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반도 정세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영화 '피바다'에서 발견한 정세인식의 준거
2. 정세발전단계를 구분하는 현상들
3. '핵대결' 과정에서 형성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4. 동맹의 외피를 제거하는 '핵대결'
5. 반동체제를 제거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철폐투쟁
6. 경제성장의 외피를 제거하는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
7.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에서 전개되는 투쟁국면

1. 영화 '피바다'에서 발견한 정세인식의 준거

북(조선)의 혁명예술영화를 대표하는 '피바다'는 일제식민지시기 어느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 가던 을남이 어머니가 항일의 총을 잡은 투사로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 대작이다. 항일혁명군의 진격로를 열어주기 위해 성문의 무거운 빗장을 들어내며 고개를 돌린 어머니의 강렬한 눈빛, 그리고 어머니의 손에 들린 권총 한 자루를 담은 감동적인 장면은 실로 혁명예술영화의 압권이다. 그 명장면은 북(조선)의 지폐에 인쇄되어 오늘도 북(조선) 동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사회주의문예사조에 의하여 창작된 모든 혁명예술의 바탕에는 철학적 세계관이 흐르고 있는데, 혁명예술영화 자체가 사상성과 예술성의 변증법적 통일이다. 특히 북(조선)의 혁명예술영화는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깊이 있게 감상하기 힘들다.

영화 '피바다'는 을남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의 생활과 투쟁을 통하여 두 개의 모순이 해결되어 가는 극적인 과정을 형상화하였다. 두 개의 모순이란 식민지조선의 민중 대 일제침략자들 사이의 적대적 모순, 그리고 식민지민중 내부에 존재하는 선진성 대 낙후성 사이에서 발생한 비적대적 모순이다.

을남이 어머니가 항일투사로 일어서는 과정은 식민지민중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개인적 삶의 울타리를 박차고 민족·계급적 현실을 깨닫는 각성으로 치달아가고, 예속성에서 벗어나 자주성으로 개변됨으로써 새로운 질을 획득하는 주체의 자기실현과정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민중 안에 내재하는 선진성 대 낙후성 사이에서 발생한 비적대적 모순이 일제침략자들과의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항일투쟁과정에서 극복되었다는 점이다.

민중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비적대적 모순을 자기의 적대적 대립물과의 투쟁을 통해서 해결·극복하였다는 변증법적 진리는 오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는 한(조선)반도 정세를 읽는 데서 하나의 인식준거로 제시된다. 그 준거에 따르면, 오늘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과정은 적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정에서 민중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해 가는 변증법적 운동과정으로 인식된다.  

2. 정세발전단계를 구분하는 현상들

정세는 계기, 국면, 단계를 거치면서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 변화발전의 복잡다단한 과정에서 계기, 국면, 단계의 성립과 작용은 순차적으로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동운동으로 통일된다. 여러 계기들이 생겨나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국면이 있고, 여러 국면들이 생겨나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단계가 있다. 그러므로 한(조선)반도 정세를 읽는 데서 중요한 것은 계기, 국면, 단계를 각각 구분하여 고찰하고 그것들의 상호작용, 연관관계, 발전방향을 분석하는 일이다.

여기 한(조선)반도 정세의 발전단계를 구분하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조·미 '핵대결'과 남(한국)의 경제난이다. 변증법에 대해 무지한 대중언론들조차 그 두 가지 현상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대중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초점은 '북핵위협'과 '노사분규'이며, 전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뉴욕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조선)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불안감을 느끼는 요인도 역시 북(조선)의 '핵문제'와 남(한국)의 '노동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조·미 '핵대결'이라는 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핵대결'은 북(조선)과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인데, 그 본질은 사회주의국가의 반미자주역량 대 제국주의국가의 세계지배역량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관계가 표출된 것이다. 제국주의국가인 미국은 자기가 장악·주도하는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 사회주의국가인 북(조선)을 강제로 편입시키려고 하고, 북(조선)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를 반대·배격하는 완강한 반제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조·미 '핵대결'은 미국이 장악·주도하는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에서 발생한 가장 주요한 모순이 '핵문제'라는 외피를 쓰고 전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핵대결'이 정세발전단계를 구분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 현상이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의 정세가 질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며, 또한 '핵대결'이 끝남으로써 한(조선)반도 정세가 새로운 단계로 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대적 모순이 해결되면 그 사물이 다른 사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난 10년 동안 '핵대결'로 요동쳐온 한(조선)반도 정세는 사회주의국가의 반미자주역량 대 제국주의국가의 세계지배역량이 정치·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여러 대결국면을 거쳐왔다. 긴박한 전쟁위기가 대결국면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고, 조·미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역시 대결국면이었다. 여러 형식의 정치회담을 대화국면이 아니라 대결국면으로 보는 까닭은, 전쟁위기만이 아니라 정치회담도 적대적 모순에 의해서 그 국면의 본질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조·미 사이의 적대적 모순은 전쟁위기에서 겉으로 드러나지만, 정치회담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적으로 관철된다. 정치회담에서 적대적 모순은 다른 성질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질을 내부에 은폐하는 것이다.

3. '핵대결' 과정에서 형성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북(조선)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은, 미국이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추진하고 그에 대응하여 북(조선)의 반제군사노선이 강화됨에 따라 긴박한 전쟁위기를 몰고 왔다.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전략에 의해서 촉발된 긴박한 전쟁위기는 한(조선)반도 전역의 핵참화를 예고하는 것이므로, 전쟁위기가 고조될 적마다 미국의 전쟁위협을 반대하고 한(조선)민족의 생존권을 수호하려는 의식이 남(한국) 대중 속에서 생겨났다. 그 결과 남(한국)과 북(조선)을 오랫동안 갈라놓았던 대미관의 경계선이 차츰 무너지게 된 것은 응당한 일이었다. 최근 남(한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조국통일을 저해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0.2%로 나타났다.

남(한국)과 북(조선)을 갈라놓은 대미관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그 진전속도가 느리고 전망도 불투명한 자연생장적인 현상이었는데, 그 무너짐을 목적의식적으로 추동한 요인이 있었으니 그것이 조국통일운동과 반미자주화운동이다. 조국통일운동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급진전되었으며, 반미자주화운동은 남(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편입된 사태와 주한미국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급진전되었다.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든 조국통일운동이 진전됨에 따라 남(한국) 대중은 북(조선)에 대한 부정적, 반목적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자기 민족을 미국보다 우선하는 존재로 보는 동족관념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민족민주세력이 주도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이 진전됨에 따라 남(한국) 대중은 미국에 대한 종래의 우호적, 의존적 관념에서 벗어나 미국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보는 외세관념을 갖게 되었다.

조국통일운동과 반미자주화운동의 진전은 북(조선)과 남(한국)으로 나뉘어진 반미자주역량을 새로운 단계로 성장·전화시켰다. 둘로 나뉘어진 반미자주역량을 제국주의지배역량과 대립·투쟁하는 하나의 실체로 통일시킨 것이다. 제국주의지배역량과 대립·투쟁하는 하나의 통일된 실체를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라고 부른다.

남(한국)과 북(조선)을 갈라놓았던 대미관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변화국면에서 조국통일운동과 반미자주화운동이 그 변화국면에 작용한 결과, 한(조선)민족 안에 내재하는 비적대적 모순이 해결·극복되기 시작했으며, 그 비적대적 모순이 해결·극복되는 과정에서 한(조선)민족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에 적대적으로 대립·투쟁하는 새로운 성질의 반미자주역량을 획득한 것이다.

한(조선)민족이 자기 안의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함에 따라 형성된 것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립구도다. 6.15 공동선언 제1항에 명시된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정치적 의지가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중적 구호에 담겨 한(조선)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한(조선)민족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과 대립·투쟁하는 새로운 성질의 반미자주역량을 획득하였음을 말해준다.

4. 동맹의 외피를 제거하는 '핵대결'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이 가장 집중적으로 표출되는 곳은 군사부문인데, 거기에는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배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한다. 미국은 한·미 동맹체제를 통하여 남(한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북(조선)을 군사적으로 위협한다.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국가의 지배와 북(조선)에 대한 제국주의국가의 군사적 위협은 한·미 동맹이라는 외피를 쓰고 전후 50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어온 것이다.

동맹의 외피 속에 싸여있는 제국주의지배체제는 남(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예속, 경제적 수탈, 사상문화적 동화를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군사적 위협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제거하려는 반동체제, 다시 말해서 한(조선)민족 전체를 짓누르는 최대의 반동적 지배체제다.

그러한 제국주의지배체제 안에서 남(한국) 정권의 정치적 예속이 심화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현 정권이 미국 정치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숭미적인 발언을 늘어놓고 미국 정치권의 요구를 충실하게 추종하는 정치적 예속현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일상화되었다. 이를테면 최근 해외순방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북(조선)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야 하며,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남북최고위급회담을 개최할 수 없다고 공언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 미국 정치권의 요구를 얼마나 충실하게 추종하는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같은 친미예속성의 노골화 현상이 뜻하는 것은,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국가의 지배강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치부문만이 아니라 경제부문에서도 제국주의국가의 수탈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남(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편입된 뒤로 시장개방과 기업구조조정이 강제되는 국면에서 급속히 가중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이 이제는 위험수위를 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남(한국) 대중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미국식 언어와 문화로 대체함으로써 대중의 사고구조와 생활방식을 미국화하는 사상문화적 동화작용이 맹렬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에 대한 남(한국)의 예속이 부분적이 아니라 전면적이며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심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맹의 외피 속에 싸여있는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주한미국군이다. 동맹의 외피 속에 감춰진 주한미국군의 진상은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국가의 지배를 유지하며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수탈을 안정화하는 제국주의점령군이다. 남(한국)의 금융시장을 점령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남(한국) 경제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수탈이 주한미국군에 의해서 그 안정을 보장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일차적으로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에 주력해야 하는 까닭은,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존재부터 제거해야 제국주의지배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지배체제는 그 체제를 보호하는 물리적 힘을 제거하고 그 체제의 존립근거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함으로써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 된다.

'핵대결'은 제국주의지배체제를 싸고있는 동맹의 외피를 벗기고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의 적대적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였다.

북(조선)이 6자회담이라는 형식으로 전개하는 '핵대결'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반미자주역량으로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정치대결이며, 남(한국)에서 민주노동당, 민족민주세력,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전개하는 주한미국군 철군운동 역시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반미자주역량으로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정치투쟁이다.

오늘 6자회담이라는 형식으로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정치대결을 전개하고, 다른 한편에서 민주노동당, 민족민주세력, 진보적 대중단체들을 중심으로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을 전개하는 한(조선)민족은 그 대결과 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안에 내재하는 선진적 반미자주역량과 낙후한 대미의존역량의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하는 중이다. 한(조선)민족이 자기 안에 내재하는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하여 반미자주역량을 하나의 통일된 역량으로 결집시켰을 때, 그 결집을 민족통일전선(national united front)이라고 부른다. 명백하게도,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반미자주역량을 하나의 기치 아래 결집시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핵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승리를 이룩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5. 반동체제를 제거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철폐투쟁

제국주의지배체제와 친미예속체제는 동일체제의 두 측면이 아니라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두 개의 반동체제다. 그 두 개의 반동체제가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은 제국주의지배세력과 예속정권 사이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 사이에서 때로 마찰과 갈등이 생기는 여러 현상들에 의해서 입증된다.

이를테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이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을 약화·말살하려고 책동하는 과정에서 적대적 모순이 격화되는데, 모순이 격화되어 한(조선)반도 정세에 긴박한 위기국면이 조성되는 것은 그것이 남(한국)의 정치불안과 경제난을 악화시켜 친미예속정권의 존립기반을 뒤흔들기 때문에 예속정권과 예속자본의 이해관계에 배치된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이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과의 적대적 모순을 격화시켜 남(한국)의 정치불안과 경제난이 악화될 때마다 예속정권과 예속자본은 반발하게 된다. 이것이 한·미 관계에서 가끔 드러나는 마찰과 갈등의 원인이다. 한·미 관계에서 드러나는 마찰과 갈등의 현상은 남(한국)의 정권과 자본이 미국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지배체제와 친미예속체제라는 두 개의 반동체제가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지배체제와 친미예속체제 사이에서 발생한 비적대적 모순은, 그 두 반동체제에게 공동의 대립물인 남(한국) 대중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며 사상문화적으로 동화하는 지배와 예속의 심화과정에서 해결된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은 남(한국)의 정권과 자본을 예속화함으로써 자기의 대립물인 남(한국) 대중을 지배·수탈·동화한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이 자기의 지배체제를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예속화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제국주의지배체제와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반동체제는 친미예속성을 본질로 하는 정치권력(예속정권)과 사회적 권력(예속자본과 극우세력)에 의해서 무려 60년 동안 유지·관리되어 왔다. 60년의 역사는 그 반동체제를 제거하지 못하면 진정한 사회역사발전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 반동체제를 유지·관리하기 위하여 56년 전에 친미예속정권이 조작해놓은 법적 장치가 국가보안법이다. 반동체제를 유지·관리하기 위하여 조작해놓은 법적 장치를 제거하면, 그 반동체제의 존립근거가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철폐투쟁은 제국주의지배체제와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반동체제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이다.

지금 남(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사회정치세력과 그것을 유지하려는 사회정치세력이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사회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 민족민주세력, 진보적 대중단체들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국회 안에서 벌이는 투쟁은 대중언론에 의해서 그 의미가 매우 부풀려져 있지만, 결국 양당의 당리당략적 야합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국가보안법은 그것이 존립시켜온 반동체제를 반대·배격하는 민주노동당, 민족민주세력, 진보적 대중단체들의 투쟁으로 철폐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6. 경제성장의 외피를 제거하는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의 내부모순은 세계적 규모에서 진행된 자본의 과잉축적과 상품의 과잉생산을 원인으로 하여 격화되었다.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장악·주도하는 미국의 경제는 정부재정적자와 국제수지적자의 폭발적 증가로 거의 파산상태에 빠져들었다. 부시가 집권한 뒤로 미국에서 약 2백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서 격화되는 내부모순이 돌출시킨 국제석유가격 폭등, 달러화 가치하락, 국제투기자본의 난동,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같은 여러 악화계기들이 남(한국) 경제에 작용함에 따라서 남(한국)의 경제예속이 심화되고 근로대중에 대한 수탈이 가중되는 위기국면이 전개된다. 그 위기국면이 심화되면서 발생한 것이 경제난이다. 내수경기 침체, 수출경기 둔화, 가계부채 폭증, 실직·실업 증대, 비정규직 확대, 소비자물가 상승 등은 상호작용하면서 경제난을 악화시키는 여러 국면들이다. 그러므로 경제난은 대중언론이 이른바 경기악화라고 부르는 일시적 침체국면이 아니라 한(조선)반도 정세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순관계에 의해서 발생한 하나의 단계로 규정된다.

경제난은 남(한국)의 예속경제를 파산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한때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자랑하였던 남(한국), 대만, 싱가포르 가운데서 대만과 싱가포르의 경제는 그토록 심각한 파산위기에 빠지지 않는데 유독 남(한국)의 경제가 가장 먼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파산위기에 빠지는 까닭은, 남(한국)의 시장경제체제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좌우하는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에 가장 철저하게 예속되었음을 말해준다.

세계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의 내부모순이 격화됨에 따라 남(한국)의 경제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지배는 전면화되고 근로대중에 대한 수탈은 가중된다. 경제난 악화는 현상이고, 경제예속의 심화와 이윤수탈의 가중은 본질이다. 최근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한국)의 근로대중 66%가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을 갖고 있고, 59.7%는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7.3배나 많은 소득을 얻는 빈부격차 심화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정치적 무권리상태에 있는 노동계급, 근로농민, 영세사업자들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의 수탈이 가중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남(한국)의 경제난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 대 제국주의독점자본 및 예속자본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을 표출시킨다. 경제난으로 표출된 적대적 모순은 남(한국)의 근로대중이 자기를 수탈하는 제국주의독점자본 및 예속자본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그 충돌현상을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라고 부른다. 근로대중의 생존권투쟁에 의해서 경제성장이라는 외피가 제거되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모순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이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의 수탈에 저항하는 생존권쟁취투쟁만으로는 적대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역사발전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모순은 제국주의독점자본 및 예속자본과 결탁하여 그들의 수탈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제3의 대립물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제3의 대립물이 노무현 정권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요구에 발맞춰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시장경제개방정책과 시장경제개혁정책은 노동계급의 대량실업사태, 근로농민과 영세사업자의 대량파산사태를 불러일으켰고, 비정규직 노동악법을 개악하고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농민의 쌀시장개방반대투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함으로써 정권과 근로대중의 관계가 적대적 모순관계임을 드러냈다. 최근 해외순방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을 움직이는 대자본가들과 최고경영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남(한국)의 전투적 노조가 '고립상태'에 있으며 정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은, 근로대중 대 노무현 정권의 모순관계가 적대적인 것임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모순의 격화는 생존권이 짓밟힌 근로대중이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이 결탁한 반동적 3자동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충돌현상을 대중정치투쟁이라고 부른다. 생존권쟁취투쟁이 대중정치투쟁으로 성장·전화하는 것은 근로대중이 대립물과의 투쟁을 통하여 자기 안에 내재하는 선진적 사회변혁역량 대 낙후한 현상유지역량 사이에서 발생한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7.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에서 전개되는 투쟁국면

두 개의 적대적 모순이 차츰 격화되고 있다. 그것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 대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역량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 그리고 남(한국)의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로대중의 투쟁역량 대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이 결탁한 반동적 3자동맹 사이에서 발생한 적대적 모순이다. 전자는 '핵대결'이 격화되면서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발전하는 현상으로, 후자는 남(한국)의 경제난이 악화되면서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발전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핵대결'을 해결하는 주체는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역량이고, 남(한국)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주체는 남(한국)의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근로대중의 투쟁역량이다. 지금 남(한국) 근로대중의 투쟁역량은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이 결탁한 반동적 3자동맹을 반대·배격하는 전선, 곧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중이다.

'핵대결'이 격화되는 현상의 본질, 그리고 남(한국)의 경제난이 악화되는 현상의 본질을 모순관계로 해명하고 그 모순을 해결·극복하는 사회변혁의 길을 근로대중에게 명확하게 밝혀줌으로써 반미자주화운동을 추동하고,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을 대중정치투쟁으로 추동하는 것, 바로 여기에 현 시기 민주노동당과 민족민주세력이 맡아야 할 역사적 임무가 있다.

'핵대결'의 종식은 대중언론이 말하는 북(조선)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이 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하고 하나의 단계를 넘어서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한국) 경제난의 극복도 대중언론이 말하는 '경기회복'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이 적대적 모순을 해결·극복하고 하나의 단계를 넘어서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핵대결'과 남(한국)의 경제난은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는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라고 할 수 있다. 그 진입로를 지나 발전된 단계에 이르려면 앞으로 여러 국면을 거쳐야 할 것이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기들이 발생할 것이다.  

2005년은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에서 격렬한 투쟁국면이 전개되는 시점이다. 2005년의 투쟁국면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은, '핵대결'에 의해서 동맹의 외피가 제거되고 모순이 격화됨으로써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이 대중적 추진력을 얻는 것, 제국주의지배체제와 비적대적 모순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반동체제를 제거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철폐투쟁이 승리하는 것, 남(한국)의 경제난 악화에 의해서 경제성장의 외피가 제거되고 모순이 격화됨으로써 근로대중의 생존권쟁취투쟁이 대중정치투쟁으로 성장·전화되는 것 등이다.

'핵대결'과 남(한국)의 경제난이라는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를 지나 장차 이르게 될 발전된 단계를 연방제 통일의 실현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연방제 통일이 '핵대결'과 남(한국)의 경제난에서 표출된 모순을 해결·극복하는 투쟁과정에서 실현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현 시기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조국통일운동은 '핵대결'과 남(한국)의 경제난에서 표출된 모순을 해결·극복하는 투쟁과 분리되지 않는다.

2004년 11월 24일 금강산에 모인 남, 북, 해외의 수많은 대중단체들이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 상설적인 민족통일기구를 설립하여 조국통일운동을 전진시키기로 합의·결정한 것은, 한(조선)반도 정세가 사회역사발전의 진입로를 지나서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변이다. 2005년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적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2004년 12월 10일 작성)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진보적 영화시사 월간지 『COREA』(www.ncorea.co.kr) 2004년 1월 특집호에 기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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