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부시 정권의 6.15 공동선언 방해책동과 한(조선)민족의 6.15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투쟁

이 글은 재일동포 조국통일운동단체인 조국평화통일협회(회장 리종활)에서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질문을 놓고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담기록이다. 질문은 조국평화통일협회 강민화 홍보국장이 작성하여 보내온 것인데, 그 질문에 대해서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 2001년 11월 15일자로 답변을 작성하였다.

< 차례 >

(1)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경로를 가리키는 이정표

(2)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가로막고 있는 부시 정권

(3) 정치적 측면의 방해공작과 군사적 측면의 방해공작

(4)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의 전략 수정

(5) 약속 파기에는 약속 파기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6) 남(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통일정세

(7) 광범위한 폭과 깊이를 가지게 된 조국통일운동

(1)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경로를 가리키는 이정표

강민화: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대사변의 감격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에 생생한 데 벌써 1년 반이 지났습니다. 대담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인 의의에 대해서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15 공동선언이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서 어떠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해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호석: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를 알아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기까지 우리 민족은 세 가지 통일헌장의 기치를 따라서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세 가지 통일헌장이라는 것은 1972년에 발표된 조국통일 3대 원칙, 1980년에 발표된 연방제 통일실현의 원리, 1993년에 발표된 민족대단결의 강령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원칙, 원리, 강령을 우리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고 부릅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이 완성되기까지, 그러니까 1972부터 1993년까지 우리 민족은 무려 20년 동안 조국통일위업을 위하여 간고분투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20년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반통일세력과 치열한 투쟁을 벌여온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조국통일 3대 헌장은 조국통일운동 20년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이 완성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 수 있는 원칙, 원리, 강령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 6월에 발표된 6.15 공동선언은 조국통일 3대 헌장에 천명된 원칙, 원리, 강령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실행지침이며 그 원칙, 원리, 강령을 실제로 이행해 가는 이정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을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경로를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6.15 공동선언을 기치로 들고나섬으로써 조국통일의 원칙, 원리, 강령을 실현하는 매우 발전된 단계에까지 전진하였습니다. 그런고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면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6.15 공동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만난 평양회담에서 두 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채택되고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선언의 내용이 조국통일 3대 헌장에 천명된 원칙, 원리, 강령을 이행하는 실행지침과 이정표로 되어있으므로, 그 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 찬동하였으므로 6.15 공동선언이 두 분의 서명을 받아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제시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 내용에 찬동하였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근거는, 김대중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을 채택할 생각을 전혀 갖지 않은 상태에서 평양회담에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된 내용을 평양회담의 성과로 내오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평양회담에 나섰습니다. 둘째 근거는, 김대중 대통령은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조국통일 3대 헌장의 원칙, 원리, 강령을 실현하는 실행지침이며 이정표인데, 조국통일 3대 헌장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제시했을 리가 없습니다.

강: 그 동안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채택한 이후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일정하게 노력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을 적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에 대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적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이중적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김대중 정권은 과연 6.15 공동선언을 이행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내용을 김대중 대통령이 찬동함으로써 채택되었던 6.15 공동선언은 지금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열린 남북 장관급(상급)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남측의 반통일세력들은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직후에는 잔뜩 위축되어 있었는데, 부시 정권이 등장한 뒤부터 다시 머리를 들고 설쳐대면서 그 선언을 아예 파기하려고 책동하고 있습니다. 가증스럽게도 저들은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남(한국)의 통일운동가들을 구속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조국통일운동에 대하여 탄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국면에서 김대중 정권이 과연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에게 그러한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 문제발생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을 파기하려는 극악한 반통일세력들이 날뛰고 있다는 데 복잡한 국면이 발생한 문제의 원인이 있습니다.

극악한 반통일세력은 김대중 정권 안에도 있고 그 정권의 밖에도 있으며, 남(한국)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외 반통일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 안팎에서 극악한 반통일세력들이 들고일어나서 6.15 공동선언을 파기하려고 날뛰고 있는 이상, 김대중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또는 가지고 있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6.15 공동선언을 파기하려는 극악한 반통일세력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들의 파렴치한 책동이 무엇을 노리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데로 모아져야 마땅합니다.

(2)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가로막고 있는 부시 정권

강: 그 동안 연기되어 왔던 장관급(상급)회담이 금강산에서 어렵사리 재개되었는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남북의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자주적 교류도 8.15 민족통일대축전 이후에 모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이처럼 어려움을 겪게 된 근본원인은, 지금 지적하신 대로 내외 반통일세력이 그 선언을 파기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반통일세력의 실체와 그 의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한: 김대중 정권은 원래 체질이 허약한 정권입니다. 그런데다가 정권 말기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는 안팎의 도전에 부닥치면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총재직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파기하려는 남측의 반통일세력들로부터 강한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고, 따라서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와 동력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채택한 일방이었지만, 그 선언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하고 반통일세력의 공세 앞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내년 말이면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에게 밀려서 6.15 공동선언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그 선언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사실은, 6.15 공동선언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모든 불행한 사태의 근본원인은 부시 정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친미예속정권이므로 부시 정권의 지휘봉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제대로 이행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김대중 정권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시 정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국통일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반통일세력은 서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나마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시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방해하는 교활한 책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선언을 이행하려는 우리 민족의 성실한 노력을 억누르고 있는 반통일세력입니다. 부시 정권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방해공작을 추진하고 있는 주범입니다. 그처럼 주범이 마구 설치고 있으므로 이회창 같은 사람을 우두머리로 하는 남(한국)의 반통일세력도 덩달아 설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시 정권을 반통일세력의 흉악한 두목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을 위시한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은 두목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소란을 피우는 비겁한 골목깡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3) 정치적 측면의 방해공작과 군사적 측면의 방해공작

강: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무능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부시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고 있는 주범이므로 6.15 공동선언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부시 정권에게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시 정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한: 정치적 측면의 방해공작과 군사적 측면의 방해공작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노력에 대한 부시 정권의 정치적 방해공작은 김대중 대통령의 제2차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 계획을 파탄시키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3월 8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부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2차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을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원래 김대중 대통령은 제2차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을 지난 5월쯤에 서울에서 개최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을 위하여 지난 2월까지 물밑에서 북측과 비공개 접촉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3월 8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그 모든 구상과 준비사업을 당장 그만두라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요구가 아니라 사실상 지시였습니다. 요구는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두고 발생하는 행위인 반면에, 지시는 상대의 견해와 의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려 먹이는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부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친미예속정권의 수장인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의 강압적 지시 앞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고 그의 지시를 묵묵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은 사실상 회담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자기 밑에서 일하는 비서처럼 대하는 제국주의 정권의 오만방자한 수장과 그 앞에서 묵묵히 굴종하는 친미예속정권의 비겁·무능한 수장이 연출하고 있는 한 편의 참담한 장면, 그것이 한·미 정상회담의 현장상황이었습니다.

오만방자한 부시는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민족끼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기대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을 반대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 전체의 의사와 지향을 감히 짓밟으려는 제국주의자의 야만적 폭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시 정권이 이처럼 6.15 공동선언에 대한 방해공작을 감행하고 있는 가운데도, 북(조선)은 어떻게 해서든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북(조선)은 김대중 정권을 상대로 하여 그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 장관급(상급) 회담을 개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고비를 겪은 뒤에 회담은 9월말로 개최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9.11 테러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사건을 구실로 하여 주한미군사령관은 즉각 한미연합군에게 '반테러전쟁'에 대처하는 비상경계령을 발동했습니다. 비상경계령의 발동은 부시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하여 군사적 측면에서 방해공작을 추진한 것입니다. 부시 정권이 지난 5월에 이른바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목했던 북(조선)의 눈앞에서 '반테러전쟁'에 대처하는 비상경계령을 발동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적대행위로 됩니다. 비상경계령을 발동한 장본인은 실권이 없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니라 한미연합군을 총지휘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한미연합군이 북(조선)에 대해서 적대행위를 노골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조건에서 6.15 공동선언이 이행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자면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이 지속되는 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은 난관과 역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현실이 그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 클린턴 정권 시기에는 남북관계에서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고, 제네바 기본합의문과 조미 공동코뮈니케도 채택되어 남북관계와 조미관계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았는데, 부시 정권에 와서는 남북관계와 조미관계가 모두 냉각국면에 빠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부시 정권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시 정권은 요즈음에 와서는 자기들에게는 클린턴 정권과의 연속성이 없다는 망발까지 서슴없이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태도입니다. 부시 정권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적 속성이 그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똑같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약소국들을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하고 약탈하는 신식민지 예속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미국은 총독부 대신에 친미예속정권을 서울에 차려놓고 지배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권이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적 속성이 이 지구 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가장 난폭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남(한국)입니다.

요즈음 해외동포들 가운데는 수 십 년만에 서울에 가서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남(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많이 발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의 자주성을 짓밟히고 민족의 존엄을 빼앗기고 있는 참담한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울 거리에 넘실대고 있는 물질·경제적 여유라는 것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체제에 강제로 편입 당한 뒤에는 상당히 궁색한 모습을 띠게 되었지만, 그 구조적 원인을 따지고 보면 남(한국) 민중의 이익을 위하여 생겨난 아닙니다. 남(한국)의 경제 전반은 미국, 일본의 거대자본들의 손아귀에 들어있으므로 그 외래 거대자본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생겨난 물질·경제적 여유인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이 남(한국)의 경제를 흔들어놓으면 남(한국)의 경제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게 됩니다.

서울 하늘 아래 솟아있는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은 분명히 남(한국) 동포들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들이지만, 그 주인은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입니다. 대기업 사무실과 현대적인 공장에서는 분명히 남(한국) 동포들이 일하고 있지만, 그 주인도 역시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입니다. 나라의 경제살림을 들여다보면 주인의 자리는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에게 다 내주고 하인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꼴입니다.

남(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모순과 상시적인 붕괴 위험성은, 다른 나라의 자본, 기술, 상품을 들여와서 자기 경제를 건설하려 했던 역대 친미예속정권의 무능과 실책이 남겨놓은 자기파멸적인 후과입니다. 나라의 경제살림이 그 꼴이니, 정치와 군사의 부문에서는 오죽 하겠습니까. 남(한국)의 정치와 군사가 미국에게 예속화된 파멸적 후과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신식민지 예속화 책동이 낳아놓은 후과가 어떠한 외피를 쓰고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건 간에 그것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이라도 환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미국의 신식민지 예속화정책은 한(조선)반도에서 민족의 분열을 고착화시키고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반통일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정권도 부시 정권도, 그리고 그 다음에 나타날 차기 정권도 이 점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저들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정세변화에 따라서 단지 지배와 약탈의 수법이 바뀌고 있을 뿐입니다.

(4)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의 전략 수정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조선)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겨난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더 요구됩니다.

세상이 알고 있는 대로, 클린턴 정권의 집권기간 8년은 조·미 대결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린턴 정권은 근 8년 동안 지속되었던 조·미 대결에서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대결에서 패한 클린턴 정권은 집권 말기에 이르러 기존의 한(조선)반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클린턴 정권의 패배가 정치적 패배이며 동시에 군사적 패배이므로 전략수정도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클린턴 정권이 물러나기 약 1년 전에 나왔던 '페리 보고서'는 정치부문의 전략수정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페리 보고서'는 북(조선)에 대한 종래의 고립·압살정책을 포기하고 정치협상을 통하여 평화공존으로 나아간다는 수정된 정치전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정권에게는 정치전략의 수정과 함께 군사전략의 수정도 불가피하였으나 군사전략을 수정하는 작업에 조금 손을 대기 시작했다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냥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시 정권은 등장한 직후에 급히 기존의 군사전략을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부시 정권은 중동의 페르시아만과 한(조선)반도에서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여 모두 승리하겠다는 기존의 2개 전쟁전략(Win-Win Strategy)을 내던지고 한 개의 전쟁만을 수행하겠다는 1개 전쟁전략(One-Plus Strategy)으로 물러섰습니다. 종래의 군사전략이 수정됨으로써 악명 높은 침략전쟁계획인 '5027 작전계획'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정된 군사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북(조선)의 군사력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한(조선)반도에서는 차마 전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전쟁수행력을 페르시아만으로 집중시켜 이라크를 무력으로 완전히 짓밟아보겠다는 전쟁전략입니다.

아버지 부시 정권이 승리하지 못한 이라크 침략전쟁을 아들 부시 정권이 다시 일으켜 사담 후세인 정권을 기어이 전복시키려면 그 주변국가인 이란을 반미국가대열에서 떼어내야 하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미정권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려면 그 정권을 지원하였던 파키스탄 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클린턴 정권 시기에 진행되었던 이란 대통령 하타미의 워싱턴 방문, 파키스탄 친미군부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정권장악, 클린턴의 파키스탄 방문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부시 정권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을 이미 오래 전에 예고하는 일련의 불길한 사건들이었습니다. 미국은 우리 민족에 대해서는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있으나, 미국의 군사력에 대항할 아무런 힘이 없는 이슬람 국가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천인공노할 침략전쟁에 의하여 끊임없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의 백인계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미국 땅에 건너와 살고 있는 아랍계 인민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폭행과 멸시를 자행하였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은 미국의 이른바 '반테러전쟁'에 협조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군사력의 해외팽창을 획책하고 있으며, 일본의 민족차별주의자들은 경제파탄으로 일본의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우리 재일동포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가증스러운 책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아랍계 인민들은 자기의 조국이 무력하기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정치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으나, 우리 재일동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제압하여 미국의 콧대를 꺾어놓은 신흥강국 북(조선)이 재일동포들을 정치적으로 보호하고 있고, 재일동포들이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투쟁하고 있으므로 일본인들의 탄압책동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려보겠습니다.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은 집권말기인 2000년 10월에 가서야 조·미 공동성명 채택과 조·미 두 나라의 상호 특사방문, 그리고 클린턴의 평양방문 계획 등으로 현실화되었는데, 이것은 기존의 정치전략과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입니다.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의 골자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체제를 수립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공존체제는 조·미 사이의 관계 정상화, 곧 국교수립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이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 정상화로 나간다고 해서, 그리고 부시 정권의 수정된 군사전략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기피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이 장차 태평양지역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자진해서 포기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클린턴 정권은 조·미 대결에서 패한 뒤에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과 더불어 태평양지역에 배치해놓은 자기의 군사력을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책동하였습니다. 지금 부시 정권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기피하는 수정된 군사전략을 채택하는 대신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던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을 백지화하려고 책동하고 있으며, 태평양지역에 배치해놓은 자기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마구 줄달음질치고 있습니다.

조·미 사이에서 평화공존체제를 수립하려는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이 당시의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의 골자는 남북관계도 조·미 관계와 마찬가지로 적대관계에서 화해·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두 개의 나라를 한(조선)반도에 세우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국가연합 수립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은 두 가지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미 국교 수립과 남북 국가연합 수립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리 프로세스'라는 것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동시에 한(조선)반도에 국가연합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으로 요약됩니다. 물론 수정된 정치전략이 결정적으로 비중을 두고 있는 지향점은 국가연합 수립이 아니라 조·미 관계의 정상화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은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그 전략의 일부가 파탄의 운명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고 그 선언을 기치로 하여 조국통일운동이 전민족적 차원에서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 정권은 자기의 수정된 전략에 따라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한(조선)반도에 국가연합을 수립하려는 전략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6.15 공동선언의 채택으로 국가연합이 아니라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클린턴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지한다는 말을 하기는커녕 6.15 공동선언이 이행되면 국가연합 수립계획이 파탄되고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는 것으로 예상하고 매우 우려했습니다.

그런 우려 속에서도 클린턴 정권은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하여야 했습니다. 조·미 대결에서 패하였으므로 조·미 관계의 정상화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일어났던 조·미 관계의 질적 변화는, 클린턴 정권이 다른 한쪽으로는 6.15 공동선언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대사변이었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정권이 바뀌고 2001년이 되었습니다.

2001년에 새로 들어선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정권과 달리 조·미 대결의 경험이 전혀 없는 생소한 정권입니다. 부시 정권은 조·미 대결의 경험도 없고, 북(조선)과의 대결에서 정치적으로 패배한 경험도 없는 데다가,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전략의 일부가 6.15 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이미 파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시 정권은 그 일부가 이미 파탄된, 수정된 정치전략에 대해서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권하자마자 그 수정된 정치전략을 검토하는 몇 달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검토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지난 6월 6일 부시의 대북정책에 관한 발표문에서 드러났듯이,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을 계승하지 않고 조·미 정치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우겨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조·미 공동성명을 무효화하겠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외교원칙을 제멋대로 유린하겠다는 매우 파렴치한 궤변입니다.

이러한 부시 정권의 파렴치한 태도에 대해서 북(조선)은 부시 정권이 클린턴 정권 마지막 시기의 수준에 도달해야 조·미 정치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정권 마지막 시기의 수준이란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한 수준을 뜻합니다.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을 계승하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조·미 공동성명을 인정하느냐 부인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를 놓고 북(조선)과 부시 정권이 힘을 겨루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이 조·미 공동성명을 인정하지 않는 한, 조·미 정치협상은 재개될 수 없습니다.

만일 부시 정권이 조·미 공동성명을 무효화하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제네바 기본합의문도 무효화될 것이고 6.15 공동선언도 무효화될 것입니다. 부시 정권이 조·미 공동성명을 무효화하려는 책동은 지금까지 북(조선)이 갖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룩해 놓은 모든 성과들을 백지화하고 통일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파렴치하고 위험천만한 방해책동입니다. 지금 통일정세가 냉각국면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바로 이러한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5) 약속 파기에는 약속 파기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강: 그렇다면 부시 정권은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조·미 공동성명을 무효화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것입니까? 부시 정권은 과연 조·미 공동성명을 제 마음대로 파기할 수 있습니까?

한: 부시 정권은 지금이라도 당장 조·미 공동성명을 파기하고 제네바 기본합의문도 파기하고 싶을 것이며, 친미예속정권에게 6.15 공동선언을 당장 파기해 버리라고 지시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파기행동은 제국주의의 파괴적 속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거대한 힘에 의해서 강력하게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의 파괴적 속성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힘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북(조선)에게서 나옵니다. 북(조선)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시 정권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조선)이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면 조·미 공동성명, 제네바 기본합의문, 6.15 공동선언은 모조리 파기되어 이미 오래 전에 휴지조각처럼 허공에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한 문서들은 아예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한(조선)민족은 미 공군 전폭기들의 맹폭을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운명처럼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침략전쟁을 함부로 일으키지 못했고, 되레 북(조선)과의 대결에서 정치적으로 패하여 콧대가 납작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부시 정권이 조·미 공동성명을 파기하는 파국적 사태가 발생하면, 북(조선)은 우주발사체 '백두산 2호'의 발사를 2003년까지 유예하겠다는 약속을 즉각 철회할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주발사체 '백두산'의 발사준비를 명령할 것입니다. 그 명령에 따라 북(조선)의 우주개발기술자들은 무수단리 우주발사장으로 '백두산 2호' 운반하게 될 것입니다. 조·미 공동성명을 파기한 대가로 부시 정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우주발사체 '백두산'이 2호, 3호 연속해서 알래스카 상공을 지나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는 놀라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부시 정권에게 흥미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몽이 될 것입니다.

만일 부시 정권의 난폭한 손에 의하여 조·미 공동성명이 파기되면 제네바 기본합의문도 자동적으로 파기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시동원령을 선포한 가운데 영변 핵시설 가동을 명령할 것입니다. 그 명령에 따라 북(조선)의 핵기술자들은 핵동결조치에 들어간 흑연감속로를 즉각 다시 가동시킬 것이며 1994년까지 건설하고 있었던 20만 킬로와트급 흑연감속로를 곧 완공할 것입니다.

약속 파기에는 약속 파기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것이 북(조선)의 자주외교정책이 견지하고 있는 단호한 태도입니다. 이러한 대응은 북(조선)이 클린턴 정권을 정치적으로 제압하였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다시 동원하여 부시 정권에게 최후의 치명타를 날리는 것으로 됩니다. 그러한 정치적 타격은 다연장 로켓포의 일제사격을 연상케 합니다.

부시 정권이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로 한꺼번에 타격을 맞게 되면 정권으로서 재기할 수 없게 됩니다. 부시 정권은 그러한 파국과 재앙이 자기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미 공동성명을 파기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부시 정권은 차마 조·미 공동성명을 파기하지는 못하겠으므로 그 성명을 이행하는 실제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질질 끌면서 조·미 정치협상에 나서지 않고 그 성명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려는 교활한 책동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책동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끌어보면서 사문화하려는 부시 정권의 책동이 오래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에게 2003년까지의 시한부 통첩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앞으로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03년은 신포 경수로를 미국이 책임적으로 완공하겠다고 클린턴 정권이 약속한 시한이며 동시에 우주발사체 '백두산'의 연속발사에 대한 유예조치가 끝나는 시한이기도 합니다. 부시 정권이 제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적어도 2년 안에는 조·미 정치협상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통일정세가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에 가로막혀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우리 민족이 낙담하거나 비관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은 일시적인 반동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민족의 자주성은 영원한 것입니다. 부시 정권은 초강대국의 권력기구로서 전 세계를 향해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저들의 방해책동은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파렴치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요구와 노력은 역사발전의 법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요구이며, 역사발전의 축을 강하게 떠밀고 나가는 노력이므로 그 자체가 위대한 창조력으로 됩니다.

오늘 자기의 자주성을 자각한 한(조선)민족은 그 어떤 난관과 역경도 뚫고 전진할 것이며, 그 누구의 방해도 능히 물리치고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완수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정세의 냉각국면을 녹여버릴 뜨거운 통일열기가 있으며,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을 능히 깨뜨릴 수 있는 위력적인 수단과 능력이 있습니다. 한(조선)민족의 단결된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민족 전체가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단결·단합하기만 하면,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며 냉각국면은 녹아버리고 말 것입니다.

(6) 남(한국)의 대통령 선거와 통일정세

 

강: 소장님께서도 아시는 대로 내년에 남쪽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됩니다. 지난번 서울에서의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서 사람들은 내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기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고 있는 반통일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되므로, 남북관계가 다시 후퇴되지 않겠는가, 심지어는 6.15 공동선언 자체를 무효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만일 클린턴 정권을 계승하여 민주당 정권이 재집권했다면, 김대중 정권의 재집권도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한·미 관계의 구조적 요인으로 볼 때, 그렇게 예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클린턴 정권의 수정된 정치전략을 외면하고 있는 부시 정권이 등장했으므로 김대중 정권의 재집권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변화된 오늘의 현실입니다.

남(한국)의 대통령은 형식상 남(한국) 동포들이 선거를 통하여 직접 자기 손으로 선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미국이 지명하지 않은 사람이 남(한국)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지금 이회창 같은 사람이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면서 미국에게 노골적으로 아부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선거의 내막에 이런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 정권은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내년 초부터 남(한국)의 정치권에서는 부시 정권에 대한 아부경쟁과 충성경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여야 정치권의 저명한 정객들이 뻔질나게 워싱턴을 찾아가서 충성심을 드러내 보이고 아부할 것입니다. 부시 정권은 그들 가운데서 가장 쓸만한 인물을 골라서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할 것입니다.

부시 정권이 클린턴 정권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 지금, 한나라당에게 집권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남(한국)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건 부시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며 그 정권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교체, 정권의 교체는 그 자체가 통일정세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결정적인 요인은 부시 정권이 조·미 공동성명을 인정한 기초 위에서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부시 정권이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게 되면 차기 정권은 자기들이 언제 김대중 정권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반대하였느냐는 듯이 화해와 협력의 깃발을 흔들면서 부산하게 움직일 것입니다.

(7) 광범위한 폭과 깊이를 가지게 된 조국통일운동

강: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에 남, 북, 해외동포들의 자주적 교류와 연대가 더욱 활발해지고 전면화되었습니다. 지금은 냉각국면에 부닥쳐서 주춤거리고 있지만,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기운이 전민족적 차원에서 크게 앙양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현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시는지요?

한: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내외 반통일세력에 맞서서 벌이는 간고한 투쟁 속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협소한 범위에서 폭넓은 범위에로, 허약한 역량에서 강인한 역량으로 발전되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조국통일운동 50년사가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남(한국)에서 예전에는 평화통일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던 암흑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자주통일이라는 구호를 외치지 못하던 암울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성원이라면 누구나 지지하고 따르는 일반적인 구호로 되었습니다. 지난 시기에는 연방제 통일이라는 말을 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당장 구속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반통일세력의 힘이 꺾인 것입니다.

남(한국)에서 조국통일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8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때는 학생운동권에서 조국통일운동을 선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 대중들이 조국통일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이 광범위한 폭과 깊이를 가지는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하였던 시기에 남(한국) 운동권의 일부 사람들은 조국통일운동의 전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면서 운동대오에서 이탈하여 개혁적 시민운동으로 가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조국통일운동은 기층근로대중의 민중운동은 물론이고 개혁적 중간세력의 시민운동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에는 각계각층 근로대중들이 대거 진출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는 처음에 느린 속도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냉각국면을 통과하면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분할책동에 의하여 갈라진 자기의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지난 반세기 동안 그토록 희생적으로, 줄기차게 투쟁하고 노력해온 민족은 이 지구 위에 우리 민족밖에 없습니다. 독일민족도 베트남민족도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우리 민족은 조국을 통일하려는 피나는 노력과 투쟁의 경험을 총화하여 조국통일의 사상, 이론, 실행지침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기 위한 민족대단결사상도 가지고 있고 과학적인 이론도 가지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됨으로 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실행지침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상, 이론, 실행지침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이제 전체 민족성원들이 산악같이 일어나서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는 투쟁을 벌이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강: 우리는 그 동안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앞길에 난관이 조성되면 민족의 대단결로 맞받아 나가야 한다고 늘 얘기해왔습니다. 지금 정세는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6.15 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민족자주통일세력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녘동포들과 재미동포들은 내년을 내다보면서 통일운동을 어떤 방향에서 벌여나가려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한: 조국통일운동의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관건적인 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의 단결입니다. 이것은 부동의 원칙입니다. 여기서 민족의 단결이라는 말은 분산되어 있는 민족주체역량을 하나의 기치 아래 묶어 세워 조직역량을 구축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조국통일운동이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 때,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떠나서 전체 민족성원을 하나의 기치 아래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비상시국'에 살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부시 정권의 방해책동에 의하여 사문화되느냐 아니면 저들의 방해책동을 깨뜨리고 그 선언을 지켜내고 기어이 실현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비상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상시국'은 비상한 태도와 비상한 노력과 비상한 투쟁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2003년이 2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때에 가서 우리 한(조선)민족 전체와 미 제국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질 최후의 결전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조국통일운동세력은 자기의 진영을 튼튼히 정비하고 정치적 대중운동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다양한 전술을 개발하여야 합니다.

만일 6.15 공동선언이 내외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에 의하여 사문화되면, 조국통일운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반통일세력이 책동하는 대로 6.15 공동선언이 사문화될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조국통일운동세력은 고도의 경각성과 단호한 태도를 가지고 투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전개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 운동은 지난 시기에 전개하였던 조국통일운동과는 질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든 오늘의 조국통일운동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을 힘있게 전개해야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고 조국이 통일되어야 우리 민족은 자주민족으로서 참된 번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통일위업을 완수하고 번영해야 우리 가정도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민족의 운명이자 우리 집안의 운명이고 우리 자신의 운명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은 그 선언을 반대하고 파기하려는 반통일세력과의 힘의 대결을 동반하게 됩니다. 오늘의 통일정세는 6.15 공동선언을 중심에 놓고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이 벌이는 치열한 대결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투쟁에서 우리 통일세력이 이겨야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게 됩니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반통일세력은 부시 정권과 남(한국)의 민족분열주의자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부시 정권이 가장 주되는 반통일세력입니다. 따라서 부시 정권의 조·미 공동성명 사문화 책동을 폭로·규탄하고 분쇄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남(한국)의 민족분열주의자들의 6.15 공동선언 파기책동을 분쇄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21세기 운명을 좌우하는 격전장에서 우리가 손에 들어야 할 무기는 단결밖에 없습니다. 내외 반통일세력의 6.15 공동선언 방해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전투에서 요구되는 것은 첫째도 단결, 둘째도 단결입니다. 단결은 조직·정치사업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조국통일운동에서 단련된 일군들은 각계각층 동포대중들 속에 들어가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활발히 벌여야 하겠습니다.

재미동포사회에서도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시작하였지만 그 동안 안팎의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진전속도가 떨어졌습니다. 지금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재일동포사회에서도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대중의식화사업, 대중조직화사업이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