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조선)반도 통일정세와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조국통일운동사에서 2005년이 갖는 의미
3. 현충원과 서대문형무소 유적지 방문에 대하여
4. 민족통일행사에 모인 군중의 힘
5.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요구되는 결정적 요인
6. 제2의 6.15 시대에 다시 읽는 6.15 공동선언 제2항
7. 연방제 통일방안은 유일한 통일방안
8.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6.15 공동선언 제1항
9.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0. 8.15 민족대축전 기간에 생긴 일
11. 4년만의 방문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두 가지
12.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의 현황과 과제

1. 글을 시작하며

한호석 - 나는 얼마 전 일본 도쿄에서 인터넷에 대동연구소(www.daedong615.com)를 설립한 강민화 소장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 글을 써내려 가겠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동연구소 설립을 축하합니다. 대동연구소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대동이라는 눈에 익은 말쓰임새는 여러 세력들이 힘을 합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 말은 민족민주운동권에서 흔히 쓰는 통일전선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내 식대로 풀이하면, 대동연구소란 통일전선연구소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요즈음 남(한국)에서는 조국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조국통일문제에 관한 이론연구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것은, 10년 전 통일학연구소를 세울 때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현상입니다. 10년 전 통일학연구소가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연구소는 외로웠지만, 오늘은 손잡고 함께 가는 길동무들이 여럿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대동연구소도 믿음직한 길동무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조국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국통일운동이 더욱 장성발전되어야 하는데, 그 운동은 이론구성의 안받침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조국통일운동 이론을 논하는 열기와 수준이 날로 더 뜨거워지고 더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그 열기 속에서 대동연구소도 크게 장성하기 바랍니다.  

2. 조국통일운동사에서 2005년이 갖는 의미

강민화 -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6.15 공동선언 발표 5돌과 조국광복 60년을 맞이한 올 한 해는 수개월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올해 평양에서의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과 서울에서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민족대축전을 통해서 한때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6.15 및 8.15 축전행사에 소장님이 직접 참가하신 소감에 대해서와 이 과정에 일어났던 전환국면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 - 올해 2005년은 조국통일운동사에 획기적인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획기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조국통일운동이 민족통일행사만 하고 흩어지던 낮은 단계에서 벗어나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높은 단계로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국통일운동이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높은 단계에 올라선 오늘의 현실을 여섯 가지 측면에서 논하려고 합니다.

첫째, 6.15 통일대축전과 8.15 민족대축전은 남북(북남)의 정부 대표와 정당 대표, 남북(북남) 및 해외의 각계각층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함으로써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통일의지를 나라 안팎에 과시한 민족통일행사였습니다.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와 더불어 정부 대표까지 참가한 통일행사가 열린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남북(북남) 수뇌가 채택하고 발표한 것이므로,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추진주체로 나서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측 정부당국은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나서지 않았고, 남(한국)의 정당들 가운데 민주노동당만 제외하고 다른 정당들도 한결같이 그 운동을 외면하였으며, 남북(북남) 및 해외의 각계각층 사회단체들 가운데서도 통일운동단체들만 참가하여 운동범위가 협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정부 대표단이 나섰고, 정당 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평소에 조국통일운동과 무관하였던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동참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을 확대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남북(북남) 정부가 6월과 8월의 민족통일행사에 대표단을 각각 파견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남측 정부는 서울에서 8.15 민족대축전과는 별도로 광복 6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고, 북측 정부도 평양에서 광복 60주년 경축행사를 가졌습니다. 남북(북남) 정부는 8.15 민족대축전에 자기의 대표단을 참가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각각 별도의 행사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의 통일행사를 이중적으로 개최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남북(북남) 정부와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하나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족통일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형태일 것입니다.

남북(북남) 정부가 민족통일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지 못하는 까닭은, 남측 정부당국이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나서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남측 정부당국은 통일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나오라는 요구와 이라크점령지에 파병하라는 요구를 들이밀 때마다 꼼짝없이 순응복종함으로써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배치되는 길로 질질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6.15 통일대축전과 8.15 민족대축전에서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의 열망을 담은 축포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때, 주한미국군은 한(조선)민족의 목숨을 노리는 대량파괴무기를 겨누고 전투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한국) 정부와 군대는 이른바 을지포커스렌즈(UFL) 한미합동군사훈련이라는 이름으로 8월 22일부터 실시된 세계 최대 규모의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동원되었습니다. 그 전쟁연습의 제1단계에서는 국무총리 이해찬이, 제2단계에서는 합참의장 이상희가 각각 남(한국) 정부와 군대를 이끌고 제국주의군대 사령관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연습과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해 가는 통일전선운동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으며, 남측 정부의 대미예속성과 한(조선)민족의 자주성 역시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남측 정부의 대미예속성은 남측 정부가 민족통일전선운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있으며, 그 운동의 앞길에 갖가지 분열과 혼란의 걸림돌을 가로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측 정부가 제국주의 미국에게 예속되어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끌려 다니는 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남북(북남) 정부당국의 관계만큼은 전술적 수준에서 맴돌 뿐 전략적 수준으로 올라서지 못합니다.

여기서 결론은 명백해집니다. 남측 정부의 대미예속성을 청산하지 못하면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지속적인 장성발전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남(한국)의 노동계급 및 근로인민이 개량주의예속정권을 자주적 민주정권으로 교체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민족통일전선운동을 결정적으로 장성발전시키는 요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둘째,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정부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고,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정부 대표들은 청와대를 찾아가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열렸던 민족통일행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으로서, 일상적인 접견과 예방이라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정부대표로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하였던 통일부 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접견한 것은 나라 안팎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남북(북남) 수뇌가 민족통일행사에 참가한 남북(북남) 정부대표를 각각 접견한 것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운동이 마침내 전진궤도에 올라 시대의 대세로 굽이쳐가고 있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3. 현충원과 서대문형무소 유적지 방문에 대하여

셋째, 8.15 민족대축전 기간에 남(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북측 대표들이 현충원을 방문한 일입니다.  

국립묘지인 현충원은 남(한국)의 과거사가 묘역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며, 오늘의 남(한국)은 그 과거사의 연장선에서 존재한다는 뜻으로 보면 그곳은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이어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북측 대표들의 현충원 방문은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현충원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에서 내가 본 것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길에서 과거불문의 원칙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북측 대표들이 현충원에서 머리를 숙여 묵념을 한 것은, 동족상잔으로 찢겨진 과거를 덮고 이제부터는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자는 통일전선의 과거불문 원칙을 7천만 민족 앞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역사적인 사변이었습니다. 몇 일 뒤 조선사회민주당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남(한국)의 정당사에서 처음으로 애국렬사릉을 방문한 것은, 그 뒤를 이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변이었습니다.

넷째, 8.15 민족대축전 기간에 남, 북, 해외 대표들은 서대문형무소 유적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하였던 일제는 항일투사들을 가두어놓기 위해서 1905년에 그 자리에 식민지감옥을 세웠습니다. 일제가 식민지강점 40년 동안 경성감옥이라고 불렀던 그곳에는 수많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혁명가들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고 그 창살 안에서 악형과 고문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혁명가들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비록 사상과 이념이 서로 달랐으나,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한 항일의 싸움길에서 함께 피를 흘렸습니다. 경성감옥은 바로 그러한 고귀한 피의 자취가 어려있는 한(조선)민족의 항일유적지입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8월의 하늘 아래 민족 공동의 항일유적지에 모여든 남, 북, 해외 대표들이 경성감옥에서 희생당하신 항일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함께 움켜쥐고 통일의지를 가다듬은 것이야말로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였음을 선포한 역사적인 사변이었습니다.

그곳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시기 40년 동안 경성감옥으로 불렸고, 1945년부터 형무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1987년까지 분단시기 42년 동안에는 서대문형무소로 불렸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제국주의 미국의 남(한국) 지배를 반대배격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수많은 정치활동가들과 통일운동가들을 국가보안법에 걸어 투옥하고 고문하고 학살하였던 악명 높은 파쇼감옥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유적지를 돌아본 북측 대표들 가운데는 8.15 조국광복 직후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앞장서서 투쟁하다가 그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뒤에 1950년 6월 전쟁 직전에 사형을 당한 정치활동가 성시백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성자립 총장이 그 사람입니다. 파쇼감옥 42년의 피묻은 자취가 어려있는 유적지를 돌아보며 북측 대표들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였을까요?

4. 민족통일행사에 모인 군중의 힘

다섯째, 8.15 민족대축전에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열린 통일행사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군중이 참가한 행사였습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남(한국) 각 지역에서도 군중이 참가한 지역통일행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6.15 통일대축전에 모인 군중의 힘과 8.15 민족대축전에 모인 군중의 힘을 합친다면 참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질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그처럼 엄청난 군중의 힘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8.15 민족대축전 개막식에는 6만5천명의 군중이 그야말로 구름처럼 모여들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통일조국의 파란 영상이 아로새겨진 통일기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는 6만5천명 군중의 통일열기가 말복의 무더위를 뚫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조국통일의 길은 군중의 거대한 힘으로 열린다는 진리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듯한 장관에 압도당하면서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군중의 무궁무진한 힘일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군중이 통일행사에 참가하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행사에 참가한 군중이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서는 전민족적인 차원의 성대한 통일행사를 통하여 군중의 통일의지를 결집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군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서 얼마나 탄탄하게 결집조직하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운동 앞에 나선 가장 중대한 전략적 과제입니다.

여섯째,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군중의 힘이 커지는 것과는 반대로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시기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은 통일운동단체들이 진행하는 통일행사를 방해봉쇄하였고 조국통일운동에 앞장선 활동가들을 수배하거나 투옥하였습니다. 또한 저들은 남(한국)의 진보적인 사회단체들을 이른바 ‘이적단체’로, 해외동포인사들을 이른바 ‘친북반한인사’로 몰아세우고 그러한 단체의 대표자들이나 그러한 해외동포인사들이 통일행사에 참가하는 것조차 가로막았습니다.

지금도 저들은 남(한국) 민족민주운동단체 지도성원들에 대한 수배조치를 풀지 않았고, 강정구 교수의 글을 문제로 삼아 탄압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또한 저들은 남(한국)을 방문한 일부 해외동포인사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고 있으며, 북(조선)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나 해외동포들이 운영하는 진보적인 웹사이트에 남(한국) 대중이 자유롭게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비열한 조치에 여전히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반통일세력의 힘은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군중의 힘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군중의 힘이 커져갈수록 반통일세력은 차츰 힘을 잃어버리게 되며, 반통일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녹슨 칼처럼 만인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올해 두 차례의 통일행사는 그러한 변화를 현실로 입증하였습니다.

5.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요구되는 결정적 요인

강 - 6.15 및 8.15 축전행사들에 직접 참가하신 분들은 물론 남, 북, 해외 온 겨레는 오늘 ‘제2의 6.15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6.15 공동선언을 말로만 지지하는 단계가 아니라 우리 앞에는 공동선언을 전면적으로 실천할 과제가 나서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는 문제에 관해서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한 - 나는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올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논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줍니다. 제2의 6.15 시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표현은 그러한 현실변화에 적중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자기의 실천단계를 높여 가는 추동력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존재인 인민대중에게서 나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인민대중은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떠밀고 나가는 위대한 주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인민대중은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떠밀고 나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인민대중의 힘은 무한하지만, 자연상태에 있는 힘은 잠재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연상태에 있는 인민대중의 힘을 불러일으켜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떠밀고 나가는 참다운 주체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자연상태에 있는 인민대중의 힘을 불러일으켜 진보와 발전의 주체로 세우는 것을 자주의식화라고 부릅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의식화는 그들 스스로 자주적 사상과 자주적 의지로 무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장이라는 말 자체가 싸움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자주적 사상과 자주적 의지로 무장하는 것은 투쟁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며, 투쟁에 의해서,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인민대중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투쟁에 의해서, 그 투쟁을 통해서 자주적 사상과 자주적 의지로 튼튼히 무장할 수 있으며, 인민대중이 자주적 사상과 자주적 의지로 무장하는 것은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요구되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민주, 통일의 길에서 투쟁하는 운동단체들과 활동가들은 인민대중이 스스로 자주적 사상과 자주적 의지로 무장할 수 있는 군중의 집단적 활동계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한 집단적 활동계기들 가운데는 커다란 계기도 있고 그보다 적은 계기들도 있겠고, 반통일세력에 맞서 싸우는 투쟁계기도 있고 군중 속에서 일으켜 세우는 단합계기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다종다양한 활동계기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통하여 군중의 힘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장성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군중의 힘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통일전선체로 결집되어 가는 것이지요.

자주통일의 전환국면이 열리는 것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든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장성발전되는 것을 뜻하므로, 운동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군중의 집단적 활동계기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내 판단으로는, 올해 들어와서 군중의 집단적 활동계기들이 다양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만들어지면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제2의 6.15 시대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운동단체들과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그러한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신념과 의지가 있으며 사업과 투쟁의 경험이 풍부하고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승산전망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6. 제2의 6.15 시대에 다시 읽는 6.15 공동선언 제2항

강 - 나는 개인적으로 ‘제2의 6.15시대’나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자고 강조할 때마다, 6.15 공동선언의 제2항, 다시 말해서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과 남의 연합제안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한다는 합의를 실천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부각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미군철수를 포함해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이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간다는 공동선언의 제1항이 더 철저히 고수이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한 -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대로,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북남) 수뇌가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채택한 과정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여 제2항에 넣자고 제의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랜 시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였으나 그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상호합의할 수 있는 타결점을 찾는 것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공통성을 찾아낸 것은 정견과 주의주장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동목표를 향한 공동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공통성이 있기에 공동목표를 세울 수 있고 공동목표가 있기에 공동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남과 북(북과 남)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안에 들어있는 공통성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6.15 공동선언에 따르면, 그 공통성이란 나라의 통일을 위한 공통성이며, 나라의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는 공통성입니다.

그렇다면 조국통일을 위한, 조국통일을 지향시켜 나가는 공통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6.15 공동선언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지만, 공통성이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안이 공유하는 남북(북남)관계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이 공유하는 남북(북남)관계라는 것은,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준비해 나가는 새로운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민족통일정부를 세우는 최종목표를 제시한 반면, 연합제안은 그런 목표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목표의 상이성이 있지만, 민족통일정부를 세우기 이전 준비단계에서는 두 방안이 공통성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방제안에 따르면 그 준비단계는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화해협력단계로 이해되고, 연합제안에 따르면 그 준비단계는 남북(북남)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화해협력단계로 이해됩니다. 비록 최종목표는 다르지만, 최종목표 이전에 공유하는 화해협력단계는 똑같습니다.

6.15 공동선언에서 서로 다른 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은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화해협력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뜻하는데, 그 단계에서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이 장성발전함에 따라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게 될 것입니다. 연합제안에 따르면, 그것은 남북(북남)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따금씩 진행되는 남북(북남) 장관급(상급)회담은 정부부처별로 분산된 비상설적 실무회담인데 비하여, 민족정치협의기구는 정부부처별로 진행되는 실무회담을 하나의 정치회담으로 통합하면서 더 나아가서 정당과 사회단체의 민주주의적 참여도 보장하는 포괄적 상임기구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분산적이고 한시적인 실무회담을 민주주의적으로 확대통합되고 상설적으로 정착된 정치협의기구로 교체하는 것은 합법칙적이고 필연적인 발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민족정치협의기구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최고 발전단계에 등장하는 민족통일전선체의 정치적 상부구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해협력단계가 심화발전되면, 남북(북남)에 존재하는 두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적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는 조건에서 그 두 정부 위에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고, 그 협의기구가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공동이익에 맞게 남북(북남)관계를 개선, 조절, 발전시키면서 민족통일정부를 세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화해협력단계가 심화발전되어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는 수준에 이르면, 그 기구가 민족통일정부를 세우는 연방제의 길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남북(북남) 평화공존체제를 세우는 연합제의 길로 나갈 것인가 하는 상이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런 수준의 발전단계에 이르면 공통성보다 상이성이 전면에 나오게 되는 데, 나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이 그 상이성의 문제를 무난히 해결하리라고 낙관합니다. 왜냐하면 민족통일전선체 자체가 본질상 평화공존체가 아니라 정치연합체이므로, 정치연합체가 발전하여 통일정부를 세우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화해협력단계가 심화발전되면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공동이익이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에 맞게 실현되어 갈 것인데, 민족통일전선운동의 공동이익이란 평화공존체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족통일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됩니다. 민족통일정부는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가 전면적으로 실현된 새로운 권력기구이므로 그 성격이 자주적 통일정부로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북남)관계에서 정치적 화해, 군사적 상호불가침, 경제적 협력, 사회적 교류 등 민족적 화해협력이 전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데, 현재 통일정세는 그러한 화해협력이 차츰 확대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1995년부터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10년 동안 남북(북남) 정부당국은 100개의 합의서를 채택하였고 293건의 세부적 합의사항을 내왔습니다. 특히 6.15 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된 때부터 5년 동안 한(조선)민족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들고 민족적 화해협력을 확대심화하기 위한 민족통일전선운동에 힘을 기울여왔고, 올해에 들어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커다란 성과들을 줄이어 내오는 중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은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는 현실조건이 무르익고 있음을 뜻합니다. 무르익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7. 연방제 통일방안은 유일한 통일방안

이왕 조국통일 방안에 관련한 말이 나왔으니, 그 문제를 좀 더 논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연방제 통일방안이야말로 조국통일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북남)에 존재하는 사상과 체제(제도)의 차이를 서로 인정한 조건에서 하나의 국가주권을 세우고 두 지역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가 아니고서는 평화통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남(한국)에서 내놓은 연합제안은 남북연합 창설방안에서 출발하여 국가연합 창설방안으로 변천되었습니다. 남북연합 창설방안에서는 두 개의 국가라는 개념이 모호하였는데, 국가연합 창설방안으로 넘어가면서 두 개의 국가라는 개념이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연합제안은 민족통일정부를 세우는 조건과 경로를 이론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방안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합제안은 하나로 통합된 국가주권을 행사하는 민족통일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분단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사실상 통일방안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명백하게도, 연합제안은 분단국가 공존방안이지 통일국가 건설방안이 아닙니다. 더욱이 연합제안은 남(한국) 사회 전반에서 합의된 것이 아니라 정부당국과 일부세력만이 합의해서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방안은 연방제 통일방안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남(한국) 정부당국이 단지 북(조선)에서 먼저 내놓았다는 것 때문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했던 간에 그 제안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면 지지찬동하는 것이 마땅하고, 더 나아가서 그 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민족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북(조선)이 먼저 제안했다는 것 때문에 제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소아병적 태도입니다.

연방제 통일방안을 민족공동의 조국통일 방안으로 삼으려면 당연히 전민족적 차원의 합의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전민족적 차원에서 조국통일 방안을 합의한다는 말은, 남북(북남) 정부당국과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들로 이루어진 민족정치협의기구를 내오고 거기에서 조국통일 방안을 합의한다는 뜻입니다.   

8.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6.15 공동선언 제1항

강 - 또 한 가지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에 명기되어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이루어질 ‘적절한 시기’란 바로 위와 같은 국면이 열렸을 때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 6.15 공동선언이 채택발표된 뒤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위 문장 그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이었습니다. 그 요청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방문하겠다고 답하였습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시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판단하고 선택할 문제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적절한 시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내 판단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적절한 시기란 남북(북남) 수뇌가 합의한 가장 중요한 사항을 실천하는 현실조건이 무르익는 때라고 생각됩니다. 남북(북남) 수뇌가 합의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두말할 나위 없이 6.15 공동선언의 제1항입니다. 제1항에 명시된 대로, 남과 북(북과 남)이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현실조건이 무르익는 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현실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나는 그 조건이 조미정치회담이 타결국면에 들어서고, 남(한국)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6.15 공동선언을 비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현실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현실조건은,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미 쌍무회담 중심의 6자회담에서 공동합의가 채택발표되고, 그 후속조치로 조미정치회담이 열리게 되는 것인데, 그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일정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왜 조미정치회담을 여는 문제와 관련되는지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6.15 공동선언 이행과 조미정치회담 개최는 뗄 수 없는 관계로 맞물려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저지하는 제국주의반통일세력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6.15 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6.15 공동선언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의사를 드러냈고, 지난 5년 동안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려는 남북(북남) 정부당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비열한 짓만 골라서 저질렀습니다.

이를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추진하려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을 중단시켰고, 한(조선)민족의 통일의지가 높아질 때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라는 이름을 내건 제국주의전쟁연습을 벌려놓으면서 대결상태를 악화시켰고, 남북(북남) 합작사업에서 나온 자금이 북(조선)의 군사력 증강에 흘러 들어간다는 악선전을 내돌리는가 하면, 개성공단에 진출하는 남(한국)의 기업들이 그 무슨 ‘전략물자’를 북(조선)에 넘겨주지 말라고 떠들면서 남북(북남) 경제협력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열리게 될 조미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은 미국이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문제를 합의문에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합의는 미국 정부가 국제관례상 통용되는 내정불간섭 원칙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미정치회담의 합의에 따라 미국이 내정불간섭 원칙을 이행하는 경우, 한(조선)반도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 변화는 미국이 민족통일전선운동을 방해저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둘째 변화는 제국주의내정간섭을 군사적 지배력으로 보장해주는 제국주의점령군이 남(한국)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내정불간섭 원칙을 이행함에 따라 주한미국군은 철군하게 되고, 남(한국) 정부는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미국의 제국주의반통일정책이 사실상 마비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현실조건은 남(한국) 국회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6.15 공동선언을 비준하게 되는 것인데, 그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일정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북(조선)을 함께 살아야 할 통일대상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대세력으로 규정하는 명실상부한 반통일악법이므로, 남(한국) 국회가 그런 악법을 없애고 그 대신 6.15 공동선언을 비준하여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남(한국) 국회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6.15 공동선언을 비준하려면 반통일세력의 집합체인 한나라당의 힘이 약화되어 국회가 새로 거듭나야 합니다. 국회가 새로 거듭나려면, 남(한국)의 대중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6.15 공동선언 비준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야 하며, 진보정당이 대중투쟁의 강한 뒷받침을 받으면서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6.15 공동선언 비준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 남(한국)의 정당들과 북(조선)의 정당들이 정치회합을 갖고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길에 나서야 합니다. 최근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이 1948년 남북연석회의 이후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만나는 정치회합을 성사시킨 것은 매우 뜻있는 일입니다.

베이징에서 조미 쌍무회담 중심의 6자회담이 열리고, 평양에서 남북(북남) 진보정당들의 정치회합이 성사된 것은, 오늘 급변하는 통일정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앞당기는 현실조건이 무르익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9.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 - 북에서는 연초부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여왔던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을 드디어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 정초에 발표된 공동사설에서 당창건 60돌과 광복 60돌을 ‘우리 당과 조국 역사에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자랑찬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일 것을 올해 총적 과업으로 제기했습니다. 이것이 조국통일부문에서는 올해에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을 데 대한 과제로 제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이른 감도 들지만 올해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그와 같은 총적 과업이나 전환적 국면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7 특사면담을 계기로 열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소장님의 논문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미국이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조선(한)반도 비핵화를 지향하는 조미협상쪽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장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 남(한국) 사회에서는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이 중요한 의의를 갖지 못하지만 북(조선)에서는 매우 커다란 의의를 가집니다. 당 창건 60돌이 북(조선) 사회에 주는 정치적 의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는 사회주의집권당인 조선로동당이 당 창건 60돌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지금까지 사회주의국가를 영도해온 당사업 전반을 총화하고 향후 전략적 방침을 제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당 창건 60돌을 맞아 당사업 전반을 총화하고 향후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는 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예상됩니다. 첫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5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창시한 선군정치를 지난 10년 동안 심화발전시킴으로써 주체의 사회주의를 자주적으로 건설해온 당사업입니다. 둘째는, 1993년부터 ‘핵문제’를 둘러싸고 이어진 조미대결전을 승리적으로 이끌어오고 2000년에는 6.15 공동선언을 채택발표함으로써 민족적 자주성의 완성을 지향한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해온 당사업입니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주의사회의 발전의 본질은 자주성을 완성하는 데 있으므로, 선군정치를 통해서 주체의 사회주의를 자주적으로 건설해온 것은 민족적 자주성의 완성을 지향한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해온 것과 완벽하게 일치됩니다. 조선로동당의 견지에서 볼 때, 선군정치 실시와 조국통일위업 수행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당사업입니다.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바와 같이, 북(조선)에서는 당 창건 60돌을 맞이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공동구호를 내놓음에 따라 인민군 군인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100일 전투’를 맹렬히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평양의 5.1 경기장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한 주체의 군중예술 걸작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연속적으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100일 전투’와 ‘아리랑’은 일과 놀이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면서 당 창건 60돌을 맞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 창건 60돌을 맞이한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와 조국통일에 관한 새로운 전략방침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0. 8.15 민족대축전 기간에 생긴 일

강 - 소장님은 이번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시면서 실로 몇 해 만에 서울을 방문하셨습니다. 감회가 깊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동안 남녘동포들의 의식이나 통일운동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인데, 오랜만의 방문을 통해서 남녘의 현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한 - 나는 2001년 9월 22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국가정보원의 사전지시를 받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 의해서 입국이 저지 당했습니다. 그때 나는 해외동포 활동가의 자유로운 조국방문을 가로막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조국의 남녘땅을 다시 밟게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입국을 저지 당한 뒤에 나는 반통일악법이며 파쇼악법인 국가보안법을 더 열심히 짓밟으면서 집필활동과 조직사업에 더 열심히 달라붙었습니다. 그랬더니 국가정보원은 통일학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웹싸이트들의 자유로운 접속을 차단하는 비열한 조치까지 내밀었습니다. 통일학연구소는 접속차단조치에 맞서 새로운 연결주소를 두 개나 내왔으나, 저들은 그것마저 차단해버렸습니다.

내가 부당하게 입국을 저지 당한 때로부터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은 차츰 사멸의 운명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이른바 ‘공안당국’의 반통일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를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국가보안법은 남(한국)의 진보적 사회정치세력이 힘을 합쳐 대규모 폐지투쟁을 벌이자 기가 한풀 꺾였고 지금은 녹슨 칼처럼 초라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추구하는 각계각층 사회정치세력들이 하나의 투쟁대오에 결집하여 통일전선운동이 장성발전될수록 국가보안법은 무력화될 것이며 머지 않아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나는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재미동포대표단의 일원으로 조국의 남녘땅을 다시 밟으면서 4년 전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입국장을 지날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은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해외동포대표단 성원들 가운데 네 사람을 지목하면서 그들이 축전참가일정을 마치자마자 연행조사하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목한 조사대상은 6.15 해외측 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이며 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인 박용 선생, 범민련 재일조선인본부 의장 임태광 선생, 독일에서 활동하는 김용무 선생, 그리고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들의 협박에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예정대로 뉴욕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내가 8.15 민족대축전장에서 만난 6.15 남측 준비위원회 백낙청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말에 따르면,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해외동포대표단 성원을 연행조사하려던 국가정보원의 책동에 대해 6.15 남측 준비위원회가 강하게 항의하자 나는 조사대상에서 ‘면제’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박용 선생과 임태광 선생에 대해서는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것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말고 축전이 끝난 직후에 출국하는 조건으로 입국을 ‘허락’했으며, 김용무 선생은 스스로 입국을 포기하였습니다.

8.15 민족대축전 기간 중 워커힐호텔은 해외측 대표단과 북측 대표단이 머문 숙소였는데, 그곳에는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이른바 ‘정부협력단’이라는 이름으로 배치되어 감시통제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났는데,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망원렌즈가 달린 사진기로, 손전화에 달린 촬영장치로 나를 촬영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내가 가진 디지털 카메라로 요원의 얼굴을 촬영하고, 거센 항의를 들이대어 쫓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얼마 뒤에는 현장지휘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상황을 살피고 사라졌습니다.

8.15 민족대축전 일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으로 갔는데, 집에 들어선 뒤 한 시간쯤 지나서 국가정보원 요원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화통화에서 그는 내가 남(한국)에 머무는 동안 강연활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협조’를 요청하면서, 강연을 하는 경우 다음에 또 입국금지를 당할 수 있다고 ‘경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들의 ‘협조요청’과 ‘경고’를 무시하고, 남(한국)에 머무는 동안 나의 판단과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가정보원을 해체하는 싸움을 더 열심히 벌여야겠다는 투쟁의지를 가다듬었습니다.

11. 4년만의 방문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두 가지

나는 국가정보원의 ‘경고’와 협박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여러 곳을 방문하고 각계층 인사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습니다. 4년만에 이루어진 방문과 만남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너무 많은데, 그 가운데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두 가지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경험은 내가 민주노동당 미국동부지역위원장의 자격으로 민주노동당 중앙당사를 방문하고, 중앙당 각급 일군들과 지구당 일군들을 만난 것입니다. 놀랍게도, 4년 전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진보정치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위해서 투쟁하는 각계각층 사회정치세력이 진보정당의 깃발 아래 결집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전진궤도에 올라선 통일전선운동의 약진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낡은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하는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 자주, 민주, 통일의 실현을 앞당기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진보정당 중심으로 구축된 통일전선의 전진과 승리를 위하여 더 힘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다른 한 가지 경험은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싸움이 벌어진 평택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평택은 미국이 자기의 제국주의군사전략에 따라 동북아시아에 이른바 ‘신속기동군’을 배치하는 거대한 군사전략거점을 세우려는 곳입니다. 지난 7월 10일 평택에서 열린 ‘미군기지 확장저지를 위한 7.10 평화대행진’에서는 남(한국) 전역에서 모여든 1만 명의 시위군중이 경찰저지선을 뚫고 미군기지 철책을 뜯어내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늘도 평택에서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을 반대배격하는 남(한국)의 진보적 사회정치세력들이 평택주민들과 힘을 합쳐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움이 느껴지는 황새울. 그 너른 들녘은 싱싱하게 자란 볏대가 푸른 융단처럼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화폭으로 첫 눈에 안겨왔습니다. 마을마다 ‘미군기지 확장반대’라고 쓴 수많은 노란색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고, 집집마다 ‘이 집은 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는 집입니다’라고 쓴 팻말이 대문에 걸려있었습니다. 황새울 들녘 논두렁에서 우연히 만난 평택주민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단순히 자기 땅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미국놈들의 전쟁위협을 막아내는 싸움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여름햇살 아래 구릿빛으로 그을린 주름살 패인 얼굴들에서는 결의가 엿보였습니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왔을 늙은 농민들이 오늘은 반미반전투쟁에 나선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중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자주의식을 갖게 되는지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그들을 반미반전운동의 투사로 일으켜 세운 것, 그것은 그들 자신의 투쟁이었습니다. 평택주민들은 매일 저녁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었는데, 내가 평택을 찾아간 날에는 357일째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황새울에 어둑어둑하게 땅거미가 내릴 무렵, 대추리 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운 커다란 비닐천막에는 촛불을 든 주민들과 외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가득 모여들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광화문 일대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민중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거리공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커다란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무렵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연습인 을지포커스렌즈 한미합동군사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터라, 촛불을 든 집회참가자들의 머리 위로 미국군 무장헬기들이 쉴새없이 오가며 집회장의 확성기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지긋지긋한 소음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평택에서는 어김없이 반미반전의 촛불이 켜질 것입니다. 평택주민들의 희망대로, 아니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대로 10만 개의 반미반전 촛불이 켜지는 날,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군사전략은 파탄될 것이며, 한(조선)민족의 반미반전투쟁은 승리할 것입니다. 나는 357번째로 촛불을 켜든 평택주민들에게 우리의 정의로운 투쟁은 10만 개의 촛불이 켜지는 날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체류일정이 빠듯하여 인천의 맥아더 동상 철거투쟁현장에는 찾아가지 못하였습니다만, 지난 9월 11일 맥아더 동상 앞에서 열린 ‘미군강점 60년 청산 국민대회’에는 3천명의 군중이 모여 미국군 철군과 동상 철거를 외치며 싸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땅에 맥아더 동상은 없으며, 그를 미국의 전쟁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찾기 힘듭니다. 그런데 한(조선)반도를 38도선으로 분할점령한 제국주의점령군의 원흉이며 한(조선)반도 내전에 개입하여 살육, 파괴, 약탈을 저지른 전쟁광신자의 동상을 인천에 세우고 그 무슨 ‘해방과 자유의 은인’으로 칭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과 인천의 맥아더 동상 철거투쟁은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운동과 주한미국군 철군투쟁이 일상화, 전면화되면서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내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입국금지조치를 당한 뒤 4년 동안 남(한국)에서 참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진보정당의 깃발 아래 통일전선운동이 약진하는 정치투쟁의 현장에서, 그리고 평택과 인천에서 반미자주의 깃발 아래 일상적, 전면적으로 벌어지는 대중투쟁의 현장에서 나는 그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직감하였습니다. 명백하게도, 그 변화의 지향점은 남(한국)민중의 사회변혁과 한(조선)민족의 자주통일입니다.    

12.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의 현황과 과제

강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외동포들의 통일운동에서 나서는 과제에 대해서, 6.15 미국지역위원회 및 해외측 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시는 소장님의 포부도 포함해서 말씀해주십시오.

한 - 아시다시피, 오늘 해외동포의 조국통일운동은 6.15 해외측 준비위원회의 틀 안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행길이라서 그런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많습니다. 해외동포의 조국통일운동은 해외에 따로 떨어진 채 벌어지는 고립화된 운동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조국통일운동과 발걸음을 맞춰 가는 민족통일전선운동의 한 구성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해외동포의 조국통일운동은 남북(북남)의 조국통일운동이 발전하는 추세에 민감하게 맞물려 있어야 하며, 그 발전추세에 뒤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총련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는 재일조선인사회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의 해외동포사회들은 대체로 분산분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하여 해외동포사회에서는 광범위한 각계각층이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 모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재미동포사회를 보더라도, 200만 명에 이르는 동포들이 살고 있으나 지역적, 계층적으로 분산분열되어 있어서 그 어떤 단체도 재미동포사회의 대표성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심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군소단체들이 제각기 난립한 가운데 각 지역마다 세워진 한인회도 스스로 대표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구심적 역할은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지금까지 한인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조국통일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에 6.15 미국지역위원회를 내올 때는 자연히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해온 운동단체들이 먼저 나서게 되었습니다.  

당면문제는, 현재 통일운동단체들만 참여하고 있는 6.15 미국지역위원회를 통일운동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함께 하는 폭넓은 기구로 어떻게 확대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풀어야 할 문제가 나섭니다.

첫째, 통일운동단체들이 6.15 미국지역위원회의 조직구성과 운영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한인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지금까지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존중하고 6.15 미국지역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권한을 그들과 공평하게 나누어 행사하는 방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존중하면서 6.15 미국지역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권한을 공평하게 나누겠으니 동참하자고 제의해도 그들이 과연 참여할지 아니할지 불투명한데, 통일운동단체들이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독점하고 다른 사회단체들은 뒤를 따라오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들과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의 폭이 넓어지면 혹시 통일운동단체들이 제 역할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런 걱정은 아니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조국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풍부한 경험과 지식, 전략과 전술을 지난 쪽은 사회단체가 아니라 통일운동단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한인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통일운동단체 중심으로 세워진 6.15 미국지역위원회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구를 내올 터이니 통일운동단체들은 거기에 들어오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통일운동단체들과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통일운동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을 인내심과 관용적 태도로 서로를 대하면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따라 손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한인회를 비롯한 사회단체들 속에 박혀있는 반통일분자들이나 출세주의자들의 책동을 저지해야 합니다. 그들 속에는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반통일분자도 있고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을 자기의 출세통로로 삼으려는 출세주의자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의 불순한 행동은 철저히 저지해야 할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 앞에는 지난 시기 통일운동단체들끼리 벌였던 범민련운동에서 제기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운동단체들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더 높이 들고 그 선언을 지지하는 각계각층 사회정치세력들과 폭넓은 통일전선을 구축해야 하며 통일전선의 힘으로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2005년 9월 1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