남(한국)의 권력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거부하고 있지만, 남(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묵인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면 연방제 통일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2) 반연방제론에는 국가주권을 계급적 단일성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들어있다. 그러나 연방제 통일론은 국가주권의 독점화 현상을 넘어서 국가주권을 균등하게 분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여기서 균등한 분점이란 국가주권을 여러 계급들이 골고루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주권을 대외적 권한과 대내적 권한으로 나누고, 대외적 권한은 남(한국)과 북(조선) 당국이 서로 균등하게 분점하는 통합된 중앙연방정부를 수립하고, 대내적 권한은 남(한국)과 북(조선)의 지방자치정부가 종전대로 각각 보유·행사하게 한다는 방안, 곧 국가주권의 단일화 방안이다. 여기서 중앙연방정부의 대외적 권한이란 외교권과 군사권을 말하며, 지방자치정부의 대내적 권한이란 현존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정부에게 보장되는 고도의 지방자치권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대외적 권한을 과연 남(한국)과 북(조선) 당국이 서로 균등하게 분점하는 통일된 중앙연방정부를 창출·수립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검토하려면 우선 몇 가지 요점을 밝혀야 한다.

첫째, 남(한국)과 북(조선) 당국이 지금처럼 심한 적대관계에 있다면, 위에서 말한 중앙연방정부의 창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남북 당국 사이의 관계가 정치적 화해와 긴장완화를 통하여 우선 비적대적 관계로 전환되어야 하고, 또한 비적대적 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전략적 환경과 안팎의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둘째, 연방중앙정부의 권능을 처음부터 높은 수준에서 강력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한국)과 북(조선)의 두 지방자치정부가 대외적 권한의 일정 부분을 종전대로 각각 유지·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단계적, 점진적으로 연방중앙정부에 권능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연방중앙정부의 권능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의 단계적 실현이나 점진적 발전이라는 개념은 바로 여기에 직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연방제 통일의 초급단계에서 연방중앙정부의 권능은 상대적으로 약하고(다시 말해서 중앙집권화가 아니라 지방분권화에 비중이 상당하게 쏠려 있고), 따라서 연방국가적 성격보다는 국가연합적 성격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른바 '느슨한 연방제'가 이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놓쳐서 안될 중요한 점은, 비록 초급단계의 연방중앙정부가 국가연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를 곧 국가연합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느슨한 권능을 가진 초급단계의 통일연방국이라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국가연합이 아니며, 단지 국가연합적 성격을 상대적으로(후기 통일연방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많이 지니고 있다는 것 뿐이다. 본질의 차이와 성격의 차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초급단계의 느슨한 통일연방국이 과연 국가연합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양자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같은 것이므로, 통일연방국 수립론과 국가연합 수립론은 서로 절충·융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데 이것은 본질의 차이와 성격의 차이를 혼동하는 데서 나오는 착오다. 통일연방국은 아무리 느슨한 초기형태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단일한 통일국가며, 국가연합은 제 아무리 견고하게 발전된 후기형태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별개의 두 국가다. 한 국가와 두 국가의 차이는 국가주권의 소재가 하나인가 둘 인가하는 본질의 차이로 나타나지 성격의 차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제 이 글의 관심은 남(한국)과 북(조선) 당국이 정치협상과 상호합의에 의해서 느슨한 권능(대외적 권한)을 가진 초급단계의 통일연방국을 창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데로 넘어간다. 여기서 대외적 권한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외교권과 군사권도 초급단계에서는 지방자치정부가 종전대로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을 일정하게 보장해 주고, 차츰 단계적, 점진적으로 연방중앙정부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보강해가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때 외교권과 군사권을 과연 어떻게 남(한국)과 북(조선)의 지방자치정부가 단일한 연방국의 틀 안에서 균등하게 분점하느냐 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앞으로 더 연구·검토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통일연방국 초급단계에서 두 지방자치정부는 자체의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도록 합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군사력의 작전지휘권은 연방중앙정부가 행사하고 지방자치정부는 작전통제권만을 행사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정부의 군사력은 남북 상호불가침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범위와 수준으로 감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상호군축은 연방제 통일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것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결부된 문제이며,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자고 합의해야 단계적, 점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고, 상호군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자고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뿌리 깊은 상호불신 때문에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 해도 할 수 없으며 상호군축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외교권을 보유하고 행사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통일연방국 수립 이전에 남(한국)과 북(조선)이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을 처음부터 모조리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남(한국)과 북(조선) 당국이 중앙연방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통일연방국의 국익에 저촉되지 않는 방향으로 기존의 조약들을 조절하면서 개정 또는 폐기하는 과도적 조치가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만일 남북 권력 사이의 적대성이 제거된다면,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 안에 존재하고 있는 계급관계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남(한국) 안에 존재하고 있는 계급관계의 문제는 사실 연방제 통일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서 토론범위를 벗어나는 문제지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남(한국)사회의 계급관계를 바꾸어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한국)에서 민중민주전선이 확대되면서 계급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전선을 이끌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국가보안법체제의 와해 이후에 일정하게 개량화된 정권을 압박하면서 계급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민중의 사회변혁운동을 더욱 힘있게 밀고나갈 것이다. 이 사회변혁운동은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이 앞장서서 추진하게 될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으며, 개량화된 정권과 역량이 장성·강화된 민족민주운동세력 사이에서 정치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국가보안법체제 이후의 개량화된 정권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는 북(조선)이 아니라 조직화된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은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이 될 것이다.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이 민중민주전선을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민족자주운동과 민족대단결운동도 그 전선을 더욱 확대하게 될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은 차츰 이완되어가고 있는 미국의 남(한국) 지배구도를 완전히 철폐하기 위한 정치투쟁을 완강하게 벌여나갈 것이다. 주한미군철수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은 남(한국)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민족대단결운동은 국가연합으로 나아가려는 반통일세력에 맞서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정치투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4) 남북의 통일방안과 체제통합론의 간접적 연관성

연방제 통일론은 남북의 두 체제를 단일성, 동질성으로 전환하자는 급진적 주장, 비현실적 주장을 반대할 뿐아니라 체제통합론도 배제하고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 통일 이후에 남북의 체제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국통일론의 토론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의 체제통합 문제는 조국통일론이 아니라 사회변혁론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만 연방제 통일론과 체제통합론 사이에는 직접적 연관성이 아니라 간접적인 연관성이 있으므로 통일방안과 체제통합론의 연관성 문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남(한국)과 북(조선)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발표한 통일방안은 각각 체제통합론과 일정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은 체제통합론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까?

1) 북(조선)은 1980년 10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발표한 뒤로, 연방국으로 통일된 이후의 사회변혁 문제에 관해서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발표는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동안 외부에 나온 자료를 근거로 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북(조선)은 연방국으로 통일된 이후에 체제통합은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이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둘째, 북(조선)은 연방국으로 통일된 이후에 체제를 통합하는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북(조선)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셀릭 해리슨은 자신이 1972년 6월 23일 평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은 자리에서 김 주석이 연방제 통일 뒤에 남과 북의 서로 다른 현재의 정치체제를 당분간 그대로 두자고 말하면서, 통일 이후의 체제선택 문제는 다음 세대에게 넘겨 그들이 선택하게 하자고 말했다고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그 뒤에도 이러한 차세대 선택론에 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체제문제를 통일 뒤에 해결할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셀릭 해리슨은 1977년 10월 평양을 방문하여 허담 외교부장과 담화했는데, 허담 외교부장은 연방국 수립 뒤에 체제 단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대략 25년에서 30년이 걸리지 않을까 예상하지만, 과연 얼마나 더 많은 기간이 지나야 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허담 외교부장은 생전에 김정일 총비서의 가장 핵심적인 측근으로서 외교부장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면서 외교·통일부문의 사업을 이끌어왔으므로 그의 발언은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잡는다고 할 때, 그가 통일 이후의 체제통합기간을 대략 25-30년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김일성 주석이 통일 이후의 체제선택 문제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 그들이 선택하게 하자고 한 내용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김일성 주석이 생존했을 때, 연방제 통일 이후의 체제선택문제는 '차세대 선택론'으로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북(조선)은 이러한 '차세대 선택론'이 예상했던 30년 간의 체제통합기간을 1994년 이후에 단축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에 김정일 총비서는 통일연방국가이 수립되면 적어도 현재의 두 체제를 15년 동안 그대로 유지해야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북(조선)이 1994년 이후 김정일 시대에 들어와서 연방국으로 통일된 이후의 체제통합기간을 이전의 30년에서 15년으로 단축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셋째, 북(조선)은 15년 동안의 통일연방국 시대를 지나면서 궁극적으로는 남(한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북(조선)이 연방제 통일이 완성된 뒤에 어떤 체제로 단일화되어야 하는가에 관해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렇지만 북(조선)은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무리 발전된 단계에 이른다고 해도 그 체제로는 민족사의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만큼, 통일 이후에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통일연방국의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로 단일화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2) 남(한국) 정부당국의 3단계 통일방안과 체제통합론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북(조선) 정부당국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은 체제통합단계를 통일실현 이후로 설정했지만, 남(한국) 정부당국은 3단계 통일방안 안에 체제통합단계를 포함시켰다. 이것이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다. 3단계 통일방안은 화해협력단계→국가연합단계→완전통일실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화해협력단계와 국가연합단계가 바로 체제통합단계로 설정된 단계다. 화해협력단계에서 추진할 체제통합수준보다 국가연합단계에서 추진할 체제통합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는 남북 사이에서 자유로운 통행·통신·통상을 추진하면서 체제통합수준을 차츰 높여간다는 전망이 깔려있다. 이것은 두 단계에 걸쳐 점진적인 체제통합을 추진한 뒤에 남북을 하나의 체제로 완전히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통행·통신·통상은 체제의 이질성을 해소하는 체제통합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체제통합을 추진하는 국가연합단계가 약 10년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한국)의 방안을 정리한다면, 남북이 두 국가로 완전결별하는 단계→교류와 협력으로 두 체제를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단계→단일화된 체제 위에서 두 국가를 통합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한국) 정부당국의 통일방안은 체제통합론에 기초한 것이며,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통일방안이 아니라 체제통합방안이다. 여기서 남(한국) 정부당국은 조국통일문제를 민족문제로 보고 있지 않고 체제통합문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한국) 정부당국의 체제통합방안은 체제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평화공존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김대중 정권이 이른바 '햇볕정책'에 기초하여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두고 역대정권의 대북정책과 비교해서 진일보한 대북정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남북의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대북정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주장한 것은 가장 반통일적이고 반북적인 정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 정권이었다. 박정희가 남북의 평화공존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남북 당사자 원칙, 남북 상호불가침 협정 체결, 남북 상호문호개방과 교류·협력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내놓았던 때는 1975년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박정희정권의 대북정책과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은 일맥상통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이후의 모든 정권이 내놓았던 대북정책은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대북정책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남(한국)의 대북정책이 어째서 대북 평화공존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느냐 하는 데 있다. 그 까닭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남북이 적대관계에서 벗어나서 평화공존관계로 들어가야 체제의 이질성을 해소하는 체제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대적 대치상태에서는 체제통합이 불가능한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체제통합방안은 언제나 '선 평화 후 통일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선 평화 후 통일론'은 평화를 먼저 실현하고 나중에 통일을 실현하자는 논리가 아니라, 평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 밑에 통일을 기피하자는 논리다. '선 경제건설 후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먼저 추진하고 나중에 민주주의를 실현한 게 아니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민주적인 군사독재로 일관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선 평화 후 통일 정책'은 1978년 1월 18일 박정희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처음 발표하였던 반통일론이었는데, 그 반통일론이 20년 뒤에 그의 최대 정적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흔히 제국주의자들이 침략과 지배를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로 분칠하듯이 분열주의자들도 자기들의 반통일적인 정체를 가리우려고 평화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지금 남(한국) 정부당국의 3단계 통일방안은 남과 북의 체제가 적대적 관계로 대립하지 말고 공존·공영·공리를 추구하는 화해·협력단계(또는 평화공존관계)로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공존·공영·공리의 관계가 통일연방국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극구 부정하고 있다. 공존·공영·공리의 관계가 국가연합의 관계에서만 가능하고, 통일연방국의 틀 안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연방제 통일론을 거부하고 체제통합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존·공영·공리의 관계가 평화적 분단상태의 남북관계, 구체적으로 말해서, 화해협력단계와 국가연합단계에서는 가능하지만, 통일연방국 안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국 연방제 통일론을 반대하기 위한 궤변이다.

(5) 연방제 통일 반대론의 오류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는 논리 가운데는 연방제 통일이 남(한국) 본본주의 체제의 흡수통합을 위한 사전 준비단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가 있다. 연방제 통일이 대북 흡수통합을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또는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 논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김세균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남한 지배세력이 정세가 자기에게 극히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흡수통일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그와 같은 형태의 연방제통일에 적극 찬성하고 나오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북한은 고사하고 남한의 민중운동진영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사태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체제를 일단 인정하고 통일국가를 이룰지라도 조만간 1체제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이 선다면, 무엇 때문에 연방제 통일에 반대하겠는가."

이처럼 김세균 교수가 남(한국) 당국이 연방제 통일을 대북 흡수통합의 한 방편으로 적극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조선)반도의 정세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의 정세인식을 살펴보자.

"우리는 현재의 전반적인 정세가 민중적 통일에로의 길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통일에로의 길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로 인해 제국주의의 전일적인 세계지배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며, 나아가 그간 남한의 자본주의가 상당한 정도로 성장하여 북한의 경제력을 압도하고 있는 반면 북한경제는 오늘날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더욱이 남한의 민중운동세력이 민중적 통일을 주도할 만큼 성장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현상황에서 남한의 지배세력이 통일문제를 단순히 정국위기의 탈출책으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남북한의 자본주의적 통일 내지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내다보면서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공세적으로 펴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세균 교수의 정세인식에 나타난 핵심논지를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① 남(한국)이 북(조선)에 대한 흡수통합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객관정세가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② 흡수통합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객관정세란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衁.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 이후 제국주의의 전일적인 세계지배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

遁. 남(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력이 북(조선) 사회주의 경제력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점.

鑁. 북(조선)은 경제난에 빠져 있다는 점.

鱁. 남(한국)의 민중운동세력이 통일을 주도할 수 없는 미약한 상황이라는 점.

③ 이처럼 객관정세가 남(한국)에게 유리하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남(한국)은 북(조선)을 흡수통합하기 위한 정책을 공세적으로 펴고 있다는 점이다.

김세균 교수의 이 글은 1992년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여덟해가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의 정세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붙잡고 있는 고정불변성은 남(한국)이 통일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북(조선)을 흡수통합하려 하고 있으며, 북(조선)은 그 위력 앞에서 피동적, 방어적으로 되고 있다는, 완전히 거꾸로 된 정세인식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거꾸로 된 정세인식은 비단 김세균 교수에게만 특정하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 남(한국)에서 통일론을 말하는 지식인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연방제 통일론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가 바로 정세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연방론자들의 논거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출발점은 마땅히 그들의 거꾸로 된 정세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정세인식이야말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정세인식이란 사회과학과 역사인식의 장기적 안목으로 당면정세의 변화방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당면정세에 관련한 다양·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분석·종합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정세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을 어처구니 없이 그르치는 사태가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어렵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통일정세의 변화시키는 요인들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 요인구성을 살펴보면 이렇다.

① 한(조선)반도 주변열강들과 남(한국) 사이에서 생겨나는 변화

② 한(조선)반도 주변열강들과 북(조선) 사이에서 생겨나는 변화

③ 한(조선)반도 주변열강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변화

④ 남(한국) 내부에서 생겨나는 변화

⑤ 북(조선) 내부에서 생겨나는 변화

⑥ 남북관계에서 생겨나는 변화

이러한 변화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바뀌고 있는데, 그 변화요인들 가운데서 과연 어떤 것이 정세변화를 주도하고 있는가는 당면정세마다 다를 수 있으며, 복합적으로 변화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김세균 교수가 파악한, 흡수통합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객관정세의 변화요인을 살펴보자면,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 이후 제국주의의 전일적인 세계지배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은 한(조선)반도 주변열강들과 남(한국) 및 북(조선) 사이에서 각각 생겨나는 변화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남(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력이 북(조선) 사회주의 경제력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것과 남(한국)의 민중운동세력이 통일을 주도할 수 없는 미약한 상황이라는 것은 남(한국) 내부에서 생겨나는 변화요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북(조선)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북(조선) 내부에서 생겨나는 변화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김세균 교수의 지적대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은 분명히 북(조선)에게 불리한, 반대로 남(한국)에게는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독일의 흡수통합 실현, 소연방의 해체, 동구 사회주의의 자본주의 복귀,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체제 수용과 그에 따른 혼란으로 진행된 네 방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한(조선)반도의 주변정세가 북(조선)에게 매우 불리하게 조성된 시기에 한(조선)반도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걸어두고 있는 미국은 조용히 앉아 있지 않았다. 걸프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그 기세를 몰아 이 기회에 북(조선)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세계체제 안으로 편입·유도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판단에 따라 북(조선)에 대해 정치외교적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서 한(조선)반도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남(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압박공세에 적극 가담한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에 더하여 김일성 주석이 급서하였고, 석유 수입 급감에 따른 경제난과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난이 북(조선)을 강타했다. 이와 같은 안팎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북(조선)은 사활을 건 총력전을 벌리면서 미국의 총공세에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세가 미국에게 더 없이 유리한 조건에서 총공세를 퍼부었는 데도, 미국의 5년 총공세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더 나아가서 북(조선)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량보복능력을 확보하였고,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조약체제와 미일동맹체제를 위협하면서 미국을 압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공에 밀린 미국은 한(조선)반도 전쟁전략을 포기하고 북(조선)에 대한 종래의 고립압살정책을 새로운 평화공존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리보고서가 나오게 된 배경과 그 내용이 이를 입증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의 5년 총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자기의 체제를 지켜냈다는 것 뿐아니라, 미국에게 역공을 퍼부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바꾸어놓았다는 긍지와 자신감이 김정일 시대의 강성대국론을 안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의 초점은 북(조선)이 견고한 체제방어력과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을 뒤바꿔놓는 공세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연방제론자들이 남(한국)이 북(조선)에 대한 흡수통합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객관정세가 조성되었다고 보는 정세인식에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북(조선)이 체제방어력과 대응공세력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제 통일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남(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력이 북(조선)의 사회주의 경제력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면서, 남(한국)이 북(조선)에 대한 흡수통합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세가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게 될 때 동의할 수 없게 된다.

첫째, 경제력의 비교우위와 흡수통합의 실현 가능성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국제관계에서도 경제력만 가지고서는 다른 나라에 대한 흡수통합을 실현할 수 없으며, 그렇게 실현된 선례가 없었다. 국제관계에서 역량의 비교우위는 일차적으로 정치·외교력과 군사력에서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역량 비교는 경제부문에서만 파악해서는 안되고, 종합적인 역량평가로 그 결론을 내려야 한다.

둘째, 경제적 비교우위론을 논한다 하더라도, 남(한국)의 경제력이 북(조선)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만큼 견고성과 내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종속적 발전을 통하여 성취한 천민자본주의의 경제력이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은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생겨난 총체적인 경제난과 그로 인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편입에서 드러났다. 요컨대 남(한국)의 경제력은 북(조선)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만큼 강하지 않으며, 다만 상대적인 의미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조선)의 경제는 식량난과 동력난 때문에 매우 어려운 상태에 빠져있고 외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인 파산위기로 몰려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남(한국)의 경제력이 북(조선)의 경제력에 대해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압도적인 우위'에 있어서 흡수통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 미국의 대북 총공세, 김일성 주석의 급서, 경제난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이른바 '북(조선) 붕괴설'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남(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김세균 교수처럼 북(조선)이 '위기관리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남(한국)에게 흡수통합 당하는 게 아니냐고 전망하면서, 그래서 연방제 통일이란 흡수통합의 전단계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반대해야 한다고 하는 견해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는 정세인식의 불충분성, 정보의 제약에서 비롯된 오해 또는 판단착오였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북(조선)의 체제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있다. 북(조선)은 김정일 총비서를 중심으로 일치단결된 조선로동당이 정치적 구심력을 발휘함으로써 지난 5년 동안의 국가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에 속해 있던 고위간부 황장엽이 남(한국)으로 넘어간 사건이 있었고, 고위간부였던 서관히가 출당·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조선로동당의 정치적 구심력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내적 단결력을 더 강화시키는 자극제로 작용하였고, 김정일 시대의 조선로동당은 김일성 시대의 조선로동당보다도 단결력이 더 강하게 되었다.

둘째, 경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다. 경제적 잠재능력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각도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에 막혀 풍부한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서해의 유전개발, 마그네사이트 크링커나 우라늄 같은 지하자원 개발이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 때문에 묶여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금강산 관광자원 개발이 겨우 시작된 상태다. 미국 자본은 라진선봉지역에 대한 투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가 풀린다면 경제적 잠재능력이 현실화되면서 경제회복이 빠른 속도로 진척될 것이다.

② 군비부담이 너무 커서 인민경제의 발전이 심하게 제약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의 과도한 군비부담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이다. 북(조선)은 연간 5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에 투입하면서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량보복 공격력을 길러왔다. 만일 북(조선)이 연간 5억 달러의 자금을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이 아니라 경제건설에 돌렸더라면 '고난의 행군'은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만일 그 자금으로 석유, 비료, 식량, 첨단생산설비를 수입하였다면, 경제난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그렇게 하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북(조선)은 미국의 전쟁전략이라는 위협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1990년대에 들어와 이라크, 유고, 수단, 아프가니스탄 같은 약소국들이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을 받고 굴복하는 상황에서 북(조선)은 미국의 군사적 침공과 그로 인한 전면전을 억지하기 위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유력한 공격수단을 보유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집중적인 총공세를 받고 있는 북(조선)에게 이러한 공격수단을 보유하는 것은 인민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추진할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만일 북(조선)이 오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나라들처럼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자체의 능력이 없어서 경제난을 겪어야 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에 밀려가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북(조선)은 경제난을 해결할 자금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군사적 대결구조에 묶여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므로 '혁명적 낙관주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북(조선)은 현재의 시련과 난관을 일시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6) 누가 이 역사적 임무를 맡을 것인가

이 민족의 앞길에 놓여있는 길, 이 민족이 기어이 가야할 길, 그것은 통일연방국을 건설하는 길이다. 우리는 연방제 통일을 실현함으로써 국토분할과 민족분열로 생겨난 분단체제라는, 반만년 민족사에서 가장 커다란 재난과 불행을 하루 빨리, 그리고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분단의 재난과 불행을 극복하는 길은 연방제 통일의 실현밖에 없다.

남(한국)의 집권세력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때 흡수통합을 꿈꾼 적이 있었다. 저들의 눈으로 정세를 바라보면,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조선)반도에서 분단체제를 혁파할 수 있는 유리한 정세변화의 가능성은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1999년 9월 페리보고서가 발표된 뒤에 조·미 관계개선이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흡수통합에 대한 기대가 허황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제는 다시 국가연합 건설론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앞으로 조·미 관계개선, 조·일 관계개선이 진전되면 남(한국)의 집권세력은 국가연합으로 위장한 반통일론을 더욱 강하게 들고나올 것이다. 미국도 평화적 분단관리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연합 방안을 실현하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 민족대단결운동과 국가연합 추진세력이, 그리고 민족대단결운동과 미국의 평화적 분단관리정책이 대치선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0년 6월의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은 민족대단결운동에 유리한 정세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동안 통일문제에 무관심하거나 그에 대해 회의했던 사람들도 이 역사적인 회담을 보면서 조국통일은 우리가 당대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최대의 민족적 과업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남(한국)의 민중은 미국의 평화적 분단관리정책과 남(한국) 집권세력의 국가연합 건설론이 지니고 있는 반통일성을 간파하게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을 전환점으로 하여 민족대단결운동에게 유리한 통일정세로 바뀌게 될 것이다.

민족적 양심은 급류를 타고 있는 정세변화의 한복판에 이런 물음을 던진다. 이제 남(한국)에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역사적 임무를 맡을 세력은 누구인가? 남(한국)에서 누가 자주적 통일연방국을 건설하는 민족사 최대의 과업을 수행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민족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주체는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민주운동이다. 지금 남(한국)에서 정치적 견해의 차이 때문에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민중의 다기다양한 정치역량은 이제 차이를 넘어서서 통일연방국을 건설하는 과업을 당면한 공동의 역사적 임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민족대단결운동에 앞장서야 할 때다. (2000년 6월 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