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 실천운동과 민족통일전선의 형성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6.15 공동선언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기
3.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전략적 공조
4.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한(조선)민족에게 산은 산이 아니다. 산의 정기를 받고 세상에 태어나 산의 품에 안겨 살다가 산자락에 묻히는 그 민족에게 산은 자기의 운명과 떼어놓을 수 없는 생사고락의 공간이다. 그리하여 한(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산을 종종 자기의 운명과 연관지어 생각하곤 하였다. 한(조선)민족이 피눈물로 써온 이 나라 근현대사의 갈피에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구월산 같은 산들이 굵직한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분열된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려는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서도 어김없이 산이 등장한다. 그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산이름이 있으니, 평양의 금수산 모란봉이다. 모란봉은 대동강 기슭을 따라 길게 놓여있는 금수산의 최승대를 중심으로 서로 잇닿아 둥글둥글하게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마치 모란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분할점령정책이 나라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을 장기화하려는 책동으로 드러나던 1948년 4월 19일, 남과 북의 수많은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평양 모란봉 둔덕에 있는 모란봉극장에 모였다. 김구와 김규식이 대표한 민족주의세력이 참가하여 사회주의세력과 손을 잡은 그 회합은 '남북 제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사에 기록된 것으로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펼쳐진 통일전선운동의 빛나는 성과였다.

그런데 오늘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사에는 산봉우리가 또 하나 나타난다. 금강산의 외금강 온정구역에는 태백산 줄기의 주봉인 오봉산에서부터 남동쪽으로 뻗은 지맥에서 솟아오른 높이 775m의 산봉우리가 있으니, 그것이 수정봉이다. 산봉우리 전체가 수정처럼 빛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수정봉이 굽어보는 아랫자락에는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인 금강산호텔이 있다.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조국을 통일하려는 의지를 안고 금수산 모란봉에 모였던 1948년 4월 19일로부터 57년의 세월이 흐른 2005년 3월 5일, 남, 북, 해외에 있는 수많은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회의장에 모였다. 상설적 통일기구를 내오기 위해서였다.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를 모아내는 상설적 통일기구를 대중운동의 너른 기초 위에 세우기까지 무려 60년 가까운 긴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한(조선)민족은 자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너무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했다.

1948년 4월 모란봉 기슭에 모였던 분단1세대는 조국을 통일하려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들이 펼친 통일전선운동사는 60년 긴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고 후대에게 이어졌으니, 금강산 수정봉이 굽어보는 금강산호텔 회의장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북남) 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를 내온 것이 그 역사의 흐름을 증명한다. 훗날 통일조국의 역사가들은 '6.15 준비위원회'가 결성된 2005년 3월 5일을 우리 나라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운 막이 오른 역사적인 날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1948년의 통일전선운동은 연석회의 성사라는 성과를 얻었던 것에 비하여, 2005년의 통일전선운동은 상설적 통일기구 결성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6.15 준비위원회'는 1990년에 결성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범위를 뛰어넘어 우리 나라 조국통일운동사에서 처음으로 남, 북, 해외의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가장 광범위한 세력을 아우르는 상설적 통일기구다. 금강산 수정봉 아래에 모인 사회단체 대표자들은 그 하나의 사실만 생각하더라도 감동을 느끼기에 넉넉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6.15 준비위원회' 결성식이 열리기 전까지 금강산호텔 회의장에 모인 남, 북, 해외 사회단체 대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격론은 그들 모두에게 힘겨운 경험이었다. 격론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무려 10시간이 넘도록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참가자들은 실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해외측 대표자의 일원으로 회의에 참석하였던 나도 역시 격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우 힘들고 고된 일정을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6.15 준비위원회' 결성식을 마치고 각지로 돌아간 뒤에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잦아들지 않는 것은, 앞으로 상설적 통일기구를 중심으로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논쟁의 불씨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사상과 정견, 계급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 공조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논쟁이 없다면 그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인 일이겠지만, '6.15 준비위원회'를 내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격론은 사상과 정견,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공조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문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6.15 준비위원회'를 내오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던 그 날, 금강산에는 흰 눈이 무척 많이 내렸다. 회의장 분위기를 팽팽히 조이고 있는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고 그러했을까, 금강산호텔 앞마당에서 왼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수정봉은 어느새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눈부시게 흰빛을 뿌리는 그 봉우리를 바라보며 나는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제기된 문제들을 생각하였다.

금강산에 모인 남, 북, 해외 사회단체 대표자들을 어려움에 빠뜨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을 이끌어 갈 주체세력이 성찰하여야 할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세워야 할 관점은 무엇일까? 금강산에서 평양과 심양을 거쳐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나는 내내 그 물음을 생각하였다. 이 글은 그러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2. 6.15 공동선언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기

'6.15 준비위원회'를 낳은 어머니는 6.15 공동선언이다. 6.15 공동선언은 지난 5년 동안 자기의 뱃속에서 귀한 아이를 잉태하여 마침내 세상에 낳았으니 그것이 '6.15 준비위원회'다. 그러므로 '6.15 준비위원회'를 내오는 과업은 6.15 공동선언이 한(조선)민족에게 밝혀준 길을 따라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백하게도, 6.15 공동선언은 한(조선)민족이 분산과 분열의 험한 길에서 몸을 돌이켜 단결과 단합의 새 길에 들어서는 역사적 전환이었다. 한(조선)민족이 분산과 분열에서 벗어나 단결과 단합으로 들어서는 역사적 전환이란, 민족민주운동권의 용어를 빌리면,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이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이 한(조선)민족에게 밝혀준 길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이다.

6.15 공동선언 발표와 민족통일전선 형성의 상호관계에서 눈여겨보아야 정치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세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6.15 공동선언은 국가보안법이 거의 60년 동안이나 이른바 불법화해왔던 민족통일전선을 합법화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합법화 과제를 마침내 해결한 것이다.

둘째,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정치적 임무를 대중 자신이 주체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로 제기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중화 과제를 마침내 해결한 것이다.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합법화는 그 운동의 대중화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이 어떠한 것인지를 현실로 입증하였다. 민족통일전선의 전략적 방침은 6.15 공동선언에서 제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에서 제시된 민족통일전선의 전략적 방침이란, 사상과 정견, 계급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넘어 공동의 정치적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하나로 결집된 주체역량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6.15 공동선언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주체역량을 강화하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섯 해 전인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6월 22일에 작성한 글 「평양회담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렇게 논한 바 있다.

"통일전선전략은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된다. 제1형태는 남(한국)의 정치적 실체를 대상으로 하는 통일전선전략이다, 이것은 남북 정부당국의 정치협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역사적인 평양회담은 이 형태의 결정판이었다. 제2형태는 남, 북, 해외 민족대단결운동의 전민족적 통일전선전략이다. 이것은 범민련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3형태는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이 남(한국) 안에서 추진하는 통일전선전략이다. (줄임) 지금까지 제2형태의 통일전선전략과 제3형태의 통일전선전략은 국가보안법 체제의 혹심한 탄압과 방해에 가로막혀 있었다. 제1형태의 통일전선전략이 평양회담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제2형태와 제3형태의 통일전선전략을 가로막았던 국가보안법 체제가 밑둥부터 흔들리면서 범민련운동과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이 움직일 수 있는 활동공간이 크게 확장되었다. 제1형태의 통일전선전략의 수행이 심화·발전되면 될수록 범민련운동과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에게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섯 해 전에 내다보았던 대로,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2005년 3월 5일 금강산에서 결성된 '6.15 준비위원회'는 다섯 해 전에 내가 제2형태의 통일전선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정치적 실체, 곧 민족통일전선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 사변이다.

사실 '6.15 준비위원회'라는 긴 이름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상설적인 통일기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체의 지위와 역할이다. 문제는 '6.15 준비위원회'에 망라된 주체들이 민족통일전선체로서 차지하는 지위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역할을 옳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6.15 준비위원회'라는 어색한 이름을 가진 민족통일전선체를 세우는 주체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뒤로 한(조선)반도에 형성된 세력관계가 어떻게 변동되어왔는가 하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는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대립관계만 있었으며, 그 대립관계에서 반통일세력의 준동이 극심하였다. 지난 시기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라는 상설적 통일기구 안에 결집되었던 통일세력이 반통일세력의 집중공세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뒤로 한(조선)반도에서는 통일세력, 중간세력, 반통일세력의 삼각관계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간세력이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 새로 등장한 것이다. 6.15 공동선언 자체가 통일전선전략의 산물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세력이란, 반미자주화, 진보적 민주주의,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의 정치노선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도 6.15 공동선언을 지지·찬동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을 뜻한다. 남(한국)에서 중간세력은 민주개혁성향의 시민운동단체들, 민족주의성향의 대중단체들, 진보성향의 종교단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뒤로 변동된 세력관계가 조국통일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조국통일운동은 범민련운동의 제한적 범위를 넘어서 그야말로 드넓은 대중적 기반 위에서 강화·발전되기 시작하였다.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중간세력이 조국통일운동사에 등장하여 새로운 세력관계가 형성된 뒤로, 반통일세력에 맞서 싸우는 통일세력에게 주어진 가장 커다란 정치적 임무는, 어떻게 해서든지 중간세력과 손을 잡고 반통일세력을 고립·약화시키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형성되는 민족통일전선은,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의 대결,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공조, 그리고 통일세력 내부의 단결 강화라는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는데, 그 세 가지 임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손잡는 민족공조의 임무다. 6.15 공동선언에 담겨진 민족공조의 뜻은,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공조하는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손잡는 민족공조는 반통일세력에 맞선 싸움에서 통일세력이 이길 수 있는 현실적 방도로 되었으며, 6.15 공동선언 이후 조국통일운동의 승패를 가르는 중대한 전략적 과제로 되었다.

그러므로 '6.15 준비위원회'를 내오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문제는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공조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6.15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통일전선의 정치적 의의를 평가하는 기준도 역시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공조를 성과적으로 이루었는가 하는 데 있다.

3.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전략적 공조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공조하여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세력과 맞붙는 힘의 대결에서 통일세력이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통일세력이라는 개념은 단지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지배세력까지 아우르는 개념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나쁜 반통일세력은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을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움직이는 제국주의 지배세력이다. 가장 나쁜 반통일세력으로 규정되는 제국주의 지배세력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 미국이며, 거기에 더하여 미국의 반통일정책에 야합한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이다.

역사적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제국주의 미국은 8.15 해방 직후 남(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하면서 소련과 대결하는 냉전구도를 한(조선)반도에 끌어들여 분단체제를 세워놓았을 뿐 아니라,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에게 배타적으로 집권의 기회를 허락하여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반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미국이야말로 제국주의적 반통일정책의 수립자, 집행자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제국주의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은 한(조선)민족을 영구히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반통일정책을 뒤따르고 있다. 요즈음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이 우리 나라 영토인 독도를 빼앗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는 책동에 직결된 것이다. 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핵심내용인데, 미·일 동맹군이 동해를 자기의 해상작전구역으로 지배하려면 우선 독도를 손에 넣어야 한다. 장차 한(조선)민족이 강성부흥하는 통일국가를 세우면 미·일 동맹군이 독도를 감히 넘보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조국을 통일하기 전에 독도부터 빼앗으려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독도강탈정책은 미·일 동맹체제 강화책동의 산물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뒤따르는 추종자들 가운데는 일본의 극우반동세력만이 아니라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도 있다. 남(한국)의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수구반동세력은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면서 조국통일운동을 찍어누르는 국가보안법을 한사코 유지하는 것으로 제국주의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뒤따른다.  

이처럼 미국, 일본, 남(한국)의 반통일세력들이 공모·결탁하여 3자 야합의 반통일정책을 추진하는 조건에서, 한(조선)민족의 통일세력이 추진하는 조국통일운동은 방해와 저지를 받게 되어 있다. 3자가 야합한 반통일정책을 깨뜨리고 조국통일운동을 밀고 나가려면, 한(조선)민족의 통일세력이 3자 야합의 반통일세력을 누르고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통일세력의 힘만으로는 반통일세력과 맞붙는 힘의 대결에서 이길 수 없으며, 반드시 중간세력과 손을 잡아야 한다.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공조하는 민족통일전선을 반드시 형성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서 밝혀진다. 강조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 조국통일운동은 민족통일전선에 의해서 추진된다는 점이다. 21세기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이다.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정치과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른다.

1) 오늘 한(조선)민족이 형성하는 통일전선은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 속에서 형성되는 민족통일전선이다. 통일세력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업은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 속에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이다. 그 대결구도에서 반통일정책을 깨뜨리고 조국을 통일하는 강한 힘은 민족통일전선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그 통일전선에 동참하는 중간세력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기본적으로 반미자주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2) 21세기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분산·분열된 민족의 주체역량을 하나의 지향과 목적으로 결집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통일전선이다.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을 결집시킨다는 말은, 계급이라는 사회적 집단을 단위로 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을 단위로 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21세기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은 계급을 단위로 하여 형성되는 통일전선과 구별하여 민족통일전선이라고 부른다.

21세기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이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을 단위로 하여 형성되는 까닭은, 그것이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 속에서 형성되는 가장 너른 형태의 통일전선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남(한국)이라는 한정된 지역범위 안에서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을 고립·타격하는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경우, 그것은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이 아니라 남(한국)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통일전선이 될 것이다.

3)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공조가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두 세력이 일시적으로 손잡는 전술적 공조가 아니라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그리고 조국이 통일된 뒤에도 이어지는 전략적 공조다. 통일전선의 형성은 어떤 세력이 다른 세력을 정략적으로 잠시 이용하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갈라서는 정치적 야합이 아니라, 사상과 정견, 계급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세력들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공조·결집하여 사회변혁의 주체를 세우는 정치사업이다.     

4)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공조에서 요구되는 것은 통일세력이 중간세력과 공조하기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다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일제 식민지 강점시기 사회주의세력이 민족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에서 나타난 특징은, 사회주의세력이 견디기 어려운 희생을 무릅쓰고 민족주의세력과 끝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세력이 민족주의세력과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커다란 희생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까닭은, 양대 세력의 전략적 공조과정에서 수많은 걸림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세력에게 커다란 희생을 요구하였던 걸림돌이란, 민족주의세력이 드러낸 완고한 태도와 이중적 성격, 그리고 정세가 나빠질 때마다 민족주의세력 속에서 일어나곤 하였던 동요와 좌절 등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통일세력은 중간세력과의 전략적 공조를 이루어내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생겨나는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중간세력은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고집하는 완고한 태도로 나올 수 있으며, 반통일세력과 맞붙는 싸움에서 무원칙한 타협으로 돌아서는 이중적 성격을 보일 수 있으며, 통일정세가 불리하게 바뀌는 경우 신심을 잃고 흔들리거나 뒤로 물러나기 쉽다.

그렇지만 중간세력이 지닌 그러한 부정적 요인들은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공조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부조건이 될 수는 없다. 중간세력과 전략적으로 공조하기 위하여 통일세력이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중간세력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그들에게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감한 양보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훼손하거나 민족통일전선전략을 후퇴시키는 정치적 양보가 아니라, 민족통일전선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실무적으로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실무적 양보는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할 때 대표자를 내세우는 문제나 실무역량을 꾸리는 문제에서 중간세력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적대관계에서 벌어지는 협상에서는 우리 쪽이 하나를 양보하면 상대 쪽도 하나를 양보하는 이른바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지만,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공조관계에서는 통일전선운동의 경험이 있는 통일세력이 통일전선운동에 갓 들어온 중간세력에게 먼저 과감하게 양보하는 우선적 배려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적 공조관계에 상호주의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통일전선 형성을 사실상 가로막는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조국통일위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해온 통일세력이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 양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과감한 양보는 중간세력이 통일세력에게 믿음을 갖게 만들고, 양대 세력이 함께 손잡고 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도다. 민족통일전선운동에서 통일세력이 중간세력에게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요구하면서, 그들이 뒤를 따라오면 다행이고 따라오지 못하면 저 혼자 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관점과 옹졸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한,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전략적으로 공조하는 통일전선의 길은 열리기 힘든다. 만일 통일세력이 끈질긴 설득과 과감한 양보에 대해 고개를 돌린다면,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전략적 공조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은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통일세력이 중간세력에게 과감하게 양보한다고 해서 자기 지위가 낮아지거나 자기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통일세력은 과감한 양보를 통해서 중간세력을 믿음직한 동맹자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민족통일전선은 반통일세력의 야합을 깨뜨리는 강한 주체역량을 지니게 될 것이다.

5) 21세기 한(조선)민족이 추구하는 민족통일전선의 기본방향은, 남, 북, 해외 사회단체들의 전략적 공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 남북의 정당들이 손을 잡는 전략적 공조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민족통일전선을 떠밀고 가는 중심역량은 장차 정당 사이의 전략적 공조에서 나올 것이므로, 민족통일전선은 앞으로 정당 중심의 공조에 의해서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의 집권당은 열린우리당이고, 북(조선)의 집권당은 조선로동당이다. 만일 남북의 집권당이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공조한다면 그것은 곧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는 가장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조건에서 조선로동당과 열린우리당이 전략적으로 공조하여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은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로동당과 전략적으로 공조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호교류 수준의 접촉도 추진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열린우리당이 제국주의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벗어날 수 없고,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이 가하는 반동적 정치공세를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북의 집권당이 전략적으로 공조하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반통일정책에서 벗어난 자주적 정당,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이 가하는 정치공세를 물리칠 수 있는 진보적 정당이 남(한국)에서 집권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남(한국)의 정당들 가운데 제국주의 미국의 반통일정책에서 벗어난 정당, 남(한국)의 수구반동세력이 가하는 정치공세를 물리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야 남북 집권당의 전략적 공조가 가능하다는 점과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곧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하는 가장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것임을 말해준다.    

남북의 집권당이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공조할 수 없는 현재 조건에서는 남(한국)의 야당과 북(조선)의 우당이 공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반통일세력이 장악한 수구반동적 정당이므로, 남(한국)의 야당 가운데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상호공조에 나설 수 있는 진보적 야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북(조선)의 우당으로는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 청우당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민주노동당과 공조하는 대상은 조선사회민주당이다.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이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손을 잡는 것은, 사회단체 중심의 민족통일전선이 정당 중심의 민족통일전선으로 확대·발전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글을 맺으며

오늘의 정세가 말해주는 대로,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미 대결은 정치협상이라는 외피마저 벗겨진 채 심각한 양상을 드러냈으며 그에 따라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 역시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한(조선)민족 내부에서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주체역량을 강화할수록, 제국주의 미국은 한(조선)민족과 맞붙는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려고 책동하게 된다.

'6.15 준비위원회'는 단지 6.15 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기념하고, 8.15 해방 60주년을 기념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위하여 세운 추진주체가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적 반통일정책에 맞서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주체로 나선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미·일 안보협의체를 만들어내면서 제국주의 침략동맹을 강화할수록 그에 맞선 한(조선)민족은 '6.15 준비위원회'를 일으켜 세우면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의 정치상황은 '6.15 준비위원회'에 망라된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이 결성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을 풀지 못하고 논쟁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님을 말해준다. 이제는 통일전선운동의 경험이 있는 통일세력이 통일전선운동에 갓 들어선 중간세력에게 과감하게 양보하는 믿음직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을 접어야 할 때다. 통일세력과 중간세력의 전략적 공조를 비상히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한(조선)반도의 당면정세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바가 아닌가. (2005년 3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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