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국)의 경제위기와 주한미군 철군, 그리고 연방통일국의 경제건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경제위기설을 파악하는 두 개의 시각
3. 경기지표는 위기조짐을 나타내고 있는가?
4. 경제예속의 심화와 국제독점자본의 수탈가중
5. 불황국면의 지속과 민족·계급모순의 격화
6. 국제독점자본의 동반철수와 예속경제체제의 붕괴
7. 주한미군 철군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보복
8. 낡은 경제체제 붕괴 이후 새로운 경제체제의 수립
9. 북(조선)의 경제특구 개발사업과 남(한국)의 중소기업
10. 한(조선)민족의 북방육상통로 개척

1. 글을 시작하며

최근 여론조사결과를 살펴보면, 현재 남(한국)의 일반대중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전쟁위기가 아니라 남(한국)의 경제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5월 남(한국) 전역에서 1천2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 대다수는 취업난, 불안정한 고용, 경기불황, 빈부격차를 경제불안요인으로 지적하였다고 한다. 그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전쟁위험이라고 지적한 응답자는 2%에 지나지 않은데 비하여 경제불안이라고 지적한 응답자는 42.7%나 되었다.

얼마 전 케이비에스(KBS) 제1라디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남(한국) 전역에서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6%가 현재 남(한국)이 경제불안에 빠져있음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경제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응답은 54.7%, 다소 심각하다는 응답은 36.9%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있었던 시기와 비교해서 현재의 경제생활수준이 더 나빠졌다고 지적한 응답자는 52.6%였다.

남(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는 노무현 정부 일각에서도 들리고 있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는 현 시기 남(한국) 경제를 "고치기 어려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심각한 경제상황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달랐다. 그는 2004년 6월 7일 제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남(한국) 경제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위기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시장을 위축시키는 과장된 경제위기설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그가 남(한국) 경제가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한 논거는 국제무역수지 흑자, 외환보유액 증가, 상장기업 이익률 증가, 부채비율 저하 등이다.

그러나 그가 경제위기설을 부인하기 위해 제시한 몇 가지 논거들 가운데 현재 남(한국)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해소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경제위기설을 부인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가 제시한 논거를 심각한 불황국면에 빠져 있는 현실을 덮어버리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한국) 경제가 불황국면(recession)에 빠져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은 우스운 짓이다. 당면한 문제는, 경제위기(economic crisis)인가 아닌가 하는 우매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불황국면이 악화되어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글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그들과 경쟁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종 지배세력들이 시장주의적 관점에 서서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경제위기설을 비판하고 반제·계급적 관점에 서서 경제위기설을 재해석한다.

2. 경제위기설을 파악하는 두 개의 시각

불황국면이 악화되어 경제체제 전반이 마비상태에 빠지는 경제위기가 닥쳐올 것인가? 이 도전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에 먼저 지적하는 것은, 불황과 경제위기라는 두 개념이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황과 경제위기는 동일한 차원의 개념이 아니므로 같은 뜻으로 뒤섞어 쓸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불황을 침체(stagnation)라고도 부른다. 불황이라는 개념과 연관되는 것은 공황(depression)이라는 개념이다.

흔히 공황이라는 개념과 경제위기라는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 쓰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경제위기라는 개념을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기존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 대신에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쓰는 까닭은, 제국주의 지배체제에서 발생하는 경제위기에 관한 분석을 더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지배체제란 제국주의국가에 예속된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국의 총체를 뜻한다.

우선,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반화된 사회과학부문의 편성에 따르면, 정치학과 경제학이 나누어져 있다. 그에 비해 정치경제학은 정권의 소유관계를 분석하는 정치학과 생산력의 소유관계를 분석하는 경제학을 통일적으로 다루는 사회과학체계이다. 정치경제학의 범위 안에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분석하는 국제정치학, 국가와 자본의 관계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분석하는 경제학이 포함되는데,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은 국가, 자본, 노동의 3자 관계를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은 사회적 생산관계와 그것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작용하는 경제법칙을 연구하면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의 반제자주화를 옹호하는 사회과학체계를 말한다.

공황과 경제위기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은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과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강조하는 것은, 공황과 경제위기라는 개념이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공황과 경제위기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공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경기지표들로 파악되는데 비하여,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구조적 요인을 분석함으로써 파악된다. 공황은 경제부문에서 발생하는 것에 비하여, 경제위기는 경제부문은 물론 정치·군사부문과 연관되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황이란 내수경기침체와 투자위축으로 생산과 소비가 마비되는 실물경제의 위기상황, 그리고 주가폭락과 자금거래중단으로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이 마비되는 금융경제의 위기상황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위기상황은 서로 중첩되면서 공황국면을 악화시킨다. 다른 한편, 경제위기란 공황국면에서 정치·군사적 정세변화가 일어나면서 주가폭락으로 증시가 붕괴하고, 그에 따라 기업과 은행이 도산하면서 실업률이 극에 이르러 경제체제가 붕괴하는 파국을 뜻한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는 경제위기설에서는 경제위기가 경제체제의 붕괴위기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는 경제위기설은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모순이 격화되어 그 체제가 붕괴되는 위기를 강조한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모순이 개량적 조치로 이완시킬 수 없을 만큼 격화되었을 때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체제의 파멸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경제위기설을 논하는 사람들은 오늘 남(한국) 경제가 성장잠재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장기불황국면에 빠졌느냐 그렇지 아니하냐를 따지는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지난 2년 동안 계속되어온 내수경기침체를 원인으로 하여 장기불황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하더니, 요즘에는 내수경기침체에다가 수출경기침체가 가중되어 장기불황국면에 빠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내수경기침체나 수출경기침체는 산업순환과정에 발생하는 침체국면의 현상들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내수경기침체나 수출경기침체 같은 불황국면이 생겨난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데 있다.

그런데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불황국면이 생겨난 구조적 요인을 일면적, 단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경제위기설을 논하는 사람들은 오늘 남(한국)의 경제상황을 이른바 스택플레이션(stagfl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5일자 기사 「경제 장기불황 우려 고조」 참조) 스택플레이션이라는 합성어는 가파른 물가상승(inflation)을 동반하는 불황국면(stagnation)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경제분석가도 2004년 8월 2일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남(한국)이 스택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오늘 남(한국) 경제가 스택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국제시장에서 반도체 수요가 줄어 남(한국)의 수출동력이 떨어지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제유가가 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남(한국) 경제가 스택플레이션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스택플레이션이란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두 배정도 높아진 조건에서 발생하는데, 올해 남(한국)의 물가상승률은 3%대로, 경제성장률은 5%대로 예상되므로, 그러한 경제지표 예상치를 보면 스택플레이션에 직면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나 모건 스탠리 같이 남(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일부 기관들은 국제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남(한국)의 물가상승률이 4%대로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3%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5일자)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10개 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7.3%로 전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남(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로 전망하는 것은 비관적이다. 올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수행에서 최대 목표는 경제성장률을 5%로 유지하는 것이다. 경제분석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오르면 일자리 6만개가 생겨나고,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일자리 10만개가 없어진다고 한다.

남(한국) 경제를 더욱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이 지적한 대로, 노무현 정부가 물가상승을 억제할만한 아무런 대책을 갖지 못한 현실이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2일자) 물가상승을 억제할만한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인데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004년 8월 12일 전격적으로 물가상승의 위험이 높은 금리인하조치를 감행한 것은, 불황국면의 장기화 추세를 우려하는 노무현 정부의 절박감을 반영한다. 한국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기업은 8천억원, 가계는 4천억원의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기부양책은 불황국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실효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가상승률은 대체로 활황국면에서 높아지기 마련인데, 현재 남(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이상하게도 활황국면이 아니라 불황국면에서 높아지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가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스택플레이션에 직면하였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남(한국) 경제가 스택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 근본원인은 국제시장에서 반도체 수요의 감소로 인한 수출부진,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장기불황국면에 빠져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산업순환론(theory of industrial cycle)을 가지고 오늘 남(한국)의 불황국면을 설명하려고 한다. 산업순환은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고도 부른다. 산업순환론이란 경제가 저점에서 정점으로, 경기수축국면에서 경기확장국면으로 고조와 퇴조의 주기적 순환운동을 반복하면서 발전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산업순환이란 공황(depression)→불황(recession) 또는 침체(stagnation)→활황(activity) 또는 회복(recovery)→호황(prosperity)이라는 네 개의 국면이 교대하면서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정, 순환적 발전과정이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산업순환은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기본으로 하여 진행되는 자본의 자기증식과정이다. 자본이 과잉생산과 과잉투자로 사회적 재생산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 공황이다. 무제한적으로 확대되는 생산이 결국 소비를 상회하게 되면, 시장에서 판매되지 못한 상품이 쌓이고 생산설비들이 폐기되고 실업률이 급등한다. 그에 따라 기업과 개인은 채무지불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고 생산과 소비는 급격히 위축된다.

공황은 1825년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뒤로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하는 산업순환운동에 따라서 공황국면에 빠져들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회경제적 조건이 서로 다른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산업순환운동의 주기를 일률적으로 10년 정도라고 못박는 것은 오류다. 이를테면, 1970년 이후 남(한국)의 산업순환운동은 평균 33개월의 확장국면과 19개월의 수축국면을 기록하면서 대체로 5년 정도의 짧은 순환주기율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산업순환에 의한 변화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과 생산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교통체계와 통신체계에서 기술혁신이 추진됨에 따라 수 십 년 단위의 장기적 변화도 일어난다.

그처럼 공황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복합적이어서 파악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공황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공황의 필연성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물 점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 의해서, 그리고 개별기업의 생산활동과 사회 전반의 무정부적인 생산활동의 대립에 의해서 생겨난다.

그렇지만 경제가 공황국면에 빠진다고 해서 경제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공황국면에 빠지면,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의 파괴된 균형을 일시적으로, 폭력적으로 되살리면서 파국에서 빠져 나온다.

주목하는 것은, 산업순환론에서는 공황국면이 불황국면으로 교대되고, 불황국면은 활황국면으로, 더 나아가서 호황국면으로 교대되는 일련의 연속과정을 상정하기 때문에 경제체제의 붕괴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실상 외면한다는 점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산업순환론을 내세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절대화하고, 경제체제의 붕괴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산업순환을 단지 여러 국면들이 교대로 반복되는 일련의 발전적 연속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누적되는 악순환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공황을 출발점으로 하여 서로 연결된 산업순환의 여러 국면들은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의 파괴력이 강화되어 가는 과정이며, 오늘의 공황이 내일의 더 악화된 공황으로 전화되는 과정인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산업순환을 단지 시장, 신용, 화폐유통과 같은 현상으로만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공황국면을 경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궤변을 내놓는다.

그러나 반제·계급적인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공황국면을 파국에 직면한 갈림길이라고 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공황국면에 빠진 자본이 결국 파국으로 소멸될 수도 있고 반대로 파국을 비켜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황국면에 빠진 자본은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여 새로운 자본축적의 조건을 수습·정비함으로써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본이 착취를 강화하여 새로운 자본축적의 조건을 수습·정비하는 경우, 공황국면은 경제체제의 붕괴위기로 이어지지 않고 불황국면으로 이어지면서 산업순환운동을 계속하게 된다. 새로운 자본축적이 미래의 새로운 과잉생산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본이 공황국면에서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의 적대적 모순이 날카롭게 표출된다는 뜻이므로, 공황국면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 이행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성숙된다. 공황국면에서 만약 체제이행을 추동하는 사회변혁역량이 존재하는 경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 이행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공황과 경제위기를 산업순환론만이 아니라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으로도 해명한다.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law of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이란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발생, 발전, 소멸하는 과정을 규정하는 경제법칙이다. 자본가계급은 이윤율이 저하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여 노동임금을 삭감하거나, 대외무역에 힘을 기울여 국제수지 흑자를 내거나, 기업의 고정자본을 갱신하고 기술혁신을 추진한다. 자본가계급은 이윤율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본축적을 더욱 가속화하며 기술혁신으로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책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일 이윤 증대가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지 못하게 될 때 공황이 발생한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공황국면을 현대 제국주의론의 시각에서도 해명한다. 제국주의국가는 주기적으로 엄습해오는 공황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국의 경제를 군사화하고, 다른 나라의 물질적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도발한다. 미국의 제국주의체제에 예속된 나라들은 제국주의국가가 불황국면에 빠질 때마다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3. 경기지표는 위기조짐을 나타내고 있는가?

이 글에서 해명하려는 문제는 오늘 남(한국) 사회가 과연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경제성장률이 영점 이하로 곤두박질치고 그에 반비례하여 실업률이 치솟는 경제위기의 조짐이 나타났는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요즈음 남(한국) 정부기관들이나 민간연구기관들이 제시한 경기지표에 따르면, 남(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둔화되기는 했어도 영점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최악의 상태는 아니며, 실업률이 높아지기는 했어도 위기상황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8년 동안 1만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세계은행(IBRD)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현재 남(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1천4백달러로 세계 49위에 올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오른 것은 개발도상국의 뒤떨어진 경제수준을 겨우 벗어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9개 나라들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밖에 되지 않는 경우는 남(한국)과 터키밖에 없다. 이것은 남(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 8년 동안 계속 정체되어왔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경제성장률의 정체가 장기화되면서 영점 이하로 떨어질 수 있으며,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8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불황국면이 악화되고,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정세변동에 의해 누적된 민족·계급모순이 격화되는 경우 공황국면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장기불황국면에 빠져 있다가 최근에 겨우 활황국면으로 올라서고 있지만, 남(한국)의 불황국면과 일본의 불황국면을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을 갖추고 있는데 비해, 국제독점체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남(한국) 경제는 장기불황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것은 장기불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한국) 경제가 공황국면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통계청은 남(한국) 경제가 1998년 8월 불황국면의 저점을 지나 활황국면으로 접어들었고, 2000년 8월 호황국면의 정점에 올라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정점에 올라섰다고 발표한 2000년 이후 4년 동안 경제동향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00년 8월 이후 계속 요동치면서 불황국면으로 추락해온 경제동향을 차마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남(한국)에서 공황국면과 경제위기를 발생시키는 요인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 요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의 경험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의 경험에서 돋보이는 것은, 불황국면이 악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이 영점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활황국면에서 갑자기 외채위기 또는 외환위기가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1980년부터 1985년의 기간에 남(한국)에서 발생한 제1차 공황국면을 외채위기라고 부르고, 1997년부터 1998년의 기간에 발생한 제2차 공황국면을 외환위기라고 부른다.

1970년부터 남(한국) 경제에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미국 독점자본은 특히 남(한국)의 중화학공업부문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하하면서 예속화하였다. 그 결과 중화학공업부문은 급성장하였으나, 미국 독점자본의 과잉투자에 의하여 외채총량이 급증하였고 중화학공업이 과잉생산의 수렁이 빠져들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 남(한국)은 총외채 5백억달러를 짊어진 세계 4대 채무국으로 전락하였다. 과잉생산과 채무지불 능력마비라는 사상 최악의 공황국면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남(한국)은 국제독점자본의 국제환율조작책동에 의해서 외채위기를 간신히 비켜갔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선진 5개국(G5)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연석회의에서 선진 5개국이 국제외환시장에 개입하여 달러화를 평가절하하고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라는 이름의 국제환율조작책동을 자행함으로써 불황국면에 빠진 일본의 경제를 살렸고, 그에 따라 일본의 독점자본이 남(한국)에 집중적으로 투하됨으로써 남(한국)은 외채위기가 파국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채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국제독점체들에게 대한 이중적 예속을 심화시킴으로써 더욱 파멸적인 위기발생요인을 축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주목하는 것은,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 경제의 예속은 특정시기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활동 전반을 지배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예속의 심화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1997년에 남(한국) 경제를 두 번째 위기상황에 몰아넣었다.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의 근본원인도 역시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경제예속이었다. 세계적 판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동향을 살펴보면, 중남미 나라들은 1980년대의 외채위기를 겪으면서, 동유럽 나라들은 1990년대의 사회주의체제 붕괴를 겪으면서, 남(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은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제독점자본의 지배권 안으로 강제편입되었다.

1995년에 미국의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현한 뒤로 세계자본주의시장의 정보통신부문, 금융부문, 농축산부문을 장악한 국제독점체들의 거대한 지배력 앞에서 국제무역수지 악화로 악전고투하던 남(한국)의 예속경제는 살아남기 위해 악성 단기외채를 마구 끌어들였고, 그 결과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었던 1997년에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냄으로써 채무지불 능력이 마비되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 무렵 외환위기는 남(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러시아, 남미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였다.

남(한국)은 경제 전반을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외환위기가 파국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겨우 비켜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환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킴으로써 더욱 파멸적인 위기발생요인을 축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남(한국)의 경제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한 국제통화기금은 이른바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이라는 미명으로 사회복지재정을 축소하면서 살인적인 긴축재정과 고금리 통화정책을 강제하였고, 남(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따라 이른바 '시장의 합리성'이라는 미명으로 기간산업을 민영화하여 국제독점체들에게 헐값으로 팔아 넘겼으며, 기존의 관세보호무역체제를 개방무역체제로 교체하여 국제독점체들에게 문을 열어놓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각각 발생한 외채위기와 외환위기의 경험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 위기들이 저성장, 고물가, 고실업의 불황국면에서 발생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의 활황국면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 경제의 예속이 경제위기를 발생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경제예속이 경제성장을 중단시키고 경제체제를 파국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경제예속의 구조적 요인은 얼마나 극복된 것일까? 지금 노무현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라고 자랑하지만,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문제는 별반 의미가 없다. 여러 가지 경기지표들이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는 대로,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의 경제예속은 약화·감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어왔다.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정책을 강제로 집행하는 동안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 경제의 예속화는 최악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지금 남(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실업률은 증대되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경제성장률의 둔화를 막아보겠다고 하면서 미국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모든 것을 내맡긴 것은, 경제성장률의 회복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경제예속체제의 파국을 불러오는 일종의 자살준비행위였다. 출로를 찾지 못한 채 깊은 수렁에 빠진 남(한국)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세 번째의 위기는 예속경제체제가 붕괴하는 대파국이 될 것이다.

4. 경제예속의 심화와 국제독점자본의 수탈가중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남(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2번째로 크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이 될 수 없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남(한국)의 경제규모가 비대해졌다는 말은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 경제의 예속이 그만큼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남(한국) 경제가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한국) 경제규모의 비대화는 곧 경제예속의 악화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현실이 그런데도,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남(한국) 경제가 국제독점체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고 한다. 그들은 남(한국) 경제를 '외부충격에 허약한 체질'이라는 유연한 표현으로 설명하면서 남(한국) 경제의 예속성을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예속경제의 본질을 그럴듯한 말로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독점체들에 대한 남(한국) 경제의 예속이 악화된 현실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다.

첫째, 최근 서울 증시에서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의 유통기능이 저하되는 근본원인은, 국제독점체들의 자본투하가 사상 최대로 전면화되면서 국제독점체들의 수탈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울 증시의 지수는 2004년 4월에 9백선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하여 지난 7월까지 다섯 달 동안 연속으로 내림세를 타면서 7백선 중반까지 추락하였다. 서울의 증시분석가들은 6백60선까지 폭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3일자)

1992년 1월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자본자유화정책'에 따라 서울 증시를 국제독점체들에게 완전히 개방하였고, 증시개방 이후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12년은 남(한국) 경제의 심장부로 상징되는 서울 증시가 국제독점체들의 시장교란행위가 난무하는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남(한국)이 금융식민지로 전락한 기간이었다. 서울 증시의 개방은 국제독점체들의 점령과 뉴욕 증시에 대한 예속을 뜻한다.

서울 증시에서 국제독점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에 시가총액 기준으로 4.9%에 지나지 않았으나 오늘은 40%를 넘어섰다. 시가총액 상위 7개 종목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평균지분율은 거의 70%에 이른다. 2000년 말에 남(한국)에 침입한 외국기업들은 9백3개였는데, 2003년 11월말에는 3천1백개를 넘었다.

남(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투자는 1998년에 40억달러에 이르렀는데 2003년에는 1백25억달러로 급증하였다. 이것은 남(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3%를 국제독점자본이 장악하였음을 뜻한다. 다른 한편, 남(한국) 채권시장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투자는 2003년에 88억달러를 넘어섰다.

2002년 말 현재 남(한국) 은행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점유율은 20.9%이고, 증권사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점유율은 11.6%이다. 이것은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서 은행 점유율이 30배, 증권사 점유율이 3배가 늘어난 것이다. 남(한국) 은행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지분점유율은 1998년 말 11.7%, 1999년 말 20.0%, 2000년 말 25.3%, 2001년 말 24.5%, 2002년 말 24.9%, 2003년 말 38.6%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었다.

주목하는 것은, 국제독점자본의 투자가 직접투자가 아니라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국제독점자본의 직접투자는 2000년을 기점으로 하여 계속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국제독점자본의 직접투자 가운데서 장기적으로 이익을 빼내 가는 공장설립형 투자는 줄어들고, 단기적으로 이익을 빼내 가는 투기자본의 인수합병형 투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국제독점자본의 직접투자액 가운데서 공장설립형 투자의 비율은 2001년에 83.1%, 2002년에 76.8%, 2003년에 68.7%로 급속히 줄어들었으나, 인수합병형 투자는 2001년에 16.9%, 2002년에 23.2%, 2003년에 31.3%로 급속히 늘어났다. 2004년 1분기에 공장설립형 투자는 34.2%, 인수합병형 투자는 65.8%였다.

시장주의 경제학에서 이른바 고용창출효과와 설비투자효과를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공장설립형 투자는 국제독점자본이 지배하는 기업체를 통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이익을 수탈하는 방식인데 비하여, 인수합병형 투자는 국제독점자본들 가운데서도 투기자본이 남(한국)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서 불과 몇 해 안에 이익을 빼내 가는 더 악랄한 수탈방식이다. 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 은행산업에 진출해 있는 외국자본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금융자본이 아니라 단기수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펀드"라는 것이다.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자본은 자본 조달은 다른 나라에서 하고, 남(한국)에서는 이윤을 긁어모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국제독점자본이 서울 증시에 자본을 조달해주기 위해서 들어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04년 1월부터 4월까지의 기간에 국제독점자본의 투자액 가운데 직접투자는 6억5천만달러에 지나지 않고, 주식과 채권에 대한 투자는 1백64억달러나 되었다. 더욱이 국제독점자본의 주식투자 가운데서 시장매매를 통한 주식투자가 95.6%에 이르렀다. 남(한국) 경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10대 기업집단(group)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주식보유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서 2003년 말 현재 44.4%에 이르렀다.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자본의 수탈은 대체로 세 단계를 거치면서 진행된다. 첫째 단계는 엄청난 배당금을 챙겨 자기들이 처음에 투하했던 투자원금을 빼내 가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소액주주의 지분을 공개매수로 사들여서 자기들의 지분을 높이는 것이다. 대주주가 80% 이상의 지분을 장악하면 상장을 폐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단계로 상장을 폐지하고, 유상감자 등을 통해 자산을 모두 거둬 간다.

이처럼 국제독점자본이 남(한국)에서 자행하는 수탈의 첫째 단계는 이른바 배당금 지급이라는 '합법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자본은 1998년에 5억달러, 1999년에 10억3천만달러, 2000년에 18억4천만달러, 2001년에 22억4천만달러, 2002년에 24억4천만달러, 2003년에 33억8천만달러를 수탈하였다. 2004년 4월 현재 국제독점자본의 수탈은 이미 28억달러를 넘어섰으므로 올해 연말에는 사상 최대의 수탈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자본과 그 지배를 받는 예속독점자본은 생산행정에서 적은 가치를 먹고 많은 가치를 토해내는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그 잉여가치는 상품유통과정에서 여러 갈래의 이윤으로 전화된다. 전화된 이윤은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체들이 수탈하여 그들의 자산으로 분배하기도 하고, 세금이라는 형태로 노무현 정부의 수중에 들어가서 군사비로 소비되거나 정부관료의 봉급으로 분배되기도 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 들어가서 자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도 한다. 남(한국)에 침입한 국제독점자본과 그 지배를 받는 예속독점자본은 노동자가 창조한 잉여가치를 가지고 자기들의 권력, 체제, 기구를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국제독점자본과 그 지배를 받는 예속독점자본에게 돌아간 이윤은 그들의 방만하고 호화·사치스러운 생활에서 소모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다시 생산행정으로 돌아가서 그칠 사이 없는 확대재생산, 그칠 사이 없는 확대재착취를 반복한다. 자본의 회전에 따라서 예속이 심화되는 동안 남(한국)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대중은 빈궁에 빠져드는 것이다.

둘째, 남(한국)이 세계자본주의시장에서 상품경쟁력을 상실함으로써 수출경기침체에 빠지게 된 근본원인은, 국제독점체들의 선진기술력에 대한 예속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대상국은 홍콩을 포함하는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전체 수출규모에서 약 40%를 차지한다. 2003년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1백32억1백만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며 전체 무역흑자 1백49억9천말달러의 88%를 차지하였다.

현재 남(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은 반도체와 손전화다. 반도체는 전체 수출규모의 12.8%, 손전화를 비롯한 무선통신기기는 11.1%를 차지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중국에 대한 수출전망이 불안정한 기조를 보이고 있으며, 손전화와 반도체가 팔려나가는 국제시장도 역시 불안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중국 경제가 외환위기나 불황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데다가, 세계적 규모에서 손전화와 반도체에 대한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국제독점체들의 선진기술력에 대한 예속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기술무역적자다. 남(한국)의 기술무역적자는 1990년 10억6천5백만달러, 1996년 21억8천8백만달러, 2001년 20억2천4백만달러, 2002년 20억8천3백만달러, 2003년 24억2천만달러를 기록하면서 계속 늘어났다. 2003년에 발생한 기술무역적자의 경우, 정보통신기술부문은 9억1백만달러(37.2%), 전기전자기술부문 3억7천9백만달러(15.7%), 화학기술부문 2억6천9백만달러(11.1%), 건설기술부문 2억6천1백만달러(10.8%)였다. 제조부문별 기술무역적자는 반도체, 전자부품, 통신장비가 전체 기술도입액의 42.8%에 이르렀다. 국가별 기술무역적자는 미국 17억2천2백만달러, 일본 4억1천6백만달러, 독일 1억4천8백만달러였다.

국제독점체들의 선진기술력에 대한 예속은 세계자본주의시장에서 상품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졌고, 그 동안 수출로 버텨온 남(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남(한국)의 중소기업은 낙후한 기술력으로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어 타격을 입고 있으며, 남(한국)의 기간산업은 국제독점체의 이윤수탈로 타격을 입고 있다.

5. 불황국면의 지속과 민족·계급모순의 격화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거짓말이 있다. 그것은 대중의 소비심리가 약화되어 불황국면이 지속된다는 거짓말이다. 그들은 불황국면의 발생원인을 대중심리문제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국)에서 불황국면이 발생한 원인은 대중의 소비심리가 약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남(한국) 경제에 침입한 국제독점체들의 과잉투자와 국제독점자본의 지배를 받는 대기업들의 과잉생산으로 실업과 물가상승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제기된 경제위기설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불황국면의 발생원인에 관한 분석이다. 그 분석은 '생산성을 웃도는' 높은 수준의 노동임금, 정치투쟁을 일삼는 전투적 노동조합의 '후진적 관행',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불황국면을 지속시키는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 분석은 불황국면의 발생원인을 '형평과 복지를 중시하는' 노무현 정권의 시장규제에서도 찾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분석은 근로대중에 대한 적대의식이 빚어낸 궤변이다. 남(한국)의 노동자들이 받는 노동임금이 생산성을 웃도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최후의 생존권마저 침해당하는 노동자들이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을 왜곡하는 궤변이다. 남(한국)의 노동자들이야말로 비정규직, 반실업상태, 가파른 물가상승률에 짓눌린 노동임금을 받으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

전투적 노동조합의 투쟁이 마치 경제를 불황국면에 빠뜨린 원인이나 되는 것처럼 조작하는 저들의 주장은 날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남(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전개하는 투쟁은 거의 모두 단위산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생존권투쟁에 국한되고 있으며, 미국 제국주의세력과 친미예속정권을 반대하는 정치투쟁은 아직 전면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국)의 노동조합은 생존권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남(한국) 경제가 불황국면에 빠진 근본원인이 예속경제체제 속에 누적된 민족·계급모순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 원인을 노동자들의 정당한 사회정치활동으로 돌리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경제회생을 위해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자를 기업체에서 마음대로 내쫓음으로써 실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은 노무현 정권이 '형평과 복지를 중시하는 시장규제정책'을 실시하여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있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것도 역시 사실과 다르다. 국제독점자본과 그것의 지배를 받는 예속독점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노무현 정권은 형평과 복지를 중시하는 근로대중 중심의 경제정책을 실시한 적도 없고, 그런 정책을 실시할 의사도 없는 것은 명백하다.

주목하는 것은, 불황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회생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계속 높아지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불황국면의 지속이 공황국면으로 악화될 수 있고, 거기에 더하여 만일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상황이 변동되는 경우 예속경제체제의 파국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비관적 전망의 끝은 어디일까? 남(한국)에서 대량실업사태와 가파른 물가상승률이 공황국면으로 악화될 때, 근로대중의 생존권은 지금 보다 더 짓밟힐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러한 것처럼, 공황국면에서 생존권을 짓밟히며 고통을 겪는 사회집단은 근로대중이다. 명백하게도, 경제위기설이 촉발한 비관적 전망의 끝은 근로대중 생존권의 위기인 것이다. 이로써 경제위기에 관한 모든 논의가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까닭이 자명해진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독점체의 편에 서있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태도를 바꿔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곧잘 민생안정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한국)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을 이른바 '공권력'과 각종 악법으로 짓누르면서 근로대중의 생존권에 대한 국제독점자본과 예속독점자본의 이중적 침해를 음으로 양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반제·계급적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의 민족모순은 예속성을 연결고리로 하여 남(한국) 사회의 계급모순과 서로 뒤엉켜있다. 따라서 민족모순의 격화는 계급모순의 격화를 촉발하면서 한(조선)민족을 위협하게 되고, 계급모순의 격화는 민족모순의 격화를 촉발하면서 남(한국) 근로대중을 짓밟게 된다.

남(한국) 근로대중은 불황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남(한국) 사회의 계급모순 격화가 자기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고통을 감당한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른바 민생불안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언론들이 최근 민중의 불안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음을 자주 보도하는 것은 남(한국) 사회에서 민족·계급모순이 차츰 격화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계가 있다.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부문별, 단위별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경제투쟁의 범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반제·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가 그것이다. 근로대중의 실생활에서 겪는 불안과 고통은 민족·계급모순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양상이지만, 그러한 양상이 곧 모순의 실체는 아닌 것이다.

남(한국) 사회가 기업과 은행의 파산, 대량실업사태, 물가폭등이 일어나는 공황국면에 빠질 때, 근로대중은 자기의 생존권을 짓밟는 모순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종래의 생존권쟁취투쟁을 반제·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한국)의 장기불황국면은 민족·계급모순을 격화시킬 것이며, 모순이 격화되는 것에 따라 남(한국)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은 반제·계급적 정치투쟁으로 전환될 것이다.

짚고 넘어갈 것은, 남(한국)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반제·계급적 정치투쟁으로 전환되는 것은 정치적 무중력상태에서 가능하지 않으며,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결집한 통일전선의 정치적 중력상태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6. 국제독점자본의 동반철수와 예속경제체제의 붕괴

한(조선)민족 대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총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패배할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주한미군을 철군하는 최후의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한미군 철군을 결정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단결된 반미자주화투쟁이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느냐 아니면 철군하느냐 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에 의해서 처리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결정을 좌우하는 요인은, 미국의 '국익(national interests)'이라는 명분으로 위장된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이익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이익을 추구하는 책동이 영구히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시기에 조성된 정치·군사적 요인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변화된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변화된 적절한 사례는,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이 패전으로 막을 내린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사례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과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석 달을 앞둔 시점에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눈 대화에서 드러났다.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담은 녹음테이프는 2004년 8월초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 자리를 불명예스럽게 떠난 때로부터 30주년을 맞아 공개되었는데, 두 사람의 대화내용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베트남 침략전쟁에 동원한 미군을 철군하는 시기와 방법을 상의한 것이다. 결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의 집권연장을 위하여 남베트남에서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이익을 포기하고 미군을 철군하는 최후의 결정을 내렸으니, 그 결정에 따라 1973년 1월 미군은 베트남 침략전쟁에서 패배를 자인하고 철군하였고, 1955년 10월에 수립되어 미국 제국주의체제 아래서 연명해오던 베트남공화국은 미군이 철군하자 3년을 버티지 못하고 20년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베트남노동당 정치국원 레 둑 토(Le Duc Tho)와 키신저가 1973년 1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쟁종식을 위한 고위급회담에서 미군을 철군시키는 최종합의를 이루어냈던 것과 달리, 한(조선)반도에서 미군을 철군시키는 최종합의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미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조·미 정상회담은 주한미군 철군, '핵문제', 조·미 관계 정상화라는 3대 과제를 일괄하여 해결하는 사상 최대의 정치적 사변이 될 것이다.

조·미 정상회담은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공식방문하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워싱턴을 공식방문하여야 성사될 수 있는데, 내외정세의 복잡성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워싱턴을 공식방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조·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클린턴(William J. Clinton)이 집권 말기에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던 것과 달리, 부시(George W. Bush)는 클린턴 정부가 진행하였던 조·미 정치회담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6자회담으로 돌아서서 '핵문제' 해결에 장애를 조성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미 정치회담을 계속 진행하는 경우 부시가 평양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조·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군을 합의해야 하는 커다란 부담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시 정부가 조·미 정치회담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바람에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에 장애가 조성되었으나, 오늘 한(조선)반도 정세에서 돋보이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이익을 추구하는 책동이 특정시기에 조성된 정치·군사적 요인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변화되는 중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는 1994년 이후 10년 동안 '핵문제'를 가지고 지속되어온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압박공세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게 되었다. 2004년 8월 11일 미국 워싱턴의 전국기자협회(NPC)에서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장 리처드 루가(Richard G. Lugar)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외교력과 경제력을 총동원하여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를 북(조선)의 '핵문제'라고 지적하였던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핵문제' 때문에 얼마나 심한 정치적 압박에 직면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사례다.  

명백하게도, '핵문제'가 제기된 이후 한(조선)반도 정세의 정치·군사적 변화는 두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하나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모순이 격화되어 조·미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다. 그러나 한(조선)반도에서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전쟁도발위험이 상존하고 있지만, 그 전쟁도발위험은 북(조선)의 핵억제력(nuclear deterrence force)에 의해서 억제되고 있으므로 조·미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만큼 한(조선)민족 대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모순이 격화되지는 않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모순이 격화되어 주한미군이 철군하고 한·미 동맹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력에 의해서 억제되어 왔지만, 그 지배력이 '핵문제'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군 계속주둔을 강행함으로써 '핵문제'의 올가미에 걸려있는 제국주의 지배력의 목이 졸리느냐 아니면 주한미군을 철군함으로써 '핵문제'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선택의 시간이 촉박한 것은 물론이다. 한(조선)민족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미국 제국주의세력에게 총공세를 가할 때, '핵문제'의 올가미에 걸려있는 미국 제국주의세력은 불가피하게 주한미군을 철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 관해서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논하였으므로 이 글에서는 자세히 논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에서 추가로 제기하는 문제는, 한(조선)반도에서 민족·계급모순이 첨예화되면서 주한미군이 철군하기 시작할 때, 국제독점체들이 모든 것을 챙겨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명백하게도, 주한미군 철군은 국제독점체들에게 예속된 남(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며 예속경제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 안에 구축되어 있는 예속경제체제는 그 지배체제를 유지해온 물리적 힘의 상실, 곧 주한미군 철군에 의해서 붕괴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군은 정치·군사부문에서 한·미 동맹체제를 붕괴시킬 것이고, 경제부문에서 예속경제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민족민주운동권에서는 주한미군 철군으로 한·미 동맹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을 논해왔는데, 실제로 주한미군 철군은 예속경제체제부터 붕괴시킬 것이 분명하다.

남(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국제독점체들은 주한미군 철군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이고, 따라서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 붕괴의 시작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국제독점체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주한미군 철군문제를 주시하고 있으며, 철군조짐이 나타나자마자 남(한국)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주한미군 철군이 국제독점체들의 철수를 결정적으로 촉발시키게 되기 때문에 미국 제국주의세력은 주한미군을 감군하면서도 철군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아시아의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북(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한미군 철군으로 '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 노무현 정권도 주한미군 철군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만일 주한미군이 철군하는 경우 한(조선)반도에 이른바 '안보공백'이 생겨 북(조선)의 '남침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하면서 주한미군 철군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이 철군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예속경제체제의 붕괴인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세력은 주한미군 철군문제를 가지고 노무현 정권의 목에 걸린 예속의 올가미를 조이면서, 남(한국) 민중의 반미자주화투쟁을 짓누르는 공세에 그 정권을 앞세우고 있다.

첫째, 주한미군 철군과 더불어 국제독점자본이 철수하는 경우, 그 동안 국제독점자본이 집중적으로 수탈하여 피폐해진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는 급속히, 그리고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정치·군사적 변동을 원인으로 하여 예속경제체제가 붕괴하였던 역사적 경험은 식민지조선의 예속경제체제가 일본 제국주의의 패전으로 급속히 무너졌던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었다. 당시 일제가 발행하였던 전시채권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갑작스러운 예금인출사태로 일제의 식민지은행은 파산하였으며, 일제의 식민지기업은 한꺼번에 동반철수하였다.

2001년 초 아르헨티나 경제가 국제독점체들의 과잉투자로 과잉생산을 촉발시켜 결국 채무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프랑스계 은행 두 개와 캐나다계 은행 한 개가 철수하였고, 그에 따라 아르헨티나 증시는 급속히 마비되었다. 아르헨티나 증시는 미군 철군과 같은 정치·군사적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었는데도 국제독점자본의 동반철수라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비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제독점체들의 수탈로 허약해진 남(한국)의 경제체제에 주한미군 철군이라는 정치·군사적 위기가 닥치는 경우,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겪었던 것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2003년 9월 말 현재 남(한국)의 은행자본을 점유하고 있는 국제독점자본은 38.6%에 이르렀는데, 국제독점자본이 동반철수를 하는 경우 서울 증시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 것이다. 남(한국)에서 국제독점자본이 직접투자한 기업은 모두 8천3백35개나 되고, 그 투자액은 4백17억달러나 된다. 국제독점자본이 동반철수하는 경우 남(한국) 기업은 한꺼번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최근 국제독점자본의 철수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는 남(한국) 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구호만 내놓고, 국제독점자본의 이윤수탈과 철수조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다급해진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를 통하여 '대안연대회의'라는 민간연구단체에게 국제독점자본의 철수조짐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용역보고서를 작성해달라고 의뢰하는 것뿐이었다.

지난 시기 남(한국)에 국제독점자본을 더 많이 끌어들일수록 경제를 더 빨리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던 남(한국) 정부는 자신이 끌어들인 국제독점자본의 이윤수탈과 철수조치에 의해서 결국 경제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1997년 말에 예상하지 못한 채 외환위기에 빠졌던 경험을 잊어버리고, 증시가 마비되고 경제체제가 붕괴되는 가능성을 우려하기는커녕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규모가 큰 남(한국) 경제가 설마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남(한국)에 대한 국제독점자본의 이윤수탈이 극에 이르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볼 때, 국제독점자본이 이윤을 모두 빼내간 뒤에 주한미군 철군이 시작되는 것과 발맞춰 전면적으로 동반철수하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남(한국) 경제가 앞으로 계속 장기불황국면에 빠져있는 동안 '핵문제'가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대로 풀려나가면서 주한미군 철군이 시작되는 경우, 국제독점자본이 동반철수하는 속도는 빨라질 것이며, 그에 따라 이미 불황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허약해진 남(한국) 경제는 공황국면에 빠지면서 증시가 마비되고 경제체제가 붕괴되는 파국적 위기를 맞을 것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어온 장기불황국면이 최근 더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그러한 최악의 가능성을 그럴듯한 추론으로 여길 수 없음을 말해준다.

남(한국)의 경제위기는 몇 해 전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군중폭동을 불러올 가능성을 수반한다. 장기불황국면에 빠져 허덕이던 아르헨티나의 여러 지방들에서 2001년 12월에 시작된 약탈과 폭동은 곧 수도권으로 확산되었다. 12월 19일 분노한 민중은 델라루아(Del la Rua) 정권 퇴진을 외치면서 대통령궁을 향하여 진격투쟁을 벌였다. 민중의 정권퇴진투쟁으로 타격을 입은 대통령과 내각 전원이 사퇴함으로써 결국 델라루아 정권은 무너졌다.

7. 주한미군 철군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보복

주한미군 철군은 한(조선)반도에서 작동해오던 미국 제국주의정책의 파탄을 뜻한다. 정책파탄이란 정치적 패배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한(조선)민족과 벌인 대결에서 패한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주한미군을 철군하면서 한(조선)반도에서 순순히 물러갈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제국주의국가가 약소민족으로 업신여기는 한(조선)민족에게 정치적 패배를 당하였을 때, 여러 형태의 보복조치를 취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주한미군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조건에서 철군할 것이므로, 주한미군 철군 이후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보복은, 북(조선)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남(한국)에 갓 세워져 한·미 동맹체제를 파기하는 등의 강력한 반미자주화정책을 실시하는 새로운 정권, 곧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의 범위는 경제부문에 국한되므로, 남(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문제에 관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지적하는 것은, 자주적 민주주의정권 수립이 한·미 관계가 예속관계에서 적대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이다. 2004년 8월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이라크 파병반대의 기치를 들고 주한미국대사관을 향하여 시위투쟁을 전개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한·미동맹 파기'라는 투쟁구호를 든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연방통일국과 미국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은 한·미 동맹체제를 파기하면서 남(한국)에서 친미예속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반미자주화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은 독자적인 정권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에 따라 북(조선) 정권과 연합하여 이른 시일 안에 연방통일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연방통일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의 반미자주화정책으로 형성된 한·미 적대관계는 자동적으로 소멸되고, 연방통일국과 미국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그 새로운 관계는 동맹관계, 예속관계, 적대관계가 아닌 중립관계가 될 것이다. 연방통일국의 대외노선은 자주적 영세중립화노선이 될 것이므로, 연방통일국과 미국이 반드시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연성은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을 고사·전복시키려는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보복은 연방통일국의 대미외교에 의해서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베트남이 통일된 이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미국의 관계는 적대적이었으나, 미국 제국주의세력은 통일된 베트남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베트남사회주의정권을 전복하려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이 수립된 이후, 남(한국)에 대한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보복여부는 연방통일국과 미국의 새로운 관계에 의해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에 대한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해상봉쇄조치가 예상되는 기간은 자주적 민주주의정권 수립부터 연방통일국 수립까지의 격변기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어째든 주한미군이 철군한 뒤에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한(조선)민족에게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복은, 제7함대와 일본 해상자위대가 해상합동작전을 벌이면서 동중국해에서 제주도로 통하는 해상수송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남(한국)에 갓 세워진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을 고사·전복시키기 위한 해상봉쇄조치다.

물론 자주적 민주주의정권 수립 이후의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보복은 여러 부문에서 자행될 수 있는데, 이 글의 범위는 해상봉쇄조치에 국한된다. 미·일 동맹군이 남(한국)의 해상수송로를 봉쇄하는 경우, 남(한국)에서는 어떠한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첫째, 해상원유수송로가 차단되면, 남(한국) 예속경제체제는 붕괴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석유는 산업체계 전반을 가동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자원이므로, 석유의 안정된 공급이 남(한국)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만일 석유수입이 중단되는 경우 남(한국)의 경제는 견디지 못한다.

남(한국)은 세계에서 제4위의 석유수입, 제7위의 석유소비, 제6위의 원유정제능력을 자랑한다. 남(한국)은 하루 평균 2백만배럴 이상의 원유를 사들이고 있다. 남(한국)이 사들이는 원유의 80%는 중동의 여덟 개 산유국에 의존되어 있다. 남(한국)은 아시아 원유수입국이라는 이유로 원유수입액에 더하여 추가지불금 50억달러를 부담하고 있다. 남(한국)의 2003년도 원유수입액은 중국의 원유수입액 1백98억 달러보다 많은 2백30억달러를 기록하였다.

만일 미국의 해상봉쇄조치가 가해지는 경우, 타이거오일, 리드코프, 이지석유, 페트로코리아, 바울석유, 휴론, 오일코리아, 코엔펙, 삼연에너지 등 남(한국)의 9개 석유수입사가 문을 닫게 되고, 남(한국) 정유업체들이 가동을 멈추게 된다. 남(한국)의 정유업체는 남(한국) 석유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 에쓰케이(SK)정유를 필두로 하여 엘지(LG)칼텍스정유, 에쓰(S)오일, 현대오일뱅크, 인천정유가 있다. 인천정유는 최근 중국 국영석유회사 싸이노켐(CINOCHEM)에게 팔렸다. 이 정유업체들은 자동차연료로 쓰이는 휘발유, 경유(디젤), 천연가스(LPG)를, 선박연료로 쓰이는 경유를, 항공기연료로 쓰이는 제트연료를, 공장연료나 화력발전소연료로 쓰이는 중유를, 가정연료로 쓰이는 천연가스와 등유를 생산한다. 또한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비료, 의약품, 화장품 등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를 생산한다.

남(한국)의 석유수입사들과 정유업체들이 일제히 가동을 멈추면, 남(한국) 전역에 있는 저유소 8백5개소, 대리점 1백10개소, 그리고 남(한국) 전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 약 1만8백개소가 문을 닫게 된다. 이것은 모든 승용차와 화물차의 운행이 중단되는 것을 뜻하며, 항공기에 대한 유류공급이 끊겨 항공운항이 중단되고, 선박에 대한 유류공급이 끊겨 화물선, 여객선, 어선의 발이 묶이는 것을 뜻한다. 남(한국)의 교통체계와 운송체계가 마비되는 것이다.

또한 남(한국)의 정유업체들이 가동을 멈추면, 남(한국) 전역에 있는 중유화력발전소들이 발전을 중단하게 된다. 중유를 쓰는 화력발전소는 수도권과 중부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평택화력발전소(1백40만kw), 경인공업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보령화력발전소(1백만kw)와 인천화력발전소(1백15만kw), 전라남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호남화력발전소(56만kw)와 여수화력발전소(50만kw), 충청남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서천화력발전소(40만kw), 울산에 전력을 공급하는 영남화력발전소(40만kw), 서울에 전력을 공급하는 서울화력발전소(38만kw), 부산에 전력을 공급하는 부산화력발전소(33만kw), 강원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영동화력발전소(32만kw), 제주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제주화력발전소(25만kw)와 남제주화력발전소(2만kw) 등이다. 이 발전소들의 발전설비용량은 6백71만kw로서, 남(한국) 발전설비용량에서 13%를 차지한다. 중유화력발전소의 발전중단은 미증유의 전력대란을 일으키게 된다.

미국의 해상봉쇄조치로 원유수송로가 끊기더라도, 남(한국)은 당분간 비축원유를 방출하여 석 달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남(한국)의 원유비축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여수기지, 그리고 울산기지와 거제기지 등이 있다. 석유류 비축기지는 동해기지, 구리기지, 곡성기지, 서산기지, 여천기지, 용인기지, 평택기지 등이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정부와 민간업체의 2004년도 석유비축량은 정부비축량이 7천4백60만배럴, 민간업체 비축량이 7천9백40만배럴로, 남(한국)이 1백6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1억5천4백만배럴이라고 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세계 석유재고의 소비지속일수는 88일 정도인데 수송기간 등을 뺀 잉여재고수준은 60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둘째, 만일 농축산물 해상수송로가 차단되면, 남(한국)은 치명적인 식량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2004년 3월 농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한국)의 식량자급도는 1996년에 26.4%, 1997년에 30.4%, 1998년에 31.4%, 1999년에 29.4%, 2000년에 29.7%, 2001년에 31.1%, 2002년에 30.4%였다. 2003년의 식량자급도는 26.9%밖에 되지 않는다. 식품별 자급도는 육류 82.0%, 과일류 88.9%, 우유류 81.0%, 어패류 63.1%, 곡물류 31.0%다. 2003년도 곡물별 자급도는 서류 98.7%, 쌀 97.5%, 보리 45.5%, 콩류 6.9%, 옥수수 0.8%, 밀 0.1%였고, 육류 가운데 닭고기는 76.0%, 쇠고기는 36.6%였다.

칼로리 기준 자급률은 2002년에 47.1%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였다. 칼로리 기준 자급률은 1970년 79.5%, 1980년 70.0%, 1990년 62.6%, 1995년 50.6%, 1999년 49%, 2000년 50.6%, 2001년 49.2%로 계속 떨어져 왔다.

이처럼 식량자급도가 낮은 남(한국)의 농축산물 해상수송로를 미·일 동맹군 함대가 봉쇄하는 경우, 중국에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식량을 수입하면 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류공급 중단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수송체계가 마비된 조건에서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하는 것도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8. 낡은 경제체제 붕괴 이후 새로운 경제체제의 수립

주한미군 철군은 지금까지 남(한국)이 경험하지 못하였던 두 가지 충격을 가할 것이다. 그 것은 정치·군사부문에서 한·미 동맹체제를 붕괴시키는 충격이고, 경제부문에서 예속경제체제를 붕괴시키는 충격이다.

한·미 동맹체제를 붕괴시키는 충격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대사변을 일으킬 것이고, 예속경제체제를 붕괴시키는 충격은 낡은 경제체제를 새로운 경제체제로 교체하는 대사변을 일으킬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한미군 철군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 기회와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가 붕괴하는 미증유의 혼란을 한꺼번에 불러올 것이다.

그런데 민족주체적 관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조국통일이 실현되면 부유한 남(한국)이 가난한 북(조선)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 이른바 '통일비용'을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세변화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는 우매한 발상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주한미군이 철군하고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경제위기에 몰리는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남(한국)이다. 북(조선)은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제재조치를 차츰 무력화시키면서 자기의 사회주의적 자립경제체제를 공고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문제는 예속경제체제가 붕괴된 폐허에서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군과 그에 따른 한·미 동맹체제 붕괴로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이 완성되고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격변기에 남(한국) 민중이 겪게 될 경제난을 극복하는 전략이 민족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가 붕괴된 폐허에서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제기되는 과업은 새로운 자립경제체제의 수립이다.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는 문제는, 낡은 예속경제체제를 새롭고 진보적인 자립경제체제로 교체하는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속경제체제가 붕괴된 폐허에서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새로운 자립경제체제를 세우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주한미군이 철군하고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를 자립경제체제로 교체하면서 남(한국) 민중의 경제적 생존권을 보장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주의정권과 북(조선)의 자주적 사회주의정권이 공존, 공영, 공리의 원칙에 따라서 전민족적인 힘으로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

국제독점자본의 동반철수로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가 붕괴된 조건에서, 국제독점자본에게 예속된 기존의 경제체제를 원상복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한(조선)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붕괴하는 예속경제체제의 원상복구가 아니라 새로운 자립경제체제의 신속한 수립이다. 그런데 예속경제체제가 붕괴한 이후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이 새롭고 진보적인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경제과업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주한미군 철군 이후 미국의 보복공세를 파탄시키기 위하여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주의정권과 북(조선)의 자주적 사회주의정권이 힘을 합하여 해결하여야 할 전략목표는, 연방통일국 안에서 남북경제의 상호협력을 전면화하여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연방통일국의 경제전략은 북(조선)의 자주적 사회주의체제와 남(한국)의 진보적 민주주의체제의 차이를 서로 인정·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자립경제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통일적 노선을 추진하는 것이다.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수립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민족공조로 석유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조선)의 남포 앞바다 대륙붕에 묻혀있는 석유자원을 민족공조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그 지역에 대한 조광권은 노르웨이 석유탐사회사인 세계지공과학사(Global Geospace Science)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계약기간은 2004년 4월 30일로 끝났다. 현재 한국석유공사가 북(조선)의 석유자원을 민족공조로 개발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중이다. 북(조선)의 발표에 따르면, 북(조선) 각지에 묻혀있는 석유자원의 총매장량은 5백88억2천4백만-7백35억3천만배럴로 추정된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2년 9월 5일자)

9. 북(조선)의 경제특구 개발사업과 남(한국)의 중소기업

국제독점체들이 남(한국)에서 동반철수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장악·관리해오던 기간산업의 자산과 기술을 모조리 빼내갈 것이다. 이것은 기간산업의 완전파산을 뜻한다. 남(한국)의 노동계급은 투쟁으로 국제독점체들의 자산철수를 저지할 것이며,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은 국제독점체들로부터 되찾은 기간산업을 국영기업화하여 민중 전체의 소유로 만들 것이다.

국제독점체들이 철수하고 기간산업이 파산한 조건에서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길은, 국제독점체들의 동반철수로 파산한 기간산업을 국영기업으로 개편·재건하면서, 국제독점자본에 예속되지 않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새롭고 진보적인 경제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당연히,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주의정권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남(한국)의 중소기업은 2002년 현재 2백95만개, 종사자는 1천39만명에 이른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 종사자의 비율은 2002년 현재 86.7%, 생산액 비중은 50.8%, 수출 비중은 42.2%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체제의 물질적 기반이다. 남(한국)의 예속경제체제가 붕괴하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중소기업을 보존한다면,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세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남(한국)의 중소기업은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의 물질적 기반이며, 동시에 북(조선)의 사회주의기업들과 더불어 연방통일국의 경제를 건설하는 민족번영의 기초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중소자본가를 통일전선에 동참시키고 그들이 장차 자주적 민주주의정권 수립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할 근거가 자명해진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는 장기불황국면에 견디지 못한 남(한국)의 중소기업이 몰락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02년 10.21%에서 2003년에는 5.39%로 급속히 줄었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5.3%에서 4.6%로 줄었다. 중소기업체 가동률은 73.2%에서 68.8%로 떨어졌다.

또한 장기불황국면에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그로써 이른바 '산업기반의 공동화'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 한 해 동안 해외로 빠져나간 남(한국)의 기업은 약 1천8백개나 되었다. 하루 평균 5개 기업이 계속하여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소기업의 연쇄도산과 해외이전이 가속화될 경우, 한(조선)민족은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체제를 세우는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중소기업의 연쇄도산과 해외이전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제독점자본과 그 지배를 받는 예속독점자본을 위한 정책에 몰두하고 있는 그들로부터 중소기업을 살리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중소기업의 동반붕괴를 막고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의 물질적 기반을 보존하는 문제도 역시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그 문제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대할 때 다가오는 것은 북(조선)의 경제특구 개발사업이다.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신의주와 개성에서 추진되는 경제특구 개발사업은 장기불황국면에 견디지 못해 연쇄도산과 해외이전으로 붕괴하는 남(한국)의 중소기업에게 열어놓은 재생의 활로다. 북(조선)은 신의주와 개성의 두 전략지역을 국제독점체들이 장악한 세계자본주의시장에 개방한 것이 아니라, 장차 연방통일국의 민족자립경제의 물질적 기반이 될 남(한국)의 중소기업에게 개방한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의 관점에 서있는 사람들이 북(조선)의 경제특구 개발사업을 '자본주의 실험' 또는 '자본주의 도입'으로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주목하는 것은, 연방통일국의 통일경제를 남북의 공존, 공영, 공리 원칙에 따라 상호결합하는 새로운 민족자립경제체제로 건설하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국통일방략이라는 점이다. 신의주와 개성의 두 전략지역을 연쇄도산과 해외이전으로 붕괴하는 남(한국)의 중소기업에게 개방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주에서 평양으로 직통하는 전략요충지인 신의주지역과 군사분계선에서 평양으로 직통하는 전략요충지인 개성지역에는 원래 조선인민군 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지 않은 조건에서 전략요충지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부대를 옮기고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그 정치적 결단은 연방통일국의 물질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의주와 개성에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새로운 경제건설전략이 6.15 공동선언 발표 직후에 추진되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의 최홍규 국가계획위원회 국장의 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로운 경제건설전략이 국가계획 규모로 실행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 말부터라고 한다. (『조선신보』 2002년 1월 31일자)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고 명시한 6.15 공동선언은 신의주와 개성의 두 전략요충지를 남(한국) 중소기업에게 개방한 정치적 결정에 의하여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북(조선)은 2002년 9월 23일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사업을 공식 발표하였고, 북(조선)으로 귀화한 네덜란드 국적의 젊은 화교기업가 양빈(楊斌)을 행정장관에 임명하였다. 신의주 경제특구는 북(조선), 남(한국), 일본, 중국의 동북3성의 물동량이 교차하는 동북아시아 최대의 물류거점이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는 전략요충지에 10년 동안 1천5백억달러의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1백32평방km 규모의 국제기업단지를 개발하는 거창한 국책사업이다. 신의주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국책사업이 어떻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추진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은, 양빈의 요청으로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준비사업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해온 중국의 전기작가 관산(關山)이 집필한 책 『불을 훔친 불행한 사람(不幸的盜火者)』에 그 일부가 담겨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는 중국 언론들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사업에 관하여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중국 공안당국은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사업이 공식 발표된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난 10월 26일 신의주 경제특구 행정장관 양빈을 체포하고 불법토지개발 및 탈세에 관한 혐의 등으로 구속하였다.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사업은 중국의 방해공작 때문에 당분간 지체되었지만, 북(조선)의 적극적인 외교노력으로 그의 석방과 복귀는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행정장관 양빈이 신의주 경제특구를 '동북아시아의 진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던 개발사업은 단순히 경제개발사업이 아니라, 그의 말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성대국 건설구상의 일환"이므로(『조선중앙방송』 2002년 9월 24일자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 2002년 9월 24일자 보도), 북(조선)은 중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재가동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성 경제특구 개발사업은 부산에서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이어지며 한(조선)반도 서부지역을 종단하는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교통운수건설사업과 맞물린 것으로서, 비무장지대 남측지역 관할권을 장악한 주한미군사령부가 사업추진을 방해하여 한때 지체되기도 하였으나, 주한미군 제2사단의 이라크 차출과 후방재배치가 추진되면서 일단 고비를 넘겼다.

지금 1백만평 규모의 제1단계 부지조성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개성 경제특구에는 남(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제1단계로 2007년까지 조성될 1백만평 단지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2백50개소밖에 되지 않는데. 이미 1천6백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입주를 바라고 있다. 2천만평 규모의 개성 경제특구 개발사업이 모두 끝나 2천개의 중소기업이 자리를 잡는 시기는 2011년으로 예상된다.

현재 신의주와 개성의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미국의 대북(조선)경제제재조치다. 그 조치는 1997년 7월에 미국의 주도로 체결된 바쎄나 협정(Wassenaar Arrangement)에 의해서 강제되고 있다. 남(한국)의 중소기업이 신의주와 개성의 경제특구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원산지는 당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표시되는데, 북(조선)에서 생산한 상품을 수출하는 경우 미국의 대북(조선)경제제재조치에 막혀 관세를 많이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신의주와 개성의 경제특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미국의 대북(조선)경제제재조치부터 걷어져야 한다.

미국의 대북(조선)경제제재조치를 걷어내는 것은, 남(한국)의 중소기업과 북(조선)의 수출기업 모두에게 돌아가는 민족공동의 이익으로 되었다. 그 문제도 역시 민족공조역량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10. 한(조선)민족의 북방육상통로 개척

지난 50년 동안 남(한국)은 미국의 태평양지배체제에 예속되어 남방해상통로로 세계자본주의시장을 오가며 지내왔다. 분단장벽으로 막혀있는 북방육상통로는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나 장차 군사분계선이 철폐되고 한(조선)반도가 통일되면, 한(조선)민족은 북방육상통로를 통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교역을 활발히 추진하게 될 것이다. 미·일 동맹군의 해상봉쇄조치를 예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세계에서 가장 긴 아시아-유럽 대륙횡단철도의 개통과 총연장 14만 km가 되는 '아시아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결정적으로 촉진시킬 것이며, 그 철도와 도로는 연방통일국의 민족자립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전략통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극동경제신보(Far Eastern Economic Review)』 2004년 5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은 '아시아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한 국제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한다.

한(조선)민족의 북방육상통로 개척사업 추진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북(조선), 남(한국), 러시아가 전력망을 단일화하는 것이다. 단일한 전력망이 구축되어야 한(조선)반도에서 연해주를 거쳐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장거리 국제전기철도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 남(한국), 러시아는 2003년 8월 러시아 극동의 하바로브스크(Khabarovsk)에서 단일 전력망 구축사업을 위한 제1차 3자회의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3자회의에서 단일 전력망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하였으며, 2004년 5월 20일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제3차 3자회의를 진행하였다.

한(조선)민족의 북방육상통로가 닿는 곳은 만주와 시베리아인데, 그 가운데서도 한(조선)민족이 주목하는 곳은 시베리아다. 중국의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부주석)가 2000년에 직접 지시하였던 고구려 역사 찬탈책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장차 중국이 한(조선)민족의 연방통일국을 견제하는 패권주의 정책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로 통하는 북방육상통로는 연해주를 거쳐 시베리아로 통하는 북방육상통로에 비하여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한(조선)반도 주변 네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조선)반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나라다. 러시아가 한(조선)반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까닭은, 한(조선)반도가 통일되는 경우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연방통일국의 남북종단철도와 연결되어 러시아와 연방통일국 사이에 경제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한(조선)민족이 시베리아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연방통일국의 북방육상통로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기까지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베리아에 묻혀있는 무진장한 화석연료자원을 연방통일국의 동력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천3백80만평방km가 되는 시베리아에는 세계 석유의 10%, 세계 천연가스의 20%가 묻혀있다. 시베리아에 묻혀있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금, 다이아몬드 같은 지하자원 가운데서 개발된 것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는 하루 평균 8백22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세계 2위의 원유 수출국이며, 1천7백조입방feet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시베리아는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21세기 동력자원의 보고다. 현재 유럽대륙의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30% 이상이 서부 시베리아에서 공급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철도수송으로 중국에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국제석유독점체들과 결탁한 석유수출국가기구(OPEC)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시베리아 자원개발사업을 주도하는 기업은 러시아의 루시아 페트롤리움(RP)이다. 이 기업은 코빅타 가스전의 개발사업권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가스프롬은 국영회사다. 북(조선)은 1998년에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산하에 '천연가스연구협회'를 설립하였고, 2001년 4월 6일 네덜란드 국제차관단(consortium)과 비공개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시베리아와 한(조선)반도를 잇는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에 시동을 걸었다.

시베리아의 천연자원 보고를 국제독점체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2003년 들어 국제석유독점체들은 러시아 석유회사를 사들여 시베리아 석유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책동하였다.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2003년 1월 러시아를 공식방문하였고, 경쟁적으로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넉 달 뒤인 5월 러시아를 공식방문하였다. 같은 해 영국의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ritish Petroleum)이 러시아 석유기업체들 가운데 4위인 루멘석유의 주식 50%를 80억 달러에 사들임으로써 티엔케이-비피(TNK-BP)라는 러시아와 영국의 합병기업이 생겨났다. 이 합병기업은 유코스, 루크오일과 함께 러시아의 3대 석유기업이 되었다.

심각한 문제는, 루멘석유의 합병에 이어서 유코스와 시브네프트도 국제석유독점체들과 합병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미국 석유독점체인 엑슨 모빌은 자산 규모 3백30억 달러로 러시아 최대의 석유회사인 유코스(Yukos)의 회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Mikhail Khodorkovsky)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유코스 주식을 사들이는 협상을 추진하였다. 유코스는 바이칼 호 부근의 이르쿠츠크(Irkutsk)주에 있는 매장량 4억t을 자랑하는 앙가르스크 유전을 개발하여 몽골, 중국, 한(조선)반도로 이어지는 2천4백km의 송유관을 건설하는 25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러시아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합병을 가로막았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Vladimir V. Putin)은 2003년 10월 25일 80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러시아 최고 부자인 유코스 회장 호도르코프스키를 탈세혐의로 구속하고 유코스에 세금 34억달러를 부과하였고 주식 44%를 동결시켰으며, 시브네프트에게도 탈세추징금 10억달러를 부과하였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티엔케이-비피(TNK-BP)에서 일하는 외국인 최고경영인(CEO)들을 러시아 석유자원에 관한 정보를 대외에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러시아 법원에 제소하였다. 러시아 정부가 석유기업의 개발면허자격을 박탈할 경우, 유전은 국유화되며 그 기업의 주식은 종이쪽지로 변한다. 이처럼 푸틴 정부는 국제석유독점체들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하여 러시아 석유자원개발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조치에 대해 러시아 인민들도 지지하고 있다.

동부 시베리아에 묻혀있는 석유를 탐내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997년 11월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서 열린 러·일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와 일본을 잇는 송유관과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사업을 제기한 이후, 동부 시베리아의 앙가르스크(Angarsk)에서 생산한 석유를 사들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은 동부 시베리아의 석유 및 천연가스 탐사를 위해 20억달러를 투자하고, 동부 시베리아의 앙가르스크에서 연해주의 항구 나홋카(Nakhodka)까지 연결되는 3천8백km의 송유관 건설에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앙가르스크-나홋카 송유관은 연간 5천만배럴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4년 5월 14일 '러시아 시베리아 에너지 개발회의'는 동부 시베리아의 송유관과 천연가스 수송관을 나홋카로 이어지는 수송노선으로 단일화하겠다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한(조선)반도 동해안을 끼고 남북을 종단하는 총연장 9백30km의 코리아종단철도(Trans-Corea Railroad)가 개통되면, 그 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Trans-Siberia Railroad)가 연결되어 아시아-유럽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는 거대한 북방육상통로 개척구상이다. '철의 비단길'이라고 부르는 이 개척사업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1년 8월 러시아 공식방문과 모스크바 조·러 공동선언 발표였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에서 밝힌 '철의 비단길' 개척사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성대국 건설구상의 핵심과제인 한(조선)반도 통일 및 주한미군 철군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1년 8월 4일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조·러 공동선언은 두 나라가 "조선반도 북남과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수송로 창설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공약하면서 조선과 러시아 철도연결사업이 본격적인 실현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또한 공동선언은 "북남공동선언에 따라 나라의 통일문제를 조선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조선의 통일문제 해결에 이바지한다는 데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더 나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서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로 된다는 입장을 설명하였"고 "러시아측은 이 립장에 리해를 표명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8월에도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를 방문하여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철의 비단길' 개척사업 추진을 재확인한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성대국 건설구상을 이해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2001년 3월 25일 도쿄에서 열린 러·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 모리 요시로(森喜郞)에게 한(조선)반도 통일이 뜻밖에 일찍 실현될 수 있으며, 통일이 실현되면 통일국은 대국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은 과장이 아닌 것이다. (2004년 8월 1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