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과 조국통일운동의 발전

 

이 글은 미국 뉴욕에 있는 통일학연구소의 한호석 소장이 일본 도쿄에 있는 조국평화통일협회의 강민화 홍보국장과 전자우편을 통해서 나눈 대담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차례>
1. 주체의 힘은 민족의 힘, 민중의 힘이다
2. 항일선열들이 창조한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조국통일운동
3.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과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
4.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이후 상승세를 타는 조국통일운동

 

1. 주체의 힘은 민족의 힘, 민중의 힘이다

강 : 사회역사적 운동은 주체에 의해서 수행됩니다. 조국통일운동이야말로 주체에 의해서 수행되는 주체의 운동입니다. 그런데 조국통일운동을 수행하는 주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집단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주체에 대한 관점이 명확하게 서야 주체의 운동을 힘있게 떠밀고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 옳은 말씀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의 힘으로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변혁해온 것은 주체입니다. 사회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은 결국 주체가 자기의 자주성의 완성을 향하여 투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역학관계의 변동에 따라 퇴행기도 있고 정체기도 있지만, 사회역사가 움직이는 기본방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진보와 발전입니다. 주체의 운동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창조하는 운동입니다.

사회역사적 현실에 주체의 힘이 작용하는 것은 절대로 불규칙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자연계의 역학작용이 불규칙한 것이 아니라, 진화의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하는 것처럼, 주체의 힘이 사회역사적 현실에 작용할 때도 들쭉날쭉하거나 공전하지 않고 합법칙적으로 작용합니다. 사회역사적 현실의 변화양상이 마치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입니다.

과학적 세계관을 아직 알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도 낡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온다는 사회역사의 발전을 믿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과학적 세계관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 믿음을 이론적으로 해명하지는 못했고, 그 대신 신화와 민담을 통하여 문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사회역사의 발전법칙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법칙이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현실 속에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힘에 의해서 구현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사회역사발전의 법칙과 자연진화의 법칙이 갈라지는 분기점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사회역사발전의 법칙과 주체역량의 작용을 변증법적으로 인식하는 데로 모아집니다. 주체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데 사회역사발전의 법칙이 자연적으로 구현될 수 없는 것이며, 주체의 힘은 자의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사회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라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체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체의 힘이라는 것은 민족의 힘, 민중의 힘입니다. 민족은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공통성을 가진 사회집단이 민족국가의 대외관계에서 자기를 개념화한 것이며, 민중은 민족국가 안에서 계급성을 가진 절대다수의 사회집단이 자기를 개념화한 것입니다.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공통성을 가진 사회집단을 논할 때, 만일 민중이라는 개념을 제외하면 민족이라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계급사회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민중이라는 개념 위에서 성립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실체를 민중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민족과 민중을 서로 대치시키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민중을 외면하면서 민족을 논하는 고루한 민족주의자들의 담론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이며, 민족을 부정하고 노동자, 민중을 논하는 이른바 '좌파세력'의 사회계급적 담론도 역시 허구입니다.

수 천 년 동안 지역적 공통성 위에서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을 공고화시켜온 주체를 민족이라고 부르고, 지난 100년 동안 제국주의세력과 투쟁해온 주체도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민족을 해체·말살하려는 가공할 제국주의적 폭력이 난무하는 20세기에 이르러 종래의 민족국가발전사는 반제자주화운동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고, 반제자주화운동을 통해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동안 민족국가 안에서 계급적 지배와 수탈을 반대하여 투쟁해온 주체인 민중은 민족의 이름으로 반제자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민족·민중의 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역사적 현실에 작용하는 그 어떤 잡다한 힘도 민족·민중의 힘을 꺾을 수 없으며,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반제자주화운동의 100년사가 현실로 입증한 것입니다. 나는 민족·민중의 힘이라는 말 앞에 위대하다는 말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가장 위대한 존재,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는 민족·민중입니다. 민족·민중으로 개념화된 주체가 사회역사적 현실에 작용하는 힘은 무진장하며, 영원하며, 위대합니다.

조국통일운동을 수행하는 사회집단은 민족·민중입니다. 조국통일운동을 수행하는 주체를 민족국가의 대외관계에서 규정할 때는 민족이라고 하며, 민족국가 안에서 규정할 때는 민중이라고 합니다.

강 : 그렇다면 조국통일운동의 주체에 대한 해명과 민족적 주체성에 대한 해명은 어떻게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민족적 주체성이란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과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정신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여나가자면 우리 민족끼리 확고한 공조가 이뤄져야겠는데, 그런 요구를 반영해서 북(조선)에서는 올해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우리 민족제일주의로 심화시키고 구체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민족공조로 조국을 통일하는 주체는 한(조선)민족 자신이라는 것, 그 누구도 한(조선)민족을 위하여, 한(조선)민족을 대신하여 우리 조국을 통일해주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6.15 공동선언이 밝혀준 불멸의 진리입니다. 평범한 느낌을 주는 그 술어 속에 들어있는 진리는 심오합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주체는 어떤 특정한 사회역사적 시기에 형성된 사회계급이 아니라 5천년 동안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공통성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해온 가장 공고한 사회집단인 민족입니다. 민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입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민족이라는 말은, 조국통일운동이 계급문제가 아니라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계급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의 운동은 사회변혁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민족문제라는 것은 민족이 해결해야 할 최고문제, 곧 민족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주역량을 가지는 문제입니다. 그것을 민족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민족이라는 말은, 조국통일운동이 민족자주성을 실현하는 운동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통일국가는 완성된 민족자주성을 보장해주는 조직형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조선)민족이 조국통일운동의 주체라는 말은 한(조선)민족의 구성원이면 자동적으로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한 한(조선)민족의 구성원이라야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한(조선)민족의 구성원은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조국통일운동에서는 한(조선)민족의 구성원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서게 됩니다. 한(조선)민족의 구성원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 제시된 것이 바로 우리 민족제일주의입니다.

북(조선)에서 말하는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한(조선)민족 구성원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갖자는 뜻에서 제창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민족배타주의나 민족우월주의가 아니라, 외세의존주의과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민족적 주체성을 세우기 위한 한(조선)민족의 투쟁사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자기 민족의 힘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민족성을 열등하고 천박하다고 깔보면서 다른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쳐다보는 낡은 사상관점을 청산하고, 한(조선)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라는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민족적 주체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민족적 주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일 노동자들이 사회적 생산의 주인이며 역사창조의 주체라는 노동계급적 주체성을 갖지 못하면, 그러한 노동계급은 사회역사발전의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한(조선)민족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라는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민족구성원은 사회역사발전의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2. 항일선열들이 창조한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조국통일운동

강 :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여야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는 말씀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한 사람들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운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하여야 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 : 그러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운동의 전략문제에 대하여 논하겠습니다. 아시는 대로, 6.15 공동선언은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국가를 세우는 조국통일실현의 이정표입니다. 이정표라는 말은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민족적 차원의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경로를 밝혀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족민주운동권에서 쓰이는 용어로 표현하면, 6.15 공동선언은 조국통일운동의 최저강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조국통일운동의 최고강령은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국통일운동 앞에는 최저강령과 최고강령이 모두 제시되어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제국주의자들을 추종하는 한 줌도 되지 않는 민족반역자들을 빼놓고 절대다수의 민족성원이 지지·찬동하는 조국통일운동의 최저강령입니다.

아시는 대로, 사회역사적 운동은 최저강령을 구현하는 바탕 위에서 최고강령을 구현하는 단계로 올라서는 것, 그리고 최고강령을 구현하는 방향과 경로를 명확히 설정한 조건에서 최저강령을 구현해 나가는 것을 하나의 공식(formula)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저강령을 지지·찬동하는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 위에서 최고강령을 구현하는 핵심동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근본정신은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자는 구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한다는 말은,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민족공조로 조국을 통일한다는 뜻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근본정신을 축약적으로 표현하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에는 외세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려는 의지와 민족공조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세란 구체적으로 제국주의세력인 미국을 뜻합니다.

미국의 반통일적인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민족공조를 추구하는 투쟁력을 전선화한 것을, 민족민주운동권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통일전선(united front)이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정치활동가 중심의 투쟁력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의 요구에서 나오는 투쟁력을 결집하여 다함께 투쟁하는 공동투쟁의 전략을 통일전선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오늘날 통일전선이라는 말은 다종다양한 대중운동의 전략개념으로도 쓰이는데, 이를테면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도 광범위한 대중의 요구에서 나오는 투쟁력을 결집하여 다함께 투쟁하는 통일전선의 운동형태입니다. 6.15 공동선언이야말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그 선언의 기치 아래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대중운동은 정치활동가 중심의 전선이 아니라 대중이 다함께 투쟁하는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전선이라는 말이 북(조선)에서 사용하는 말이어서 남(한국)에서는 낯선 느낌이나 거부감마저 주고 있습니다만, 원래 통일전선은 일제강점기에 항일민족해방운동의 주요전략이었습니다. 항일선열들은 통일전선을 협동전선이라고도 불렀는데, 항일운동사에서 통일전선이 형성된 이후 항일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1920년대의 신간회, 1930년대의 조국광복회, 8.15 해방 직후의 인민위원회는 당대를 대표하는 통일전선의 조직형태들이었습니다. 1945년 말부터 1946년까지 남(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을 통치하였던 인민위원회는 이른바 '좌익정치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하고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연합한 통일전선적 형태의 정치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한국)에서 미군정의 비호와 육성으로 예속정권을 거머쥔 친미파 민족반역자들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과 손잡고 항일선열들의 사회정치활동을 탄압하고 항일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훼손·파괴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통일전선이라는 전략개념도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 민족민주운동권이 항일선열의 피땀이 스며있는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반드시 찾아내서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전선이라는 말이 주는 낯선 말느낌에 집착하여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만, 항일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항일선열들이 일제를 반대하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창조하였던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은 맥락에서 본다면, 미국의 반통일적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고 민족공조를 추구하는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이 통일전선의 운동형태인 것은 명백합니다. 항일운동의 통일전선은 20세기 통일전선이었고, 항일선열의 자주적 사상의식을 이어받은 조국통일운동의 통일전선은 21세기 통일전선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과업이 달라지고 투쟁방식은 변하였어도, 또는 항일운동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조국통일운동을 통일전선의 운동형태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상관없이, 항일운동에서 창조된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은 오늘 조국통일운동의 실천 속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는, 항일운동에서 창조된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의 전략적 지침이며,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인 운동은 21세기형 통일전선운동입니다.

강 :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운동을 항일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은 통일전선의 운동형태라고 지적하신 말씀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21세기형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역량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의 역량편성문제는 전략적 승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 :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서 진행되는 조국통일운동을 통일전선의 운동형태라고 한다면, 그 운동의 주도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해야 합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주체가 한(조선)민족이라고 해서 조국통일운동을 주도하는 주도세력도 한(조선)민족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체의 문제와 주도세력의 문제는 성격이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주체의 역량은 균일하게 편성되지 않으므로 그 역량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주도세력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문제는 조국통일운동의 역량편성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나는 한(조선)민족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민중이 조국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은 근로하는 대중, 곧 민중입니다. 근로하는 대중이라고 했을 때, 노동자와 농민을 뜻합니다. 빈민과 어민도 민중의 범주에 드는 것을 물론입니다만, 일반적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민중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원동력은 사회적 생산노동을 담당한 기층민중 곧 근로대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입니다. 만일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노동을 멈춘다면, 사회적 관계의 총체는 유지될 수도 발전될 수도 없습니다.  

조국통일이 사회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에 의해서 실현되는 과업이므로, 사회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지닌 민중이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도세력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민중이 양적인 측면에서 절대다수라는 한 가지 근거만으로 조국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역사발전의 원동력을 가진 민중이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게 될 때, 그런 민중은 다른 사회집단들보다 앞에 서서 조국통일운동을 주도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8.15 해방 직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를 결성한 남(한국)의 노동자들과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을 결성한 남(한국)의 농민들이 자주독립을 완성하고 민주개혁을 추진하며 단정단선을 반대하기 위하여 투쟁한 역사적 경험은, 사회역사발전의 원동력을 가진 민중이 조국통일의지를 갖게 될 때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역사적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동자와 농민은 남(한국)에만 있지 않고 북(조선)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조국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이 노동자와 농민으로 구성된 민중이라고 말할 때는, 남북의 노동자와 농민을 모두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남북의 노동자와 농민이 힘을 합하여 조국통일운동을 주도하여야 조국통일위업을 힘있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선열들이 피땀으로 창조한 통일전선의 역사적 전통을 남북의 노동자와 농민이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아래 21세기형 통일전선을 형성할 때, 조국통일운동은 무적필승의 궤도를 타고 승리적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그런데 남북의 노동자와 농민이 조국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이라는 말은, 그들만이 조국통일운동의 주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찬동해 나서는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중소기업가, 문화예술인, 종교인, 해외동포들도 모두 조국통일운동의 주체입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친미예속적인 반통일세력을 제외한 모든 민족구성원들이 남북의 노동자와 농민이 단결하여 앞장선 전민족적 통일전선에 망라되어 미국의 반통일적인 개입과 간섭을 배격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운동을 떠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선의 분산과 분열을 전선의 통일로 전환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분산되고 분열된 전선을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통일된 전선으로 전환시킴으로써 한(조선)민족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지요.

3.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과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전선

강 : 지난 4월 15일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여 원내정당이 되었고, 열린우리당이 원내 제1당으로 되었습니다. 제17대 총선에서 당선된 열린우리당 당선자들 중에도 6.15 공동선언을 지지해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회가 이러한 판세로 바뀌니까 반통일세력의 거점인 한나라당도 눈치를 보면서 그 무슨 새로운 대북정책을 운운하면서 얼굴표정을 슬그머니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라는 정치적 사변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운동에 주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한 : 나는 제17대 총선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수행한 투쟁의 성과였다고 평가합니다. 길지 않은 총선투쟁기간에 5만 명 당원이 280만 명의 지지세력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이것이 통일전선의 위력입니다. 만일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하여 280만명의 지지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더라면,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의 전략적 관점에 확고하게 서서, 민주노동당의 총선투쟁과 그 성과를 분석·총화하고,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대중투쟁과 어떻게 결합하게 될 것인지를 내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과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똑같이 통일전선의 범주에 들어있으면서도 서로 구분되는데, 통일전선이라는 말을 후자의 의미로 쓸 때, 그것은 남(한국)민중의 대중투쟁이 전개되는 전선을 뜻합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민중이라는 말과 대중이라는 말은 구분하여 써야 합니다만, 계급사회에서 대중은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적 성격을 가지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나는 민중이라는 개념을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에 두고 광범위한 각계각층 대중을 포괄하는 총칭적 개념으로 씁니다.

민중은 투쟁을 통하여 자기의 힘을 사회역사적 현실에 강하게 작용시킵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가지는 의의와 성격, 그 전개방향을 파악하는 문제는, 민중의 힘이 사회역사적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민중의 힘이 사회역사적 현실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민중항쟁사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민중항쟁사를 논하는가 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민중의 힘을 논하면서 굳이 민중항쟁사를 살펴보려는 까닭은, 민중이 민중항쟁을 통하여 자기의 힘을 가장 폭발적으로, 가장 집중적으로 발휘하여 사회역사발전을 급진전시키기 때문입니다.

물론 민중이 항쟁을 통해서만 사회역사를 발전시킨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민중은 자기의 무한한 창조력을 발휘하고 끊임없이 생산노동을 수행함으로써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며, 자기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화예술을 발전시킵니다. 이것은 사회역사의 점진적 변화·발전입니다.

그런데 항쟁이란 민중의 힘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발산시킴으로써, 항쟁 이전에 오랜 세월동안 축적해오고 있던 힘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사회역사발전의 방향을 극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역사를 연구하고 정세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민중의 힘의 점진적 축적과 급진적 전개가 민중항쟁에서 변증법적으로 종합되고 극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시대적 요구와 당대의 계급관계에 따라, 그리고 민중항쟁을 수행하는 주체의 역량관계에 따라, 항쟁의 성격이 시대별로, 그리고 지역별로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명백합니다.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은 민중항쟁의 전형이었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1980년대는 남(한국)민중의 힘이 분출하면서 사회역사발전의 축을 진보적 방향으로 급진전시켰던 민중항쟁의 분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987년 이후 17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한국)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1990년대가 민중의 힘이 분출된 시기가 아니라, 축적된 시기였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 일어났던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가 남(한국)민중의 힘의 분출을 일시적으로 정체시킨 외적 요인이었다면, 남(한국)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중산층의 양적 팽창은 남(한국)민중의 활동력을 일정하게 제약하였던 내적 요인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불과 7년만에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났던 것에 비한다면, 1987년 이후 오늘까지 이어진 축적기 17년은 너무 길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17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 1960년의 4.19혁명 이후 20년만에 일어났던 것과 견주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4.19혁명 이후 20년 동안 민중항쟁이 없었다고 해서 남(한국)민중의 힘이 소멸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사회역사의 발전법칙을 모르는 무식한 주장입니다. 그 20년 동안 남(한국)민중은 크고 적은 투쟁을 전개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자기의 힘을 계속 축적하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1987년 이후 오늘까지 17년 동안 남(한국)민중의 힘은 크고 적은 투쟁을 통하여 끊임없이 축적되어온 것입니다.

1960년 7월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은 4.19혁명으로 분출된 남(한국)민중의 힘이 진보정당 중심의 통일전선으로 결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17대 총선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도 역시 남(한국)민중의 힘이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에 결집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위한 각계각층 대중이 결집한 통일전선의 힘으로 남(한국)의 새로운 정치사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1960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과 2004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을 견주어보면,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1960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에 작용한 것은 남(한국)민중의 축적된 힘이었던 것에 비하여, 2004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에 작용한 것은 남(한국)민중의 축적된 힘은 물론, 한(조선)민족의 축적된 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시야에 비치는 것은, 2004년 4월에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가능하게 만든 두 개의 동심원(concentric circle)입니다. 그것은 남(한국)민중의 축적된 힘이 작용한 내부동심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외곽동심원입니다. 그 외곽동심원에 한(조선)민족의 축적된 힘이 작용하였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입니다. 나의 시야에는 그 두 동심원의 중심점이 정확히 하나로 일치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남(한국)민중의 통일전선과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하나의 중심점을 가지고 서로 포개어진 상태에서 운동하는 두 개의 크고 작은 동심원으로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강 : 소장님은 지난 4월 22일에 통일학연구소 홈페이지에 발표하신 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전개한 총선투쟁의 의의와 한계」에서 남(한국)민중의 통일전선적 관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분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민중의 축적된 힘의 분출로 보시면서, 더 나아가서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으로까지 확대하여 바라보고 계십니다. 아주 색다른 해석입니다. 소장님의 그러한 해석에 대해서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한 : 나는 남(한국)의 민중운동사를 짚어보면서 나의 생각을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1960년 4.19혁명부터 1980년 광주민중항쟁까지 20년 동안 남(한국)사회에서는 민중의 힘이 축적되었습니다. 그런데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2004년 4.15총선까지 17년 동안에는 이전처럼 남(한국)민중의 힘만 축적되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함께 축적되어오면서 동심원으로 결집된 민족주체역량을 형성해온 것이지요. 지난 17년 동안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모아져서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을 축적해왔다고 보는 나의 견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지난 17년 동안 남(한국)민중의 힘이 축적·장성되어온 것은 명백합니다. 다른 한편, 지난 17년 동안 북(조선)인민의 힘이 축적·장성되어온 것도 명백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두 개의 힘이 서로 무관하게 축적·장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한국)과 북(조선)에서 각각 축적·장성해온 힘은 분단현실의 격폐상태를 아직 제거하지는 못했으나, 그 격폐상태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서로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양자의 연관성은 어디에서 확인될 수 있을까요? 그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입니다. 지난 17년 동안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이 몰라보게 강화·발전되어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1990년대 초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하고 투쟁해온 과정에서 조국통일운동은 좌절과 후퇴를 모르는 불굴의 투지와 강인함을 얻었으며,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그야말로 박진감이 느껴질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한(조선)민족의 집단적 경험 몇 가지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얼마 전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을 때, 남(한국)과 해외동포사회에 있는 각계각층 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반북성향의 사회단체들까지 지원사업에 나섰습니다. 17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전민족적 범위에서 벌어지는 룡천 지원사업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은 한(조선)민족의 민족적 동질성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민족공조입니다. 그러한 현실변화는 한(조선)민족의 힘이 지난 17년 동안 어느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줍니다.

요즈음 남(한국)의 대중언론은 룡천역 폭발사고의 피해가 너무 커서 복구에 열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구사업에 작용하는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힘의 흐름이 결정하는 정세의 변화방향과 변화속도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룡천 복구사업에 작용하는 원동력은 북(조선)인민의 힘과 남(한국)민중의 힘이 민족주체역량이라는 동심원으로 모아진 힘, 그리하여 이전에 분리되어 있을 때보다 비할 바 없이 강해진 한(조선)민족의 힘,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룡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지원사업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힘을 결집하여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문제와는 무관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사업입니다.

한(조선)민족의 힘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지난 5월 1일은 세계노동절 114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5월 1일은 노동과 자본의 모순이 인류사회에 출현한 이후 200여 년 동안 전세계 노동계급이 줄기차게 전개해온 피땀 어린 투쟁, 전세계 노동계급이 이룩해온 빛나는 승리를 되새기고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는 날입니다. 남(한국)의 14개 도시에서는 세계노동절 114주년에 즈음하여 동시다발적인 정치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집회들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반대하는 투쟁구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라크 파병반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과 무력강점을 반대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이며, 비정규직 철폐요구와 세계무역기구 및 자유무역협정의 개방반대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착취와 약탈을 반대하는 반미자주화운동입니다.

같은 시간에 평양에서는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2004년 남북(북남)노동자 5.1절 통일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통일대회에는 남(한국)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 309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통일대회에서는 올해 안에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산업별, 지역별로 남북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교류·연대를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정에 담겨져 있는 것은, 미국의 반통일적 개입과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려는 남북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지입니다.

나의 시야에서 뚜렷이 보이는 것은 두 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정세도면입니다. 그 도면 위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책동을 반대하는 남(한국)의 노동계급의 반제투쟁이 내부동심원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 동심원과 중심점을 일치시킨 남북노동계급의 조국통일운동이 외곽동심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분단현실의 격폐상태를 넘어서 한(조선)민족의 힘을 통일전선역량으로 축적하는 데서 누구보다도 선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 나라 노동계급의 멋진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세계노동절의 의미가 자본주의의 거센 파도에 떠밀려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명절로 되어버린 오늘, 한(조선)반도에 사는 남북의 노동계급은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습니다.

1987년 이후 17년 동안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강화·발전시켜온 힘의 흐름을 파악하면,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통일전선으로 결집되면서 민족주체역량을 축적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결정하는 그 거대한 두 개의 힘이 통일전선으로 결집되는 것을, 대중언론에서는 흔히 남북의 교류·협력이라고 부릅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은 통일전선이라는 용어를 쓰고, 대중언론은 교류·협력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 두 가지 용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모아져서 통일전선을 완성하면, 그것이 곧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60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은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통일전선으로 결집되는 가운데 일어났던 정치적 사변이 아니었으나, 2004년의 진보정당 국회진출은 그 두 개의 힘이 통일전선으로 결집되면서 일어난 정치적 사변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을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결집시키는 전민족적 통일전선과 남(한국)민중의 힘을 진보정치 실현이라는 기치 아래 결집시키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하나의 중심점을 가진 동심원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조선)반도 정세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동심원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분석해보아야 할 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이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첫째, 남(한국)의 진보세력이 결집한 진보정당이 등장함으로써 정치지형은 진보세력 대 보수세력의 대립구도로 변모하였습니다. 그 대립구도는 반미자주화문제나 민주개혁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것만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문제를 중심으로 해서도 형성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은 조국통일문제를 놓고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으로 대립하는 구도를 형성한 것이지요.

지난 4년 동안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이 형성되면서 반통일세력을 고립·위축시킨 것은, 진보세력을 결집·강화시키면서 보수세력을 고립·위축시킨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의 형성은, 진보정치를 실현하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확장하고 공고화하는 데서 매우 유리한 전략환경을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만일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하였다면,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이 4.15 총선 직전에 이른바 '북풍사건'을 또 다시 조작하여 터뜨렸을 것이고, 그런 사건이 터졌다면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은 상당부분 저지 당했을 것이고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성사시킨 직접적인 요인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형성된 것이었으나,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의 '북풍사건' 조작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의 승리를 보장해준 요인은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이었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성사시킨 직접적인 요인을 전민족적 통일전선의 형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인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성사시킨 요인을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에만 국한해서 찾으려는 것도 편협하고 일면적인 견해입니다.

4.15총선 이후 남(한국)정치권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어떤 정당, 어떤 정파도 '보수'라는 간판을 내걸기에 거리낌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이나 보수정파도 '보수'로 자처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중도보수'라는 새로운 위장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원인도 역시 힘의 흐름이 그 방향을 바꾸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004년 한(조선)반도에서 힘의 흐름은 진보와 변화를 향해서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힘의 전개방향이 전환된 것은, 남(한국)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각계각층 대중의 힘이 결집되어 진보정치를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형성한 것, 그리고 남(한국)민중의 힘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공조화되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한 것이었습니다. 정세를 읽는 것은 곧 힘의 흐름을 읽는 것입니다. 힘의 흐름을 읽으면 정세발전의 방향이 보입니다.

4.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이후 상승세를 타는 조국통일운동

강 : 소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을 진보정치의 실현을 향한 통일전선의 첫 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진보정치의 실현은 진보정당의 집권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이 장차 진보정당의 집권으로 과연 이어질 수 있겠는지 관심과 기대가 모아집니다. 당면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이후에 조국통일운동이 어떠한 전환국면을 맞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 : 대중통일강연을 마치고 나서 으레 있게 되는 질의응답순서에서 청중이 강연자인 나에게 흔히 제기하는 물음이 하나있습니다. 조국통일은 언제 실현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은 2010년에 또는 2012년에 실현될 것이라고 예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통일위업은 미리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물음이 나올 때마다 청중에게 이런 식의 답변을 드리곤 하였습니다.

"조국통일이 언제 실현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합심·협력하여 분투하면 그만큼 조국통일은 앞당겨 실현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조국통일위업은 후대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조국통일운동의 길에서 돌멩이 하나라도 옮겨놓으려는 적은 노력과 정성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청중은 그런 식의 답변을 들을 적마다 시원한 느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통일정세를 해설해주기를 바라는 청중의 눈빛을 보면서 나는 강단에서 내려서야 했습니다.

조국통일이 언제 실현되느냐고 묻는 청중에게 나는 원외군소정당으로 있었던 민주노동당을 가리키면서 그 정당이 조국통일실현의 확실한 '근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청중 앞에 강연자로 나선 나는 집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원외군소정당에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전망을 찾을 수 있다는 식으로 통일정세를 해설할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나는 청중의 물음에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조국통일위업이 완수되는 때를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제시하는 확실한 '근거'는 진보정당의 출현이며, 조국통일위업이 완수되는 때는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과정은 곧 조국통일위업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진보정당이 정치투쟁에서 승리하면 조국통일도 그만큼 앞당겨집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진보정당 집권과 조국통일위업 성취의 상호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국통일위업은 연방통일정부의 수립으로 완전히 성취됩니다.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정부가 수립되지 못하면,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조국통일운동이 아무리 확대·강화된다고 해도 아직 조국통일을 실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바꿔서 말하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운동은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정부가 통일국가수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그 날이 우리가 갈망하는 조국통일의 날입니다.

둘째,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어야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습니다. 남(한국)에 수립될 자주적 민주정부는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조국통일운동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말한다면,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는 데서 결정적인 문제라는 점입니다.

셋째, 자주적 민주정부는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집권해야 수립됩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책동에 대해서 아니오 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배격하기는커녕, 미국의 눈치나 슬슬 보면서 백악관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익숙한 열린우리당 같은 자유정당(liberal party)이 집권한 상태에서는 100년이 가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없습니다. 자유정당의 집권이 가지는 의의는 남북관계개선에 탄력을 줄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발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지난 5월 3일에 열린 정동영-박근혜 회담에서 '새로운 정치와 경제발전을 위한 여야 대표협약'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상생정치'를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유정당과 보수정당이 진보정당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의회권력을 분점하는 미국식 양당체제의 시동을 걸었음을 말해줍니다. 지금 미국이 남(한국)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제국주의적 책동은, 8.15 해방 이후 미군정이 자행하였던 책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군정은 보수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한 지역에서는 자치행정을 허용하고, 진보세력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진보세력을 탄압하였습니다. 또한 미군정은 중간세력을 결집시켜 자기편에 끌어들이는 친미예속화 공작을 추진하는 한편,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고립시키려는 술책으로 이른바 좌우합작이라는 이름의 책동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남(한국)정치권에서 진보정당의 힘이 강해지자, 미국은 분산된 자유주의세력을 결집시켜 자유정당을 급조하도록 사주하고, 새로 등장한 자유정당과 기존의 보수정당이 공조관계를 맺도록 사주함으로써 진보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상투적인 전술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남(한국)지배전략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당체제가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게 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중간세력들을 열린우리당 주위에 결집시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고립시키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미국식 양당체제의 의회권력 분점구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 하는 문제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 앞에 매우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은 그 과제를 자기의 투쟁력으로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진보정당을 강화·발전시켜서 자주적 민주정부의 집권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가장 현실적인 방도가 됩니다. 진보정당을 강화·발전시키는 것은, 민족민주운동권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강화·발전된 위력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선 직전인 지난 4월 13일에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13%였는데, 총선이 지난 뒤인 5월 25일에는 지지율이 17.9%로 올랐다고 합니다. 특히 20대와 30대 청년층에서는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한나라당 지지율을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는데, 20대는 6.8%, 30대는 10.8%가 앞섰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방문자수는 총선 전보다 세 배나 늘었으며, 청년층이 주로 집중되어 있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정당은 단연 민주노동당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에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기층민중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가세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강화·발전시키는 역량이 어떻게 편성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진보정당인 사민당(이전 사회당)은 1990년에 국회의석을 136석이나 차지할 만큼 강력한 정당이었는데,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무력화되었고 결국 지난해 11월에 실시된 선거에서는 6석으로 줄어들면서 사멸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진보정당은 무너지고 있는데 반하여 남(한국)의 진보정당은 날로 장성하고 있습니다. 최근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람은 하루에 2백-3백 명씩 되었습니다.

다섯째,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이후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전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형성되고, 그로써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 통일전선이 한층 더 강화되면서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이 비상히 강화·발전되는 시기에 들어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은 곧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진보정당의 집권과 미국의 남(한국)지배체제는 타협이나 절충이 통하지 않는 적대적 모순관계에 있습니다. 8.15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와 미군정이 양립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주적 민주정부와 미국의 남(한국)지배체제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강 :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확보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운동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지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 제17대 총선으로 변화된 남(한국)정치권에서는 자주통일세력과 화해협력세력이 공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한국)정치권의 자주통일세력은 민주노동당이고, 화해협력세력은 열린우리당 내부의 이른바 '개혁파'입니다. 두 세력의 공조가능성만 생각하면, 앞으로 통일정세의 변화방향을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국)정치권에서 자주통일세력과 화해협력세력이 공조하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남(한국)정치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불과 10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으므로 원내투쟁력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다른 한편, 열린우리당은 원내 제1당으로 되었다고 해도, 이른바 '잡탕정당'이므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행동통일을 보장하기 힘든 조건에 묶여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가 보수성향 계파들의 제동과 반발을 물리치고 당적 차원에서 화해협력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반통일세력인 미국이 남(한국)정치권을 장악·통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남(한국)정치권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가 공조해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미국이 방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미국은 자기의 비밀공작망을 통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 안에서 일어나는 진보적 움직임을 차단하려고 책동할 것입니다. 미국은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친미예속적 민족반역자들을 은밀한 방법으로 충동질하여 도전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립적 태도를 지닌 세력들이 동요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의 공조를 추진하는 동력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인 한계입니다.

그렇다면 한계를 넘어서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나는 그 길을 민중과 민족에게서 찾습니다.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남(한국)민중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고, 북(조선)인민과 힘을 합하여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역량을 한층 더 강화·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데서 조성된 남(한국)정치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와 공조하는 것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민족·민중의 힘을 결집시키는 통일전선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8.15 해방 이후 남(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였던 통일전선적 정치조직인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의 탄압을 돌파하지 못한 까닭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인민위원회와 대중조직의 결합력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인민위원회를 수호하기 위한 정치투쟁과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대중투쟁이 전면적으로 결합하였다면, 미군정의 탄압을 돌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정치투쟁이 반드시 민중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대중투쟁과 전면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강 : 내년 2005년은 분단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5년에 분단 50년을 넘기지 말고 조국을 통일하자고 외쳤던 것이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 같은 데,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을 위해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한 : 올해도 자연계의 순환운동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지만, 우리 민족은 아직 조국을 통일하지 못한 채, 쉰 아홉 번 째 봄을 맞이하였습니다. 사회역사의 발전법칙에 따르면, 한(조선)민족이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필연적 귀결입니다만,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주체의 힘과 의지가 반통일세력을 압도할 만큼 강하지 못하여 민족사발전의 합법칙성이 아직 구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조선)민족은 반드시 자기의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것도 머지 않은 장래에 완수할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주관적 의사를 표명한 사적 담론(private disclosure)이 아니라, 민족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한 과학적 해명에 근거하고 있는 담론입니다.

한(조선)민족이 머지 않은 장래에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완수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관적 의사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민족사발전의 합법칙성을 반영한 담론이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과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든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힘을 축적해온 통일전선형성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조국통일위업의 완성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한(조선)민족의 21세기 발전방향을 정확하게 전망할 수 있습니다.

분단 60주년을 맞이하여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이 한 단계 올라서야 한다는 것은,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민족성원들의 일치된 생각일 것입니다. 조국통일운동을 이끌어 가는 민족민주운동권은 그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올해부터 미리 연구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의 소견으로는, 분단 60주년과 6.15 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맞이하면서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하는 단계에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상설적인 민족공조기구를 구성하는 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설적인 민족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가 공조하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하며, 6.15 공동선언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부터 폐지하여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대중운동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한 대중투쟁은 민주노동당 중심의 통일전선이 수행하는 고유한 투쟁인데, 그 투쟁은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가 공조하는 원내투쟁과 연계하여 전개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남북의 정부당국은 장관급(상급)회담을 지금까지 열 네 차례나 개최하였는데, 민족공조의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남(한국)정부의 대미예속성이 언제나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정부당국회담은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남북 정부당국은 장관급(상급)회담을 개최하는 현재 단계에서 전진하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상설적인 정부당국 협의기구를 느슨한 방식으로나마 구성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남(한국)민중과 북(조선)인민의 힘이 공조역량으로 형성되고, 그 공조역량으로 조국통일을 반대·방해하는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의 반통일책동을 타격하는 한편, 제17대 총선으로 변화된 남(한국)정치권에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내부의 '개혁파'가 북(조선)과의 화해·협력을 위하여 서로 공조하여 노력하면 내년 2005년에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사업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예상합니다. 2005년 8월 15일 분단 60주년이 되는 때에 맞춰 새로운 민족공조기구가 역사적인 출범을 선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강: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끊임없는 노력과 불굴의 투쟁으로 자기의 요구와 지향을 현실화하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민족의 요구와 지향을 현실화하는 과제를 오랜 시간 동안 명쾌하게 해설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2004년 5월 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