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민족의 주체적 통일관과 통일정세 전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분단전후사 인식과 분단원인 규명에 대하여
2. 통일관과 민족관의 관계  
3. 사회역사발전의 주체인 민족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다
4. 조국통일정세를 전망한다

1. 분단전후사 인식과 분단원인 규명에 대하여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신 수많은 항일선열들은 분단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피 흘려 싸우신 것이 아니었다. 항일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구하고자 했던 조국은 둘로 갈라진 조국이 결코 아니었다. 8.15 해방 뒤에 우리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는 것을 만일 항일선열들이 아신다면, 지하에서 통곡하시며 못난 후대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우리 나라가 둘로 갈라진 것은, 한(조선)민족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절대로 일상화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모든 구성원들이 하루도 잊고 살수 없는 현실이다.   

분단현실의 역사적 근원을 밝혀내려면, 분단전후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핵폭탄으로 공격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미국은 당시로서는 유일한 핵무장국이었다. 한(조선)반도를 분할·점령하려는 미국의 흉계를 간파하였던 소련이 미국의 분할점령책동을 완강히 반대하지 못한 까닭은, 핵무기로 무장한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소련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분할점령책동을 완강히 반대하는 경우, 소련은 핵무기를 가진 미국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지쳐있었던 소련에게는 핵무기를 가진 미국과 전쟁을 벌일만한 힘이 없었다. 한(조선)반도가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대로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갈라진 까닭은, 소련이 미국의 핵전쟁 위력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소련군이 만주전투를 재빠르게 결속하고 한(조선)반도 중부지방까지 남진하지 않았다면, 미군은 한(조선)반도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서 일본열도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한편,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고 그 절반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미국이 일본열도와 한(조선)반도 절반을 무력으로 점령한 근본목적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동아시아를 장악·지배하려는 데 있었다.  

한(조선)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은 자기들이 무력으로 점령한 이남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였고, 그에 따라 미국을 추종하는 이승만 친미파세력과 친일파 민족반역자들 가운데 친미주의로 넘어간 전향세력을 규합하여 친미예속정권을 세웠다. 소수의 민족반역자들을 제외한 남과 북의 모든 정치세력들은 친미예속정권이 미국의 지배전략에 따라 자행한 단선단정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으나, 친미예속정권은 미국의 각본대로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에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다. 주목할 것은, 우리 나라가 민족내부의 계급적 대립을 원인으로 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장악·지배하려는 미국의 흉계와 책동에 의해서 남북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1945년 미국의 분할·점령 이후 오늘까지 59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분단현실은, 한(조선)민족이 일제식민지강점에서 벗어나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우려 하였던 목적을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국통일은 반만년 역사에서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우는 민족사 최대의 과업이다. 조국통일을 우리 대에 우리의 힘으로 실현하지 못하면, 민족사는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한다.

2. 통일관과 민족관의 관계  

통일관은 민족관에 기초하여 성립된다. 민족관을 바로 세워야 통일관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민족관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 민족이 발생하고 형성된 역사적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아시아대륙은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중국 동부해안지역과 한(조선)반도 서부해안지역은 당시에 낮은 지대의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서해는 없었다. 아시아대륙 한복판에는 거대한 내륙호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발해다.

오늘 서해가 있는 곳은 신석기시대에 아시아대륙에서 가장 낮은 대평원이었는데, 아시아대륙에서 흐르는 큰 강이 그 대평원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였다. 약 7천9백 년 전대평원에서는 씨족단계에서 막 벗어난 여러 종족들이 서로 힘을 겨루며 신석기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약 6천 년 전, 드넓고 기름진 대평원에서 살던 아홉 개 종족이 통합되면서 하나의 족속(겨레붙이)을 이루었다. 아홉 개 종족이 통합되어 형성된 족속이 박달족이다. 중국의 고대사가들은 박달족을 이족이라고 기록했는데, 이(夷)라는 글자의 옛 글자는 쇠를 뜻하는 철( )이라는 글자이므로 이족이라는 종족이름은 철의 종족이라는 뜻이었다. 박달족은 한(조선)민족의 선조였다.

박달족의 역대 족장들 가운데 주목할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약 4천7백 년 전에 활동하였던 치우(蚩尤)라는 족장이다. 그가 바로 『한단고기』에 나오는 자오지천왕(慈烏支天王)이다.  자오라는 말은 하늘이라는 뜻이고 지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옛말이므로, 치우는 하늘의 아들로 추앙된 족장이었다. 『한단고기』에는 배달국의 제14대 임금 자오지천왕이 지금으로부터 약 4천7백 년 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석기문명 말기에 아시아대륙 대평원에서는 또 다른 족속이 출현하였는데 그것이 한족의 선조인 화하족이다. 화하족의 족장은 공손헌원이었다. 구려족과 화하족은 대평원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동안 족속분쟁을 벌였다.

치우가 이끄는 구려족은 공손헌원이 이끄는 화하족과 맞붙은 족속분쟁에서 연전연승하였다. 구려족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족속이 석기문명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청동기문명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족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탁록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구려족과 화하족의 전투(탁록대전)에서 구려족이 지고 말았다. 화하족이 전투에서 승리하자 화하족의 족장 공손헌원은 황제로 추대되었다. 오늘날 황제는 중화민족의 원시조로 추앙된다.

치우의 박달족이 공손헌원의 화하족과 종족분쟁을 벌였던 때로부터 약 3백50년 뒤에 한(조선)반도와 발해 북부지역에 걸친 드넓은 땅에 사는 박달족을 주민으로 하여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조선을 건설한 박달족의 족장이 왕검이다. 동아시아의 다른 족속들이 뒤떨어진 신석기문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을 때, 단군조선을 세운 박달족은 비파형 청동검, 번개무늬청동거울, 원개형동기를 만들어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 무덤을 세우고 그 돌판 위에 별자리를 새겨 넣어 고대천문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각궁과 환두대도로 무장한 강한 군대를 보유하였으며, 반구대 암각화를 창조하여 고대예술의 꽃을 피웠다. 이것은 박달족의 단군조선이 당시 최고 수준의 청동기문명을 건설하였음을 말해준다.

주목할 것은, 단군왕검을 지도자로 하는 고대국가가 세워짐으로써 박달족이 족속에서 민족으로 발전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박달족은 자기의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공통성에 기초하여 단군조선을 세움으로써 족속형성단계를 넘어서 마침내 민족형성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단군조선의 건국이 한(조선)민족 형성사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단군조선이 단일족속인 박달족에 기초하여 세워졌다는 데 있다. 단일족속을 형성한 주민이 단군조선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단군조선은 이미 이룩되어 있던 박달족의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동질성과 지역적 공통성을 더욱 공고하게 강화하였으며 단일민족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단군조선의 국가적 통합력이 차츰 약해지자, 박달족은 예맥족(예족과 맥족)과 삼한족(마한, 변한, 진한)으로 분화되었고, 그에 따라 구려, 부여, 진국 세 나라가 세워졌다. 박달족 일파 가운데 가장 힘이 강했던 예맥족은 발해 북부, 만주, 한(조선)반도 북서부지방에서 걸쳐 살았고, 삼한족은 한(조선)반도 남부에서 살았다. 중국의 고대사가들은 예맥족과 삼한족을 동이족으로 불렀다. 예맥족의 후손이 세운 나라가 고구려이고, 삼한족의 후손이 세운 나라가 백제와 신라다.

동아시아의 다른 족속들이 호랑이나 곰 같은 짐승을 숭배하는 토템족속의 단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박달족은 하늘을 숭배하는 문명한 족속이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곧 태양이었다. 단군조선의 왕들은 하늘임금(천왕)이었고 단군조선은 태양나라(환국)였고, 그 도읍지는 아사달이었다. 단군왕검의 건국설화에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박달족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임금의 후손이라는 사상이다. 박달족의 하늘숭배는 구려, 부여, 진국으로 이어졌고, 태양의 아들로 자처한 고주몽이 세운 나라인 고구려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박달족과 그 후손들은 해마다 시월상달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족속시대에는 족장이, 그리고 고대국가시대에는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성대한 거국적 행사로 주관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에서는 왕과 인민들이 함께 밤낮으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같은 유럽나라들이나, 중국, 인도 베트남, 일본 같은 아시아나라들은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다른 여러 족속들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민족을 형성하였다. 그에 비해 우리는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지역적으로 동질성을 가진 단일족속이 고대국가를 건설하면서 족속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단일민족을 형성하였다. 한(조선)민족과 다른 민족들은 민족의 발생기원과 형성경로, 발전과정이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럽나라들은 신흥부르주아계급이 등장하여 근대국가를 건설한 이후에 비로소 민족을 형성하였으므로,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개념을 쓴다. 유럽의 경우, 민족국가 형성사는 대개 200년을 넘지 못하지만, 우리는 단군조선 이후 5천년 동안 단일민족을 형성하고 살아왔다. 이러한 민족사적 현실에서 조국통일의 역사적 필연성이 제기된다.

한(조선)민족이 갈라진 조국을 반드시 통일해야 하는 까닭은, 단군조선 이후 5천년 동안 단일민족을 형성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이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단일민족이 제기한 최고의 정치적 요구이며, 사회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이며, 역사적 필연이다.

3. 사회역사발전의 주체인 민족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다

위에서 논한 대로, 유럽역사에서 민족은 사회역사발전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럽역사에서 민족의 형성은 사회역사의 근대적 발전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한(조선)민족은 사회역사의 근대적 발전이 낳은 결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5천년 전에 단군조선의 건국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지난 5천년 동안 사회역사를 발전시키는 주체가 되었다.

주목할 것은, 사회역사를 발전시키는 주체는 절대로 둘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까닭은, 주체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 실체이기 때문이다. 주체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곧 주체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뜻한다. 주체의 분열은 사회역사발전을 중지한 것이며, 주체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사멸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한(조선)민족을 갈라놓으려고 책동하는 범죄자들이 있다. 그들은 5천년 동안 공고화되고 발전되어온 민족을 인위적으로, 강제적으로, 그리고 영구히 갈라놓으려는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이다.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은 우리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우리 민족까지 영구히 갈라놓으려고 책동한다. 그 책동을 흔히 반통일정책이라고 부른다. 미국인들은 반통일정책을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이라고 부른다.

저들이 자행하는 반통일정책의 본질은 우리 나라의 분단을 영구히 고착화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을 영구히 갈라놓으려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쇠망케 하여 결국 자기들의 지배권 안으로 우리 민족 전체를 완전히 복속시키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우리 나라의 분단이 59년 동안이나 지속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59년 동안 한(조선)민족이 온갖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던 근본원인은,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력이 분단현실 속에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민족이 조국의 분단현실을 언제까지나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의 반통일책동에 의해서 영구결별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이 반통일책동을 자행함으로써 사회역사발전의 주체인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갉아 먹히고 있는 분단현실은, 그야말로 민족의 생사존망이 엇갈리는 위기다. 한(조선)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생사존망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오늘, 민족의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선택은 오직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밖에 없다. 조국을 통일해야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조국통일의 본질은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이 인위적으로, 강제적으로 갈라놓음으로써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분단현실이 장기화되면서 생사존망이 엇갈리고 있는 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살리는 것이 조국통일의 본질이다.  

4. 조국통일정세를 전망한다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주체는 한(조선)민족이다. 이 명제를 풀어서 말하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역사발전의 주체인 한(조선)민족이라는 것이다.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주체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있다. 조국을 통일하는 데 유리한 객관정세가 조성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어디까지나 주체의 의지와 역량이다.

먼저 조국통일정세에 대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한(조선)민족이 처해 있는 오늘의 정세가 조국을 통일하는 데 유리한지 아니면 불리한지는 정세인식을 통해서 가늠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반통일세력들인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미국은 한(조선)반도를 분할하고, 이남지역에 친미예속정권을 세워놓고, 남(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요즈음 미국의 남(한국) 지배력이 차츰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미국이 힘을 겨루기 때문이다. 중국이 신흥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구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뒤로 20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났는데, 요즘에는 한층 밀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신흥세력인 중국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꺼려하면서 통제하려 하고, 중국은 미국의 통제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다. 기존세력과 신흥세력 사이에서 모순이 격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계속 심화되면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되어 동아시아를 장악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구도가 흔들리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조국을 통일하는 데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지금 중국의 팽창하는 힘은 몽골과 시베리아가 아니라 태평양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이 자기의 힘을 태평양지역으로 내미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것은 중국과 대만의 통합문제다. 통합문제는 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도망친 지방권력을 중앙권력 안에 통합하는 중국의 내부문제다. 중국이 대만을 통합하려면 통합을 방해하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저지하면서 미국의 개입력을 봉쇄하여야 한다.

다른 한편, 미국이 태평양지역으로 팽창하는 중국의 힘을 저지하는 방도는 강력한 방벽을 쌓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강력한 군사전략거점을 저지방벽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태평양지역으로 팽창하는 중국의 힘을 저지하는 군사전략거점을 남(한국)에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의 시야에서 볼 때, 최전방에 해당하는 남(한국)에는 무력을 전진배치하는 전술거점을 설치할 수 있어도 군사전략거점을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이 자기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거점을 구축할 곳은 두 말할 것 없이 일본이다.

미국이 자기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거점을 일본에 구축하려면 전쟁지휘부를 일본에 신설하고 미·일 동맹군의 무력을 증강하여야 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워싱턴주에 있는 육군 제2군단사령부를 일본 가나가와현 자마기지로 옮기고, 육군대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동아시아 전역의 미국 육군작전을 지휘하는 전쟁지휘부를 신설하는 것이다. 주일미육군사령관은 소장, 주일미공군사령관은 중장, 주일미해군사령관은 소장, 주일미해병대사령관은 중장인데, 신설되는 주일미육군사령관은 대장으로서, 태평양군사령관과 같은 급이 된다. 이것은 미국이 태평양군사령부의 전략적 비중에 버금가는 전쟁지휘부를 일본에 신설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처럼 일본에 강력한 군사전략거점을 신설하면, 남(한국)의 군사전략적 가치는 차츰 사라지게 되고, 그 대신 한(조선)반도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로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는 해체되고 주한미군기지는 폐쇄되고 주한미군은 철수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지난 5년 동안 남(한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 44개소를 폐쇄하고 88만평을 남(한국)에게 돌려주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주한미군사령부를 해체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동맹체제가 약화되는 것이며, 따라서 한·미 동맹체제를 통하여 유지되는 미국의 남(한국)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남(한국)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은 조국통일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미국의 힘이 약화되는 것이다. 미국의 남(한국)지배력이 약화되면, 그 지배를 추종하면서 미국에게 예속된 민족반역자들의 기가 꺾인다. 이처럼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민족반역자들의 기가 꺾이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조국을 통일하는 데 유리한 객관정세가 조성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려는 한(조선)민족의 주체적 의지와 역량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조국통일의 주체인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가 강하고 통일을 실현하는 역량이 강하면 조국은 그만큼 이른 시일 안에 통일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조국통일은 먼 장래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국을 통일하는 주체가 한(조선)민족이라는 명제의 뜻은, 한(조선)민족의 구성원이 자동적으로 조국통일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 명제가 뜻하는 바는, 한(조선)민족 대 외세의 관계에서 한(조선)민족이 조국통일의 주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조선)민족의 내부에서 조국통일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제기할 때는 다른 각도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조선)민족의 구성원들 가운데는 조국통일에 적극적인 사람도 있고,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조국통일을 꺼려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한(조선)민족 내부의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을 살펴보면, 크게 구분해서 남(한국)대중의 통일의지와 통일역량, 그리고 북(조선)대중의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으로 나누어진다. 북(조선)대중의 통일의지가 확고하고 통일역량이 강한 것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반면, 남(한국)대중의 통일의지는 확고하지 못하고 통일역량도 강하지 못하다.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이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자연계의 현상이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생겨나고 강화·발전되는 사회역사적 산물이다. 그런데 남(한국)정부는 남(한국)대중에게 통일의지를 전혀 고취하지 않았고, 도리어 통일의지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탄압해왔다. 지난 시기 남(한국)정부가 주장했던 것은 '북진통일', '승공통일', '흡수통일' 따위의 반통일적 구호였다. 그 결과 남(한국)대중의 통일의지는 약해지고 말았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가 남(한국)의 2백72개 초·중·고등학교 학생 1만6천2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47.5%, 통일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응답한 학생은 40.8%였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응답한 학생은 초등학생이 25.9%, 중학생이 47.8%, 고등학생이 51.7%로 나타났다.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조국통일을 지향한 의식이 희미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한국)사회에서 통일의지가 확고하고 통일역량이 강한 사회집단은 분단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사회집단들이다. 반면, 분단현실을 타고 앉아 기득권을 챙기는 사회집단은 통일의지를 가지기는커녕 조국통일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이다.  

한(조선)민족 전체가 분단의 피해자로서 분단현실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지만, 분단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을 겪는 사회집단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층민중이다. 남(한국)기층민중이 분단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을 겪는 까닭은, 그들을 짓누르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분단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남(한국)지배세력이 조국통일을 반대하는 분단원흉이므로 제국주의자들과 남(한국)지배세력에게 억압·수탈을 당하는 기층민중이야말로 분단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을 겪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식민지강점기에 한(조선)민족 전체가 식민지노예로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을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겪었던 사회집단은 기층민중이었다.

그런데 남(한국)기층민중이 분단현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장 심하게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그들이 자연적으로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남(한국)사회에서 노동자나 농민이라고 해서 무조건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이 강한 것은 아니다. 기층민중 가운데서도 선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강한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을 갖고 있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진보세력이다.

그렇지만 남(한국)사회에서 기층민중만이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이 강하다고 보는 것은 일면적인 견해다.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중소기업가들 가운데서도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의 경우에도 무조건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이 강한 것은 아니고, 조국통일을 지향한 선진적 의식을 가진 진보세력이 가장 강하다.

이처럼 기층민중과 각계각층 대중들 가운데 조국통일을 지향한 선진적 의식을 가진 진보세력이 조직화되어 있고, 가장 강한 통일의지와 통일역량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이 남(한국)사회에서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은 분산상태로 활동할 수 없으며, 강한 구심력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단결하여야 한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변화·발전된 통일정세에 따라 남(한국)의 기층민중조직들과 각계각층 대중조직들이 결집하여 조국통일운동조직을 결성하였다. 54개 운동단체들이 결집한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연대'가 남(한국)에서 조국통일운동을 이끌어 가는 핵심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국통일운동은 핵심동력만이 추진하는 운동이 아니라 핵심동력 주위에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묶어 세워 전사회적으로 추진하는 운동이다. 문제는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이 얼마나 많은 지지세력을 자기의 주위에 묶어 세웠는가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통일연대'가 대중적 지지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는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국)에서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과 대중적 지지기반의 준비정도를 가늠해보면,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이 어느 만큼 강한지를 알 수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남(한국)에서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아직 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과 대중적 지지기반이 계속하여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통일운동의 핵심동력과 대중적 지지기반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투쟁과 노력에 의해서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자주적 평화통일을 머지 않은 장래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희망의 근거다. (2004년 5월 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