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성명의 평화개념과 남북(북남)관계의 변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평화개념의 두 가지 의미
2. 9.19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의 관계
3. 남북(북남)관계 정상화의 한계와 진보정당의 집권
 

1.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평화개념의 두 가지 의미

북(조선)과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서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전반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조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공약하였다. 한 마디로, 그것은 평화공존체제를 세우자는 공약이다. 평화공존체제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항구적인 평화공존을 보장하는 정치군사체제를 말한다.

평화공존체제를 논할 때 주의할 문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평화라는 개념도 정치이념에 따라 상반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평화개념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한(조선)반도의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유지관리함으로써 이른바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를 한(조선)반도에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분단체제의 평화적 유지 및 관리란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국)과 국교를 수립한 것에 상응하여 미국과 일본이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는 교차승인구도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유지관리하는 ‘미국의 평화’란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는 제국주의분할지배정책을 교차승인구도 속에서 추진하는 영구분단의 평화이며, 그 정책에 한(조선)민족이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식민주의적 평화이다.

그와 달리,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평화개념을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사회주의적 의미와 민족주체적 의미가 보인다.

첫째, 평화의 사회주의적 의미란, 북(조선)이 대미관계에서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북(조선)의 대미정책에서 볼 때, 사회주의국가가 제국주의국가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은 사회주의국가가 반제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이란 사회주의국가가 자기를 노리는 제국주의국가의 봉쇄침략정책을 무력화하여 사회주의체제를 수호하고 사회주의체제의 자주적 발전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은 사회주의국가가 상호자주권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의 원칙을 정치적 무기로 하여 제국주의국가에 맞서 싸우는 반제투쟁의 한 형태이다. 제국주의국가의 대외정책에서 기본은 자주권존중이 아니라 봉쇄와 예속이고, 불가침이 아니라 침략전쟁전략이며, 내정불간섭이 아니라 지배주의적 간섭이므로,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은 봉쇄와 예속, 침략전쟁, 내정간섭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에서 보면, 한(조선)반도에서 평화공존체제를 세우는 정치과업을 밀고 나갈수록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은 무력화되며 마비된다. 1988년 11월 7일 북(조선)이 ‘조선반도의 평화보장 4대 원칙과 포괄적인 평화방안’을 발표한 때로부터 17년이 되는 올해에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북(조선)이 미국의 제국주의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끈질기게 싸워온 끝에 마침내 자기의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을 관철시킨 정치적 승리인 것이다.

둘째, 평화의 민족주체적 의미란 남북(북남)이 화해협력하면서 평화통일정책을 추진하는 전략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뜻한다. 남북(북남)의 화해협력이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고, 남북(북남) 정부의 평화통일정책 추진이란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한(조선)민족에게 평화는 남북(북남)의 평화공존이 아니라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정치적 과정이자 방도인 것이다.

평화라는 정치개념이 남북(북남)의 평화공존으로 인식되지 않는 까닭은, 남북(북남)의 평화공존이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유지관리하는 ‘미국의 평화’와 상통하며, 분단체제를 영구화하려는 제국주의분할지배정책에 들어맞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조선)민족에게 평화란, 남북(북남)의 평화공존이 아니라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 또는 방도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남북(북남)의 평화공존을 국가관계론으로 개념화한 것이 남(한국)정부가 말하는 국가연합방안이다.

셋째, 한(조선)반도의 평화라는 정치개념이 가리키는 사회주의적 의미와 민족주체적 의미는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과 민족주체적 평화통일정책이 일치함을 뜻한다.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말은 반제자주와 평화통일의 일치성을 표현한다.

2. 9.19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의 관계

일반적으로, 반제자주화는 제국주의전쟁도발에 무력으로 대응하는 비평화적 방도로 실현될 수도 있고,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을 밀고 나감으로써 제국주의정책을 무력화하는 평화적 방도로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대로, 한(조선)민족이 수행하는 반제자주화의 과업은 나라를 통일하는 과업과 떼어놓을 수 없게 연관되어있다. 반제자주화과업과 나라의 통일과업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분단국가에서 수행되는 반제자주화과업이 지닌 특수성이다.

만일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가 제국주의전쟁도발에 무력으로 대응하는 비평화적 방도로 실현되는 정세가 조성될 경우,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반제자주화과업과 나라의 통일과업을 비평화적으로 수행한 역사적 경험은 베트남민족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한(조선)민족은 베트남민족의 경우와 달리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북(조선)이 6자회담에서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을 관철하여 9.19 공동성명을 내옴으로써, 나라의 통일이 평화적으로 실현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은, 남북(북남)이 화해협력하면서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정세발전을 힘있게 떠밀어준다. 9.19 공동성명이 이행됨에 따라 남북(북남)은 그 성명의 이행속도를 앞질러 화해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북(북남)의 화해협력이 아니라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이다.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란 남(한국)정부와 북(조선)정부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을 뜻한다.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란 민족 내부에 존재하는 두 정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므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조미관계가 정상화되어 평화공존체제를 세우는 것과 달리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조미관계의 정상화는 평화공존체제로 나아가지만,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는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성명은 6자회담에서 채택된 것이므로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정치과업에 대해서 공약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할 까닭도 없었다. 남북(북남)의 두 정부가 제국주의내정간섭을 배격하고 정치협상으로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 문제를 푸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북남)의 두 정부가 관계를 정상화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원칙과 방향은 6.15 공동선언에 밝혀져 있다. 6.15 공동선언에 따라 두 정부가 관계를 정상화하면 그것이 곧 평화통일정책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6.15 공동선언의 원칙과 방향에 따라 실현되는 나라의 평화통일은, 9.19 공동성명의 공약에 따라 사회주의적 평화공존이 실현되는 정세발전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촉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9.19 공동성명의 이행은 6.15 공동선언의 실현을 촉성한다.

3. 남북(북남)관계 정상화의 한계와 진보정당의 집권

그런데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 놓인 걸림돌은, 남북(북남)의 두 정부가 6.15 공동성명 제1항에 밝혀진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원칙을 서로 달리 해석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나라의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논의조차 아직 시작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북(조선)정부는 자주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원칙을 반제자주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 데 반하여, 남(한국)정부는 한미동맹의 강화와 자주적 통일의 실현이 상호모순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북(조선)의 반제자주적 관점에서는, 미국의 제국주의핵우산을 거둬치우고 주한미국군을 내쫓는 것을 자주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원칙문제로 본다. 그러나 남(한국)정부는 남(한국)이 미국의 제국주의핵우산 아래서 ‘안전보장’을 받는다고 보면서,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한다.

남북(북남)의 두 정부가 이처럼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까닭은 그 두 정부의 근본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북(조선)정부는 제국주의체제를 배격하는 자주성을 자기의 근본으로 하는 반면, 남(한국)정부는 제국주의체제에 편입된 예속성을 자기의 근본으로 한다.

자주성 대 예속성으로 상반되는 두 정부의 근본은, 남북(북남)의 화해협력이 더 진척되더라도 남북(북남)정부의 관계는 정상화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화해협력이 평화통일의 실현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멈출 것임을 예고한다.

화해협력단계를 평화통일단계까지 밀고 나가려면 남(한국)정부가 자주성을 근본으로 하는 새로운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 그 새로운 정부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표현을 빌리면,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이다.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남북(북남)의 화해협력이 도중에 멈추지 않고 계속 진전되어 자주적 통일정부를 세우는 높은 단계까지 나아가게 되며, 또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환상의 미궁에 빠뜨리는 형식적 민주개혁을 넘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를 실현하는 실질적 민주개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진보정당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평화통일의 역사적 전망이다.

남(한국)에서 낡은 정부가 새로운 정부로 바뀌는 것은 진보정당의 집권과업이 완수되는 것을 뜻한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한다.

첫째,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9.19 공동성명에 밝혀진 조미관계의 정상화가 이행됨에 따라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정세급변에 발맞춰 남(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반제자주화과업이 완수되며, 남(한국)의 자주적 민주정부와 북(조선)의 사회주의정부가 합작한 자주적 통일정부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미국이 제국주의분할지배정책을 강요하는 한(조선)반도에서는 반제자주화과업만이 아니라 그 과업과 더불어 나라의 통일과업이 상호연동적으로 추진되어야 민족적 자주성이 완성에 이르게 된다.

둘째,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실시하는 민주주의, 곧 진보적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계급적 자주성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실현된다. 진보적 민주주의란, 민주노동당 강령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발전”시킨 새로운 민주주의이다. 물론 진보적 민주주의는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기는 하나, 그것의 완성에는 이르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은 창당선언문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년, 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으로 규정하였다. 통일전선정당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남(한국)의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전체가 진보정당의 깃발 아래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단결하여 통일전선을 일으켜 세우고 그 전선운동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2005년 10월 3일 작성)

* 이 글은 2005년 10월 10일 서울에서 발행된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 제244호에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