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일정세를 다시 논한다

 

< 아래의 글은 2001년 12월말에 한국일보 워싱턴판 담당기자와 진행한 한호석 소장의 대담을 기록한 글이다. 신문에는 지면이 제약되어 있어 일부 내용을 생략하였지만, 여기에는 원문 그대로 싣는다. >

기자 -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고 발표된 지 1년 반에 지났습니다. 6.15 공동선언의 채택은 분단역사에서 처음 있었던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답변 - 우리 민족의 분단역사는 국토분할과 민족분열의 역사입니다. 삼천리 강토가 둘로 갈라지고, 7천만 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것은 민족사의 비극이며 전민족적인 고통과 불행입니다.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한(조선)반도가 자리잡고 있기에 시련 많은 과거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되어 있어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기 힘들 터인데,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적대하고 있으므로 민족의 힘이 반감되어 버렸습니다. 힘이 약한 민족은 강대국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문명화되었다는 현대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은 약소민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행, 약소민족이 강요당하고 있는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민족은 힘이 강해야 국제사회에서 강대국들의 침탈과 공세를 이겨낼 수 있으며, 힘이 강해야 민족으로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으며, 힘이 강해야 민족의 부강번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민족발전의 원리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힘이 약화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안에서도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지내야 가세가 흥하는 법이며, 형제자매들이 원수처럼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 싸움질만 하는 집안은 잘 될 리 없으며 결국 망하고 맙니다. 민족의 분열은 도태·쇠망하는 길이며, 민족의 단결은 부강·번영하는 길입니다. 조국의 분단은 민족사의 절대악이며, 조국의 통일은 민족사의 절대선입니다.

조국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열망은, 강대국들의 무한정한 침탈과 공세가 난무하는 현 시대에 힘있는 민족으로 다시 일어서서 민족의 부강번영을 이룩하려는 열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이념의 차이,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뒤로 밀어두고 우선 단군의 혈통을 이어온 한 민족으로서 서로 화해하고 단합하는 민족적 단결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 이념, 정견, 신앙, 권리, 이익이 만일 단군민족의 단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된다면 그런 따위들은 과감히 뒤로 미루어놓고 무엇보다도 민족적인 화해와 단합을 먼저 추구하고 실현해야 마땅합니다. 단군민족의 단결, 이것이야말로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이며 민족사의 절대절명의 요구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기초 위에서 우리는 6.15 공동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온 겨레 앞에서 엄숙하게 선언한 것은 사상과 이념의 차이,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뒤로 밀어두고 단군민족으로서 화해하고 단합할 수 있음을 현실로 입증하였습니다. 6.15 공동선언의 첫 문장에 적혀있는 대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회담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회담이 성사되고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것은, 민족분열로 찢겨져 나간 분단역사의 고통, 자기파멸적인 동족 적대감으로 상처 입은 분단역사의 비운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입증한 위대한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이 지구 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분단국가의 치욕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우리 민족도 이제는 통일된 민족,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부강·번영하는 민족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7천만 겨레의 가슴속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6.15 공동선언은 부강·번영하는 통일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이 겨레의 가슴에 심어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혀주는 통일실현의 선명한 이정표를 제시하였다는 데 더욱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준 것과 통일실현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 이것이 6.15 공동선언이 가지는 두 가지 의의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 - 소장님께서는 6.15 공동선언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이정표를 제시하였다고 하셨는데, 통일실현의 이정표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답변 - 6.15 공동선언에는 세 가지의 이정표가 제시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민족자주의 이정표입니다. 한(조선)반도의 주변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거나 통일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강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분단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식민지 지배와 분단의 고통을 안겨준 당사국으로서 통일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조선)반도 주변의 4강이 통일을 반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이 통일된 나라를 세우면 아시아에 또 하나의 신흥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이 되므로 4강은 통일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통일된 강대국으로 등장하면 동아시아의 전략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며, 한(조선)반도의 분단을 유지하면서 전략적 기득권을 챙겨오던 강대국들은 기득권을 잃어버리고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 4강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주변 4강의 분단유지정책, 특히 미국과 일본의 한(조선)반도 정책의 반통일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에서 제시된 민족자주의 이정표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분단유지정책이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이라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할 터이니 더 이상 간섭하지도 개입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하고 도출하자는 통일방안의 이정표입니다.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지금까지 각각 서로 다른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남쪽의 국가연합방안과 북쪽의 연방제통일방안입니다. 이 두 방안은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공통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공통되는 측면부터 인정하고 그 공통성의 기초 위에서 통일을 실현하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만일 통일을 실현하는 원칙만 있고 통일을 실현하는 방안이 없다면 통일실현은 불가능합니다. 원칙이 있으면 마땅히 방안도 나와야 합니다. 조국통일의 원칙은 1972년 7월 4일에 남북 정부당국이 채택하고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명백하게 천명된 바 있습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이 그것입니다. 자주의 원칙, 평화통일의 원칙, 민족대단결의 원칙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그 3대 원칙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의 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셋째는 남북 사이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이정표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것입니다.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지 않다가 갑자기 통일이 실현될 수는 없습니다. 교류와 협력은 통일을 촉진시키고 통일실현에 이바지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기자 - 그러면 6.15 공동선언이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관계는 적대관계에 묶여있었습니다. 동족을 적대하는 것은 민족사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은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를 녹여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북관계를 적대관계에서 풀어내어 민족적 단결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의지를 가진 통일지향세력이 존재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적대관계에 계속 묶어두려는 반통일세력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전까지는 반통일세력이 우세하였고 반면에 통일지향세력이 열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 이후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삼천리 강토에는 통일의 희망과 통일의 열정이 넘쳐나게 되었고, 7천만 민족에게는 통일실현의 의지가 전에 없이 강해졌습니다. 반통일세력은 위축되었고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지향세력의 우세현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한때 위축되어 있었던 반통일세력이 다시 들고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통일열기가 식어가기 시작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서울회담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기자 - 이야기는 자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문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6.15 공동선언문에도 밝혀진 것이며, 북측에서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 경우를 예상한다면 소장님께서는 그 의의와 성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답변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으로 제2차 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 단순한 방문과 회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의 평양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면, 앞으로 열리게 될 서울회담에서는 그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좀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합의내용이 채택될 것입니다.

외신보도를 살펴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하여 서울회담을 성사시키려는 구상을 가지고 은밀히 추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1년 2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던 당시 국정원장 임동원씨는 답변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월이나 5월에 서울을 방문해주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면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훨씬 능가하는 역사적 대사변이 될 것이며, 통일실현을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확정하는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 정부당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합의하고 채택하기 위하여 협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째, 6.15 공동선언을 선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선언의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고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인 준비사업을 시작하자는 합의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사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 정부당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통일기구를 창설하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측 당국은 이미 지난해 10월초에 남북 정부당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도 그러한 제안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통일기구의 위상, 역할, 권능에 대하여 남북 정부당국 사이에 견해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견해차이를 좁혀 가는 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남북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대한 합의입니다. 남북의 적대관계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대치상태에서 생겨나고 유지되는 비정상적인 관계입니다. 총과 대포, 미사일을 서로 겨누고 있는 군사적 대치상태가 이완되고 궁극적으로 해소되어야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통일하자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실현은 불가피하게 군사적 대치상태의 이완과 해소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를 이완하고 해소하는 과제는 남북 사이에서만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이 있습니다. 휴전선 155마일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무력대치 당사자 가운데는 한국군과 조선인민군만이 아니라 주한미군 3만 7천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포함되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한미연합군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한미연합군에 대한 작전지휘권, 작전통제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쪽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아니라 주한미군사령관입니다. 따라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는 한미연합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의 대치상태로 보아야 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미연합군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장악하고 있는 미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의 대치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이 서로 싸우지 말자는 남북 사이의 불가침을 합의한다고 해도 한미연합군을 지휘하고 있는 미군이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지 않는 한, 남북 사이의 불가침 합의는 의미가 없으며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은 조성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이완하고 해소하는 것은 북(조선)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이완하고 해소하는 것과 동시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는 문제는 이미 1991년 12월 13일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명백하게 천명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회담이 열리면 불가침 선언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조항을 이행하자고 재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남아있는 과제는 북(조선)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서울회담에서는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는 문제를 다룰 수 있고, 또 다루어야 마땅하지만 북(조선)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는 문제까지 다룰 수는 없습니다. 북(조선)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는 과제는 2000년 10월에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하여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회담에서는 조·미 공동성명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셋째, 북측의 원유자원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유전개발 협력사업에 대한 합의입니다. 북측의 서해 대륙붕 분지를 비롯하여 동해안 해저와 내륙지방 곳곳에는 엄청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평양분지, 길주분지, 안주분지, 온천분지, 서조선만분지, 동조선만분지, 경성만분지 등 7개 지역이 유전개발의 대상지입니다. 북측의 원유개발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호주동포 최동룡박사의 말에 따르면, 최소 2백억배럴(30억톤)에서 최대 3백65억배럴(50억톤)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우리 나라에 그처럼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이 묻혀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북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7개 지역에서 원유개발을 위한 탐사작업을 벌여왔습니다. 최신형 원유탐사장비를 만들어낸 재미동포 박부섭 박사가 1995년에 직접 서해안 대륙붕 분지에서 탐사한 결과 원유 가채량이 12억배럴(1억5천5백만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북측이 서해안 유전개발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유치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던 때는 1997년 10월이었습니다. 당시 북측의 원유공업부는 서해안과 동해안에 2백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고 도쿄에서 '조선유전설명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8년에 북측은 마침내 서해 대륙붕 분지에서 유전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해 8월에는 북측의 유전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과 관계하고 있는 재미동포 기업가가 서울에 가서 남측 기들들이 유전개발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요청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정주영씨였습니다. 그는 북측의 유전개발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두 달 뒤인 1998년 10월말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유전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정주영씨의 방북은 사실상 유전개발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정주영씨가 청와대에 갔을 때, 김대중 대통령도 우선 북측의 유전개발문제부터 물어보면서 커다란 관심을 보인 바 있습니다.

북측은 1999년부터 해마다 연간 30만 톤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중국, 일본, 타이로 석유를 수출하였습니다. 북측은 우리 민족의 숙원 가운데 하나였던 산유국의 꿈을 실현한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9년 1월 1일에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국가발전전망을 내놓은 것은 단순한 선전구호가 아닙니다. 1998년에 북측은 '광명성 1호'라는 자국산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서해 대륙붕의 유전개발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머지 않은 장래에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국가발전전망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유류난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북측의 군대가 갑자기 2000년 1월에 3천 여대의 차량을 동원하여 10년만에 최대 규모의 동계 기동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유전개발에 성공하여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조선)반도의 지맥을 끊어놓은 휴전선의 분단장벽을 뚫고 남북의 철도망을 이어놓게 될 경의선 철도복원공사가 완공되면, 그 철도는 만주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저 멀리 유럽대륙에로 진출하는 우리 민족의 원대한 경제발전구상을 실현하는 21세기의 비단길이 될 것이며, 그와 더불어 북측의 대륙붕 유전에서 길어 올린 석유를 남측으로 보내는 송유관이 지나가는 검은 황금의 수송로가 될 것입니다.

남측은 세계 굴지의 석유수입국으로서 2000년도에 소비한 에너지 총량을 석유로 환산하면 무려 1억9천230만톤이나 됩니다. 남측은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석유수입에 쏟아 붓고 있으며, 북측은 석유가 없어서 경제발전에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북이 힘을 합쳐 북측의 유전개발에 성공하면 남과 북의 경제발전은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며, 근면하고 재능 있는 우리 민족은 머지 않은 장래에 일본의 경제를 따라잡게 될 것입니다. 북측의 석유자원은 통일조국의 자원이며, 통일조국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될 것입니다.

서울회담에서 남북이 힘을 합쳐 유전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합의를 선언문에 담아 우리 민족 앞에 내놓게 된다면, 통일비용이 걱정된다는 따위의 헛소리는 사라질 것이며, 7천만 겨레의 가슴속에서는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부강·번영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더욱 굳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기자 - 소장님의 말씀대로 올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더라면 통일조국의 부강·번영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겠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상반기에 열릴 것으로 예상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왜 열리지 못했습니까?

답변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 곧 반통일세력이 방해하였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지연되었으며 서울회담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서울회담이 열렸더라면 조국통일의 확실한 국면이 열렸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부시 행정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반대하고 방해하였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서울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회담을 개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2001년 초에 클린턴 행정부가 물러가고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씨를 워싱턴에 파견하였습니다. 임동원씨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장, 콘디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과 만났습니다. 2001년 5월로 예상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서울회담에 관련해서 부시 행정부로부터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부시 행정부는 임동원씨에게 서울회담을 개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게 전력지원을 하려는 계획도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시 행정부는 임동원씨에게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하였습니다. 첫째, 서울회담은 한미정상회담을 먼저 하고 나서 6월이나 7월에 개최할 것,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이 아니라 제주도를 방문하도록 할 것, 셋째, 서울회담에서는 휴전선에 전진배치된 조선인민군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문제를 최우선적인 의제로 협의할 것 등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위의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서울회담을 개최하지 말하는 금지조치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미정상회담을 먼저 개최하자고 요구한 것은 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울회담을 개최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이 아닌 제주도를 방문하도록 한 것은 서울방문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사표시였으며, 휴전선에 배치된 북측의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군사문제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으라는 것 역시 서울회담 자체를 유산시키라는 뜻입니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3월 8일에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울회담 개최를 추진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기자 - 부시 행정부 이후에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이전 클린턴 행정부 때와 달리 갈등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갈등현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 두 가지 문제를 먼저 지적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로 지적할 문제는,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부시 행정부가 서울회담 자체를 반대하고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갈등국면에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서울회담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북(조선)이 선의로 대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부시 행정부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조미관계가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그러한 태도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도 이제는 더 이상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2001년 12월 10일 당시 유럽을 순방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을 수행하는 기자단과 간담회를 진행한 자리에서 "우리 문제는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우리도 그만한 능력이 있다. 남북관계가 잘 풀려야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문제에 대하여 미국이 너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의 그 발언에는, 지금 미국이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데 그러한 방해는 미국에게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간담회에서 남(한국) 경제는 "그 동안 미국경제에 너무 의존해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고, 최근 외신들과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도 "미국도 북한에 할 말이 많지만 북한도 미국에 할 말이 많을 것"이라는 뼈있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남(한국)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서울회담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 지적할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2000년 10월에 워싱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조미관계가 갈등에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조미 공동성명은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하여 채택한 매우 중대한 외교문서입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그 공동성명을 이행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북측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하여 조미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길에 의도적으로 난관을 조성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에 발표한 대북정책 발표문을 읽어보면, 북측과 클린턴 행정부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7년 동안이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행했던 협상의 성과인 조미 공동성명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협상을 다시 시작하자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인 외교관례를 짓밟고 국가 대 국가의 약속을 팽개치는 일을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쉽게 여기고 있는 미국 정부의 오만하고 횡포한 태도가 드러나 보입니다.

미국에서 한(조선)반도 문제 연구가로 이름이 있는 두 사람, 뉴욕 센추리 재단의 셀릭 해리슨과 뉴욕 사회과학연구소 동북아시아국장 리온 시걸은 이구동성으로 부시 행정부가 북측과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면 조미 공동성명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기자 -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변 - 위에서 이미 지적한대로 미국 정부는 한(조선)반도에 통일된 강대국이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울회담에서 남북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민족통일기구를 창설하자고 합의하면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국면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의 길이 열리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정치·외교적인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시 행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서울회담이 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서울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상호불가침 합의내용을 재확인하고 남북의 최고당국자가 만나 조미 두 나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조미 공동성명을 지지한다고 발표한다면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존재근거를 박탈하게 됩니다.

한(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상태가 이루어지고 주한미군이 더 이상 주둔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면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미국의 군부와 군수산업자본입니다. 미국의 군부가 어쩔 수 없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되면 주한미군 지휘관들이 차지하고 있는 장성급, 영관급의 수많은 보직과 수십억 달러의 군사비가 날아가 버립니다. 한(조선)반도의 평화가 실현되면 미 국방부와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은 한국군에게 한 해에 수십억 달러의 미국산 무기와 군사장비를 팔아먹었던 무기장사를 더 이상 계속하기 힘들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군부와 군수산업자본은 서울회담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2차 회담에서 남북이 힘을 합쳐 북측의 유전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세력은 미국의 석유재벌들입니다. 엑손모빌, 걸프, 텍사코, 로열더치-쉘, 비피-아모코 이 다섯 개 석유재벌들이 전 세계의 석유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데, 그 가운데서 엑손모빌, 걸프, 텍사코는 미국의 석유재벌이고, 로열더치-쉘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기업이고, 비피-아모코는 영국의 석유회사입니다. 북측의 대륙붕과 내륙지방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에 대하여 미국의 석유재벌들이 무관심할 리가 없습니다. 미국의 석유재벌들은 자기들이 북측의 유전개발권을 장악하려고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회담에서 남북이 힘을 합쳐 유전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 미국의 석유재벌들은 자기들이 노리고 있는 이권을 놓치는 것으로 됩니다. 조지 부시 가문은 텍사스의 석유재벌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자신이 이전에 텍사스 석유재벌의 중역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부시는 텍사스의 석유재벌의 요구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서울회담이 열리는 것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기자 -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수없이 부르면서 통일을 염원하여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통일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에서 장애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장애를 제거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다시 지적하는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최대숙원인 조국통일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반통일세력은 외세인 미국과 일본입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우리의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우리의 통일노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통일적인 외세가 제 아무리 반대한다고 해도 우리 민족 7천만이 일치·단결하여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투쟁한다면 외세의 반대를 물리치고 조국통일위업을 능히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민족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치단결하지 못하고 분열·분산되어 있습니다.

7천만 단군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적 단결을 아직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민족주체적인 통일관을 확고하게 세우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받는 약소국의 운명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우리 나라가 통일되는 감격과 영광의 그날이 오면 부강·번영하고 존엄 있는 새로운 통일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는 것이 통일관의 기본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 동포들 가운데는 통일은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무관심 중독증에 걸린 사람도 있고, 통일이 되지 않고 분단상태에서도 그런 대로 편안히 살 수 있는 데 공연히 통일을 하려고 해서 혼란과 불안만 생기는 것이 아니냐 하는 통일무용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착각이며 오류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우리 나라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상태에 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행과 비극이 우리 눈앞에서 현실로 전개되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정세불감증에 걸려있는 비정상적인 태도입니다.

여기서 분단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이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으므로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분단현실을 설명하겠습니다. 본국동포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세계 평균치인 44.6시간보다 10시간 이상이나 많은 55.1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깁니다. 남(한국)의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뼈가 휘도록 일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열심히 일한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하게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999년도에 남(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천490달러로 세계 54위인데, 총외채는 세계 140개 나라들 가운데 7번째이고, 단기외채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짊어진 빚더미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본국동포들이 뼈가 휘도록 일해도 그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거대자본이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창출한 이윤을 고스란히 걷어가기 때문에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한 나라가 세계 54위의 경제력에 머물게 되고 엄청난 빚만 걸머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1999년 한 해 동안 외국자본이 남(한국)에서 챙겨간 이윤총액은 무려 256억달러나 됩니다.

남(한국)경제가 외환위기로 타격을 입고 파산상태에 빠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안으로 편입되자 남(한국)의 자살사망자수는 급증하였는데, 1998년에만 해도 지난해에 대비하여 42.3%가 늘어난 8천569명이 자살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자살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안으로 편입된 이후 지난 4년 동안 서울에서 사망한 노숙자는 1천672명으로, 하루에 한 명 꼴로 노숙자가 사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설문조사결과를 보니까, 직장인 가운데 남(한국)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11.7%에 지나지 않으며, 청소년들의 80.3%가 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사회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분단조국이 당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금 아르헨티나는 경제난의 벼랑끝에 몰려서 실업자가 폭증하고 은행예금인출이 금지되었으며 생필품 약탈, 상점 방화, 도시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때 남미의 경제부국이라고 남들이 부러워했던 그 나라가 오늘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가 저렇게 망하는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1999년의 아르헨티나는 1인당 국민소득이 7천550달러, 노동시간은 53.5시간이며 총외채는 남(한국)보다 조금 많아서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나라입니다. 그 나라도 남(한국)처럼 정치권이 부패하여 매우 불안정한 정정이 계속되고 있고, 국가경제가 무너져서 채무 불이행 사태를 피해보려고 굵직한 기간산업체들을 민영화하여 다른 나라에 팔아치우면서 만기가 된 빚을 갚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편입되었습니다.

지금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은 여러 모로 남(한국)과 매우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절망과 고통을 보면서 남의 나라가 처한 현실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는 데 남(한국)의 고민과 불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남(한국)이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통일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만이 총체적 위기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남(한국)사회를 구원하고 민족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출로는 없습니다.

기자 - 마지막으로 소장님께서 말씀해주실 것은 우리 재미동포들이 조국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에 관해서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답변 - 조국통일위업은 본국동포들의 책임이라고 보면서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해외동포들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생각은 크게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관은 민족관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로 결합되어 있는 견해와 관점입니다. 민족관이 바로 서야 통일관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족관을 어떻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민족은 한 언어와 한 핏줄로 공고하게 결합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그 어떤 사회집단도 민족을 대신할 수 없으며, 민족보다 우위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족이 있고서야 국가도 정부도 계급계층도 사상이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이 미국땅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단군민족의 일원입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이 언어와 핏줄의 공통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한 단군민족의 일원으로, 민족의 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단군민족은 비록 지금 분단의 상처를 안고 아파하고 있지만, 원래 단군민족은 인류역사에서 다른 민족이 부러워하고 찬탄할만한 위대한 문화를 창조하고 슬기와 용맹으로 1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빛내온 우수한 자주민족입니다.

이를테면, 단군민족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벼를 재배하여 논농사의 시원을 열어놓은 우수한 농경민족이며, 김치와 젓갈 같은 갖가지 발효음식을 개발하고 저고리와 바지로 대표되는 멋과 철학이 깃든 의복문화를 창조한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단군민족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내고 가장 과학적인 글자, 가장 우수한 종이를 만들어냈으며, 인류가 부러워할 만한 훌륭한 도자기들과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썼던 민족이며, 천문학과 기상학의 지식을 종합한 과학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천문기상학적 자명종 시계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우수한 두뇌를 가진 민족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단군민족은 예로부터 노래와 춤, 미술을 즐기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단군민족은 다른 나라의 타악기가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악기인 풍물을 일상생활에서 즐기며 살아온 문화민족이며,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악보를 만들어 사용한 문화민족입니다. 고구려의 고분에 그려져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빛나는 벽화들과 민중의 생활정서가 녹아있는 민화의 전통들은 우리 단군민족이 얼마나 시각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민족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단군민족은 외래 침략자들과 끝까지 맞서 싸워 조국을 지킨 강의한 민족입니다. 외래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미사일과 지뢰의 원형도 모두 단군민족의 손에서 처음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 나라에서 철갑선을 처음으로 만든 사실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민족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한 쪽이 상처를 받으면 유기체 전체가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민족은 하나의 운명이며 하나의 생명을 지닌 사회적 집단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단군민족이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 우리 재미동포들도 분단국 출신의 이민자로서 미국땅에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서 동족끼리 서로 싸우는 분단국이라고 상상한다면, 미국땅에서 살고 있는 유태계 이민자들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사회의 백인계들은 이민역사가 오래 될수록 자기 출신국에 대한 연계가 희미해지고 오직 유럽인종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으며, 흑인계들도 오래 전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의 후손으로서 자기 출신국을 구분할 수 없고 오직 아프리카인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 재미동포들은 아시아인종으로서 구분될 뿐 아니라, 자기의 출신국도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이 자기 조국, 자기 민족에 대한 연계를 끊어 버리고 아시아인종으로 용해되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자기 조국, 자기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코리아계 이민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코리아계 이민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 재미동포들은 조국과 민족이 안고 있는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는 길에서 본국동포들과 뜻을 같이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민족의 한 성원으로 살아가는 의무이며 영예이기도 합니다.

21세기의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조국 코리아는 부강한 통일조국이 될 것이며 단군민족은 번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 재미동포들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재미동포들이 조국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친북, 친남의 낡은 구도를 과감히 타파하고 우선 민족이라는 운명공동체 안에서 총단결하여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대중적 통일운동을 힘있게 전개하는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남북이 하나의 목적과 지향을 합의하여 민족 앞에 제시한 통일의 이정표이므로 그 선언 앞에서는 친북이니 친남이니 하는 낡은 구도가 무너집니다. 만일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자고 하면서도 친북이니 친남이니 갈라놓으려 한다면 그것은 민족분열주의를 획책하는 행위라고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미동포들은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친북, 친남의 대립선을 넘어서서 단합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해내외동포 7천만이 힘을 합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면 조국통일이 실현될 수 있고, 만일 그 선언을 이행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또 언제까지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부시 행정부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조미 공동성명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재미동포들은 부시 행정부에 대하여 분명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우리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라고 요구해야 하며, 조미 공동성명을 이행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재미동포들이 단결하여 6.15 공동선언과 조미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문제에 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사업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재미동포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해야 할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기자 - 대담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