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이 개시한 핵실험 대공세에 대하여

 

<차례>
1. 제국주의핵독점구도의 파열음을 들으며
2. 핵실험 대공세 이전의 정세흐름
3. 핵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현상들
4. 다시 읽는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의미
5. 백남순-라이스 긴급회담이 열릴 때

1. 제국주의핵독점구도의 파열음을 들으며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2006년 10월 3일 오후 6시에 북(조선)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 불과 엿새만에, 부쉬정부에게 대응시간을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핵실험은 2003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3자회담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실물로 증명해 보이겠다(physically demonstrate)고 밝힌 것(『워싱턴포스트』 2003년 4월 25일)을 3년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조선)은 그 3년 동안 부쉬정부가 북(조선)에게 보여준 갖가지 횡포에 여러 가지 격파전술로 대응하여 오던 중, 마침내 핵실험 대공세를 개시하였다.

북(조선)의 핵실험 대공세로 세계가 화들짝 놀랐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발칵 뒤집혔다. 부쉬정부의 집요한 적대정책을 반대하며 반제자주적 비핵화를 요구해온 한(조선)민족은 미국이 '핵우산 방위공약'을 움켜쥐고 핵독점과 핵공갈로 정세를 짓누르던 어두운 시대가 어느덧 막을 내리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제국주의 미국이 핵독점과 핵공갈을 제멋대로 자행하는 이른바 '핵우산 방위공약'을 공식문건에 명기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78년에 열린 제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있었던 일이다.

핵실험 소식을 듣고 어두운 시대의 종막을 직감한 사람들은 어디 한(조선)민족뿐이랴. 제국주의 미국의 선제핵공격 협박을 속수무책으로 당해오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수 십 억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동방의 작은 사회주의나라가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주의초강국의 오만한 압박책동을 통쾌하게 한 방에 날려버린 핵실험 소식을 듣고 환호하였다.

부쉬정부에게 직격탄을 날린 북(조선)의 핵실험 대공세는,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서 각각 핵폭탄을 터뜨린 이래 제국주의초강국으로 장장 60년 동안이나 군림해온 아메리카합중국이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자국의 정치군사적 지위를 잃게 되었음을 입증하였다.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60년 동안 핵참화의 재앙을 강요해온 제국주의핵독점구도가 마침내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의 '핵우산 방위공약'을 '한미동맹의 기본'이라고 속여온 제국주의호전광들의 속임수를 생각 없이 따르는 사람들은 북(조선)의 핵실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북(조선)의 핵실험과 관련하여 종잡을 수 없이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자본주의언론시장이 내놓은 선정주의적 보도가 그들의 불안감을 더욱 조여대고 있다.

오늘 요구되는 것은, 자본주의언론시장에서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선정주의로 굴절된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말고 정세의 본질을 읽어내는 주체적 관점을 올곧게 세우는 것이다. 관점을 올곧게 세울 때, 정보의 깊은 곳을 꿰뚫어보고 정세흐름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북(조선)의 핵실험을 논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민족주체적 관점을 강조하는 까닭은, 그 관점에 서야 북(조선)의 핵실험이 지닌 정치군사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핵실험 대공세 이전의 정세흐름

정세흐름을 눈여겨보아온 사람들의 시야에는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기까지 조미관계의 물밑에서 이어져온, 눈에 잘 띄지 않은 일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게 보인다. 그 움직임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도면이 그려진다.

2-1)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으로 조미대결이 폭발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되돌아보면, 클린턴정부 시기에 진행하였던 조미양자회담에서 북(조선)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관되게 노력하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문제'란, 9.19 공동성명이 밝힌 대로,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정치과업이다.

2002년 10월 부쉬정부가 북(조선)의 우라늄농축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느닷없이 조미양자회담을 중지하고, 11월에는 클린턴정부 시기에 채택된 조미기본합의에 따라 지속되어온 중유지원마저 끊어버리면서 조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기 시작하였을 때에도, 북(조선)은 인내와 자제로 '핵문제'를 풀어보려고 힘썼다. 2002년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때마침 평양을 방문하였던 존스합킨스대학 교수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와 뉴욕의 코리아협회(Korea Society) 회장 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를 통해서 백악관에 친서를 전달하였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에는 북(조선)의 핵무장 포기와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동시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공명정대한 해결방안이 제시되어 있었다.

부쉬정부가 조미양자회담을 거부한 조건에서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조선)의 인내와 자제는 멈추지 않았다. 2003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3자회담에서 북(조선)은 미국이 북(조선)에게 "어떤 상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경우, 핵무기를 제거하고, 심지어 핵무기 개발사업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4월 28일) 이처럼 북(조선)은 어떻게 해서든지 대화와 협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부쉬정부가 조미기본합의를 깨버리고 조미양자회담을 거부하였을 때도 북(조선)이 인내와 자제를 잃지 않고 대화와 협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쓴 까닭은, 북(조선)에게 있어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5년 6월 정동영(당시 통일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밝혔듯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기 때문이다. 북(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무조건적 관철에 있으므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조선)이 난관과 역경을 무릅쓰고 반드시 실현해야 할 임무로 된다.

그러나 '핵문제'에 관해서 무지몽매한 부쉬가 백악관의 주인으로 들어서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들이치며 침략전쟁과 대량살육을 자행하고 있을 때, 그와 그의 참모들이 저지른 것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최악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들은 클린턴정부의 대북(조선)정책을 서슴없이 내던졌다. 그리하여 클린턴정부 시기에 이어졌던 조미양자회담도 물 건너 가버린 지 너무 오래다.

2003년 8월에 부쉬정부는 조미양자회담 구도를 6자회담 구도로 바꿔놓았으나, 6자회담이란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여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가 아니라 역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동북아시아 국제정치구도로 북(조선)을 몰아넣으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들고 나온 것이다. 부쉬가 주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3년 8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북(조선)을 6자회담의 틀 안에 묶어두고 이른바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는 척 세상을 속이면서 시간을 끌다가, 적당한 틈을 타서 6자회담의 막 뒤에서 정치군사적 압력을 가하면 견디다 못한 북(조선)이 결국 정치적으로 굴복할 것으로 타산하였다.

부쉬정부가 그처럼 어리석게도 조미양자회담을 회피하면서, 되지도 않을 압박책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두 가지를 들춰낼 수 있다.

첫째, 부쉬가 백악관에 들어가던 무렵, 공교롭게도 클린턴정부의 대북(조선)정책이 '북(조선) 붕괴'라는 허구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최대 시련기'라고 하는 '고난의 행군'을 헤쳐가야 하였던 북(조선)을 두고 제국주의전략가들이 21세기에는 북(조선)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북(조선)이 운좋게 살아남기만 해도 기적이라고 떠들어대곤 하였던 것이 클린턴정부 시기에 흔히 있었던 일이었지만, 부쉬정부가 들어서던 무렵, 정작 무너진 것은 북(조선)이 아니라 '북(조선) 붕괴론'이었다

부쉬정부는 허구에 기초하여 작성된 이전의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을 그대로 이어받아 조미양자회담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부쉬정부가 허구에 기초하여 작성된 관여정책을 외면하였을 때, 그들에게 남은 것은 회담중지와 압박의존이라는 최악의 전술, 다시 말해서 북(조선)의 전략적 대공세를 촉발시켜 결국 패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었다.

둘째, 부쉬정부가 21세기에 조성된 새로운 군사정세에 맞춰 기존의 군사전략을 수정, 보강하면서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여야 하였기 때문이다. 부쉬정부의 군사전략 수정 및 보강은 이른바 반테러전략으로 재정리되었고, 핵태세검토보고(NPR)나 해외주둔 미국군 재배치(GPR)로 실행되었다. 부쉬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미사일방어체계 수립, 신속기동군 배치, 장거리공중타격력 증강, 공습정밀타격력 증강, 새로운 전술핵무기 작전배치 등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눈여겨볼 때, 제국주의 미국의 '핵우산 방위공약'이 시시각각 보강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지만, 부쉬정부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되는, 그리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위태롭게 된 전선은 한(조선)반도에 형성되어 있다. 한(조선)반도의 전선에서 새로운 군사전략을 밀고 나가려는 부쉬정부에게 조미양자회담을 계속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부쉬정부에게는, 정확히 지적하자면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를 우두머리로 하는 미국 국방부와 군부에게는, 새로운 군사전략에 맞춰 한미군사동맹체제를 개편하면서 '핵우산 방위공약'을 보강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으로 되었다.

그러나 부쉬정부가 그처럼 대북(조선)관계를 회담중지와 압력의존이라는 최악의 전술로 끌어가면 북(조선)이 결국 정치적으로 굴복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은 커다란 오판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은, 오늘 현실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듯이, 그들 자신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대파국의 위기상황으로 밀어 넣은 결정적인 패인으로 되었다.

2-2)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부쉬정부가 자기 임기 안에 골격을 세우려고 미친 듯이 다그치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을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핵우산 방위공약'에 의거하여 북침공격능력을 크게 보강하는 침략전쟁준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들의 북침전쟁준비는 최전선에 늘어놓았던 미국군 기지들과 용산의 야전군사령부를 평택으로 옮기고, 주한미국군 지상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 재배치하고, 전술핵무기를 동원하여 공습정밀타격력과 장거리공중타격력을 크게 보강한 공군력을 평양에서 전략폭격기의 항공속도로 불과 네 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 집중배치하고, 북(조선)의 미사일을 무력화시키려는 미일동맹군의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고, 태평양군사령부의 한(조선)반도 작전능력을 크게 증강하고, 한국군의 지상작전능력을 향상하는 것으로 전개되었고, 한(조선)반도와 태평양지역에서 해마다 300여 차례씩 다종다양한 전쟁연습을 실시하는 태평양군사령부의 전쟁시나리오를 보강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틀어쥐었던 전시작전지휘권을 2009년에 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것은, 바로 그러한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을 북(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핵우산 방위공약'에 의거한 북침전쟁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북침전쟁준비를 막바지로 끌어올리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은, 조미양자회담을 통해 적대적 조미관계를 비적대적으로 바꾸어 한(조선)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고 힘써온 북(조선)의 정치군사적 의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의사를 꺾어보려는 엄중한 도발인 것이다.

부쉬정부를 조미양자회담에 끌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격파전술을 취하는 동안 전략적 대공세를 자제해온 북(조선)은 막바지에 이른 북침전쟁준비를 보면서 자국의 인내와 자제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북(조선)은 더 이상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북(조선)에게는 '핵우산 방위공약'을 보강하는 책동을 저지하는 단호하고 결정적인 조치가 요구되었다. 2005년 2월 10일 북(조선)이 마침내 핵무기 보유와 증산이라는 폭탄선언을 내놓은 것은 부쉬정부를 조미양자회담으로 끌어냄으로써 '핵우산 방위공약' 보강책동으로 치닫는 한미군사동맹체제 개편작업을 저지하는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2-3) 북(조선)의 분노가 폭발하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는 것과 동시에 부쉬정부가 발동하였던 금융제재는 북(조선)의 자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만든 최악의 사태로 번져갔다. 그 최악의 사태는 2006년 6월 1일 북(조선)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힌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의 방북초청의사를 부쉬정부가 외면하고, 7월 4일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부쉬정부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움직여 결의안 제1695호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번져가고 말았다.

2005년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베이징에서 재개된 6자회담에서 채택하였던 9.19 공동성명은 부쉬정부가 금융제재를 발동하자 휴지조각처럼 나뒹굴게 되었다. 부쉬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금융제재 강행과 6자회담 재개가 별개 문제라고 강변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만일 북(조선)이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으면서 6자회담에 나간다면 그것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1년 동안 부쉬정부가 방코 델타 아시아(BDA)의 돈자리에 대한 조사활동을 까닭 없이 자꾸 지연시키면서 금융제재기간을 연장하는 까닭은, 조사과정이 힘들고 복잡해서가 아니라, 북(조선)을 6자회담에 끌어내어 정치적 항복을 받아내려고 획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쉬정부의 '막가파식' 횡포에 직면하여 북(조선)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북(조선)을 더 한층 격노하게 만든 요인은, 부쉬정부가 금융제재도 모자라 추가 제재를 발동하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부쉬정부의 추가 제재라는 것은 『뉴욕타임스』가 2003년 4월 25일자 보도에서 지적하였던, 북(조선)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로 추진하는 강력한 경제제재인 이른바 '부시의 비(B) 계획(Bush's Plan B)'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이 2006년 9월 5일부터 10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자고 제의한 것은 이미 때가 너무 늦어 북(조선)이 거부하였는데, 힐이 만남을 제의한 것은 세계의 이목을 속이려는 조잡한 사기극이었다. 왜냐하면 9월 6일 워싱턴에서 국무부 대변인 숀 매코맥(Sean McCormack)이 북(조선)에 대한 추가 제재를 논의하고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쉬정부가 조미양자회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북(조선)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6자회담에 끌어내려는 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2006년 9월 14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는 노무현 대통령이 들고 간 이른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다시 말해서 조미양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듣고서 코방귀를 뀌었다. 막무가내로 추가 제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추가 제재를 강행하기 전에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가 서울, 베이징, 도쿄를 나도는 순방계획이 나왔고, 6주간이라는 시한까지 정해놓았다. 6주간 안에 북(조선)이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조선)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격노한 북(조선)은 워싱턴으로 통하는 연락통로이었던 주유엔 대표부의 한성렬 차석대사를 평양으로 소환하고 후임자를 내보내지 않음으로써 조미연락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1993년부터 '핵문제'를 놓고 지속된 13년 동안의 조미대결과정에서 북(조선)이 이처럼 연락통로마저 막아버린 적은 없었다. 연락통로를 막은 조치는, 부쉬정부에게 더 이상 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전략적 대공세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직격탄을 날리며 최후결전을 벌이겠다는 단호한 결심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2-4) 핵실험 대공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으로 개시된 것이다.

북(조선) 언론매체들이 시차를 두고 보도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근 행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6년 9월 15일 『로동신문』 제1면에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해발 1649m) 정상에서 동해의 붉은 여명을 바라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크게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로봉 정상시찰을 보도한 때는 9월 14일 밤 11시50분이었다. 이례적인 심야보도가 타전된 시각은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시작되기 10분전이었다.

오랫동안 북(조선)을 연구해온 나로서도 당시 『로동신문』에 실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로봉 정상시찰 보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한 뒤에서야 그것이 핵실험 대공세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과 결부되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로봉 정상에서 동해의 붉은 여명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급전시킬 매우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그것은, 『로동신문』 2006년 9월 8일부에 실린 정론 '려명이 불탄다'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고난의 장막을 밀어내며 새로운 시대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사회주의려명이었다.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2006년 10월 5일 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번째 행적을 보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대대장, 대대 정치지도원 대회에 참가하였음을 보도한 것이다. 그 대회에는 조명록 차수를 비롯하여 조선인민군 고위지휘관들이 모두 참가하였다. 그 보도가 타전된 시각을 계산해보면, 핵실험 계획발표와 대대장, 대대 정치지도원 대회가 연속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군의 기본전투단위인 대대의 지휘관들에게 혹시 핵실험장을 공습정밀타격으로 파괴하려고 덤벼들지 모르는 미국의 전술적 오판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 조선인민군을 경계태세로 준비시킬 것을 명령하였을 것이다. 핵실험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경계태세명령이 내려진 뒤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엔비씨(NBC) 텔레비전 방송은 2005년 5월 6일 보도를 통해,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미국군이 공습정밀타격으로 핵실험장을 파괴하는 작전계획을 마련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2006년 7월 3일 북(조선)이 실시하였던 미사일 발사훈련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훈련은 사거리와 정밀도를 한껏 높인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작전훈련이었다. 그 훈련의 목적은 동해 수평선 너머에서 북(조선)의 핵실험장을 불시에 타격하려고 노리는 미국 해군의 공습정밀타격작전을 무력화시킬 군사적 대응력을 과시한 것이다. 내 판단으로는, 그 훈련 직후 북(조선)은 핵실험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한 때로부터 꼭 두 달이 되는 10월 3일에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것을 보면, 북(조선)은 그 두 달 동안에 핵실험을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다.

3. 핵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다섯 가지 현상들

핵실험 대공세라는 직격탄을 맞은 부쉬정부는 지금 북(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의 성공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을 유보한다고 떠들면서, 상투적인 왜곡선전을 내돌리기 위한 정보조작에 나섰다. 얼마 뒤 그들이 내놓을 '최종판단'이라는 것은,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보나마나 북(조선)의 핵실험이 기술적으로 실패하였다는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부쉬정부가 제아무리 정보조작과 왜곡선전에 매달린다해도 진실은 감출 수 없으며, 인류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다. 그들의 정보조작과 왜곡선전은 그들끼리 지껄이다가 제풀에 주저앉는 초라한 정치촌극일 뿐이다.

북(조선)이 성공적으로 실시한 10월 9일 핵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놀라운 현상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3-1) 북(조선)은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첩보망과 정찰작전을 무력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할 만한 조건을 타산하여 적어도 여섯 곳 이상을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감시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북(조선)이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핵실험을 실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는 화대군은 오래 전에 미국의 집중감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고, 해발 500m를 넘지 않는 낮은 산들이 드문드문 늘어선 평야지대여서 미국은 북(조선)이 집중감시지역을 피해서 함경북도에 있는 다른 험준한 산악지대를 선택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은 바로 그러한 미국의 판단을 뒤집으면서 허를 찔렀다. 북(조선)이 미사일 기지가 있는 화대군에서 핵실험을 실시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미국은 아직도 핵실험 장소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첩보강국, 정찰강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져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말았다.

핵실험은 불꽃놀이가 아니다. 핵실험은 고도의 과학기술력이 집중된 무기성능을 시험하는 것이므로 치밀한 사전준비가 요구된다. 우선 갱도굴착공사부터 벌이고, 핵무기를 지하보관소에서 꺼내 실험장으로 운반하여 설치하고, 엑스(X)선과 중성자와 지진파를 측정하는 탐지장비를 운반하여 갱도 안에 설치하고, 갱도를 밀봉하는 방대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고, 방사성 물질의 누출현상을 탐지하는 무인관측탑을 지상에 설치하여야 한다.

북(조선)이 그와 같이 핵실험 준비작업을 벌이는 동안, 그 무슨 막강한 첩보조직과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물샐 틈 없다고 떠들어대던 미국의 첩보력과 정찰력은 한심하게도 엉뚱한 장소에서 맴돌고 있었다. 북(조선)의 기만술과 위장술에 걸려 까막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의 첩보력과 정찰력을 완벽하게 따돌린 것은, 함경북도 화대군 일대의 땅속에 거대한 지하시설과 갱도가 이미 오래 전에 건설되었기에 가능하였다. 해상도가 뛰어난 미국의 정찰위성이 쌍심지를 켜고 스물 네 시간 내내 공중감시에 매달린대도, 땅속 깊은 곳에서 진행되는 핵실험 준비작업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조선)의 핵실험이 미국의 첩보력과 정찰력을 무력화한 것은 조선인민군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전략적 기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대단한 작전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이 적국의 지하시설을 파괴하려는 '벙커버스터(bunker burster)'라는 이름의 지하관통폭탄을 작전배치하였다고 떠들지만, 그것은 북(조선)의 군사전략거점이 들어선 지하시설들을 거미줄 같이 연결해놓은 갱도전략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이다.

3-2) 북(조선)은 핵실험을 통해서 초소형 고성능 핵무기를 보유하였음을 입증하였다.

61년 전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뜨린 핵폭탄은 오늘의 핵무기 개발기술수준으로 보면 아주 원시적인 것이었다. 히로시마에서 폭발한 핵폭탄 무게는 4.4t이었고,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핵폭탄 무게는 4.9t이었다.

그 뒤로 미국은 핵무기를 좀더 작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려는 소형화, 경량화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 까닭은 핵무기를 소형화, 경량화하여야 미사일 탄두부에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소형화, 경량화하여 핵탄두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대적 핵무기를 개발하는 핵심기술이다.

한국지질연구원이 핵실험에서 나오는 피(P)파를 측정하는 엠비(MB)측정법으로 측정한 바에 따르면, 북(조선)의 핵실험에서 나타난 진동수치는 3.9의 지진파였다고 한다. 같은 측정법으로 측정하였던 미국 지질조사국은 4.2의 지진파를 측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티엔티(TNT) 1Kt(1천t)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가 폭발하면 진도 4.0 정도의 지진파를 일으키므로, 이번에 북(조선)이 폭발실험을 하였던 핵무기는 1Kt급 초소형 핵무기로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 국방부는 북(조선)의 핵실험에서 5Kt에서 15Kt에 이르는 강력한 폭발력이 측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러시아 국방부의 그러한 발표가 나오자 미국은 그 발표를 부인하였다.

서로 다르게 나온 지진파 측정자료만 가지고 핵무기 성능을 판별하기는 힘들지만, 그리고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정보를 조작하여 북(조선)의 핵무기 성능을 축소한 '최종판단'을 내놓으려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북(조선)이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초소형 핵무기를 폭발한 지하핵실험에 성공하였다는 점이다.

히로시마 상공에서 터진 원시적인 핵폭탄이 티엔티(TNT) 15Kt이었고,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진 원시적인 핵폭탄이 21Kt이었던 것과 비교하거나, 또한 핵무기 설계기술이 발달하였다는 핵강국들이 통상적으로 2kt급 소형핵무기를 가지고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에 비교하면, 북(조선)이 실험한 핵무기는 첨단기술로 제작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초소형 핵탄두임이 분명하다. 북(조선)이 저온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저폭 뇌관실험에 성공한 기술력을 확보하였던 때가 1993년이었는데, 정교한 핵무기 설계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13년 동안 박차를 가해온 북(조선)이 오늘 초소형 고성능 핵무기를 작전배치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북(조선)이 초소형 핵무기 폭발실험에 성공한 것은, 소형핵탄두를 장착한 백두산급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지구 반대쪽으로 날아가 제국주의아성을 초토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 2003년 2월 12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사실을 인정하였던 당시 중앙정보국장 조지 테닛(George J. Tenet)의 증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군이 사용하는 『핵무기 대응교본』에 근거하여 추정한다면, 1Kt급 소형핵무기가 워싱턴이나 뉴욕의 도심에서 폭발하는 경우 상상을 넘어서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3-3) 북(조선)의 핵실험은 미국의 정찰위성이 알지 못하는 지하보관소들에 많은 핵무기가 배치되었음을 말해주었다.

북(조선)의 핵무장력을 과소평가하여 '핵문제'의 위기상황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들이 독점한 정보를 멋대로 조작하거나 왜곡해온 미국은 지금까지 북(조선)이 원시적인 핵무기를 한 두 기 가졌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얼버무리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말짱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만일 미국의 왜곡선전대로, 북(조선)에게 핵무기가 한 두 기밖에 없다면 북(조선)은 핵실험을 실시하지 못한다. 핵무기 양산체제를 갖춘 나라만이 핵실험을 실시할 수 있다. 1998년 5월에 북(조선)과 공동으로 핵실험을 실시하였던 파키스탄은 당시 핵무기가 10기 밖에 없었으나 오늘에는 50여 기를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생산능력에 비춰볼 때, 북(조선)도 50여 기 정도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가치를 달러로 환산하는 데 익숙한 서방의 전문가들은 핵무기 1기를 만드는 데 3억 달러가 들어간다고 말하지만, 북(조선)이 보유한 핵무기들은, 북(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사탕알 없이는 살아도 총알 없이는 못 산다는 정신으로 푼전을 아껴가며 수 십 년 동안 피땀 흘려 만들어낸, 그리하여 그 가치를 달러로 따질 수 없는 선군정치의 전략무기인 것이다.

3-4) 북(조선)의 핵실험 사전통보는 부쉬정부에 직격탄을 날리는 전략적 대공세의 선전포고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북(조선)은 핵실험을 실시하기 20분전에 중국에게 통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에게는 두 시간 전에 통보하였다.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하기 20분전에 가서야 중국에게 통보하였던 까닭은, 중국이 북(조선)의 핵실험을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조선)의 핵실험을 반대한 까닭은, 대만과 일본이 북(조선)의 핵실험을 구실로 삼고 핵무장을 추진하지나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대만통합을 추진하는 중국에게 대만의 핵무장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일본의 핵무장은 경제성장에 힘쓰는 중국에게 악몽인 것이다. 대만과 일본의 핵무장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은 미국과 목소리를 합해서 북(조선)의 핵실험을 반대하고 있지만, 미국이 밀고 나가는 '핵우산 방위공약' 보강책동을 파탄시키고 동북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속으로는 북(조선)의 핵실험 대공세가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서 북(조선)의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동요성과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전달받은 통보내용을 즉각 미국에게 알려주었다. 미국 대통령 부쉬는 워싱턴 시간으로 밤 10시가 지난 뒤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Stephen J. Hadley)로부터 북(조선)의 핵실험 실시통보를 전달받았다. 이것은 미국과 연락해온 통로를 이미 끊어버린 북(조선)이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 핵실험 실시를 통보하였음을 뜻한다. 『뉴욕타임스』는 이것을 북(조선)의 '핵노출증'이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렸지만, 북(조선)의 핵실험에 들어있는 정치적 목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최후의 결정타를 가하는 핵실험 대공세를 개시하였음을 알려준 것이었다. 전쟁에 선전포고가 있듯이, 핵실험 대공세에도 그 공세가 개시됨을 알리는 선전포고가 있는 법이다. 핵실험 대공세는 13년 동안 끌어온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을 마지막 단계로 밀고 가는 선군정치의 전략적 대공세이다.

3-5) 북(조선)의 반제국주의핵실험은 제국주의제재책동을 뚫고 이어질 것이다.

프랑스의 핵실험은 1995년 9월에서 1996년 5월까지 여섯 차례 실시되었고, 인도의 핵실험은 1998년 5월 11일과 13일 두 차례 실시되었으며,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1998년 5월에 여섯 차례나 실시되었다. 그러한 국제적 실험경험에 비춰볼 때, 앞으로 북(조선)은 몇 차례 더 핵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핵보유국들이 핵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는 까닭은 여러 종류의 핵무기가 가지는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조선)이 핵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하는 목적은,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처럼 핵무기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기술문제를 해결하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격전이 벌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선군정치의 전략적 대공세를 취하는 데 있다.

지금 백악관에서는 북(조선)을 압박하려는 제재문제를 두고 갑론을박 떠들어대고 있겠지만,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격전이 벌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전략적 대공세가 승리로 끝날 때까지 북(조선)의 반제국주의핵실험은 제국주의제재책동을 뚫고 이어질 것이다.

4. 다시 읽는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의미

'핵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과업을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정치과업이 뚜렷이 드러난다. 여기서 북(조선)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정치과업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4-1) 만일 '핵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과업을 북(조선)의 비핵화로 규정하면 그 과업은 북(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조미공동성명과 9.19 공동성명에서 한결같이 그 과업을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로 규정하였으므로 북(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정치과업만이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는 정치과업까지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잘라 말하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은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는 상호주의정치과업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조선)을 초토화시키려는 '핵우산 방위공약'을 더욱 보강하면서 북(조선)에게만 핵무장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북(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강도적 요구를 들이대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도 핵무장을 하였지만, 미국은 그 나라들에게 핵무장을 포기하라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1998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경쟁적으로 실시하였을 때, 미국은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를 발동한 뒤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갔으며, 인도에게는 핵개발을 적극 도와주는 미국-인도 핵기술협력협정을 2006년 3월에 체결하는 특혜까지 안겨주었다. 미국이 그 나라들에게 핵무장을 포기하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까닭은, 미국이 그 나라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의사나 전쟁계획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예외적으로 북(조선)에 대해서만 핵무장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까닭은, 북(조선)을 상대로 하는 전쟁의사와 전쟁계획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북(조선)이 핵무장을 추진해올 수밖에 없는 까닭, 그리하여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 및 증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리고 오늘 북(조선)이 핵실험 대공세를 개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이 북(조선)을 초토화시키려는 '핵우산 방위공약'을 공습정밀타격력과 장거리공중타격력으로 한층 더 보강함으로써 전쟁의사와 전쟁계획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북(조선)의 핵실험은 북(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전쟁의사와 전쟁계획에 대응하는 반제국주의전략공세이다.

4-2) 미국이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는 것은 '작전계획 5027' 같은 전쟁계획문서를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핵공격작전을 위하여 실시하는 모든 종류의 전쟁연습을 중지하며, 선제공격전략에 따라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핵우산 방위공약'을 법적으로 보장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는 것을 뜻한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미국의 북침핵전쟁연습 중지, 주한미국군 철군,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에 의해서, 다시 말해서 '핵우산 방위공약'의 포기에 의해서 단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련의 단계적 조치에 발맞춰 북(조선)도 핵개발 중지, 핵무장 포기, 핵무기 해체라는 단계적 상응조치를 동시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란 북(조선)과 미국이 그러한 단계적 상응조치에 따라 실현하는 것이므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미양자회담부터 열려야 한다. 조미양자회담에서 합의하여 이행하지 않고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런데 부쉬정부는 이전에 클린턴정부가 응해왔던 조미양자회담마저 완강히 거부하면서 6자회담을 고집하였다. 미국이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조미양자회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6자회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6자회담은 조미양자회담에서 합의한 정치과업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보장하기 위하여 열릴 때만이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다.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실현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보장하는 관련국들의 정치적 의사는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바 있다.

부쉬정부가 조미양자회담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6자회담만 고집하는 것은, 그리하여 9.19 공동성명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그들에게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의사가 조금도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지적하면, 부쉬정부는 '핵우산 방위공약'을 한층 보강하면서, 북(조선)을 무장해제하려는 의사만 가진 것이다.

부쉬정부와 정반대로, 북(조선)이 조미양자회담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의사가 조금도 없는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실천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2003년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북(조선)은 조미양자회담을 재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쉬정부가 요구한 6자회담에 선의로 응하였으나, 오만하게도 부쉬정부는 그 선의를 무시하고 조미양자회담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도구로 6자회담을 이용하여왔다.

4-3) 남북(북남)을 가릴 것 없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미국 인민들도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요구이며 실천적 의지이다.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여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북(조선)과 남(한국)을 아우르는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살아가는 한(조선)민족이 주체역량으로 수행해야 할 정치과업이다. 한(조선)반도의 '핵문제'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적 비핵화투쟁으로 해결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요구를 거스르는 반동적 정치세력은 부쉬정부이다. 부쉬정부에게는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기는커녕 더욱 보강하고 있기 때문에,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한(조선)민족은 그러한 부쉬정부를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는 반제자주적 의지를 관철하여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적 의지를 관철하려면, 부쉬정부를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는 반제투쟁에 남북(북남)이 연대하고, 노동계급과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동참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정부는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적 의지를 외면하고 부쉬정부의 손에 끌려가면서 미국과 일본의 대북(조선)제재에 동참하겠다고 떠들고 있다. 집권과정에서부터 태생적으로 씌워진 친미예속성의 굴레가 그러한 운명을 강요하는 노무현정부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적 비핵화투쟁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남(한국)의 진보정치역량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겁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은, 부쉬정부를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북침핵공격작전을 중지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는 길로 그들을 끌어가기 위한 반제투쟁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오늘 평택은 반제투쟁의 최전선으로 되었다. 한(조선)민족의 비핵화투쟁이 강화발전되는 과정에서 장차 남북(북남)의 반제자주역량이 상호결합하여 명실공히 반제자주적 민족주체역량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5. 백남순-라이스 긴급회담이 열릴 때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다. 부쉬정부에게 미증유의 대파국이 다가왔다는 것이 지금 잠정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예측이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이제껏 제국주의핵독점구도를 틀어쥐고 유지해온 '핵우산 방위공약'이 깨져나가는 상상도가 그려질 수 있다.

명백하게도, 대파국은 북(조선)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다.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파국을 두려워하였다면, 핵실험 대공세를 개시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증유의 대파국이 자기들에게 다가온 것을 직감한 부쉬와 백악관 고위관리들은 숨통이 막혀오는 듯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핵실험 대공세를 막아낼 아무런 수단이 없고, 다가온 대파국을 수습할 아무런 방도가 없기 때문에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기들에게 다가온 대파국을 피하고, 정세의 돌파구를 열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북(조선)에게 양자회담을 요청하는 길밖에 없다.

조미양자회담이라는 선택을 논하기에 앞서, 북(조선)의 핵실험과 우주발사체 발사로 정세가 극도로 긴장하였던 1998년의 긴박했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8년 5월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였을 때, 클린턴정부는 느슨하기 짝이 없는 경제제재를 발동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감하고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사실상 묵인하였는데, 당시 발루치스탄 사막에 있는 차가이 핵실험장에서는 파키스탄이 만든 포신형 우라늄 핵무기를 지하에서 터뜨리는 다섯 차례의 핵실험이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별도의 실험장에서 실시한 여섯 번째 핵실험은 북(조선)이 만든 내폭형 플루토늄 핵무기를 폭발한 실험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998년 8월말 북(조선)은 광명성 1호라는 인공위성체를 탑재한 백두산급 3단계 우주발사체를 우주공간에 올려놓음으로써 핵탄두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고도의 미사일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핵실험에서 우주발사체 발사로 이어진 연속타격을 얻어맞은 클린턴정부가 취한 황급한 선택은 조미양자회담이었다. 1998년 9월 베를린에서 조미양자회담이 열리고, 그에 따라 클린턴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일부를 완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한 선택의 정치적 배경은, 1999년에 작성된 '페리보고서(Perry Report)'에 나타나있다.

클린턴정부는 조미양자회담을 통해서 정세의 돌파구를 열어놓음으로써 자기들에게 다가온 대파국을 극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하여 조미공동성명이 채택되고,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가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추진하는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의 평양방문이 논의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오늘 2006년 10월의 정세는 1998년 9월의 정세보다 훨씬 더 긴장되어 있다. 북(조선)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강행함으로써 북(조선)에게 정치적 굴복을 강요하려는 부쉬정부의 압박책동과,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에 핵실험이라는 직격탄을 날린 북(조선)의 전략적 대공세가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격돌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핵실험 대 제재조치의 격돌은, 사회주의선군정치가 날리는 직격탄과 제국주의반동정치가 움켜쥔 녹슨 무기가 마지막 승부를 겨루는, 그리하여 승패가 쉽게 예상되는 최후결전이다.

클린턴정부가 겪었던 1998년의 경험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듯이, 정세의 돌파구는 조미양자회담이다. 조미양자회담만이 부쉬정부가 자기들에게 다가온 대파국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통로이다. 그들에게 다른 비상탈출로는 보이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면, 외무성 부상과 국무부 차관보가 만나는 비중이 적은 회담으로는 오늘 너무나 날카로워진 대결상태를 넘어서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외무상과 국무장관이 만나는 백남순-라이스 긴급회담이 열릴 때, 북(조선)은 연속적인 핵실험을 중지하고 미국은 금융제재를 해제하고, 그리하여 적대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정치회담으로 나아가는 극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조미양자회담이 자기들이 북(조선)에게 양보하기만 하는 블랙홀(black hole)이 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지만(『워싱턴포스트』 2003년 4월 20일), 2002년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쉬에게 보낸 친서의 맨 마지막 문장은 미국이 용단을 내리면 북(조선)도 그에 맞게 대응해나간다고 되어있다.

북(조선)이 개시한 핵실험 대공세는 부쉬정부에게 최후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한다. 이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조미양자회담이냐 조미전면전이냐를 택할 차례이다. 여명은 벌써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2006년 10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