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다시 논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지난 3월 19일에 작성된 글 「핵문제와 탄핵문제로 본 한(조선)반도 정세」가 통일학연구소 인터넷에 발표한 뒤에 통일학연구소 전자우편을 통하여 몇몇 독자들이 글을 보내왔다. 그것은 3월 19일에 작성된 글에서 내가 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였거나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과 질문들이었다. 나는 이 글을 독자들의 반응에 응하는 다섯 가지 문답형식으로 작성하였다. 이 글은 3월 19일에 작성된 글의 보론이다.

[물음 1] 3월 19일에 작성된 글에서는 '핵문제'와 탄핵문제의 본질이 설명되었지만, 그 두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서술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양자의 연관성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나는 몇몇 글에서 한(조선)반도의 '핵문제'가 북(조선)의 '핵문제'가 아니라 조·미 사이에 제기된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라는 사실을 논증하였습니다. 그 논증과정에서 나는 조·미 관계의 정치·군사적 근본문제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여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해명하였습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는 군사적인 근본문제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근본문제입니다.

주한미군 철수가 정치적인 근본문제라는 말은,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이 폐기된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남(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으로 하여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집행합니다. 주한미군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미국이 자기의 적대정책을 폐기하였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주목할 것은,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이 일반적인 의미의 적대정책이 아니라 남(한국)에 대한 지배체제에 의해서 성립되고 보장되는 매우 특수한 적대정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미국의 대중국 적대정책과 비교하면, 그 특수성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미국의 대중국 적대정책은 대만 지배체제에 의해서 성립되거나 보장되는 적대정책이 아닙니다. 미국은 대만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으며, 미국과 대만 사이에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대중국 적대정책은 대북(조선) 적대정책에 비교해서 적대성이 매우 약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적대정책의 비중보다도 협력정책의 비중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고 있고 한·미 군사동맹체제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대북(조선) 적대성이 비할 바 없이 강합니다. 미국이 자기의 적성국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적대정책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적대성을 가진 것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입니다. 가장 강한 적대성을 가진 특수한 체제를 유지해주는 힘의 실체가 바로 주한미군입니다.

그러므로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곧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한·미 상호안보조약이 폐기되는 것은 미국의 지배체제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북(조선)이나 남(한국)의 분할된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단위의 정치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집니다. 그 문제는 한(조선)민족의 자주역량이 민족공조로 해결해야 하는 정치문제이고, 또 그렇게 하여야 해결할 수 있는 전민족적 단위의 정치문제입니다. 이러한 논거에서, 나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통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인식하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반미자주화의 정치적 시각에서 정세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는 북(조선)의 대미압박공세와 남(한국) 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이 지향적 일치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에 따라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적극 추진됨으로써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미자주화의 정치적 시각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형성됨으로써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조선)반도의 '핵문제'를 반미자주화의 정치적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탄핵정국과 총선정국도 반미자주화의 정치적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정세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인데, 한(조선)반도의 경우 반미자주화의 정치적 시각을 설정하여야 정세의 알맹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이 반미자주화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에서 결정적인 요인인 미국의 남(한국) 지배력을 도외시하고 정세를 논하는 것은 알맹이를 빼놓고 껍데기만을 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현재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의 담론은 주로 민족민주운동권 안에서 논의되는 것이며,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담론은 아닙니다. 남(한국) 언론들은 반미자주화의 담론을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러한 보수언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대중은 정세를 인식하는 데서 알맹이를 빼놓고 껍데기만 건드리게 됩니다. 남(한국) 보수언론들이 조성한 여론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면서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단순히 수구정당들이 작당하여 저지른 '의회쿠데타' 정도로 보아서는 정세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핵문제'와 탄핵문제의 연관성에 대해서 논할 때 지적할 것은, 그 두 문제가 한결같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에 의해서 발생한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에 의해서, 탄핵문제는 미국의 대남(한국) 지배정책에 의해서 각각 발생하였습니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핵문제'와 탄핵문제도 역시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남(한국) 정치사가 말해주는 것은, 남(한국) 선거가 정치이변에 의해서 좌우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선거 직전에는 반드시 충격적인 정치이변이 발생하곤 하였습니다.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닙니다. 탄핵정국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치이변이 총선의 향방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치이변은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에 지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알맹이는 미국의 남(한국) 지배라는 사실입니다.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이변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를 본질로 하여 발생한 하나의 현상입니다. 나는 3월 19일에 작성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해명하였습니다.

탄핵정국이 미국의 남(한국) 지배를 본질로 하여 발생한 정치이변이므로, 탄핵정국을 돌파하는 전략적 방침을 미국의 지배력에 맞서는 정치노선에서 찾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 정치노선을 반미자주화노선이라고 합니다. 반미자주화노선은 주한미군철수운동에서만 견지되는 전략노선이 아니라,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을 돌파하는 투쟁에서는 물론이요, 남(한국)에서 전개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정치운동에서 견지되어야 할 전략노선입니다. 반미자주화노선은 사회정치운동의 전략노선으로서 부동부침의 일관성, 전면적인 포괄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반미자주화노선을 따른다고 말하고 반미자주화운동에 참가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선거국면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그 전략노선을 외면하고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반미자주화노선에 대한 확고한 관점이 없어서 정세인식의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음 2] 탄핵정국이 미국의 지배를 본질로 하여 발생한 정치이변이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탄핵정국이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에 의해서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국)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정치사건이 모두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란 통치권력에 변화가 일어나는 권력투쟁의 중요한 계기입니다. 통치권력은 행정권과 입법권으로 구성되는 데, 행정권은 대통령이 장악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행사하고, 입법권은 다수당이 장악한 국회가 행사합니다. 대선이 행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투쟁이라면 총선은 입법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투쟁입니다.

그런데 남(한국)의 통치권력은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의 통치권력과 다릅니다. 남(한국)의 통치권력은 미국의 지배체제 안에 존립하는 것이므로 예속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대리통치를 수행하는 친미예속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배체제 안에 존립하는 남(한국)의 통치권력에 변화가 일어나는 선거에 대해서 미국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릇된 말입니다. 만일 남(한국)의 정치권에 대한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이 중지되고 선거가 자율적으로 실시된다면, 남(한국)의 정치권은 친미예속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반미자주화노선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은 말 그대로 철저한 비밀공작이므로 전혀 드러나지 않고 추진됩니다.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을 입증하는 증거를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증거를 포착할 수 없는 조건에서 분석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난 시기 미국이 남(한국)에서 추진했던 비밀정치공작의 사례와 경험을 기밀해제된 문서를 통하여 다시 살펴보는 것입니다. 남(한국) 정치사에서 발생하였던 온갖 사건들이 그러한 것처럼, 미국의 비밀정치공작도 돌발성과 단절성이 아니라 계승성과 연속성의 기조 위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3월 19일에 작성한 글에서, 미국 국무부가 자기의 비밀정보수집망을 통해서 남(한국)의 각계 인사들을 감시하는 이른바 '잠재적 지도자 신상정보 보고공작(PLBRP, Potential Leader Biographic Reporting Program)'이라는 것이 있으며, 주한미국대사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1년에 네 차례씩 수정·보완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분기별로 보고서를 수정·보완한다는 것은 보고공작대상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분석하면서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관리대상명단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중산층의 인기를 모았던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들어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미국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새로운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분류하였을 것입니다. 기밀해제된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1970년대의 반박정희 세대 가운데서 중산층의 인기를 모았던 야당인사 김대중, 김영삼을 선발하여 관리했던 것으로 나타나는 데,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1980년대의 반전두환 세대 가운데서 중산층의 인기를 모았던 야당인사 노무현을 선발하여 관리하였을 것입니다. 6월 민주항쟁 세대에 속한 정치인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남(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계층으로 성장했던 중산층의 사회정치적 요구를 가장 투명하게 반영하는 인물들입니다.

둘째, 미국이 왜 탄핵정국을 조성하였는지, 그리고 미국이 탄핵정국에서 추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내가 3월 19일에 작성한 글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이 탄핵정국을 조작한 목적은,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입니다. 미국이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는 말은, 현재 그 체제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가 언제나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는 세 차례나 총체적 불안정에 빠진 바 있습니다.

첫 번째 총체적 불안정은 1979년 10월 박정희 피살사건 이후 대중의 정치적 민주화 요구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정치적 불안정입니다. 그 정치적 불안정은 남(한국)의 경제난과 중첩되면서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국면을 조성하였습니다. 미국은 비밀정치공작을 추진하여 친미예속군부의 12.12 쿠데타와 전두환의 집권이라는 정치이변을 연출함으로써 위기를 넘겼습니다.

두 번째 총체적 불안정은 6월 민주항쟁으로 조성된 1987년의 정치적 불안정입니다. 1987년에 반독재민주화운동이 폭발한 것은, 그 무렵 해마다 거의 1백억 달러씩 흑자를 보았던 남(한국)의 수출호조에 따라 중산층이 급속히 성장하였던 사회계급구성의 변동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의 반독재민주화 요구와 급속히 성장한 중산층의 정치적 요구가 서로 맞물리면서 폭발력을 가졌던 것입니다. 미국은 비밀정치공작을 추진하여 '6.29선언'과 노태우의 집권이라는 정치이변을 연출함으로써 위기를 넘겼습니다.

세 번째 총체적 불안정은 1997년 금융위기로 촉발되어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로 이어졌던 남(한국)의 경제난입니다. 미국은 비밀정치공작을 추진하여 집권여당후보를 대선에서 패배시키고 약체야당후보에게 집권의 허락하는 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이변을 연출함으로써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는 네 번째로 총체적 불안정에 빠져들었습니다.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기가 조성된 원인을 분석할 때 주목할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조선)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미압박공세를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남(한국) 사회가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남(한국) 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4차 위기를 조성한 원인입니다.

지난 3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3년 국민계정」에 따르면, 현재 남(한국) 경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합니다. 경제난으로 가장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기층민중 즉 노동자와 농민입니다. 기층민중의 경제생활이 거의 절망적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비단 경제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기층민중 자신이 현실 속에서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복난망으로 보이는 경제난과 기층민중을 짓누르는 민생파탄에 정치권의 무능, 소모적 정쟁 몰두, 부정부패로 생겨난 정치파국까지 중첩되면서 노동자와 농민은 물론이요 중산층까지 절망과 소외, 반발과 분노로 몰아넣는 미증유의 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정치파국과 민생파탄이 오랜 기간 동안 구조적으로 축적된 정치·경제적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오늘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닥쳐온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목할 것은, 기층민중의 생존권투쟁이 세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사회정치적 불만을 가진 계층들이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권투쟁에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권투쟁이 대중적 폭발력을 내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둘째,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이 반미성향을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전 시기의 생존권투쟁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오늘 생존권투쟁에 나선 노동자와 농민에게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생존권을 박탈한 주범이 경제침탈을 자행하는 미국독점자본이라고 지적하면서 반미성향을 보일 것입니다. 남(한국) 사회정치적 모순은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기층민중의 투쟁은 격화되고 있습니다. 셋째, 민주노동당이 기층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정치적 대표체로, 기층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을 정치화하는 정치적 구심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특징입니다.

만일 탄핵정국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총선을 앞둔 지금쯤 남(한국)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부정부패사건에 휘말린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은 손발이 묶여 무기력하게 된 반면에 민족민주운동의 반미자주화투쟁과 기층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었을 것이고, 그 투쟁의 전면에 정치적 대표체인 민주노동당이 앞장섰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반미자주화투쟁과 생존권투쟁의 정치적 구심력으로 등장하여 총선정국의 주도권을 상당부분 장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처럼 대중투쟁에 힘입어 총선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총선에서 유권자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어 원내에 당당하게 진출하고 진보정당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은, 집권의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반미자주화투쟁과 생존권투쟁의 동력이 민주노동당이라는 구심점으로 결집되면서 민주노동당이 자기의 정치역량을 증강시키는 것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에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비상대책이 야당공조에 의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라는 정치이변인 것입니다.

[물음 3]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은 친노세력과 반노세력의 대립구도로 보아서는 안 되고, 또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친미적 수구세력과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친미적 개량세력의 대립구도로 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현 정국의 본질은 미국의 지배체제를 중심으로 결집한 친미적 반민주세력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자주적 민주세력의 대립구도로 이해해야 하는 데, 이 문제에 관해서 좀 더 설명이 요구됩니다.

만일 미국이 탄핵정국을 조작하지 않았더라면,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일정한 의석을 확보하여 원내에 진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한국) 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이라는 '호랑이'에게 민주노동당의 당당한 원내진출이라는 '날개'가 돋아나서 '비호'가 되는 격입니다. '날개 달린 비호'가 장차 무슨 일을 벌이게 될 지는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과 기층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과 민족민주운동의 반미자주화투쟁이 3자 결합을 이루어내는 길목인 4.15 총선을 차단하고,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유사품'을 만들어 내어 중산층 유권자를 기만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생존권 보장이며, 중산층의 요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정치적 안정입니다. 이러한 요구의 불일치성은 사회계급구성의 복잡성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생존권 보장과 사회정치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요구 가운데서 미국이 선호하는 것은 당연히 사회정치적 안정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고민은 노무현 정권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기층민중의 요구를 이전의 독재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무자비하게 짓눌러버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무자비한 억압은 폭약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두 가지 요구를 기만적 방식으로 절충하여 제3의 방안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존권 보장과 사회정치적 안정이라는 두 요구를 기만적인 방식으로 절충한 제3의 방안이 '개량'입니다.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개량을 추구하는 노무현 정권에 의해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개혁세력'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나,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따르는 친미예속정권에게는 '개혁'이라고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개량'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자주적 민주정권이 민주개혁을 통하여 근본적인 사회개조를 추진한다면, 친미예속정권은 미국의 의도에 따라 기만적인 사회개량을 추진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민주노동당이 '진품'이라면 열린우리당은 '모조품'이고, 민주당은 폐기처분을 눈앞에 둔 '불량모조품'이며, 한나라당은 낡아빠진 '골동품'입니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옴으로써 '모조품'의 선명도를 한껏 높였습니다. 일종의 품질관리인 셈입니다. 미국이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낡아빠진 골동품이 쓸모가 없으며 선명도를 높인 모조품이 가장 적합합니다.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따르는 노무현 정권은 대중으로 하여금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을 사게 만드는 일련의 개량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남(한국) 에 조성된 위기를 넘기려면, 한나라당과 같은 친미적 수구세력을 내세워 입법권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열린우리당과 같은 친미적 개량세력을 내세워 입법권을 장악하게 하고 개량정책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남(한국) 대중 전체가 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에 동조하는 흐름을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미국이 남(한국)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서 핵심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이고 국회는 안받침해주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개량정책을 안받침해주는 기능을 맡아야 할 여소야대 국회에는 '골동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열린우리당으로 하여금 노무현 정부의 개량정책을 안받침하게 하여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목적에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전환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서 열린우리당이 남(한국) 정치권을 장악하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미국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누르고 승리하게 함으로써 총선 이후에 남(한국) 정치권에 친미적 개량정당 대 친미적 수구정당의 양당체제를 세우려고 책동하고 있습니다. 이 양당체제는 워싱턴의 정치권에서 지난 1850년대 이후 150년 동안 계속 유지되고 있는 민주당 대 공화당의 양당체제를 남(한국) 정치권에 이식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민주당 대 공화당의 양당체제는 제3의 진보정당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조직들은 민주노동당에 총결집하여 민주노동당의 총선득표율을 끌어올림으로써 양당체제를 이식·정착시키려는 미국의 총선전략을 파탄시키고 민주노동당을 원내 제3당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이 되면, 남(한국)의 정치권에는 반미적 자주정당, 친미적 개량정당, 친미적 수구정당의 3자구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내에 3자구도가 형성되면, 원외에서 진행되는 반미자주화운동은 한층 탄력을 받으며 고무될 것이고, 기층민중의 반미적 생존권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상승·발전하는 길이 열리게 되며, 정치파국과 민생파탄에 의해서 촉발된 대중적 공분이 정치화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등장을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견지에서,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진보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견지에서 인식해왔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등장을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라는 일면적 견지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의 등장을 기층민중의 생존권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상승·발전되는 길이 열리는 것으로 보고, 정치파국과 민생파탄에 의해서 촉발된 대중적 공분이 정치화되는 것으로 보는 폭넓은 시각이 요구됩니다.  

대중은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키는 정치적 통로를 요구합니다. 정치적 통로가 없을 때 대중적 공분은 일시적 감정발산으로 해소되고 정치적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이제 대중적 공분은 감정발산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적 통로를 통해서 정치화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이 정치파국과 민생파탄에 의해서 촉발된 대중적 공분을 정치화하는 것은 미국의 불안정한 남(한국)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전에 출현하였던 허약한 체질의 진보정당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립구도가 첨예화되는 현실 속에서 등장하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시기 허약한 체질의 진보정당들에 대해서는 무시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미국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등장하였습니다. 아니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 것입니다.

[물음 4] 탄핵정국을 돌파하는 전략적 방침을 반미자주화노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하면서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요구됩니다.

반미자주화노선을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한나라당의 움직임이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최대 요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은 미국의 남(한국) 지배정책을 추종하는 친미적 수구세력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한나라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친미적 수구정당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투쟁은 반수구노선에 따른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수구노선은 반미자주화노선과 대립되거나 반미자주화노선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미자주화노선과 대등하게 결합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수구노선은 어디까지나 반미자주화노선의 하부단위로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미자주화노선에 의해서 반미자주화운동이 추진됩니다. 반미자주화라는 개념은 미국의 지배력, 또는 그것의 존립양태인 지배체제를 반대하는 전략노선이라는 뜻입니다.

반미자주화노선을 이해하는 데서 해명해야 할 문제는 반미자주화노선의 주체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반대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명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를 반대하는 주체는 반미자주역량인데, 그 역량은 머리 속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조직적 실체로 존재합니다. 반미자주화노선은 반미자주역량을 강화하는 전략노선이라고도 볼 수 있는 데, 어떠한 조직적 실체가 반미자주화노선을 견지하고 반미자주화운동을 추진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이라는 특정한 국면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의 조직적 실체는 민족민주운동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입니다. 평소에 반미자주화노선을 견지하면서 반미자주화운동을 전개하는 민족민주운동이 탄핵정국을 돌파하고 총선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의 승리를 적극 보장해야 하는 근본이유는, 민주노동당이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의 조직적 실체로 되기 때문입니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에서 민족민주운동이 견지해야 할 최우선의 정치노선은 반수구노선이 아니라 반미자주화노선입니다. 이것은 민족민주운동이 총선투쟁의 제1목표를 한나라당의 총선패배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총선승리로 설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반상식으로 말해서, 누가 어떤 대상을 반대하는 목적은 주체를 강화하고 주체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상에 대한 반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체의 강화가 참된 목적입니다. 정치노선은 반대투쟁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강화를 목적으로 하여 추진되어야 합니다.

반대투쟁을 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무턱대고 반대구호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투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주체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투쟁주체의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 아닙니까. 총선정국에서 친미적 수구세력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주체는 민주노동당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안으로 들어가 주체역량을 결집·강화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 밖에서 빙빙 돌면서 한나라당 반대구호만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반대투쟁의 여파로 한나라당이 잃어버리는 표는 열린우리당에게 가게 되지 민주노동당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투쟁만 하고 민주노동당을 강화하는 투쟁을 외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전략노선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득표력과 득표력이 치열하게 대결하는 선거국면에서 민주노동당의 총선승리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단지 한나라당의 총선패배만을 외치는 것은 주체강화의 전략노선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물음 5] 탄핵반대와 민주수호를 외치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광화문 일대에 약 2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촛불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서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바로 그 장소에서 있었습니다. 두 촛불시위를 비교해서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오늘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탄핵반대라는 정치현안에 대한 견해의 일치로 보장되는 불특정한 다수의 공동행동입니다. 촛불시위는 복잡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불특정한 다수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정치현상입니다만, 거기에도 '노사모'라는 느슨한 정치조직이 구심력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살해사건과 주한미군 범죄자들에 대한 무죄평결에 의해서 촉발되었던 대규모 촛불시위는 복잡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불특정한 다수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정치현상이었지만, 거기에 민족민주운동이 정치적 구심력으로 자리잡음으로써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상승·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촛불시위는 다릅니다. 탄핵반대와 민주수호를 외치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그것이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이 노리는 열린우리당 강화라는 목표에 결과적으로 부합하게 되는 자연발생적인 대중투쟁이므로 반미자주화노선과는 무관합니다. 만일 탄핵을 수구정당의 '의회쿠데타'로 규정한다면 탄핵반대투쟁이 민주주의 실현과 결부될 수 있지만, 탄핵을 미국의 비밀정치공작으로 규정하는 시각에서 보면, 탄핵반대투쟁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대중의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에게 본의 아니게, 무의식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반대와 민주수호를 외치며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잡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불특정한 다수이며,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실망하던 중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라는 횡포를 저지르자 그것에 분노한 대중이며, 친미적 수구정당과 친미적 개량정당 사이에서 유동적인 중간세력입니다.

남(한국)의 정치적 세력관계는 반미자주세력과 친미예속세력으로 양분되지 않습니다. 반미자주세력과 친미예속세력 사이에 매우 광범위한 유동공간이 펼쳐져 있으며 그 공간에 중간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선거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유동공간에 존재하는 중간세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3월 21일 엘살바도르에서 실시된 대선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대선은 반미자주세력을 대표하는 진보정당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FMLN)의 대선후보 샤피크 한달과 친미예속세력을 대표하는 집권당 민족공화동맹(ARENA)의 대선후보 엘리아스 사카가 벌인 대결이었습니다. 대선 결과 친미예속세력을 대표하는 후보가 승리하였습니다.

남(한국)에서 민주노동당이 기층민중의 정치적 구심력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살바도르에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라는 민중의 정치적 구심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은 지난 1981년에 결성되어 1992년까지 12년 동안이나 미국과 친미예속정권에 맞서 치열한 무장투쟁을 벌인 정치조직입니다. 조직력과 투쟁력의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동당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남(한국)의 사회정치적 모순이 격화된 것 못지 않게 엘살바도르의 사회정치적 모순도 격화되어 있습니다. 민생파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한국)보다 엘살바도르가 더 심한 지경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살바도르 인민이 이번 대선에서 마땅히 반미자주세력을 대표하는 대선후보를 당선시켜야 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친미예속세력을 대표하는 후보가 당선된 것은 중간세력이 그에게 지지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유권자 중 20%가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동공간의 중간세력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거는 조직력 대 조직력이 맞붙는 대결인데, 그러한 대결에서 승패의 문제는 어느 쪽의 조직력이 유동공간의 중간세력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조직력만 가지고서는 총선승리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조직화된 노동자, 조직화된 농민, 조직화된 청년학생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총결집하여 유동공간에 있는 중간세력의 지지를 얻어낼 때 총선승리가 보장됩니다.

조직되지 않은 대중은 정치지형을 바꾸는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조직화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이 정치지형을 바꾸는 변화의 주체입니다. 그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는 까닭은 계급·계층적 성분이 단일하여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그에 따라 행동통일을 조직적으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의 전투적 조직력이 상호결합할 때, 정치를 변화시키는 주체역량이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15 총선의 정치사적 의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과 조직화된 기층민중의 투쟁력이 상호결합되어 주체역량을 형성하고 그로써 남(한국)의 낡은 정치지형을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조직들은 '노사모'가 주도하는 탄핵반대집회에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의 유권자 가운데서 유동공간의 중간세력을 민주노동당 지지권으로 끌어내는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현행 선거법의 제약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이 각자 자기의 조직력을 총동원하여 유동공간의 중간세력을 민주노동당 지지로 끌어들이는 총선투쟁을 적극 밀고 나가기만 하면,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승리는 보장될 것입니다. (2004년 3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