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의 새로운 지평

한호석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1) 글을 열며

북(조선)에서 여덟 해를 살다가 나온 한 영화 감독의 체험담을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해 보자. 지금 로스 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는 신상옥 감독은 북(조선)에 있을 때 그의 아내인 최은희 씨가 주연으로 나온 「소금」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강간 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강간 장면을 촬영할 때 배우들과 모든 스태프진이 촬영 현장에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신 감독 자신이 카메라를 돌리고 최은희 씨와 악역을 맡은 남자 배우, 이렇게 단 세 사람이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도색 영화와 폭력 영화가 텔레비전을 타고 안방까지 파고 들어와 어린아이들의 정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근심어린 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식으로서는 이 체험담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내 자신이 그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자본주의 영화 속에 나오는 강간 장면과 비교해서는 좀 어설픈 게 아니냐고 느껴질만한 그런 장면 하나를 촬영하지 못해 현장에서 달아나야 했던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북(조선)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북(조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와 다른 체제인 북(조선)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북한학은 이러한 소박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물음은 소박하더라도 대답은 제각기 달라져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북(조선)의 현실에 대해서 학자와 전문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상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김일성 주석이 급서한 직후 북(조선) 동포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서로 달리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북(조선)에서 여덟 해나 살다가 나왔으므로 그 사회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하는 신상옥 감독의 해석을 인용하면 이렇다.

"북한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 때에 동상 앞에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것이 북한 국민의 모습이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뉴스에는 항상 이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울고 싶어서 울고 있는 것일까. TV 화면에 비치지 않을 때에도 정말로 우는 것일까라는 것입니다. 인구의 거의 80%가 모여 있는 가운데서 울지 않으면 나중에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닐까, 또는 군중 심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요. 또 인간의 생리적인 면에서 본다면 우는 행위를 그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TV 화면에 비추어진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줄임) 북한의 경우 50년 동안이나 김일성 주석을 위해 밤낮이 없을 정도로 교육, 선전을 해왔기 때문에 군중 심리로서도 울부짖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민중이라고 하는 것은 엄격한 통제 하에서는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줄임) 그러므로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측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필시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저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고 하는 것은 조직 동원이었겠지요."

그는 이 대목에서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애도 장면에 대해 의도적인 연출이 아니냐 하는 강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애도심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진보적인 학자로 알려진 리영희 교수의 다른 해석을 들어보자.

"지난번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남한에서는 모든 언론 기관이나 지식인이나 할 것 없이 북한의 TV를 보면서 히스테리 현상이라고 판정했습니다. 50년 동안 다른 형태로 살아온 사회는 이질화란 표현이 맞건 안 맞건 여러 가지로 달라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예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왜 그렇게 인민대중의 뜨거운 사랑과 존경과 애도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물론 공산당 선전 기관이 오랜 기간을 걸쳐서 한 사람의 우상화를 만든 교육과 세뇌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특이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인 김 주석의 인간형의 차이입니다. 그는 민중(인민·국민)과 유리되어 강권으로 통치한 '단순 권력형'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남한에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농촌 현장에 나가고, 공장 현장에 나가고, 그 모든 생활의 말단 부분까지 전국을 누비면서 대통령궁에 있는 시간의 몇 배를 인민대중과 함께 살아온 그 김이라는 지도자의 특이한 민중과의 친밀성(지도력의 특이성이지만)을 우리 남한 사람들은 처음에 이해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가 지도자를 이승만 씨의 경우는 붸아냈고, 그 다음 민주당도 군사력으로 붸아냈으며, 그들을 붸아낸 군사 지도자 박정희는 권총 맞아 죽고, 그 다음은 광주에서 대학살을 해서 15년이 지난 지금도 특별 처벌법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그들은 국민과 이해를 함께 하는 그런 지도자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과거 스탈린이 많은 사람을 죽게 하고, 혹독한 권력 투쟁을 하고, 국민을 현대화하고, 짧은 기간에 미국과 대등한 국가를 만들었으며, 그리고 나치 군사 침공에서 방어해 내고, 1953년 여름에 죽었을 때, 소련 인민들은 스탈린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스탈린의 동상에, 분향소에 앞다투어 가느라고 전국에서 1천5백 명이나 압사해 죽었습니다. 우리의 개념으로 스탈린 같은 사람을 소련의 인민대중이 1천5백 명이 죽으면서까지 애도하는 것은 히스테리적인 심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실정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고정관념과 편견과 부정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우리의 대북한 인식에 진실을 알고자 하는 혁명적 변화가 없이는 평화적 통합은 어려울 것입니다."

신 감독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았고, 리 교수는 서울에서 보았다는 사실만 다르고, 똑같은 애도 장면을 보았을텐데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북(조선)에 관한 것이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하게 되는 고정 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북(조선)을 올바로 알 수 있는 관점과 인식 태도를 지닐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학을 연구한다고 하는 전문가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고정 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그런 고정 관념과 편견을 통해 비친 허상을 실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며 그 허상에 근거한 이치에 닿지 않는 허구적 담론을 북한학이라는 틀에 담아내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학은 이러한 체내화된 고정 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정적인 고정 관념과 편견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주입시키고, 고착화시킨 요인을 찾아내어 없애는 일이다. 이 요인이 북한학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학의 장애 요인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2) 북한학을 가로막고 있는 네 개의 장벽

1. 금압 정책

북(조선)에 관한 자료·정보를 정부의 특정 기관이 독점·통제하고 있다. 북(조선)의 문헌, 자료를 직접 인용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는 이른바 '특수 자료 취급 지침'이 있다.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이 지침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 지침에서는 북(조선)의 문헌, 자료를 직접 인용하거나 보도하려고 할 때에는 안기부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 남(한국)의 북한학 연구자들이 북한학에 관련된 논문이나 책을 쓸 때, 그리고 북(조선) 담당 언론인들이 신문, 방송에 북(조선) 관련 보도 기사를 쓸 때는 언제나 자신의 글이 혹시 국가보안법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위축감을 느끼고 있다. 만일 안기부의 허가 없이 북(조선)의 자료·정보를 인용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처벌될 것을 각오해야 된다. 또한 오래 전에 출판된 문헌이나 기사라고 할지라도 만일 안기부나 검찰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지 그 필자를 구속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억누르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한 남(한국)에서 북한학이 현재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2. 가공 처리 정책

북(조선)에 관한 정보·자료를 독점하고 있는 안기부는 「내외통신」을 통하여 가공 처리한 자료·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 언론인은 "외관상 북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형태를 띠고 있는 내외통신은 사실은 안기부 심리전국 산하 기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외통신은 무슨 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북한 언론을 직접 인용·보도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지적한 바있다.

지금 북한학에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는 북(조선)에 관한 보도 내용은 이처럼 안기부의 시각으로 가공 처리된 자료를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바로 그 보도 내용을 근거로 북(조선)의 정세를 분석하고 있다. 이 언론인이 지적한대로 "북한 체제에 대해 99% 부정적 인식으로 가득차 있는 당국이 선별해 내보내는 기사라는 것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또한 불문가지이다"는 말은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처 의도적으로 가공 처리된 정보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북한학의 연구 결과라는 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자명한 대답이 나온다. 북(조선)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 기관, 전문가, 언론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제멋대로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려도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고 사실로 믿게 된다. 그들의 발표나 주장이 나중에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으며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예 관습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보자.

"김일성은 사석에서 그의 측근들에게 오진우가 교통 사고로 다 죽게 되었는데 남측에서는 여기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했다더라. 오진우가 나를 쏘고 부관이 그를 쏘아서 김일성이도 죽고 오진우도 다 죽게 되었다 하구 떠들었지. 운전수는 죽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처박힌 차 안에서 오진우를 꺼내다 병원에 갖다놨는데 실릴 가망이 없었어요. 우리 조직비서(김정일)가 통이 큰 사람이라 살았지, 그날 밤에 특별기를 내어 소련으로 실어 날라서, 소련 의료진을 총동원해서 살려 냈디. 조직비서 아니면 죽었을 거야"

안기부가 북(조선) 관련 정보·자료에 대하여 가공 처리하는 정책이 가동되는 한 남(한국)에서 북한학이 현재 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 비밀주의 정책

북(조선)은 엄격한 비밀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내부 사정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국가 기밀로 분류하지 않아도 될 것같은 웬만한 자료·정보라도 절대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두 개의 기관지를 내고 있는데, 하나는 일간지인 『로동신문』이고, 다른 하나는 월간지인 『근로자』다. 그런데 『로동신문』은 외부에 공개되지만, 조선로동당의 노선과 정책과 이론, 분석과 전망을 담아내고 있는 기관지이기 때문에 북한학에 없어서는 안될 『근로자』는 1992년부터는 외부에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 북한학은 비밀주의 장벽에 가로막혀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남(한국)에서 북(조선)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는 통일원 산하 연구기관 민족통일연구원의 경우를 보자. 1993년 12월에 펴낸 연구보고서 『김정일 저작 해제』를 보면, 후계자 내정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김정일의 후계자 내정 시기에 있어서 1973년 9월설과 1974년 2월설이 있는데 1974년 2월설이 더 유력하다. 그 증거로 북한이 1988년 제작·상영한 '위대한 전환의 해 1974'(기록 영화를 뜻함-인용자)는 김정일에게 있어서 1974년이 중요한 해임을 강조한 사실을 들 수 있다"고 했다. 북(조선) 정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후계자 문제와 관련하여 그 내정 시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학이 비밀주의의 장벽 앞에서 멈춰 서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의 문헌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취급하며 연구하고 있는 정부 산하 연구 기관이 이런 실정이니, 그 밖의 연구자들과 연구 기관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구태여 밝히지 않아도 넉넉히 가늠할 수 있다.

4. 선험적 인식의 관습화·일반화 현상

북(조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인식 방법론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살펴보자. 송두율 교수가 북(조선) 연구 방법론에 관한 글에서 이른바 '내재적 관점'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이 논쟁은 일부 학자들이 내재적(immanent)라는 의미를 내부적(internal)이라는 의미로 오해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갔다. 일부 학자들은 내부적(internal) 관점과 외부적(external) 관점을 대립시키면서, 내재적 관점(실제로는 그들이 내부적 관점을 내재적 관점이라고 착각한 것이다)은 주관적 관점이고 외재적 관점(=외부적 관점)은 객관적 관점이라고 구분하는 그릇된 논쟁 구도를 세웠다. 이들은 내재적 관점에 서있는 학자들은 북(조선)을 북(조선)의 눈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국 인식의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북(조선)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려는 편향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새로 내놓은 것이 이른바 내재적·비판적(internal, critical) 관점이다. 북한학 연구에서 북(조선)의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옹호만하지 말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의 초점은 비판이냐 무비판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인식의 인식근거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데로 집중되어야 한다. 내재적(immmanent) 관점에 서있는 학자들은 비판적 인식의 인식 근거를 내재적·경험적 인식 근거에서 찾으려고 하는 반면에, 내재적·비판적(internal, critical) 관점에 서있는 학자들은 그것을 초월적·선험적(transcendental, a priori) 인식 근거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논쟁 구를를 정리하면, 내재적·경험적(immanent, empirical) 관점과 초월적·선험적 관점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적·경험적 관점이란 북(조선)의 현실을 북(조선)의 사상과 이념을 준거틀로 삼아 인식하려는 관점이다. 송두율 교수의 말을 빌리면, "북한 사회의 '내재적' 접근이 북한 사회주의가 스스로 제시한 이념을 그의 경험적 성과에 비추어 본다는 관점"이며, 따라서 "이러한 접근 방법은 이념과 경험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초월적·선험적 관점은 북(조선)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해 있는 어떤 초역사적인 인식 근거에서 북(조선)의 현실을 인식하려는 관점이다. 초월적·선험적 관점은 보편성의 원리를 중시하고 상대성을 부정하며 어떤 절대적인 인식 근거에 의거하여 북(조선)의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내재적·경험적 관점은 특수성의 원리를 중시하고 상대성에 의거하여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북(조선)의 현실을 인식할 때 초월적·선험적 인식 근거에 의거하게 되면, 그 현실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현실로 비쳐지게 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는 의롭고 선한 사람도 있고 불의하고 악한 사람도 있는데도, 신학자들이 신의 초월적·선험적 계시를 통해 인식한 인간 존재는 모두 '죄인'이 되며, 현실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아야 할 현실이라고 하는 신학적 논리가 성립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이처럼 어떤 특정한 대상을 초월적·선험적 관점에서 인식하게 되면 그 대상이 지니고 있는 상대적·경험적인 것들이 모두 비판의 대상, 부정의 대상으로 된다.

이 초월적·선험적 인식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좀더 쉽게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 미주 동포들과 흑인 사회(African-American community)의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미주 동포 사회에는 흑인들을 '깜둥이'라고 비하·멸시하는 인종주의적 고정 관념과 편견이 아직 관습화·일반화되어 있다. '깜둥이'라는 말 속에는 가난, 무지, 폭력, 범죄 같은 온갖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사람은 흑인들의 '비문명적인 생활'처럼 살아서는 안되며, 풍요와 교양과 안락이 보장된 '문명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초역사적이고,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인식근거에 의거하여 흑인 사회를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흑인 역사와 흑인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 내재적·경험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흑인 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흑인들에게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의 억압 체제에 저항하기 위하여 긴 세월동안 피나는 투쟁을 벌여온 훌륭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 또한 그들에게는 백인 사회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흑인 사회는 백인 사회와 비교하여 볼 때, 가난, 무지, 폭력, 범죄가 더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가난, 무지, 폭력, 범죄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경로와 사회·정치적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역사적 경로와 사회·정치적 원인을 내재적·경험적으로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흑인 사회는 더럽고 악한 사회고 백인 사회는 깨끗하고 선한 사회라고 단정하는 선악 이원론에서 벗어나게 된다. 흑인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현상은 흑인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백인 사회나 다른 소수 인종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상대적인 것임을 알게 되며, 백인 사회의 현실을 절대화려는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된다. 이것이 흑인 사회에 대한 내재적·경험적 인식이다.

북(조선)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빨갱이'라는 말 속에는 가난, 테러, 개인 숭배, 일당 독재, 남침 야욕 같은 온갖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체제는 풍요, 안정, 합리성, 자유, 평화를 실현한(또는 실현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초역사적이고,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인식 근거에 의거하여 북(조선)을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서 풍요, 안정, 합리성, 자유, 평화가 실현된(또는 실현할 수 있는) 체제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다. 그것은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가 생산해 낸 모든 가치와 의미, 모든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들이다. 이것과 다른 것은 모두 비정상적인 것이고, 악한 것이며, 부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된다. 바로 이 '자본주의적인 것'이 오늘 북한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초역사적이고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 근거, 또는 선험적 인식 근거가 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비판적 인식이다. 이른바 내재적·비판적 인식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내재적·경험적 인식이 혹시 비판적 인식을 배제하고 있는 '친북 이론'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내재적·경험적 인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회나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문제는 그 사회나 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얼마나 실현했는가 하는 데서 해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흑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흑인 사회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어떻게 투쟁하고 있으며 그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가, 또한 사회·정치적 주체로서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그 목적을 달성했는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조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그 사회와 체제가 제기한 목적인 자주성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가, 또한 오늘의 북(조선) 현실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가, 사회주의 경제의 목표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3) 북한학의 현황

1. 북한학 전문가들은 그 수가 매우 적고, 학문적 수준도 낮다.

북한학은 금압 정책, 가공 처리 정책, 비밀주의, 그리고 초월적·선험적 인식이라는 장벽에 겹겹이 가로 막혀 있다. 이렇듯이 '유폐당한 학문', 잘 못 건드렸다가는 필화 사건에 걸려들 가능성이 많은 '위험스런 학문'을 연구하려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국제 사회의 경우에도 중국학, 일본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비교하여 코리아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더욱이 북한학 연구자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일본과 미국에서 북(조선) 전문가로 알려진 저명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다. 북(조선) 전문가이면서도 북(조선)에 유학한 경험이 없고, 주로 일시방문과 같은 개인 체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남(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조선)을 일시 방문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비하여 중국이나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조선)에 유학하거나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머물렀던 경험이 있으며,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 문제에 관하여 『마이니치 신문』 논설위원인 시게무라 도시미츠(重村智計)의 비판은 의미가 있다.

"과거 그토록 북조선을 예찬했던 잡지 『세카이』와 한국을 격렬히 비난하였던 와다 하루키 도쿄 대학 교수 등은 최근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북조선이 곤경에 빠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분명히 발언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과거 목청을 높혀 비난하였던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측에 잘 보이려고 하고 있다. 완전한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학문과 국제 정치의 분석 대상으로 한반도 문제를 보아오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한국어도 할 줄 모르면서 한반도통인 양 행세해온 것이다. 나는 20년 전부터 한국어를 못하는, 그래서 1차 정보에 접할 수 없는 사람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공연히 떠들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실례이다. 한국말을 모르고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차별 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줄임)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중국과 미국, 러시아의 전문가로서 발언하고 연구하려는 사람이 중국어와 영어, 러시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지역 연구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서만은 말도 할 수 없는데도 전문가로서 인정되는 풍조가 아직 남아 있다."

2. 북한학의 연구 경험은 아직 매우 일천한 단계에 있다

'북한학'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누가 쓰게 되었을까? 나의 판단에는 1996년 7월에 나온 강정구 교수의 책 『통일시대의 북한학: 민족 중심적 이해를 위하여』가 아마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전에는 그냥 '북한 연구'라고 했다. 1997년 2월에는 최성 씨가 『북한학 개론: 김정일과 북한의 정치체제』라는 책을 펴냈다. 그가 이 책의 제목을 '북한학 개론'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치 북한학의 학문적 체계가 개론 수준에서 정립되고 있는 것같은 인상을 받게 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렇지 못하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출판된 북한학 관련 저작들 가운데 손꼽아 볼만한 것을 출판 시기별로 적어보면 이렇다.

㉮ 이찬행, 『인간 김정일 '수령' 김정일: 그의 시대와 북한사회』, (서울: 도서출판 열린세상, 1994년 9월) * 이찬행은 한국사회연구소 정치연구실 연구원이다.

㉯ 이종석, 『현대 북한의 이해: 사상 체제 지도자』, (서울: 역사비평사, 1995년 2월) * 이종석은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다.

㉰ 송두율, 『역사는 끝났는가』, (서울: 도서출판 당대, 1995 5월) * 송두율은 훔볼트대학 교수다.

㉱ 최완규, 『북한은 어디로: 전환기 '북한적' 정치현상의 재인식』, (마산: 경남대학교 출판부, 1996년 5월 31일) * 최완규는 경남대학교 정외과 교수다.

㉲ 이종석, 『조선로동당연구: 지도사상과 구조변화를 중심으로』, (서울: 역사비평사, 1995년 5월 31일)

㉳ 서재진, 『또 하나의 북한사회: 사회구조와 사회의식의 이중성 연구』, (서울: 나남출판, 1995년 8월) * 서재진은 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다.

㉴ 강정구, 『통일시대의 북한학: 민족중심적 이해를 위하여』, (서울: 도서출판 당대, 1996년 7월) * 강정구는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다.

㉵ 김연철, 「북한현대사 연구의 쟁점과 과제」, 역사문제연구소 편,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비판』, (서울: 역사비평사, 1996년 11월), 157-183쪽. * 김연철은 평화연구소 연구원이다.

㉶ 서동만, 「북한 사회주의에서 근대와 전통」, 같은 책, 349-373쪽. * 서동만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다.

㉷ 최성, 『북한정치사: 김정일과 북한의 권력엘리트』, (서울: 도서출판 풀빛, 1997년 2월 19일) * 최성은 아 태평화재단 책임연구위원이다.

㉸ 최성, 『북한학 개론: 김정일과 북한의 정치체제』, (서울: 도서출판 풀빛, 1997년 2월 28일)

최근 국제 사회에서 눈에 띄는 저작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스즈키 마사유키(鐸木昌之), 유영구 옮김,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 (서울: 중앙일보사, 1994년), 일본어 원판 『北朝鮮 社會主義と傳統の共鳴』,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1992). * 스즈키는 게이오대학의 한반도문제 연구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의 제자이며, 지금은 성학원대학 전임강사임.

② Bruce Cumings,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1997) * 부르스 커밍스는 Northwestern University의 Center for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Studies의 소장이다.

③ Don Oberdorfer, 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 (Reading: Addison-Wesley, 1997) * 돈 오버도퍼는 Washington Post지에서 38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Johns Hophins University의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언론학 연구가로 있다.

(4) 북한학,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무릇 학문이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창조의 산물이 아니라, 문헌 분석을 통하여 사실들의 연관 관계와 그 의미를 밝혀내는 과학적 탐구의 산물이다. 북한학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학은 현장 답사나 현장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헌 분석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나왔다. 북한학의 출발점은 문헌 분석이다.

1) 북(조선) 전문가들이 분석해야 할 주요 문헌은 『김일성저작집』과 『김정일선집』이다.

북(조선)의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실체는 조선로동당이고, 조선로동당의 지도자는 수령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조선)은 소련·동유럽형 사회주의나 중국 사회주의, 쿠바 사회주의와 다른 '수령제 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도 공산당이 사회와 국가를 지도하고 있고,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총비서)가 있지만, 그 나라들의 사회주의 건설 역사에서 나타난 최고 지도자의 지위와 역할은 북(조선) 사회주의 건설 역사에서 나타난 수령의 지위와 역할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에서 말하는 수령제 사회주의는 수령이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고, 그 요구와 의사를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북(조선)의 사회 현실과 국정 운영에 관하여 가장 깊이 있고, 가장 폭넓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수령의 사상과 이론, 수령의 의사와 의지, 수령의 정책과 영도 방향을 파악하면, 북(조선)이라는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령에 대하여 아는 것이 곧 북(조선)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가 저술한 문헌들을 북(조선)에서는 '로작'이라고 부르고 있다. '로작'이란 곧 '수령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가 저술한 문헌은 그때그때 소책자로 제작되어 주민들에게 보급하고 사상 교양을 위한 자료로 활용되고, 외국어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비밀주의 정책에 따라서 당원들에게만 보급되는 당내 소책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소책자로 보급된 문헌들은 부문별로 다시 편집되어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그와 동시에 선집, 저작집, 전집으로 간행된다. 북(조선)의 '수령문헌'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뚱의 문헌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편집·출판되었다고 한다.

북(조선)의 사회 생활과 국가 운영에서 '수령 문헌'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국가 운영을 위한 모든 정책과 노선이 '수령 문헌'에서 나온다. 강연, 학습, 공개 발언, 방송 내용, 신문 기사, 학술 논문들에서는 언제나 '수령 문헌'의 내용 가운데 관련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수령 문헌'은 모든 주민들의 체계적인 사상 교양에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수령 문헌'은 모든 주민의 일상 생활에서 최고의 지침이 되어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김일성저작집』과 『김정일선집』에 대한 문헌 분석은 북(조선)을 인식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령 문헌'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웬만한 인내와 끈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정밀 분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저작집』의 경우, 1979년에 제1권이 처음 출판되기 시작하여 1996년 6월에 마지막으로 제44권이 나왔다. 가장 먼저 수록된 글은 김일성 주석이 1930년 6월 30일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이며, 맨 마지막 논문은 급서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결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데 대하여」다. 이 '수령 문헌'이 포괄하는 시대적 범위를 보아도, 1930년도에서 1996년도까지 66년이다. 이 '수령 문헌'에 포함된 글은 모두 1천4백5 편이고, 쪽수는 모두 2만2천9백76 쪽이다. 이 '수령 문헌'에 포함된 글들은 연설문, 담화문, 대담 기록, 보고문, 발표문, 서한, 논문 등 다양하다. 또한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남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있는데,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뒤로 1996년 6월 「계승본」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까지 모두 일곱 권이 나왔다.

다른 한편 김정일 총비서의 저작을 모아 출판한 『김정일선집』은 지금까지 모두 11권이 나왔다. 첫째권은 1992년 2월에 나왔고, 가장 최근에 나온 제11권은 1997년 2월에 발행되었다. 1964년 4월 22일 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일군들과 한 담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청년동맹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라는 글에서 시작하여 1991년 7월 17일에 발표한 논문 「음악예술론」이 가장 최근에 수록된 글이다. 이 선집 11권이 현재까지 포괄하고 있는 시대범위는 27년에 이르며 글은 모두 2백67 편, 쪽수는 5천4백76 쪽이다.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수령 문헌'들이 포괄하고 있는 분야는 주로 경제 사업, 당 사업, 문학예술 사업, 담화, 대담 기록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수령 문헌'들은 공개된 '수령 문헌'이다. 비밀주의 정책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북(조선)은 정치·외교·군사·경제 등 주요 부문에 관한 문헌들은 일체 이 '수령 문헌'에도 포함시키지 않았고, 간혹 포함시키는 경우에도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은 모두 삭제하였다. 비공개 '수령 문헌'이 얼마나 방대한 양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 비공개 부문의 중요성과 비중을 생각한다면 공개 문헌의 양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 공개된 '수령 문헌'에 비공개 '수령 문헌'까지 합한다면 '수령 문헌'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방대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학 연구자들 가운데 이 방대한 '수령 문헌'을 통독한 사람이 아직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수령 문헌'을 모두 수집한 사람도 없다. 이런 실정이니 '수령 문헌'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하는 분석 방법론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북한학은 북(조선)의 학자들이 내놓은 '주석 문헌(exegetical text)'을 분석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2) 문헌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원문-상황(text-context)의 관계를 정확히 설정·파악하는 것이다.

원문-상황의 관계 문제는 원래 문헌 비평학(textual criticism)에서 제기된 것으로서, 해석자(interpreter)가 자신의 상황에서 원문의 의미를 해석해서는 안되고, 원문의 상황에 들어가서 읽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원문 해석을 통하여 밝혀진 내용이 해석자에게 던져주고 있는 의미(message)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해석이란 이처럼 원문-원래 상황의 관계와 해석자-현재 상황의 관계를 접합하는 행위다. 해석의 행위에는 해석자가 해석한 원문의 의미를 해석자 자신의 현재적 상황에 결부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이른바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가 작용한다. 해석자가 자신의 상황에서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면 그것은 해석자가 주관주의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3) 문헌 분석과 세계관은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원문(text)에 들어있는 원래의 상황(context)을 규정하고 있는 가장 포괄적인 틀은 원저자의 세계관이다. 해석자는 원저자의 세계관을 알지 못하면 원문의 의미에 다가설 수 없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동원하여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해석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문헌이 말하려고 하는 원래의 의미는 문헌 저자의 세계관 안에서 소통되고 있는 고유한 의미다. 세계관은 의미를 낳는 원형질(protoplasm)이다. 해석자는 세계관이라는 원형질 속에서 소통되고 있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문헌 비평이나 해석학에서 논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학의 탐구에서도 원저자의 세계관이 맨먼저 해결해야 할 난제로 해석자 앞에 다가온다. 북(조선) 문헌들 속에 녹아있는 원형질로서의 세계관은 우리의 세계관과 다를 뿐아니라, 충돌하고 있는 세계관이다. 이 상충되는 저들의 세계관을 저들은 김일성주의(Kimilsungism)라고 부른다. 북(조선)의 문헌들은 김일성주의 세계관이라는 원형질 속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김일성주의 세계관이 아닌 다른 세계관의 틀을 해석학적 준거(hermeneutical framework)로 동원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김일성주의 세계관의 타당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가치 판단은 별개의 문제다. 그 세계관의 타당성을 캐묻기 전에 먼저 그 세계관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북한학 연구자들이 거의 모두 김일성주의 세계관에 대해서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잘못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의 타당성 여부부터 성급하게 캐묻고 선악 이원론의 가치 판단을 내리는 우적논쟁(友敵論爭)의 사고 구조가 일종의 굳어진 관행처럼 북(조선) 연구에 자리잡고 있다. 동양의 불교적 세계관, 유교적 세계관, 무교적 세계관에 무지했던 서양 선교사들이 개항 이후 조선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몽매한 원주민의 미신과 우상 숭배라고 덮어놓고 비난하고 말살하려 했던 19세기적인 선악 이원론의 가치 판단이 오늘 21세기를 앞둔 북한학의 영역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대 희랍의 세계관을 모르는 사람이 고대 희랍 문헌들을 해석할 수 없고, 고대 중국의 세계관을 알지 못하면 그 당대의 문헌들이 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주의 세계관을 모르면 북(조선)의 문헌들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은 불가능하며, 남아 있는 것이란 '미신'과 '우상'을 말살하려는 가혹한 파괴 충동과 '개종을 강요하는 설교' 뿐일 것이다.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이 만일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를 낳은 원형질인 불교적, 유교적, 무교적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관용적 태도를 가졌더라면, 민족 교회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한 세기 뒤의 현대를 살고 있는 북한학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확고히 서 있다고 할지라도, 북(조선)이라는 실체를 인식하려면 그 실체의 원형질인 김일성주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관점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1997년 11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