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정세는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 대담록은 2000년 11월 10일 뉴욕 맨해튼에서 있었던 한호석 소장과 조국평화통일협회의 강민화 홍보국장이 나눈 대담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재일동포 조국통일운동조직인 조국평화통일협회는 1990년 7월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10년 동안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해외동포 통일운동조직으로 현재 리종활 회장이 대표로 있다. 조국평화통일협회는 지난 해 10월에 재일동포 1세들로 이루어진 제1차 미국방문단을 파견하여 미국의 동서부를 방문한 바 있는 데, 이번에 재일동포 2세들로 이루어진 제2차 미국방문단을 파견하였다. 재일동포 2세인 강민화 홍보국장은 제2차 미국방문단의 성원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는 길에 이 대담을 마련하였다. 이 대담록은 조국평화통일협회의 홈페이지(http://www.jpth.net)에도 실렸다.

강민화 : 수많은 논문 발표를 통해서, 특히 지난 여름철에 있었던 일본에서의 토론회 출연과 강연들을 통해서 재일동포들 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신 한호석 선생을 이렇게 미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개표작업이 좀 복잡해지고 있는데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한호석 : 글쎄요, 당선이 확정되는 시기는 저도 모르겠는데, 고어 쪽에서는 연방 대법원까지 끌고 가려는 것 같습니다. 부시는 자꾸 불안해지니까 자기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만들어가면서 정권을 인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상황은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일정에까지도 일정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린턴이 자신의 임기 말에 평양을 방문하려고 했던 계획이 연기될 수 있고, 자칫하면 투표 결과에 휘말려서 방북일정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상치 않은 '복병'이 나타나서 조·미 수교를 향한 정세발전에 어려움을 조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 : 일본에서는 그래도 마지막에는 부시가 이기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모처럼 좋게 나가고 있는 조·미 관계가 다시 후퇴하지 않겠는가,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한 : 그런 가능성이 굳어지고 있는데, 고어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어서 아슬아슬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고어는 클린턴과 같은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이고, 또한 그는 지난 8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조·미 관계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만일 그가 만일 당선되면 클린턴이 방북계획을 포기하더라도 신임 대통령으로서 내년에 평양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고어가 만일 당선되면 그는 민주당 집권세력의 대북정책, 다시 말해서 '페리 보고서'를 일정대로 추진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어가 아니라 부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연방의회의 상·하원을 장악한 조건에서,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어 공화당이 행정부까지 장악한다면, 워싱턴 집권세력은 공화당 일색으로 되어 버립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공화당 집권세력은 민주당 집권세력이 이미 짜놓은 조·미 수교 계획을 변경하거나 수교 추진일정에 강력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이번 선거는 대통령을 바꾸는 것인데, 대통령이 바뀌면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장관들, 보좌관들도 다 바뀌지요. 대통령,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그리고 그 장관들 밑에 있는 차관, 차관보들도 모조리 바뀌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지는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데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미국의 국익이 걸려있는 중요한 정책을 좌우하는 실질적 담당자는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세우는 사람들은 미국 언론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전문관료집단입니다. 대통령이나 장관들은 전문관료집단들이 만들어낸 정책을 결재하고 그 정책을 반대하는 반대파를 설득하거나 제압하고 최종적으로 언론을 통해 발표하는 정치사업을 담당합니다. 미국에서 선거를 통해 고위관리들이 모조리 바뀌어도 이 전문관료집단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관료집단까지 바꾸어 버리면 정책사업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정분야에서 길게는 거의 수 십 년 동안 일해오면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그만한 전문관료들을 갑자기 어디서 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사람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은 차관보까지는 바꿉니다. 그러나 차관보 밑에 있는 전문관료집단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아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바로 그 전문관료집단이 한(조선)반도 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어서 공화당이 집권해도,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일정에 오른 조·미 수교에 어떤 차질이 발생하거나 제동이 걸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선거의 투표상황을 분석해 보면, 미국의 군수산업자본들이 포진하고 있는 북동부지역과 캘리포니아주에서 승리한 사람은 고어였습니다. 군수사업자본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어는 민주당 안의 강경파입니다. 그가 민주당 안의 대표적인 강경파 정치인인 조셉 리버만을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공화당은 강경파이고 민주당은 온건파라고 하는 단순한 분류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민주당 안에도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고, 공화당 안에도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시는 어디서 지지를 받았는가 하면 나머지 중서부와 남부지역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부시는 공화당 안의 온건파에 속합니다. 따라서 온건파에 속하는 부시가 집권하는 것이 앞으로 조·미 수교 일정을 촉진하는데 유리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국익에 걸려 있는 조·미 수교 같은 문제는 어느 당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른바 초당적인 결정과정을 밟게 되는 거지요. 조·미 수교 일정을 예정하고 있는 '페리 보고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해서 내놓은 정책보고서입니다. 그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윌리엄 페리가 주도하고 애쉬튼 카터가 보좌하면서 '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공화당 쪽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진전되면서 초당적인 견해에 기초해서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 '페리 보고서'입니다. 그러니까 공화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페리 보고서'를 내버릴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말씀드릴 것은, 조·미 수교라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아주 시급히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있기 때문에 미국에게는 거부하거나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북(조선)은 여유가 만만하지만 미국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이런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대북관계에서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을 질질 끈다거나 제동을 걸어본다거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페리 보고서'에 들어있는 조·미 수교 일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화당이 집권하면 미국의 대북 수교 계획에 무슨 변동이 있다거나 제동이 걸린다거나, 강경노선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는 소문은 조·미 수교 자체를 반대하거나 꺼리는 반북세력이 퍼뜨리는 헛소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 : 이야기가 되돌아가겠습니다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명록 특사가 여기에 왔고, 그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고, 또 클린턴 대통령까지 평양을 방문하리라는 예상을 초월하는 진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에서도 매우 커다란 관심사가 되어 있는 것이, 그때 조명록 특사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김정일 총비서의 친서 내용입니다. 어떤 매력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런 진전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인데, 그 친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 친서가 전달되기 직전의 상황을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쉽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나왔던 '페리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했습니다. 북(조선)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겠다는 것이었지요. 평화공존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수교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하겠다는 정책전환을 '페리 보고서'에서는 평화공존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렇게 정책을 전환했지만, 문제는 두 나라가 실제적으로 수교를 성사하기까지 넘어야 할 걸림돌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우선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방도 문제입니다.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으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에는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문제"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데, 현존하는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체결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이른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조선)을 제외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 없이는 평화공존을 추진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한미군 자체가 북(조선)을 겨냥한 무력으로, 북(조선)을 위협하는 무력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조·미 두 나라가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합의하지 않으면 조·미 수교가 일정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국 쪽에서 보면 미국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되어있는 북(조선)의 광명성 2호 발사문제가 있습니다. 광명성 2호 발사문제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해야 수교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서 북(조선)이 먼저 미국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는 문제입니다. 북(조선)은 이 문제해결에 대한 대응적 해결책으로서 주한미군 자진철수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위협하지 않을 터이니 주한미군으로 위협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 문제가 상호주의 원칙에 의해서 타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조·미 두 나라 사이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가 최대의 외교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조선)을 제외하는 조치는 사실상 올해 들어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문제이므로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못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자진하여 철수하는 문제와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위협을 자진하여 제거하는 문제인데, 이것을 어떻게 두 나라가 정치협상에서 절묘하게 타협해서 처리하느냐,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불가피하게 두 나라 정상이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무장관이나 특사는 사전준비는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결정권이 없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대통령만이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당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입니다.

여기서 지난 6월 30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문명자 주필과 대담하면서 있었던 일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문 주필이 워싱턴에 어떤 사람을 특사로 파견하겠는가고 질문하면서 혹시 김용순 비서가 아닐까 하고 예측하니까, 국방위원장은 더 높은 대표급을 파견하겠다고 답변하셨지요. 그래서 정세 분석가들은 어떻게 예상했는가 하면, 지난 9월 여기 뉴욕에서 유엔 밀레니엄 총회가 열릴 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와서 연설하고 활동하기로 일정이 잡혀져 있었고, 그때 클린턴 대통령도 뉴욕에 와서 총회에 참석하게 되었으니까 자연스럽게 거기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이 정상회담 형식으로 만나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이렇게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뜻하지 않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모욕적인 몸수색 봉변을 당하고 돌아가는 바람에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미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전체 일정에 일정하게 차질이 빚어진 것입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평양에 돌아가게 되니까 조·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지요. 9월의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리게 될 조·미 정상회담에서 뭔가 새로 돌파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던 기대감이 전혀 예상치 않은 일 때문에 사라지니까 급해진 쪽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유감의 뜻을 표하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서한도 보내고 급히 서둘러 수습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뉴욕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던 것이 미국의 잘못 때문에 불발로 끝난 것은 오히려 북(조선)에게 유리한 조건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남지 않은 클린턴의 임기 안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다시 미국에 와서 조·미 정상회담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는 대안밖에는 남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조명록 특사를 급파해서 예기치 않은 사태로 조·미 정상회담이 불발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대안은 당신이 먼저 나를 만나러 평양에 오는 것이라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제가 추정하고 있는, 클린턴이 받은 친서의 내용은 이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을 평양에서 만나서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그 자리에서 주한미군 자진철수 문제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맞바꾸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미 수교를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일괄타결방식이라는 것은 사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을 때 하나씩 풀어내려면 시간도 걸리고, 지금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급하기도 하고, 또 워싱턴에 있는 여러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좀처럼 해결하기 힘들 때, 한꺼번에 묶어서 일괄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미국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조·미 사이의 최대현안을 이처럼 일괄처리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최고결정권자가 만나는 정상회담 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클린턴에 평양에 가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클린턴이 불쑥 평양에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세계 외교사에서 적대관계를 아직 청산하지 못한 나라 수도에 미국 대통령이 먼저 찾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1972년에 닉슨이 모택동을 만나러 베이징에 찾아가서 중·미 정상회담을 한 것 이외에는 단 한번도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당시 닉슨의 중국방문은 미국이 중국이라는 대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의 경우는 다릅니다.

어째든 클린턴은 자신이 평양을 가기 전에 사전답사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올브라이트가 미국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갔던 것이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장관이 이끄는 정부대표단이 평양에 찾아온 김에 정확한 메시지를 클린턴과 미 행정부에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회담 내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만 명이 출연하는 군중예술을 통하여 지금 한(조선)반도 정세와 동북아시아 정세를 좌우하는 가장 민감하고 가장 중요한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절묘한 외교방식을 올브라이트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중예술을 통해서 클린턴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과 정치의 절묘한 일치를 보여주었던 거죠. 그것은 예술을 아는 정치가만이 할 수 있는 외교였고, 또 북(조선)에서만 있을 수 있는 외교였습니다. 집단체조 공연에서 광명성 1호 발사장면이 등장하였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옆에 앉아 있었던 올브라이트에게 "이것이 첫 인공지구위성의 발사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 인공지구위성 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미국에게 전한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당신들이 조·미 수교를 성사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로서 주한미군을 자진해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면 우리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더 이상 당신들을 위협하지 않겠다", 바로 이런 거죠.

강 : 그 말을 바꾸면, 미국이 말을 안 들으면 시험발사를 계속하면서 위협하겠다는 것이지요.

한 : 예,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올해 3월 7일에 한미연합사령관, 그러니까 주한미군 사령관 토마스 슈월츠가 미국 연방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는 그 보고에서 지금 미국을 대규모전쟁, 전면전쟁으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지에 나가있는 야전사령관입니다. 그가 지적한 전면전이라는 말은 조선인민군과 한미연합군이 한(조선)반도 안에서 벌이는 국지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조선)반도를 벗어나서 벌어지는 조·미 사이의 전면전을 말합니다. 그 전면전은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조선)을 대상으로 전면전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자기들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전쟁을 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전면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광명성 2호의 시험발사를 왜 두려워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시험발사가 계속되면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극비사항이 노출되고, 따라서 다른 나라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를 극력 저지하면서 세계를 좌우하고 있는 미국의 지배구도가 파탄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조선)이 광명성 2호의 발사를 일단 중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조·미 관계가 잘 풀려나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발사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다급한 처지에 몰려있는 미국은 자기의 대통령이 적대국을 공식 방문하는 세계 외교사에 없는 대사건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강 : 어쨌든 클린턴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클린턴은 자기 임기 내에 이 문제를 어디까지 끌고 가려는 것입니까?

한 : 제가 보기에는 클린턴 진영도 클린턴 임기 안에 평양을 찾아가서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일괄타결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두 가지 풀기 힘든 외교과제를 안고 있는 데, 그것은 중동 평화 문제와 한(조선)반도 평화 문제입니다. 이것은 외교부문에서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최대 현안입니다.

그런데 클린턴은 중동 평화협상을 중재하면서 애를 썼는데 결국 안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나서서 중개한다고 하지만 해결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한(조선)반도 문제인데, 만일 클린턴이 자기 임기 동안에 한(조선)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면 클린턴 정권의 외교실적은 형편없는 점수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클린턴 정권은 최근 중동 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니까 한(조선)반도 평화문제라도 빨리 진척시키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 하나는 노벨 평화상 문제가 일정하게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노벨 평화상을 누구에게 주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경쟁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상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아갔지요.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따내려고 물밑에서 외교접촉을 집중적으로 벌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여름부터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위원회를 '공략'해서 결국 클린턴을 제치고 상을 따내게 된 것입니다. 클린턴에게도 자기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밀린 거죠. 수상자 결정과정에서는 평양회담 성사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클린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서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풀어내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고 물러나면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자신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한 파리 평화회담에 나섰던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과 베트남의 레 둑토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가 되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베트남 쪽에서는 노벨 평화상을 인정하지 않고 그 상을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강 : 노벨 평화상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평양회담과 6.15 공동선언 문제로 넘어갈까 합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어 몇 달이 지났는데, 지금 일각에는 그 선언이 김대중 대통령의 공적이라느니,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라느니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6.15 공동선언 실천이 어느 수준에 있다고 보십니까?

한 : 6.15 공동선언은 다섯 가지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역사적 선언에는 칠천만 민족의 장래운명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 전략개념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민족자주, 둘째는 조국통일, 셋째는 민족화해, 넷째는 상호교류, 다섯째는 상호협력입니다. 자주, 통일, 화해, 교류, 협력, 이 다섯 가지 전략개념을 집약해서 담아놓은 것이 6.15 공동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그것이 곧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6.15 공동선언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그 종착점에서 우리는 연방제 통일조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점에서 6.15 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대장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김대중 대통령은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이라고 하는 민족사적인 위업에 대해서는 이번 평양회담에서 논의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페리 보고서'를 그대로 추종하면서 화해, 교류, 협력만을 이야기하고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추진하자는 선언을 내놓으려고 생각했습니다. 평양회담에 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네 가지 전략개념은 평화, 화해, 교류, 협력이었습니다. 이것에 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개념은 자주, 통일, 화해, 교류, 협력 이 다섯 가지였습니다.

우리가 명백하게 보았던 것처럼, 평양회담의 결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대로 이 다섯 가지 전략개념으로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평양회담과 그 성과물인 6.15 공동선언이 누구의 주도로, 누구의 의도를 관철하여 성사되었는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것을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남(한국)정부는 6.15 공동선언이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원래 계획했던 네 가지 개념이 왜 6.15 공동선언에 반영되지 못했는가 하는 겁니다. 6.15 공동선언에서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라고 하는 군사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가장 중요한 회담 목표로 설정했지만 전혀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평양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간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실패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북(조선)과 정상회담을 통하여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분위기를 감지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더욱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데 따르는 불안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지난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제2차 장관급(상급) 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평양에서 열렸던 제2차 장관급(상급) 회담은 박재규 통일부장관과 전금진 단장이 만나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과제를 토의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회담의 목적과 범위를 벗어나서 남북 사이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자는 엉뚱한 요구를 내놓았습니다. 6.15 공동선언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군사문제를 합의하자고 한 거지요. 하도 집요하게 나오니까 전금진 단장은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없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박재규 장관은 평양회담이 사실상 끝났는데도 서울에 돌아가지 못하고 귀환일정을 하루 늦추어 8월 31일 밤 10시 50분쯤에 고려호텔 바로 옆에 있는 평양역에서 야간특별열차를 타고 함경북도 동해안으로 급히 떠났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그 지역을 현지지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9월 1일 아침에 박재규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박재규 장관은 간청하기를, 제발 이번 회담의 공동보도문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내용을 한 마디라도 집어넣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신 식량 100만 톤을 보내드릴 터이니까 제발 이 내용을 포함시켜 달라고 말한 거지요. 그래서 결국 장관급(상급) 회담 공동보도문 제2항에 "남과 북은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해서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대가로 남측은 식량 100만 톤을 북쪽에 제공하기로 한 것입니다. 남측 정부는 정식 합의문도 아닌 공동보도문에 문장 한 줄을 집어넣기 위해서 그토록 간청을 하다가 못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한(조선)반도의 정세발전에서 어느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가를 실증해주는 사례입니다. 바로 이 합의에 의해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이 9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렸습니다.

그 사이에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김용순 비서가 남쪽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도 김대중 정부는 제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재확인하자고 또다시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김용순 비서가 남쪽을 방문했을 때 나왔던 공동보도문 제2항에는 북쪽이 남쪽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쌍방은 남측 국방부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장 간의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가 현재 논의 중에 있다는데 대하여 환영하였다"는 좀 어색한 문구로 처리되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의 이런 간청에 따라 9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제1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이 열린 겁니다. 이렇게 남북의 군사문제를 고위급 군지휘관들이 모여서 토론하게 된다고 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되니까 미국 쪽에서 조금 긴장하면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이 열리기 닷새 전인 9월 20일에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을 서울에 급파하였습니다. 코언이 서울에 나타나서 한 것은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발언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열린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에서 만일 인민무력부장이 주한미군 문제를 강력하게 들고 나오고 남측 국방장관이 그 문제에 일정하게 동의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으로서는 수습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코언의 서울 발언 뒤에 들어있는 미국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이 처리한다, 김대중 정부는 주한미군 문제에 관련하여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1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은 "조선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여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가장 긴요한 문제로 나선다는데 대하여 이해를 같이 하고 공동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는 아주 원칙적 수준의 합의밖에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북쪽은 제주도 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하려 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북쪽은 처음부터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에서는 남북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는 사업만을 결정하려고 했습니다. 남북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려면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남쪽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미군 관할지역을 통과하는 문제, 곧 남쪽 지역의 관할권을 처리하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남북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는 사업이라는 게 끊어져 있는 수송망을 다시 잇고, 그에 따라 동아시아 물류수송의 중심지로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권에 국한되는 경제사업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북쪽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복원사업은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유훈으로 남긴 사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북쪽으로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최우선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남측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 복원사업을 통해서 북쪽의 인민무력부장과 남쪽의 국방장관 사이의 회담을 계속해서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으로 되지요. 이 회담은 군사회담입니다.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김대중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북 사이의 군사회담을 끌고 가야되는데, 그러자면 그 복원사업 이외에 다른 길이 없어요. 북쪽이 아직 복원사업 착공도 아직 안 했는데도, 김대중 대통령은 9월 18일 직접 현장에 나가서 성대한 기공식도 하였고, 독일에서 들여온 최신형 지뢰제거기를 비롯한 120여대의 장비를 동원하여 지뢰제거작업을 서두른 결과 한 달이 지난 10월 16일에는 제거목표의 44%나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서두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쪽 정부가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관할권을 넘겨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할권(jurisdiction)이 아니라 관리권(administration)만을 넘겨주려는 미국과 관할권까지 넘겨받아야 하는 남쪽 정부 사이에 묘한 줄다리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북쪽은 말할 것도 없이 관할권이 남쪽 정부에게 넘어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만일 남쪽 정부가 관할권을 완전히 넘겨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이 관할하고 있는 분단장벽에 결정적인 돌파구가 생기는 것이며, 그 돌파구를 통해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고 확대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북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는 사업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물리적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강 : 그런데 남쪽 신문을 보면, 이러한 논조가 지배적입니다. "봐라, 결국 북측은 조·미관계를 중시하고 남북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도 적십자회담도 중단되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고, 또는 그런 고도한 문제가 아니라 북측의 인력부족 때문에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 우리 민족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앞으로 예견치 못한 돌발적인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평탄하게만 나가지는 않겠지요. 민족의 장래운명과 관련된 대사업을 추진하는 길에서 애로와 난관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걸 뚫고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확신대로 될 겁니다.

그런데 남쪽에는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조국통일 자체를 반대하고, 또 조국통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로 제시된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무지막지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해서 지금까지 극단적인 반공·반북태도로 일관해 왔던 세력들, 언론계에서는 조선일보가 있습니다. 반공·반북을 숭상하는 극단적인 광신도들이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가 좀 주춤하게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조선일보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조선이라는 잡지가 남측의 적십자사 총재인 장충식이라는 사람과 대담하면서 북을 헐뜯는 발언을 실어버리는 바람에 북쪽에서는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중한 문제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지금 주춤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반북·반통일세력의 책동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반북·반통일세력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화해, 교류, 협력 단계를 깨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보려 하는 음모와 책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말려들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반북·반통일세력이 제 아무리 날뛰어도 지금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통일정세가 절대로 그들의 의도대로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내외 통일세력은 정세변화의 주도권을 쥐고 내외 반통일세력의 음모와 책동을 폭로·규탄하고 그들을 고립·배격하는 강력한 조직·정치사업을 벌여야 합니다. 저는 조국통일운동의 시급한 임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강 : 이제는 각론에 들어가겠는데요, 아무래도 이걸 어떻게 이해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도 계속 주둔해야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셨다고 말한 문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두 번만 말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에 서울에서 오신 어떤 학자선생을 도쿄에서 만났는데,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래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은 김정일 총비서가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시는가"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째서 반박을 안 하느냐, 사실이 아니라면 아니다고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 가만히 있다는 것은 그 말을 시인하는 게 아니냐", 이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이 7월에 일본에 오셨을 때도 말씀하셨지만 이번에 다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느냐, 계속 주둔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결정하고 미국 대통령이 발표·시행하는 미국의 주권문제입니다. 백악관 밑에 있는 청와대에서 철수해라, 말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도 안 됩니다. 그런데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 자꾸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 자꾸 발언하려 하는 것은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군이 철수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말했느냐 하는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주한미군 철수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서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관하여 무슨 합의를 보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와 일괄타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김대중 대통령과 논의하고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서 통일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자신의 말에 대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긍정했다고 하는 발언에 대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주한미군 영구주둔론을 논했던 것도 사실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발언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주한미군 영구주둔론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긍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 긍정한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해명하는 발언을 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해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 처리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미군이 철수하는 것과 더불어 남(한국)에 들어가 있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이 함께 철수할 수가 있습니다. 주둔군 무력의 철수는 곧 투자자본의 철수를 동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남쪽 경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데,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은 이제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는 발언을 해주면 미국의 자본은 서둘러 철수하게 되고 따라서 남(한국) 경제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남(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입니다. 남(한국)의 민중은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뒤로 조국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주한미군이 철수함으로써 통일정세가 진전되면 더 잘 살 줄로 알았더니 오히려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업상태와 생활고라고 한다면 조국통일을 반대하는 반통일 분위기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남쪽의 민중들도 북쪽에 있는 인민들처럼 조국통일을 위해서 허리띠를 조르고 참고 견딜 수 있는 사상무장이 되어 있다면 생활고를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쪽의 민중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통일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또 그러한 어려움을 견딜만한 정신·사상적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물질·경제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반통일적인 분위기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주 단계적으로 잘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통일분위기를 해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러한 점을 생각해서 남쪽 경제에 대한 충격을 줄이면서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거하되, 연방제 통일국가를 선포하는 직전까지는 완전 철거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미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연착륙 계획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는 반드시 미군을 철거하고 조국을 통일하겠다"고 확인하는 발언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용인한 것처럼 왜곡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무슨 반박발언이나 해명발언을 할 필요도 없는 상황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우리가 폭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려 하면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지요.

강 : 다음은 연방제 통일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북조선이 이제 연방제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도 자꾸 하고요. 또한 요즘에 와서 남쪽 신문들에는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는 글들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조국통일을 지향하겠다고 한 합의사항이 실천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움직임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다섯 단계 계획 가운데 제1단계가 화해, 교류, 협력 단계인데 6.15 공동선언에 의해서 우리 민족은 이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게 되면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정권을 내놓아야 하며 차기 대통령에 가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연방제 통일로 가는 전체 경로에서 화해, 교류, 협력만 제대로 하면 자신이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것으로 됩니다. 그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 남쪽의 차기 대통령이 그 다음 단계, 즉 낮은 단계 연방제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북쪽에서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추진하기 위한 실제적인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 북(조선)의 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이 해외에 나와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을까요? 북(조선)이 자본주의식으로 개방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배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까닭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연방제 통일을 이룩해서 자본주의체제와 공존해서 한 나라 안에서 살텐데, 그때 북쪽의 경제학자들과 경제관료들이 남쪽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그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북(조선)이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봅니다.

남쪽에서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은 둘입니다. 하나는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면서도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는 집권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반공, 반북태도로 계속 일관해온 반통일세력입니다. 이들은 왜 연방제 통일을 반대할까요? 그 까닭은 장차 연방제 통일은 북(조선)이 주도하는 통일이고, 따라서 그런 통일은 남쪽이 북쪽에게 먹히는 통일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연방제 통일을 반대해온 자신들은 가졌던 것을 모두 빼앗기고 정치적인 탄압과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불안감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방제 통일은 누가 누구를 정치적으로 보복하는 통일이 아닙니다. 공존, 공영, 공리의 원칙을 가지고 한 국가 안에서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한 민족으로 같이 잘 살자고 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탄압하거나 정치적으로 보복하기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극악한 반통일세력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 뒤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베트남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베트남 경우는 연방제 통일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먹는 통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베트남에서는 정치보복이 없었습니다. 통일 뒤에 동족끼리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베트남의 반통일세력은 그것도 모르고 조각배를 타고 도망쳐 나왔지요.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연방제 통일은 먹히는 통일도 아니고 보복하는 통일도 아닙니다. 조국통일이라는 것은 민족 전체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공존, 공영, 공리하겠다, 체제 문제를 초월해서 한 민족으로서 화목하게 살면서 민족의 자주위업을 완수하고 번영을 이루어보겠다고 하는 건데, 그 진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치 정치보복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두려움에 떠는, 그런 반통일세력은 연방제 통일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 그러면 지금도 반통일 수구세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조건에서, 6.15 공동선언으로 마련된 화해·통일 기운이나 그 실천을 위한 투쟁을 후퇴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어떤 의미에서는 밀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고, 또한 조·미, 조·일 관계개선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촉진시키는 흐름을 후퇴시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압력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이런 견해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 그렇습니다. 조·미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이루어지면 반통일세력은 지난 평양회담에 이어서 또 다시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온 미국이 자기들의 적대세력인 북쪽과 손을 잡게 되면 존립 근거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조·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성사시키도록 하는 촉성사업이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제기되었습니다. 조·미 정상회담이라는 말은 곧 조·미 수교로 직결됩니다. 조·미 수교를 빨리 성사시키기 위해서 해외동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조·미 수교를 촉성하는 동포들과 미국인들의 연대조직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정치사업을 전개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조·일 수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조·일 수교를 하기 위해서 북(조선)에 지불해야 될 보상금 총액이 92억 달라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상하지 않으면 수교는 불가능한 거지요. 일본은 보상금을 내놓는 것과 더불어 식민지 조선에게 입혔던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 한(조선)민족에게 공식사죄를 해야 됩니다. 말로만 사죄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야 되지요. 그 다음에는 북(조선)의 해외공민으로 있는 총련계 동포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당연히 취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해결해야 조·일 수교는 가능합니다. 일본정부가 지금 하지 않으려 하고, 또 조금이라도 덜하고 넘겨볼까 하고 잔꾀를 부리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클린턴이 평양에 가겠다고 발표되자 제일 충격을 받은 쪽은 아마 일본의 집권세력일 것입니다. 조·미 수교가 추진되면 될수록 조·일 수교도 우리 민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될 것입니다.

강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운동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봅시다. 우스개 소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제 조국통일의 길이 열렸으니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심지어 조국통일운동 무용론을 주장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인데도...

한 : 그렇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 55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에 수많은 통일열사들이 목숨을 바쳤고, 감옥에 끌려갔고, 온갖 탄압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민주운동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 오면서 55년을 지내 왔습니다. 조국통일운동사를 되돌아보면, 지난 55년은 평양회담 이후부터 전개되고 있는 연방제 통일 실현을 위한 준비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족민주운동은 이 준비기를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추진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결정적 시기에 남, 북, 해외에 있는 통일세력들이 일치단결해서 자기 임무를 완수해야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제는 다 해결되었다고 방심하거나 안이한 태도를 가질 시간적 여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민주운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조·미 수교와 조·일 수교를 촉성하는 정치사업을 벌여야 합니다. 둘째로, 조·미 수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조선)은 지금 정치협상으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풀어나가려 하고 있는 데, 우리 민족민주운동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습니다. 지금 남, 북, 해외에서 전민특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을 지렛대로 활용해서 주한미군 철거운동을 더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실천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운동을 남, 북, 해외에서 벌여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찬동하는 각계층 세력들을 다 규합해서 6.15 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을 김대중 정부에게 요구하고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을 타격하는 정치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강 : 예, 그럼 오늘 대담은 이만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답변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