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조선)반도 정세변화를 주목한다

이 글은 일본 도쿄에 있는 대동연구소(大東硏究所) 강민화 소장이 보내온 다양한 주제의 질문들에 대해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차례>
1. 탈냉전시대와 사회주의반제투쟁
2.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와 새로운 혁명의 시대
3. 조미관계 변화의 속도, 방향, 동인
4. 북(조선)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여명과 선군정치의 의미
5. 6.15 공동선언 실현과 조직중심의 사고
6. 2007년 대통령선거, 이렇게 전망한다
7. 조미관계 정상화와 재일동포의 미래

1. 탈냉전시대와 사회주의반제투쟁

강민화 : 여기 일본에서는 '올해는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이 대담에서 올해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하는 것을 점치는 식으로 말씀을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해에 일어났던 어떤 사변을 계기로 해서, 지금 조선(한)반도는 물론 세계가 시대의 변화 또는 전진이라는 중대한 시점에 다가서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변이란 지난해 10월에 실시된 북의 핵실험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이라는 사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북조선의 핵실험은 '포스트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통일뉴스』 2006.10.30)고 했는데, 매우 흥미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탈냉전시대'라고 하면 미국의 일극지배로 상징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난해에 세계적으로는 남미주에서 벌어졌던 반미도미노현상으로 대표되는 반제자주기운의 앙양으로, 미국 국내적으로는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네오콘)의 참패로, 또한 조선(한)반도에서는 북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으로 그 같은 미국의 일극지배질서가 좌절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올해는 이 같은 시대의 변화 또는 전진에 따르는 '신구갈등의 해', 다시 말해서 새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과 구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간의 치열한 대결이 예견되는 해로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호석 : 강 소장님은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받은 미국의 저명한 중도우파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oren Friedman)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의 의미를 정세변화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시대전환의 차원으로 이해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정세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대인식에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끄집어내서 논하려고 합니다.

첫째, 시대를 구분하는 냉전(cold war)이라는 개념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전(hot war)과 대비되는 냉전이라는 개념은 전쟁체제의 변화 또는 전쟁방식의 변화에 의거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정치개념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 7월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에 이르는 30여 년은 그야말로 열전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기에 일어난 열전이란 제국주의국가권력들과 제국주의독점자본들 사이에서 날카롭게 형성된 모순이 식민지쟁탈전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무력침공으로 들이친 1939년 9월 1일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미국의 핵폭탄공격을 받은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여섯 해 동안 인류를 전쟁참화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포성을 멈추었을 때, 그 종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이 서로 충돌한 식민지쟁탈전을 마감하고 새로운 국제질서 곧 냉전체제를 펼쳐놓았습니다.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처칠(Winston Churchill, 1871-1947)이 얄타회담(Yalta Conference)에서 전후처리협정을 채택하였고, 그에 따라 형성된 것이 냉전체제입니다. 그러므로 냉전체제는 곧 얄타협정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얄타협정이 말해주는 것처럼, 제국주의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을 통제하면서 그 밖의 개별적 자본주의나라들을 지배, 수탈하는 거대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그 반대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소련이 주도하여 사회주의세계체제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소련의 주도로 사회주의세계체제를 세우려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혁명(democratic revolution)이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지향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얄타협정에 의해서 성립된 냉전체제란, 제국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과 사회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의 대립구도에 따라 제국주의반동무력 대 사회주의혁명무력이 대치한 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10년 동안 이어진 중소분쟁과 중국이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4년 10월 16일에 실시한 핵실험으로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결국 멈추고 말았는데, 그에 비해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을 통제하면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완성단계로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얄타협정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물이었으므로, 그 협정에 의해서 성립된 냉전체제에서 사회주의반제투쟁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냉전체제는 무력대치라는 현상을 드러냈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상호공존에 있었습니다.

사회주의반제투쟁을 포기하고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것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조선)전쟁이었습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열전이 폭발하자,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을 꿈꾸었던 우매한 환상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유럽에서 나토군과 바르샤바조약군이 대치하면서 상호공존을 유지하고 있었던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40년에 이르는 기간에 동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한국(조선)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중남미 저강도전쟁으로 이어진 열전이 줄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소련과 중국이 반제노선을 포기하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타협, 공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시기에, 완성단계로 치닫는 제국주의세계체제의 확장운동을 멈춰 세우면서 그 반동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치열한 반제전선은 나토군과 바르샤바조약군이 대치한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의 기치를 들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반면,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반제노선의 포기, 그리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의 타협이 진척되고 있었고, 그 진척은 불가피하게 소비에트사회주의(soviet socialism)의 붕괴로 귀결되었습니다. 1961년 8월에 세워져 28년 동안 존재하였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얄타협정체제의 붕괴, 그리고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1945년 2월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이 얄타회담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세워놓은 냉전체제는, 1989년 12월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몰타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H. W. Bush)와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쵸프(Mihail Gorvachov)가 정치적으로 타협함으로써 종말을 고했습니다. 냉전체제의 종말은 세계평화의 실현이 아니라 반제노선을 포기한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코소보전, 이라크전으로 이어진 제국주의침략전쟁의 확대였습니다.

둘째, 몰타회담 이후 탈냉전시대는,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을 잡은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의 출현,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되는 민주주의혁명의 혼란과 침체를 그 시대적 특징으로 드러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시장사회주의가 출현하고, 제3세계 민주주의혁명이 시련기에 접어들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국주의선동가들은 사회주의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자본주의의 최후승리가 실현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어대었습니다. 미국의 반동적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면서 1989년에 쓴 자신의 글 '역사는 끝났는가?(The End of History?)'에서 이른바 '역사의 종말'을 논하였습니다. 그는 20세기말의 시대상황을 단순히 냉전체제의 종말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사상적 진화(ideological evolution)가 종착점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마침내 인류의 최종적 정치방식으로 보편화되었다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강변은 거짓말로 짜깁기한 조잡한 선동이었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가 무너진 탈냉전시대는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일방적으로, 최종적으로 승리한 '역사의 종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와 손을 잡은 러시아, 중국, 베트남의 시장사회주의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사상문화와 시장경제의 침투력에 의해서 잠식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완전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소리치며 핵무기와 달러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시나브로 실의와 무기력이 스며들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탈냉전시기에 변질과 분열, 침체와 쇠퇴에 빠진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놓은 것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지배, 약탈, 침략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반제투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반제투쟁만이 변질과 분열, 침체와 쇠퇴에 빠진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오늘 사회주의반제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벌이는 나라가 북(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반제의 기치를 슬그머니 내리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잡은 러시아와 동유럽, 중국과 베트남이 '달콤한 밀월여행'의 환상에 빠져들고 있을 때, 북(조선)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반제투쟁을 벌였습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그들은 제국주의경제제재와 제국주의전쟁위협, 그리고 미증유의 식량난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넘어서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멀건 죽을 끓여먹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야 하였고, 제국주의봉쇄를 뚫고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하였습니다.

탈냉전시기에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사상적 대결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며 자력갱생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회주의혁명세력과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최후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떠들며 사회주의의 완전말살을 노리는 제국주의반동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투쟁입니다.

만일 북(조선)이 제국주의경제제재와 제국주의전쟁위협에 굴복하여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을 잡는다면,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북(조선)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의 최종목표인 이른바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실현되는 것이며, 저들이 바라는 대로 만일 북(조선)에서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사회주의의 최후보루마저 무너지고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재생과 부흥을 갈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일으킨 사회주의반제투쟁의 폭발력을 보았으니, 그 대사변이 2006년 10월 9일에 북(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입니다. 나는 북(조선)의 핵실험을 사회주의반제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무기는 인류를 재앙에 빠뜨리는 대량살상무기이므로 북(조선)의 핵실험도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고 외치는 반핵교조주의와 부르주아평화주의는, 오늘 사회주의의 재생과 부흥을 갈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반제투쟁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모르는 무지와 편견의 소산입니다.

북(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의 말살을 노리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에 파탄의 쐐기를 박고,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준 반제국주의핵실험공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핵과 평화의 화살은 사회주의평화강령의 기치를 들고 제국주의핵참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북(조선)의 반제국주의핵실험공세에 겨누어져서는 아니 되며,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완성을 폭력적으로 다그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에게, 오로지 그들의 광란적인 핵전쟁계획에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논한 대로, 명백하게도 북(조선)의 핵실험대공세 앞에서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은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북(조선)의 목을 조르는 금융제재에 '융통성'을 보이고, 악착스럽게 거부해왔던 조미직접협상에 나서고, 그에 따라 6자회담이 예상을 뛰어넘어 급진전되는 정세변화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음을 현실로 입증합니다.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에 재개된 6자회담의 향방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습니다.

2.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와 새로운 혁명의 시대

강 :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설명이 요구됩니다.

한 : 두 가지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시각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무너뜨리려는 사회주의체제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경우, 제국주의반동세력은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마구 밀고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발목을 잡는 것은, 핵무기를 보유한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통제력이 마비되는 경우, 핵물질이 국제암시장으로 흘러가거나 핵기술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거나 핵탄두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입니다. 그러한 대혼란은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뜻하므로, 제국주의반동세력은 핵무기를 보유한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급격한 체제붕괴책동을 자제하는 대신,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에 매달리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이란 사회주의적대국과 정치협상을 벌이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함으로써 사회주의반제투쟁과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포기하게 만들고 시장사회주의로 변질시켜 제국주의세계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추구해오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한 현상은, 급격한 체제붕괴책동을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으로 바꾸는 정책전환기에 일어나는 일종의 과도현상입니다.

장차 정책전환이 마감되고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이 고착될 때, 제국주의반동세력은 조미관계 정상화에 편승하여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시장사회주의로 변질시키는 책동에 힘을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북(조선)의 시각에서 핵무기 보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핵탄두는 사람이 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작은 금속덩어리이지만, 그것은 어느 한 공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간단한 물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북(조선)의 노동계급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기치를 들고 중화학공업 부문과 핵공학 부문에서 수 십 년 동안 발전시켜온 사회주의공업화가 안겨준 거창한 과학적 성과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북(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승리이며, 사회주의국방공업의 승리이며, 사회주의노동계급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승리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파탄시키고 사회주의공업화를 지체시키고 사회주의노동계급을 무력화하려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밀고 나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북(조선)이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것은,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파탄시키지 못하고 사회주의공업화를 지체시키지 못하고 사회주의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뜻에서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 : 지난 시기 소련은 오늘의 북(조선)보다 훨씬 강력한 핵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어처구니없는 체제붕괴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소련의 경우,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핵억지력으로도 막지 못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련의 핵억지력과 북(조선)의 핵억지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논증되어야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고 보신 한 소장님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 북(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이 진행되던 냉전시기에 소련이 실시한 핵실험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사회주의진영이 중소분쟁으로 치닫던 냉전시기에 중국이 실시한 핵실험과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소련의 핵실험은 사회주의반제노선을 포기한 핵군비경쟁의 산물이었습니다. 핵군비경쟁으로 체제붕괴를 막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소모적인 핵군비경쟁은 소비에트사회주의를 무너뜨린 붕괴요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이 가한 경제제재와 전쟁위협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민영화(privatization)와 경제관계의 시장화(marketization)가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위축, 마비시켰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이른바 '제2경제(the second economy)'라고 부른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점차적 확산,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 당간부와 정부관료의 부정부패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소련의 핵억지력은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를 막지 못하였습니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자기가 지켜야 할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소총 한 방 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명백하게도, 소련군의 무기력은 군사적 무기력이 아니라 사회주의사상교양의 부족, 곧 사상적 무기력이었습니다.

1953년부터 1985년까지 후르시쵸프(Nikita Khrushchev, 1894-1971),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1907-1982), 안드로포프(Yuri Andropov, 1914-1984), 체르넨코(Konstantin Chernenko, 1911-1985)로 이어진 32년 동안 점차적으로 쇠퇴, 약화되어온 소비에트사회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림으로써 '사회주의배신자'로 낙인찍힌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적극 추진한 것은 소련군의 비정치화(depoliticization)였습니다. 소련군은 이미 사회주의혁명군대로서 지녀야 할 사상적, 정치적 요소 곧 자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주성을 잃어버린 소련군에게 핵무기가 아니라 그 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다한들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를 막는데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최근에 나온 보도자료에 따르면,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신예 핵잠수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에 배치된 해군병사들이 선실에서 대마초를 재배하여 피우고 다른 병사들에게 판매한 범죄가 적발되어 군법회의에서 중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정치화한 군대는 마약중독자들에게 핵무기와 미사일을 내맡기는 중병에 걸리게 됩니다. 1987년 6월부터 고르바쵸프가 실시한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정책에 의해서 비정치화된 소련군은 사상적으로 완전히 무장해제 당하고 중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강 : 자주성을 무엇보다 중시해야 하는 까닭이 명백해집니다. 비유하자면, 자주성이란 사람들이 사는 집의 중심을 잡아주는 대들보입니다. 자주성을 잃어버린 집단이나 사회는 대들보가 썩어버린 집과 같습니다.

지붕이나 문짝 같은 것이 낡아서 못쓰게 된 집은 개량할 수 있으나, 대들보가 썩어버린 집은 개량할 수 없으므로 헐어버리고 새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들보가 썩은 것을 감추고 쉬쉬하면서 문짝이나 바꾸어 달고 번쩍거리는 외장재나 발라놓는다고 해서 붕괴위험이 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들보가 썩어버린 낡은 집에 미련이나 기대를 걸고 개량하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헐어버리고 새 집을 지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낡은 집은 제국주의이며, 새로운 집은 사회주의입니다. 낡은 집을 그대로 지키려는 세력이나 개량하려는 세력은 낡은 세력이고, 낡은 집을 아예 헐어버리고 새 집을 지으려는 세력은 새로운 세력입니다.

한 : 그렇습니다. 새로운 세력과 낡은 세력의 투쟁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투쟁이며, 낡은 세력에 맞선 새로운 세력의 투쟁은 '21세기 사회주의'라고 통칭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투쟁입니다. 오늘 세계 곳곳에서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투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사회주의의 오류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재생, 부흥시키는 세계사의 전진운동에는 사회주의노동계급의 투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운동도 있습니다.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이 그것입니다. 나는 그 운동의 총체를 가리켜 민주주의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말하는 민주주의혁명이란,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부르주아계급독재에 의해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19세기의 부르주아민주주의로부터 질적으로 도약, 상승하여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단절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입니다. 그러한 사회변혁이 사회주의적 지향(socialist orientation)을 갖는 것은 역사적 필연입니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정권, 볼리비아의 모랄레스정권, 에꽈도르의 꼬레아정권, 니까라과의 오르떼가정권이 꾸바와 손을 잡고 민주주의혁명의 길에 들어섰으며, 멕시코와 꼴롬비아에서 사회변혁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남(한국), 필리핀, 인도, 네팔에서 사회변혁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붕괴를 재촉하는 민주주의혁명은 반제투쟁의 서곡을 자주의 선율로 울리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힘있게 고무, 추동하고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자주의 선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각에서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면, 프리드먼이 말한 '포스트 탈냉전시대'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로 보입니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진입하는 중입니다.

3. 조미관계 변화의 속도, 방향, 동인

강 : 그러한 시대의 벅찬 흐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미관계의 변화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쉬정부의 적대시정책에 묶여서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조미관계가 2006년 10월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급변의 궤도를 타고 있습니다. 주목하는 것은 궤도의 방향입니다.

금융제재 해제문제가 6자회담과 뒤엉키면서 상당히 복잡다단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조미관계의 변화방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미관계가 막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결과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만, 2006년에 조미관계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계기들을 짚어가면서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해설해주시면 독자들의 정세인식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한 : 2006년 한 해 동안 조미관계는 악화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2005년 9월 19일에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어 조미관계가 정상화로 한 걸음 다가설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된 근본원인은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 가운데서도 특히 9.19 공동성명을 악착스럽게 파기하려는 극렬분자들이 북(조선)에 대한 금융제재를 발동하여 조미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끌어갔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금융제재와 9.19 공동성명 이행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금융제재는 9.19 공동성명을 휴지조각처럼 만들었고, 조미직접협상을 거부하는 부쉬정부의 방침은 6자회담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뒤집어졌습니다. 금융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조미실무회담이 열리고, 그 실무회담의 결과에 따라 6자회담의 진전여부가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금융제재 해제를 위한 실무회담을 먼저 열고 그 결과에 따라 6자회담을 진행한다는 북(조선)의 요구가 관철된 것입니다. 2006년 12월 18일에 열린 6자회담 틀 안에서 조미직접협상이 진행되는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2006년 10월 31일과 11월 28-29일 베이징에서, 2007년 1월 16-18일에는 베를린에서 조미직접협상이 줄이어 열림으로써 부쉬정부의 조미직접협상 거부방침이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주는 의미는 "6자회담 진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의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의 태도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태도변화는 2006년 11월 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진행된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겉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회담에서 부쉬는 놀라운 발언을 늘어놓았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발언내용을 종합하면,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종전선언문에 공동서명하겠다는 것과 2단계 핵포기과정에 따라 조미관계 정상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2006년 12월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크리스토퍼 힐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따로 만나 회담할 때, 워싱턴 수뇌부의 뜻이 담겨있는 문서라고 하면서 이행경로(road map)를 담은 두툼한 문서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문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문서에서 부쉬는 9.19 공동성명 채택 3주년이 되는 2008년 9월부터 자기 임기가 끝나는 2008년 말까지 북(조선)의 핵포기와 조미관계 정상화를 초기단계로 진전시키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미국이 그러한 제안을 문서로 작성하여 북(조선)에 전달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언론에서 이른바 '조기수확(early harvest)'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조미직접협상의 진전 가능성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돌발변수가 생겨 진전의 가능성을 막지 않는다면, 올해 2007년에는 조미직접협상이 일정하게 진전되면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첫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첫 조치는 1994년 제네바에서 발표된 조미기본합의를 넘어서 더욱 진전된 내용을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강 : 2006년 4월 9일부터 11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에서 김계관 부상이 크리스토퍼 힐에게 만나자고 제의했지만 거부당했고, 6월 1일 북의 외무성이 대변인 담화를 통해 힐을 평양으로 초청하였지만 부쉬정부가 이를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기수확'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동인이 무엇이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 : 두말할 필요가 없이, 정세를 변화시키는 동인은 강한 힘의 분출입니다. 강한 힘이 분출하면서 꽉 막혔던 정세를 뒤집어엎은 것입니다. 그 강한 힘은 2006년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두 차례의 사변에서 분출되었습니다. 북(조선)이 2006년 7월 4일에 실시한 미사일 발사훈련과 10월 9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이 그것입니다.

2006년 7월 4일 북(조선)이 미사일발사훈련을 실시한 뒤, 크리스토퍼 힐은 9월 5일부터 10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김계관 부상을 만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습니다. 변화의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이 보낸 변화신호를 거들떠보지 않고 2006년 10월 9일에 핵실험을 실시하여 압박공세의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핵실험을 실시한 날로부터 11일이 지난 10월 20일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가 힐을 대동하고 베이징에 나타났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견을 전달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그 날,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접견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간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 탕자쉬안(唐家璇)이 가져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견은 중미외무장관회담의 형식을 빌어 라이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중미외무장관회담에서 라이스는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다룰 조미실무회담과 조미 수석대표 회담을 개최하자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이튿날 라이스는 크리스토퍼 힐을 홍콩에 급파하였습니다. 북(조선)에 가한 제국주의금융제재의 직접적인 정보를 홍콩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힐은 홍콩에서 제국주의금융제재 시행현황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갔습니다.

10월 31일 베이징에서 열린 조미직접협상에서 제국주의금융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조미실무회담을 열기로 합의하였고, 중국이 북(조선)의 은행계좌를 동결한 조치를 푸는 문제에 대해서 부쉬정부가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고, 북(조선)은 6자회담에 나가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한 합의와 약속에 따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습니다.

만일 북(조선)이 미사일 발사훈련과 핵실험 실시라는 압박공세의 결정타를 날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을 강하게 타격하지 않았다면, 9.19 공동성명은 휴지조각으로 나뒹굴고 있을 것이며, 6자회담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명백하게도, 정세변화는 힘의 분출에 의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강 소장님은 이 대담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올해는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들이 자주 들려온다고 하셨는데, 변화는 이미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4. 북(조선)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여명과 선군정치의 의미

강 : 지난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성대국 건설의 여명이 밝아온다'고 말한 이래, 이 '여명'이 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말(key word)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의 연두 시정방침으로 세상에 공인되어 있는 신년 공동사설을 보면, 올해를 '선군조선의 새로운 번영의 연대가 펼쳐지는 위대한 변혁의 해'라고 규정하거나 '더 높이, 더 빨리 비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마련된 오늘의 현실', '60여 년의 분열역사가 흘러온 이 땅 위에 통일의 서광이 밝아오고 있다'고 자신감과 신심, 그리고 낙관에 넘친 구절들이 눈에 띕니다. 이 같은 자신감이나 신심, 낙관의 바탕에는 시대의 변화를 바로 자기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긍지가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과 같은 역사적 전환기 또는 시대의 변화가 북에서 실시하는 독특한 정치방식인 선군정치와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 여명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여명은 새벽녘에 밝아오는 빛입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해가 솟아오르며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명이 차츰 어둠을 걷어내는 가운데 해가 돋는 것입니다. 여명이 없으면 해돋이도 없습니다.

눈부시게 환한 대낮보다 동트는 새벽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여명이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명은 어둠을 걷어내는 희망의 빛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북(조선)이 말하는 여명은 통일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시대의 징조이며, 혁명의 조건이 성숙되기 시작한 시대의 징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국통일의 새 날을 갈망해온 이 민족에게 마침내 희망의 빛이 보인다는, 그 가슴 벅찬 감동이 여명이라는 말 한 마디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2006년 9월초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서 동해의 붉은 여명을 바라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1월에 함경남도 생산현장을 시찰하면서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온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강 소장님도 지적하셨지만, 북(조선)에서 여명의 의미가 선군정치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시하고 시행하는 자주적 사회주의의 정치방식입니다. 선군정치가 자주적 사회주의의 정치방식이므로 선군정치는 자주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군정치는 사회주의혁명군대의 반제투쟁에 의거하여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저지, 파탄시키고 자주적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건설하는 반제자주정치입니다.

북(조선)의 자료를 인용한 『통일뉴스』 2007년 1월 19일자 보도를 보면, 선군정치의 시발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근위서울 류경수 땅크사단을 찾은 1960년 8월 25일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박솔초소를 찾은 1995년 1월 1일은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게 된 때라고 합니다.

오늘 북(조선)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선군정치를 통하여 전사회적으로 전파, 침투되고 있는 것은 혁명적 군인정신입니다. 북(조선)에서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전 시기 계급적 원칙을 강조하면서 인민대중을 노동계급의 혁명정신으로 교양하였던 것에 비해서, 오늘은 '선군후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인민대중을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교양하고 있습니다.

강 : 그렇다면 북(조선)에서 노동계급보다 인민군대를 앞세워 사회주의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습니까?

한 : 북(조선)에서 말하는 '선군후로의 원칙'은 자주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기나긴 발전과정에서 사회주의혁명군대와 사회주의노동계급의 관계를 규정합니다. 두말할 필요가 없이, 사회주의혁명군대와 사회주의노동계급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적 관계란, 이를테면, 북(조선)의 노동계급이 수 십 년 동안 땀흘려 핵무기를 만들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이 핵억지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조선인민군은 핵억지력을 보유함으로써 북(조선)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의 준동으로부터 더욱 믿음직하게 보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군후로의 원칙'이 60년이 넘는 사회주의건설과정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사회주의혁명군대와 사회주의노동계급의 지위와 역할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경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계급적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들 자신이 생존할 수 없으므로 자연발생적으로 생존권사수투쟁에 나서지만,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아도 자신의 생존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는 않으므로 자연발생적으로 반제투쟁에 나서지 않습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지배하고 수탈하는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도 자신들이 제국주의반동세력에게 지배와 수탈을 당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그 체제 안에서 순응하고 있는데,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지배와 수탈이 완전히 차단된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지배와 수탈은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체제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주의반제투쟁의 주체로 되기 위해서는 반제자주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상교양이 필수적입니다. 반제사상교양은 교양자료를 읽고 토론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투쟁과 실천을 통해서 끊임없이 향상, 심화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에 맞서 싸우는 투쟁과 실천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회집단은 사회주의혁명군대입니다. 사회주의혁명군대는 제국주의반동군대와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철저한 반제자주의식을 갖게 되고 가장 전투적인 반제투쟁력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저지, 파탄시키면서 자주적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가장 철저한 반제자주의식을 갖고 가장 전투적인 반제투쟁력으로 무장한 혁명군대가 선도적 지위와 선진적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강 : 선군정치에 대해서는 이미 몇 해 전에 한 소장님과 대담한 글이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그 동안 북에서는 상당한 수준과 깊이에서 연구작업이 진행되고 이론적 정립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올해 공동사설 제목이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 나가자!'로 된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선군사상을 변함없는 지도적 지침으로 틀어쥐고 나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공동사설과 그를 구현한 1월 17일부 정당, 정부, 단체 연합성명에서는 선군정치를 '민족수호의 강위력한 보검'으로서 온 겨레가 옹호해 나갈 데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7월에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이 "우리 민족 모두가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 남측 수석대표가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등 남에서는 선군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 북(조선)인민들이 믿고 따르는 선군정치는 남(한국)의 대중에게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만일 서울 세종로에서 길을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선군정치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이 대담에서 논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국)사회에 선군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퍼져 있는 까닭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남(한국)의 젊은이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징집되는데, 그들이 군대에서 경험하는 것은 일상화된 폭력, 강압, 욕설입니다. 요즈음은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군대에서 구타와 성폭력, 탈영과 자살이 줄지 않는 것을 보면 군대의 민주화는 아직 멉니다. 그리하여 남(한국)에서는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에 연관된 모든 것들이 기피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금도 남(한국)에서 군인을 '군바리'라는 비칭으로 부르는지 모르겠으나, 군대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박정희(1917-1979)가 1961년 5월 16일에 일으킨 군사정변과 그 이후 30년이 넘도록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정치가 군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남(한국) 대중의 눈에 군대는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보입니다.

셋째, 남(한국)에서 60년이 넘도록 반북적대정책이 기승을 부린 까닭에, 조선인민군에 대한 공포감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남(한국)의 일반대중들에게 선군정치라는 말을 꺼내면 군대를 앞세운 전쟁행위를 연상하게 되므로, 조선인민군은 '남침'과 동의어로 들리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군대를 기피, 혐오하면서 사회주의혁명군대에게 공포감을 느끼는 사회에서 선군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북남)의 교류와 왕래가 크게 늘어나면서 남(한국)에서 반북적대감이 차츰 해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청산의 길은 아직도 멉니다. 몇 일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위원회의 교사들이 선군정치를 선전하였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쇠창살로 끌려갔습니다. 이것이 남(한국)의 현주소입니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 공동성명을 발표한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공항에 내려서 꺼낸 첫 마디는 이제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현장취재를 나갔다가 대통령의 그 말을 들은 기자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한국)의 일반대중도 그러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마음에도 전쟁공포, 더 정확히 말하면 '남침신화'가 남아있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랜 시간 동안 담화를 나누면서 그의 진심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던 '남침신화'를 털어 벌인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방북경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남(한국)에서 각계각층 대중들이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깨달을 때, 선군정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깨닫는다는 말은 6.15 공동선언의 깃발 아래 전개되는 조국통일운동에 각계각층 대중들이 결집하는 것을 뜻합니다.

5. 6.15 공동선언 실현과 조직중심의 사고

강 : 나는 지난해 말에 일본의 한 지방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우리가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해도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남측 학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물론 제 발제에도 미숙한 점이 있었겠지만, 어쩐지 6.15 공동선언이 이제는 '서랍 속의 골동품'처럼 취급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든 우리 통일운동 앞에는 참으로 과제가 많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 남(한국)에서 6.15 공동선언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세력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첫째, 반북적대감을 악착스럽게 부추기는 극우반동세력입니다. 이들은 6.15 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대표하는 세력이, 언론계에서는 이른바 '조, 중, 동' 3대 일간지가 대표하는 세력이, 사회운동계에서는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간판을 내걸은 세력과 기존의 다양한 반통일세력이 그들입니다.

둘째, 중도개혁세력입니다. 이들은 6.15 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 선언을 '서랍 속의 골동품'처럼 취급하면서 남북(북남)의 비정치적 교류와 협력에만 집착합니다. 이들은 연방제방식의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국가연합방식의 평화를 요구합니다. 중도개혁세력이 스스로를 통일세력이 아니라 평화세력으로 자처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대표하는 세력이, 사회운동계에서는 시민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세력이 그들입니다.

셋째, 좌파세력입니다. 민족문제와 민족주의를 혼동하는 이들은 6.15 공동선언이 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오해합니다. 좌파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반동적 우익세력의 정치이념이므로 민족주의의 산물인 6.15 공동선언 역시 폐기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 남(한국)에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세력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 쪽은 민족주의세력이고, 다른 쪽은 사회변혁세력입니다. 민족주의세력은 사회변혁의 역사적 임무에 대해 생각을 닫아버렸다는 뜻에서 고루하고 편협합니다. 그들은 한(조선)민족이 수행해야 하는 조국통일의 민족적 과업이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해야 하는 사회변혁적 과업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8.15 해방 직후 김구와 김규식이 대표하였던 정치세력이 밟았던 전철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사회변혁세력은 민주주의혁명의 관점에서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인식합니다. 이들은 한(조선)민족이 수행하는 반제자주화의 과업이 남(한국)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과 일치하며,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또한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과정과 한(조선)민족의 자주역량이 자주적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시대상황이 크게 달라져서 꼭 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들 사회변혁세력은 8.15 해방 직후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시하였던 여운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정치지형 속에서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들고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마다 6월 15일이 돌아오면 민족공동행사가 연례적으로 열리고 그 행사장에서 남, 북, 해외 대표단이 통일구호를 함께 외치고 통일노래를 합창하는 것만 되풀이한다면 조국통일운동을 더 이상 심화,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6.15 민족공동위원회에서 실무자로 일해오면서 6.15 민족공동행사의 성과와 한계를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행사도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것은 조직입니다. 행사중심의 사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직중심으로 사고해야 문제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강 : 조직중심의 사고를 지적하셨는데, 현존하는 6.15 민족공동위원회의 조직역량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 6.15 민족공동위원회는 남측, 북측, 해외측의 공동위원회들이 결합된 조직입니다. 그런데 현재 6.15 민족공동위원회의 조직역량을 강화하는 데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6.15 남측위원회를 강화, 발전시키는 문제입니다. 6.15 남측위원회에 각계각층이 참여하여 양적으로 확대되었는데, 문제는 중심역량이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중산층 등 각계각층이 힘을 결집하여 밀고 나가는 것인데, 그 운동의 중심역량은 노동계급의 조직적 참여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조국통일운동의 중심역량으로 나설 때 6.15 남측위원회는 질적으로 강화, 발전될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국)의 노동계급은 6.15 공동선언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합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각각 조합원의 직접적 이익을 쟁취하는 생존권사수투쟁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남(한국)사회의 계급적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전선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양대노총이 한(조선)민족의 자주적 통일문제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2006년 8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열린 6.15 민족공동행사에 참석한 내 경험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해 민족공동행사에서 처음으로 각 부문별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는 노동부문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으로 주최한 그 행사에는 북측의 노동계급을 대표하여 북측인사들도 참석하였습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이 뿜어내는 통일열기는 뜨거웠지만, 거기에는 눈대중으로 헤아려서 약 1천 명의 노동자들밖에 없었습니다.

2005년 말 현재 남(한국)에는 5천971개의 노조와 150만6천 명의 조합원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에는 1천205개 조합과 64만2천 명 조합원이 망라되었고, 한국노총에는 3천589개 노조와 77만 명 조합원이 망라되었습니다. 이처럼 노동조합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생산자대중의 조직입니다.

그런데 노동자 통일행사에는 1천 명밖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남(한국)에서 조직화된 노동계급에게 6.15 공동선언은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투쟁을 벌였습니다. 약 1천 명의 현장활동가들이 4만3천 명 조합원들을 움직여 전개한 파업투쟁은 남(한국)사회를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나서야 남(한국)사회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만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망라된 150만 명 조합원들 가운데서 1만 명만이라도 6.15 남측위원회의 중심역량으로 나선다면 그것의 파급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망라된 150만 명 조합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현장활동가들의 정치사업, 조직사업입니다. 현장활동가들의 사상과 의지가 조직화된 노동계급을 운동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일하는 많은 현장활동가들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한 생존권사수투쟁에만 힘을 기울일 뿐, 남(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계급문제나 한(조선)민족이 안고 있는 민족문제에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기업의 벽'에 갇혀 남(한국)사회와 한(조선)민족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6. 2007년 대통령선거, 이렇게 전망한다

강 : 6.15 공동선언의 운명문제를 말할 때, 저절로 올해 남측에서 있게 될 대선문제로 화제가 옮겨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연말에 진행되는 대선 그 자체에 대해서 지금 시점에서 점치는 식으로 말씀을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 대선과 관련해서 북측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그를 위해서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할 것을 남측에 호소한데 대해서 한나라당은 '내정간섭'이라고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였습니다.

한 : 북측은 한나라당을 타도해야 할 민족반역당으로 규정하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북측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조선)반도에 재앙이 일어날 것으로 보면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한나라당과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려는 북측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적대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북측이 한나라당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그들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노동당은 그 문제와 관련하여 공식견해를 내놓지 않았으나, 아마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의 거부반응은 북측이 자기를 타도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당연한 것입니다만, 선거국면에서 한나라당의 정적으로 나서게 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북측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북측의 견해를 따라 투표방향을 정할 유권자들은 남측에 거의 없습니다. 남측의 선거국면에 관련하여 나름대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북측도 자기의 견해를 따라 투표할 유권자들이 남측에 거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측은 자기의 견해를 남측의 유권자들이 거의 듣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도, 남측의 여러 정당들로부터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왜 그러한 의사를 표명하는 것일까요?

내 판단으로는, 한나라당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조선)반도에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북측의 의사표명은, 남측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복잡한 설명이 요구됩니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남(한국)의 대선을 주시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남(한국)의 선거국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워싱턴의 국가정보기관들입니다. 새로 임명될 국가정보국장이 그들의 선거공작을 조율하겠지만, 남(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된 요인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선거공작입니다.

2006년 10월 3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이른바 '백성학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에서 중앙정보국 요원으로 암약했던 리처드 롤리스(Richard P. Lawless)가 서울 한복판 소공동에 '유에스 아시아 서울영업소'라는 위장명칭으로 공작거점을 차려놓고 남(한국)에서 첩보원들을 선발, 교육하고 있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남(한국)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실시된 대선들에서 줄곧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 대선에서도 그들은 각 정당들에 침투시킨 공작역량을 동원하여 정파들의 공조와 분열, 대선후보들의 등장과 퇴장을 유도하는 한편, 각계각층에 침투시킨 공작역량을 동원하여 대중여론을 조작하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이려고 날뛰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남(한국) 대선후보를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자기 식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어느 당의 대선후보가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에 맞서 싸우는 진보성향의 대선후보가 의미 있는 지지표를 얻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어느 당의 대선후보가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논한 대로, 지금 부쉬정부는 북(조선)의 핵무장을 해제하기 위해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를 취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6.15 공동선언의 폐기를 주장하는 극우반동성향의 대선후보가 당선되어 집권하면 남북(북남)관계가 얼어붙게 될 것이고, 그러한 관계악화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부쉬정부의 행동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쉬정부는 남북(북남)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을 중도개혁성향의 대선후보를 당선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부쉬정부는 진보성향의 대선후보가 의미 있는 지지표를 얻음으로써 진보정당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중도개혁성향의 대선후보를 당선시키려 할 것입니다. 만일 극우반동성향의 대선후보가 집권하면 진보세력과 반동세력의 대립구도가 전면화되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진보세력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진보세력의 주도로 반동적 집권세력을 반대하여 싸우는 광범위한 전선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광범위한 전선은 민주주의혁명의 전략거점으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중도개혁성향의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진보세력과 중도개혁세력의 차별성을 '개혁'이라는 사이비명분에 가려지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판단이 흐려질 것입니다.

극우반동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고 중도개혁세력에게 집권기회를 주는 것은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민주주의혁명을 예방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기본전략이 아닙니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제국주의반동세력은 자기들에게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중도개혁성향의 대선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대선공작을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중앙정보국의 공작력이 무소불위의 신통력이 아니므로 실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선거판을 뒤집는 이른바 '막판 뒤집기'라는 비상책을 동원함으로써 중도개혁성향의 대선후보를 당선시키는 선거공작을 벌일 것으로 보입니다.

7. 조미관계 정상화와 재일동포의 미래

강 : 요즘 재일동포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탄압과 박해가 그 악랄성과 횡포성에 있어서 극한치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그들의 탄압, 횡포행위는 일본의 군국화를 다그치는 일환이면서 동시에 북에 대한 적대시정책이나 '제재'소동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화풀이임이 틀림없습니다만, 그것은 6.25전쟁 전야에 일본정부가 미점령군의 지시에 따라 자행했던 재일동포조직이나 학교에 대한 강제해산이나 강제폐쇄를 방불케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동포들은 민족적 권리는 물론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 : 아베정부는 부쉬정부가 요구한 대로, 미국보다 한 발 앞서 대북(조선)경제제재조치를 발동하였습니다. 일본은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북(조선) 상품에 대한 전면적인 수입금지조치를 취하였고, 승용차와 가전제품을 비롯한 일본 상품을 북(조선)에 팔지 못하게 하는 수출금지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일본의 북(조선) 상품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7%가 줄었고, 북(조선)에 대한 일본의 상품수출은 95%가 줄었습니다.

아베정부는 그것만이 아니라 그 무슨 '일본인 납치문제'를 6자회담에서 꺼내야 한다고 설쳐대면서 만경봉호 입항까지 막았고, 그런 냉기류에 편승한 일본의 극우반동세력은 총련조직을 탄압하고 총련동포들에게 테러를 가하면서 미쳐 날뛰었습니다.

북(조선)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될 때마다, 일본정부는 북(조선)에게 신경질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총련동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뛴다고 하는데, 부쉬정부의 적대행위를 망둥이가 뛰는 것으로 본다면 아베정부의 신경질적인 적대행위는 빗자루가 뛰는 우스꽝스러운 꼴입니다.

내가 보기에, 일본정부의 적대행위는 북(조선)에 대한 압박전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손발을 묶는 어리석은 짓으로 되고 있습니다. 바둑에서 쓰이는 말로 하면 패착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정부의 적대행위는 북(조선)의 대일보복행위를 절대로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북(조선)은 2005년 7월 일본이 '납치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혔던 제4차 6자회담 1단계 회의에서부터 일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제하는 보복을 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납치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로 내세우려고 설쳐댄 것은, 『로동신문』 2006년 12월 19일자에 실린 논평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북(조선)에 대한 '앙탈질'입니다.

부쉬정부도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밀려 조미직접협상에 끌려 나오는 판이므로 부쉬정부보다 한 수 아래에 있는 일본정부의 대북(조선)적대행위는 북(조선)에게 '앙탈질'밖에 되지 않습니다. '앙탈질'을 압박전술이라고 착각하는 일본정부의 전략적 사고는 일본 외무성 관리들의 지능지수를 의심할 만큼 한심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앙탈질'에 매달리는 일본정부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북(조선)의 보복, 그리고 외교적 망신과 국제적 고립입니다. 이를테면, 지난해 12월에 열린 6자회담에서 북(조선) 수석대표 김계관 부상은 미국, 중국, 남(한국), 러시아의 수석대표는 모두 만나주었으나 일본 수석대표를 따돌려버리는 통에 그는 숙소로 정한 호텔방에서 하릴없이 어정거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남(한국)에서 쓰는 시쳇말로 일본은 6자회담에서 '왕따'를 당하였습니다.

부쉬정부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머리를 숙였고, 그에 따라 조미직접협상과 6자회담이 진전될 것입니다. 부쉬정부는 적어도 2008년 여름까지 조미직접협상에서 '조기수확'을 얻겠다고 하면서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와 '일본인 납치문제', 그리고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매달려 볼썽사나운 '앙탈질'을 하면서 총련탄압에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베정부는 북(조선)의 보복, 외교적 망신, 국제적 고립을 오랫동안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조미관계의 변화가 조일관계의 변화를 규정하므로, 아베정부는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흐름에 떠밀려 결국 조일양자회담을 구걸하면서 꼬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만경봉호가 니이가다항 부두에서 고동소리를 다시 울릴 것이고, 총련에 대한 탄압과 테러도 잦아들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관계가 정상화되는 추세에 따라 조일관계도 정상화될 것이고, 조일국교가 수립되면 오늘 총련동포들이 극우반동세력의 행패로 겪고 있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일본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총련동포들에게 주어질 그러한 보상과 비할 바 없이 귀중한 것은 조국통일의 실현입니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정부만이 총련동포들을 일본반동세력의 행패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며, 총련동포를 비롯한 재일동포 전체의 자주성을 보장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외동포들 가운데서 가장 열성적으로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해온 총련동포들이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더욱 힘있게 쳐들고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2007년 1월 3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