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나는 2001년 9월 22일과 23일 충청북도 보람원 수련원에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주최로 열린'2001 민족민주전선 일꾼 전진대회'에 특별강연자로 초청을 받고 '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라는 제목으로 강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글은 그 대회의 특별강연을 위해 작성한 원고 가운데 일부를 옮겨 실은 것이다. 나는 그 대회에서 강연하기 위하여 9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으나 이른바 '입국금지자'로 처리되어 입국하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전국연합 주최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방해한 것은 국가정보원이다. 나는 남(한국)의 정보기관 때문에 1984년부터 10년 동안 남(한국)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1994년에 조국의 남녘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던 뒤로 지난 7년 동안 남(한국)의 정보기관과 경찰의 검색, 감시, 미행, 도청을 당하면서도 여러 차례 조국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말았다.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일했던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심장 속에 간직했던 간절한 염원은 꿈에도 그리던 조국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었다. 그 소박한 염원은 남(한국) 정보기관의 난폭한 입국금지조치에 의해 산산이 부설개고, 그들의 육신은 남의 나라 하늘 아래 낯선 흙 속에 묻히고 말았다. 오늘 그들의 사상과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조국이 있는 하늘가를 바라보며 '입국금지자'로서 겪어야 하는 불행을 견디고 있다.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집단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본국동포들의 해외방문권을 박탈하는 한편, 우리 해외동포들에게서는 조국방문권을 박탈하고 있다. 해외동포들에게서 조국방문권을 빼앗는 것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자식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다.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조국의 남녘땅을 밟을 수 없게 되겠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저들의 방해장벽을 뚫고 조국의 남녘땅 곳곳에 퍼져갈 것이다.

< 차 례 >

(1) 조·미 관계의 본질과 세 차례의 정치적 합의

(2)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에 발휘한 북(조선)의 돌파력

(3)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4) 분단체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민족통일기구 수립이 가지는 의의


(1) 조·미 관계의 본질과 세 차례의 정치적 합의

조·미 관계를 인식하는 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북(조선)을 고립·봉쇄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조·미 관계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의 고립·봉쇄책동이 조·미 관계를 규정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고립·봉쇄책동을 중심으로 삼고 조·미 관계를 인식하려 할 때, 두 가지 오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하나는 제국주의자들의 이른바 '폐쇄국가론'을 용인하는 오류며, 다른 하나는 조·미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곧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제국주의세력에 맞서서 반제혁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오류다. 만일 '폐쇄국가론'을 용인하게 되면, 사회주의혁명역량은 제국주의세력이 가하는 고립·봉쇄의 일방적 공세를 받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제국주의세력의 고립·봉쇄 속에 갇혀 있는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주장은 우리의 정세인식을 패배주의라는 함정으로 끌어간다.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조·미 관계의 본질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 사이의 대결과 투쟁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이후 지난 10년 동안 북(조선)은 '사회주의혁명의 보루'로 자기의 존재를 지켜왔을 뿐 아니라, 마지막 남아있는 사회주의혁명역량을 타파·소멸하려는 제국주의세력의 집중공세에 단독으로 맞서 투쟁하여왔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했던 시기에 워싱턴 정가에 나돌았던 이른바 '북한 붕괴설', 그리고 2000년 이후에 새로 출현한 이른바 '북한 변화설'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의 대결과 투쟁이라는 조·미 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면서 제국주의세력이 압도적인 우세로 사회주의혁명역량을 봉쇄·말살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한 '제국주의 승리론'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 조·미 관계에서 대결의 성격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전이라는 사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상전은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는 김일성주의와 '세계화 전략'에 기초한 지배주의의 대결,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조·미 관계의 본질을 바라보는 민족민주전선의 관점은, 조·미 대결의 성격을 민족 대 외세의 대결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상전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반외세 민족주의자들의 관점과 다르다.

2) 조·미 관계에서 투쟁의 양상은 국가역량을 총동원한 사활적인 투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군사력, 정치외교력, 국가적 조직력, 경제력을 총동원한 투쟁이었다. 유일한 초강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집중공세에 맞서서 자기의 존재를 지켜야 했고, 더 나아가서 전세를 역전시켜야 했던 북(조선)은 자기의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반제혁명의 결사전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긴장된 전투상황 속에서 북(조선)이 하나의 국가로서 수행하는 전략은 반제혁명투쟁에 복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북(조선)이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와 목적은 반제혁명의 승리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반제혁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북(조선)의 국가전략이 제대로 보이게 되며, 북(조선)의 사회적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조·미 관계 10년을 돌이켜 보면, 두 나라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은 세 차례의 중대한 정치적 합의를 통하여 진전을 이루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인다. 1993년 6월 11일 뉴욕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선언,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이 그것이다. 이 정치적 합의들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 사이에서 지난 10년 동안 전개된 대결과 투쟁이 남긴 결과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사실은, 조·미 사이에서 이루어진 세 차례의 중대한 정치적 합의는 한결같이 두 나라의 해묵은, 그리고 매우 불안정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합의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조·미 관계는 세 차례의 정치적 합의를 이행하여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해 가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올해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가 조·미 관계를 냉각국면으로 끌어가려고 하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조·미 관계의 변동방향은 국교 수립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 궤도에 올라있으며 그 움직임은 비록 전진속도의 증감이라는 차이는 보일 수 있어도 차단할 수 없게 되었다.

(2)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에 발휘한 북(조선)의 돌파력

지난 1980년대 내내 미국은 북(조선)의 정치협상 제의를 묵살하면서 봉쇄압박과 무력위협으로 대답하였다. 미국은 북(조선)이야말로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타파·소멸해야 할 적대세력이라고 규정하였다. 한(조선)반도가 지구 위에서 미국의 핵공격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위태로운 타격지점으로 되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으며, 한(조선)반도를 가리켜 미국이 임의의 시각에 전면전을 일으킬 수 있는 '태평양의 화약고'라고 불렀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조선)반도에서 핵공격의 격발장치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던 쪽은 제국주의세력이었다. 1999년 10월에 세상에 드러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 보여준 것처럼, 제국주의세력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나라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방대한 무력과 막강한 첨단무기를 동원할 수 있는 미증유의 전쟁수행력을 과시해왔다. 미국은 이처럼 한(조선)반도에서 전략적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북(조선)이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바랐고 정치협상 제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지난 1980년대에 조·미 관계가 처해 있었던 정황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러 어떻게 해서 조·미 정치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세 차례의 정치적 합의를 내놓을 수 있었던가? 우리가 주시해야 할 사실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힘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제국주의세력의 일방적인 공세를 물리치고 힘을 겨루는 대등한 지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은 제국주의세력이 자기와 대등한 지위에 있지 못한 무력한 상대에 대해서는 절대로 정치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10년 기간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5년 동안 조·미 사이에서 정치협상이 진행되지 못하고 거의 정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었던 까닭은 그 기간에 사회주의혁명역량의 최대 시련기인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 강행군'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시련기에 처해 있을 때, 제국주의세력은 이미 이루어진 정치적 합의를 내던지고 종래의 적대·말살정책을 다시 꺼내어 휘두르면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을 타파·소멸하려고 하였다.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시련기에 들어서자 제국주의세력이 그 무렵까지 진행되고 있었던 정치협상을 중단하면서 고립·압살책동에 집중하였다는 사실은, 제국주의세력은 미약한 상대에게는 절대로 정치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는 역사적 경험을 다시 입증하였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제국주의세력이 정치협상을 중단하면서 집중시킨 고립·압살책동과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를 무엇으로 돌파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된다.

1) 북(조선)은 군사력으로 돌파하였다. 북(조선)은 1998년 8월 31일에 인공위성체 '광명성 1호'를 탑재한 3단계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우주공간을 향해 발사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제국주의세력은 경악하였고 종전처럼 적대·말살정책을 계속 고집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자기의 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는 북(조선)이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하여 전쟁수행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엄청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였다.

북(조선)의 이론에 의하면, 제국주의세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인 군사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한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는 반제혁명에서 빈약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의 정치외교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1993년 6월에 조·미 공동선언을 채택한 것이나 1994년 10월에 조·미 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이나 2000년 10월에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모두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군사력을 시위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93년의 조·미 공동선언 채택은 북(조선)이 미국의 태평양지역 전략거점들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기에 가능했으며,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서 채택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과시하였기에 가능했으며, 2000년의 조·미 공동선언 채택은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하고 있음을 암시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무력위협을 일삼고 있는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려면 자기들도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북(조선)의 생각이었고, 북(조선)은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그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냈던 것이다. 제국주의세력과 가장 첨예한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는 사회주의혁명역량이 미국의 심장부를 한 방에 날려버릴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하였다는 사실은 제국주의세력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위협 앞에서 제국주의세력은 더 이상 일방적인 공세를 취할 수 없게 되었으며 종래의 적대·말살정책을 거두어들이고 정치협상의 길로 끌려나오게 되었다.

북(조선)은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한 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그로써 난관과 역경을 정면돌파하고 제국주의세력과의 대결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총화하여 군사를 중시하는 사상을 정립하였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북(조선)은 자기의 사회주의혁명을 선군혁명이라고 부르며, 사회주의정치를 선군정치라고 부른다.

2) 북(조선)은 정치외교력으로 돌파하였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을 상대하여왔던 북(조선)의 정치외교전략을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외교전략, 선의에는 선의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처하는 외교전략, 그리고 한(조선)반도 주변 네 나라의 역량관계를 이용하는 외교전략이다.

외세의 의존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외세라는 개념은 북(조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뜻한다. 북(조선)의 외교전략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성을 근본으로 삼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북(조선)은 중국과 러시아가 반제전선에서 이탈하여 미국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수세에 몰리지 않았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통하여 북(조선)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하였던 미국의 우회전략을 파탄시킬 수 있었다.

북(조선)은 교활한 제국주의세력이 선의로 위장하고 접근해올 때 방심하거나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또한 북(조선)은 제국주의세력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하면서 강경하게 나왔을 때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거나 적당히 타협하여 위기를 넘기려는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라는 반격구호로 받아치며 초강경으로 대응하였다.

북(조선)은 한(조선)반도 주변 네 나라의 역량관계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북(조선)의 생각이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들이 가장 중시하는 미·일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과 중·러 관계가 밀착되면서 반미공조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일본이 미·일 동맹관계에서 이탈하려는 경향과 중·러가 반미공조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은 모두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는 문제에 결부되어 있는데, 동북아시아에서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는 문제나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억제하는 문제를 좌우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북(조선)이라는 사실이다.

북(조선)이 만일 1998년의 '백두산 1호'에 이어서 '백두산 2호'를 발사하게 되면 일본도 그에 대응하여 중거리 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보유하려 할 것이며, 그러한 추세는 미국의 안보우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전쟁수행력을 확보하려는 군국주의적 야심을 자극할 것이다. 일본이 독자적인 전쟁수행력을 확보하는 것은 미·일 동맹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미국이 미·일 동맹관계를 종전대로 원활하게 유지·관리하려면 북(조선)이 '백두산 2호'를 발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방법은 조·미 정치협상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백두산 2호'가 발사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2000년 10월에 조명록 특사를 워싱턴에 파견하여 미국이 두려워하는 '미사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고,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그 해결책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워싱턴에서 역사적인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고, 그 직후에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대통령의 북(조선) 공식방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평양을 찾아갔으며,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실현되는 결정적인 단계에까지 근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시하여야 할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수립으로 나아갈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이미 제시하였고, 클린턴 행정부가 그것에 동의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 정상회담을 열고 두 나라 정상이 합의하는 내용을 세상에 발표하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에게 제시하였고 클린턴이 받아들인 획기적인 해결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해결책은 외부에 알려진 바 없지만, 그 동안 조·미 정치협상의 핵심내용에 비추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1. 북(조선)이 '백두산 2호'의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광명성 2호'를 운반할 우주발사체를 대리발사해주는 책임을 맡는다. 대리발사의 책임이란 미국이 직접 발사해주든지 아니면 제3국이 발사할 때 미국은 자기에게 요구되는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조선)은 '강성대국 건설'의 핵심사업인 평화적인 우주개발을 계속하여 추진하여야 하므로 '광명성'으로 이름을 붙인 인공위성체는 계속하여 개발하게 될 것이다.

2. 북(조선)은 우주발사체 '백두산'의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 우주발사체 '백두산'의 탄두부에 인공위성체 대신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된다. 그러므로 우주발사체 '백두산'의 개발을 중단한다는 말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것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말은 조·미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추세에 따라 미군병력과 군사장비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군사기지를 단계적으로 폐쇄해 가다가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실현되기 직전에 철군을 완료하고 군사기지를 완전히 폐쇄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3. 조·미 두 나라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한다.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말은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전환하고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미 국교수립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말살정책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새로 들어선 부시 정부는 선행 클린턴 정부가 북(조선)의 해결책에 동의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협상을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부산을 떨고 있다. 이에 대해서 북(조선)은 클린턴 정부가 조·미 정치협상에서 동의한 것을 부시 정부가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재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그러한 요구에 대하여 선뜻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조·미 관계에 걸려있는 최대의 쟁점이다. 이 쟁점을 해소하는 타결점을 찾게 되면 곧 조·미 고위급 정치협상이 열리게 되어 있다.

부시 정부가 2000년 10월의 조·미 정치협상에서 동의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자, 2001년 5월 3일 평양에서 열렸던 조선-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10월의 조·미 공동성명에서 발표한 '백두산 2호' 발사에 대한 유예조치를 2003년까지만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유예조치는 미국에게 앞으로 2년 반의 시한부 통첩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조·미 두 나라가 정치협상 재개문제를 놓고 벌이고 있는 갈등을 정해진 시한 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고 불리해지는 쪽은 미국이다.

3) 북(조선)은 국가적 조직력으로 돌파하였다. 북(조선)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략목표를 수행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대외적으로 강대국들을 상대하여 당당하게 정치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국가 내부의 결집된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북(조선) 내부의 결집된 힘을 그들은 '일심단결의 위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0년대 중반에 그 힘의 원천을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사상,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일심단결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라고 밝힌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였다. 북(조선)의 국가적 조직력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련기의 역경 속에서, 국상을 당하여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을 때, 미국과의 전면전을 눈앞에 두고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을 때, 허리띠를 졸매 매고 경제재건에 달라붙었을 때 전인민적 일체감을 보여주었으며 일사불란한 단결을 과시하였다.

(3)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은 주한미군을 철퇴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면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없으며 국교 수립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2000년 6월의 평양회담에서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했다는 말은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친미예속세력이 꾸며낸 헛소문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의 평화공존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역량이 반제전선에서 승리를 쟁취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1999년 9월 '페리 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조·미 사이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인데, 그 말은 현대수정주의자들이 한때 떠들었던 제국주의세력과의 '평화적 공존, 평화적 경쟁, 평화적 이행'이라는 반사회주의적 구호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북(조선)에서는 '평화적 공존'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평화보장체계'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한다는 군사적 의미에 국한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평화보장체계의 수립은 평화적 공존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정전체제를 정상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평화적 공존은 북(조선)이 반제혁명노선을 포기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북(조선)은 미국에 대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한다는 것을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평화적으로 공존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한(조선)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세력의 지배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에게 있어서 조·미 국교수립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세력을 제거하는 목적을 실현하는 가장 위력한 정치적 수단이다. 북(조선)이 조·미 정치협상을 통하여 국교수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는 까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미 국교수립 과정은 사회주의혁명역량을 제거하려는 제국주의세력의 적대·말살정책이 파탄되는 과정이다.

둘째, 조·미 국교수립 과정은 제국주의세력이 동북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하여 전진배치한 주한미군이 철수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친미예속세력은 조·미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그러한 추세에 따라 남북 관계도 국가 대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로 전환하자는 국가연합제 방안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조·미 사웩샥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것과 더불어 남북 사이에서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여 통일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연합을 건설하여 '사이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국가연합 방안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예상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가 있다.

1) 조·미 관계의 변화과정은 국가 대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제국주의세력에 대한 반제전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과정도 국가 대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통일세력이 반통일세력과 맞서 싸우는 조국통일운동에서 승리하는 과정이다.

2) 유럽지역에서는 혈통과 언어를 달리하는 여러 국가들이 통합의 주체가 되었으므로 국가연합을 건설하였으나, 한(조선)반도에서는 단일한 혈통과 언어를 가진 민족이 통일의 주체이므로 연방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4) 분단체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민족통일기구 수립이 가지는 의의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체제를 지탱해온 힘의 균형상태가 만일 깨어지지 않는다면 분단체제는 없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평양회담과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 오늘의 현실은 분단체제를 지탱해온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힘과 분단체제를 제거하려는 힘 사이의 역량관계가 큰 폭으로 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투쟁이 그 역량관계를 변동시키는 원인이다. 그 투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힘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역량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도가 보인다. 지배·예속구도로 병합되어 있는 제국주의세력과 친미예속세력은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반통일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북(조선)의 사회주의혁명역량과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역량은 각기 분단체제를 제거하려는 통일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두 개의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다.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반통일세력과 그 체제를 제거하려는 통일세력 사이에서 형성된 역량관계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제1측면 -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이 대결하는 측면

제2측면 -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이 대결하는 측면

제3측면 -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이 대결하는 측면

제4측면 -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이 대결하는 측면

이 대결구도의 네 측면에서 주되는 두 측면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이 대결하는 제1측면, 그리고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이 대결하는 제4측면이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친미예속세력보다 제국주의세력에 대해 공세를 더 집중해야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까닭은 제국주의세력이 친미예속세력보다 더 강한 상대이므로 제국주의세력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면 친미예속세력도 쉽사리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이 대결하는 측면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까닭은, 제국주의세력이 민족민주전선역량을 직접 상대하려 하지 않고 언제나 친미예속세력을 앞에 내세워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세력은 자기보다 힘이 약한 친미예속세력을 동원해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친미예속세력을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민족민주전선역량이 비상히 강화되어 친미예속세력으로서는 도저히 제압할 수 없고 되레 제압 당하게 되면, 제국주의세력은 직접 민족민주전선역량을 타파·소멸하려고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민족민주전선은 아직 그러한 조건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조선)반도의 역량관계에서 볼 때, 어떠한 조건에서 분단체제가 제거되고 조국통일이 실현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하고, 민족민주전선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의 대결에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이 승리한다면 분단체제가 제거되면서 조국은 통일될 것이다. 이것은 자명한 이치다. 우리가 더 따져 묻고자 하는 물음은, 지난 10년 동안의 정세는 이 자명한 이치에 얼마나 합치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의 정세동향을 역량관계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사회주의혁명역량은 제국주의세력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데, 민족민주전선은 친미예속세력을 제압할 만큼 압도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그러므로 앞으로 10년 안에 분단체제를 제거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중요한 관건은 민족민주전선역량을 어떻게 강화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있다.

2000년 6월 평양회담에서 채택한 6.15 공동선언은 앞으로 10년 안에 분단체제를 제거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략을 제시한 역사적인 문서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조국통일의 실현방략을 제시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이 2000년 6월에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혁명역량과 친미예속세력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제국주의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국면에 들어선 기세를 몰아 친미예속세력의 민족분열책동을 제압하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는 것이 북(조선)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6.15 공동선언이 제시하고 있는 조국통일의 실현방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측의 연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는 방략이다. 이것은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제의 공통성을 실체화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두 방안의 공통성을 실체화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공통성을 실체화한다는 말은 조국통일과업을 담당·추진하는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그 정치적 주체를 '민족통일기구'라고 부른다. 북(조선)은 6.15 공동선언을 채택한지 약 넉 달 뒤인 2000년 10월 6일에 처음으로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제의 공통성을 실체화하는 것이 곧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통일기구란 무엇인가? 민족통일기구는 통일국가의 지위와 권능을 아직 갖지 못한, 그러나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담당·추진하는 남북 정부당국의 공동기구라고 볼 수 있다. 민족통일기구가 두 정부당국만 참여하는 공동기구인지 아니면 정부당국, 정당, 사회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공동기구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북(조선)의 통일론에 비추어보면 전민족적인 공동기구라고 예상된다. 그렇지만 조국통일과업을 담당·추진하는 전민족적인 공동기구를 수립하는 것에 대하여 제국주의세력과 친미예속세력의 반대와 저항이 만만치 않은 현실조건에서 그러한 기구를 수립하더라도 처음부터 전민족적인 공동기구를 내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정부당국의 공동기구를 수립하고 일정한 조건이 성숙된 단계에 가서 차츰 정당, 사회단체도 참여하도록 폭을 넓혀 가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당국의 공동기구를 수립하는 과업과 정당, 사회단체가 공동기구를 수립하는 과업은 당분간 각각 분리되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6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진행된 민족통일운동촉진기간에는 정당, 사회단체들이 조국통일 공동기구를 수립하는 과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었다.

민족통일기구가 수립되면 그 기구는 정치권, 외교권, 군사권을 두 정부가 종전대로 행사하게 하면서, 그 밖에 다른 권능을 하나로 통합해 가는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민족통일기구는 정치권, 외교권, 군사권을 아직 통합하지 못한 조건에서 두 정부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과도적 공동기구이므로 국가연합제 방안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그 기구를 수립하는 것은 김영삼 정부가 제시했던 '남북연합'을 수립하는 방안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이전에 내놓았던 3단계 통일론에 나오는 '공화국연합'을 수립하는 방안, 곧 모든 형태의 국가연합방안과 모순되지 않는다.

민족통일기구가 남북 정부당국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공동기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만, 그 지위, 역할, 권능의 문제에 관해서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좁히기 힘든 견해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그 공동기구의 지위에 관련하여 남(한국) 정부는 남과 북의 정부 밑에 두고 상호협력하는 공동기구로 생각할 것이고, 그에 비하여 북(조선)은 남과 북의 정부 위에 두는 공동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두 정부 산하의 공동기구냐 아니면 두 정부 상위의 공동기구냐 하는 데 따라서 그 권능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게 된다. 그 공동기구의 임무와 역할에 관해서도 남(한국) 정부는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기구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에 비하여 북(조선)은 조국통일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서울회담에서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자는 북(조선)의 비공식 제안에 대해서 남(한국) 정부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지금 북(조선)이 남북 정부당국의 협상에서 추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당면과업은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는 과업이다. 남(한국) 정부는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지만 남북 최고 지도자의 회담이 열리기만 하면 극적으로 타결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집권 말기에 들어서고 있는 남(한국)의 현 정권은 남북 정부당국의 정치협상에서 합의한 내용을 실현하는 데서 무기력증을 노출하고 있다. 민족통일기구가 수립된다고 해도 아마 차기 정권에 가서야 정상적으로 가동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는 당면과업을 생각할 때, 차기 정권을 세우는 2002년의 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더라도 정치권, 외교권, 군사권은 남북 정부가 종전처럼 독자적으로 행사하게 되므로 조국통일은 아직 실현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정치권, 외교권, 군사권을 통합하는 문제는 한·미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이므로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는 해결하기 힘들다. 민족통일기구는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며,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그 정부는 정치권, 외교권, 군사권을 통합하여 마침내 연방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과업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2001년 9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