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당위와 통일 실현의 기회, 그리고 통일 국가의 선택

한호석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1) 분단 질서의 장기화·고착화 그리고 통일 무용론, 분단 안주론의 대두

1945년 8월에서 1950년 6월까지 다섯 해 동안에 분단 고착화를 저지하고 통일 국가를 수립하려는 전민족적 요구가 크게 일어났고,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분단만은 막아야겠다는 민족적 의지도 강했지만, 이러한 전민족적 요구와 의지는 전쟁을 겪으면서 좌절되었고, 그 뒤로 분단 질서가 장기화되면서 차츰 희미해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 질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생각과 행동을 더욱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고, 조국통일은 실현될지 혹은 아니 될지도 알 수 없는 모호한 미래의 꿈처럼 멀어져갔다. "나라도 하나 민족도 하나 독립도 하나 피도 하나, 이 길이야말로 조선을 살리는 길이라"고 외쳤던 민족적 의지가 분단 50년을 막 넘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강렬하게 살아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솔직히 말해서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통일이 분단보다는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통일 회의론, 한(조선)반도 전체에 '총체적 불안'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통일을 왜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통일 회의론이 우리 사회에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회의적 태도는 버거운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힘쓰느니 차라리 분단 질서의 대립·긴장 상태만 완화시킨 상태에서 남북이 각자 발전하면 그게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통일 무용론, 분단 안주론으로 흘러가게 된다.

통일원의 한 관리가 최근 서울 시내 4개 고등학교 학생 4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젊은 세대에게서 조국통일을 지향한 민족적 의지를 찾기 힘들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그 조사 결과는 "북한 주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다" (65.1%), "동포 형제라는 느낌이 든다" (17%), "적대감이 든다" (12.9%)는 순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통일이 되면 좋지만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5.6%),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38.7%)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평소에 남북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관심을 갖고 있다" (47.1%), "관심이 없다" (48.6%), "전혀 무관심하다" (3.8%)는 결과가 나왔다. 통일 때문에 올 고통과 희생을 감내할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 (63.3%),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5.6%), "감내할 수 없다" (16.2%)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통일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한 번도 없다"고 하는 응답자가 85.3%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도 남(한국) 인구의 3분의 1가량은 분단 현실에 무감각하다는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20-30대의 분단 체감도가 40-50대 및 그 이상 세대보다 훨씬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민족통일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중앙일보』 여론 조사와 자체 조사 결과를 분석한 연구보고서 「통일 문제에 대한 세대간 갈등 해소 방안」은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의식 구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낸 응답자는 50대 이상은 70.4%, 40대는 54.9%, 30대는 54.6%, 20대는 55.2%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좋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와 30대가 각각 38.6%, 38.2%, 40대는 37.9%, 50대 이상은 18.3%였다고 한다. 50대 이상의 세대 가운데 39%는 북(조선)을 '경계 대상'으로 보고 있고, 20대의 30%는 '협력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하는 통계가 나왔다. 50대 이상의 세대는 북(조선)을 '경계 대상'으로 생각하면서도 통일의 당위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 젊은 세대의 의식 속에서는 통일의 당위성이 희미해지고 북(조선)을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 회의론, 통일 무용론, 분단 안주론, 분단 불감증 같은 사회 의식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통일 문제와 분단 문제를 민족사적 당위성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문제가 '지금', '자기에게' 안정과 이익을 보장해 주느냐 아니면 불안정과 손해를 주느냐 하는 자기 중심적 이해 관계의 냉철한 논리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이라는 개념은 단기적 관점을 뜻하는 것으로서, 민족사의 발전 전망과는 무관하게, 또는 그 발전 전망을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눈 앞에서 어떤 이해 관계가 관철되느냐 하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통일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을 낳는다. 또한 '자기에게'라는 개념은 통일 문제를 남·북·해외 7천만 민족 전체의 장래 운명이 걸려 있는 전민족적인 문제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자기 개인의 이해 관계 또는 자신이 속한 특정 사회 집단, 사회 계급 및 계층의 이해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이러한 부정적 경향은 민족적 현실에서 스스로를 분리·이탈시킨 개별화·파편화된 개인과 이익 집단의 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남(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흐름을 이루고 있다. 어떤 희생과 고통을 각오하고라도 분단을 막고 통일을 실현하겠다고 했던 분단 1세대의 통일 의지는 분단 질서의 장기화·고착화 경로를 거치면서 분단 3세대, 4세대에 이르러 이렇게 희미해지고 말았다.

만일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는 것과 정비례해서 우리 사회의 통일 의지가 차츰 희미해져 간다면, 앞으로 새로운 세기에 들어가면 조국통일 과업을 위하여 일할 사람은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문득 스쳐간다. 우리 사회는 통일 과업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투철한 민족 의식은 결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분단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통일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온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구조 속에 깊이 내면화된 분단 의식을 씻어내고 그 자리에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싹트게 하는, 참으로 힘든 의식 개조의 과업이다. 강렬한 통일 의식은 어디까지나 통일을 지향하는 사회적 관념 속에서 자라나고, 목적의식적인 교육을 통하여 생겨나는 사회적 산물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21세기를 살아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러한 민족 의식과 통일 의지를 고취하고 계승할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도 선뜻 자신있는 대답이 나오기 힘들다. 분단으로 마비된 민족 자주 의식과 통일 의지를 일깨우는 일은 어느 한 두 사람, 어느 한 두 통일운동 단체들이 나서서 목이 터져라고 외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입바른 구호에 담겨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민족 자주 의식과 통일 의지를 지난 후대들이 새로운 21세기에 우리 사회에서 땀흘려 일하게 하려면 분단 시대 초기에 우리 민족이 지녔던 강렬한 민족 자주 의식과 통일 의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다. 어떤 희생과 고통을 각오하고라도 분단을 막고 통일을 실현하겠다고 했던 분단 1세대의 투철한 민족 의식과 조국통일 의지를 오늘에 되살려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또한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이유에서 반드시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는 통일의 당위성을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고 강조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통일 당위론의 두 갈래

우리는 우리 민족이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론의 물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조국통일에 대한 문제 의식은 바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일 당위론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통일 문제를 민족적 당위성의 관점에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사회적·국가적 이해 관계의 관점에서 파악하느냐 하는 문제로 갈라지는 것이다. 전자를 민족 중심주의적 관점으로, 후자를 국가 중심주의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통일 문제를 민족적 당위성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민족 중심주의적 관점에 대해서 통일이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보는 이른바 '통일 미래 환원론' 또는 '통일 지상주의'가 아니냐고 비판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비판은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통일 논의의 민족 중심주의적 관점은 통일만 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통일 미래 환원론, 통일 지상주의가 아니라, 통일 국가의 건설을 민족사의 발전·진보로 보고, 분단 질서의 장기화·고착화를 민족사의 쇠망·퇴보라고 보는 관점이다.

여기서 통일 국가의 건설로 인하여 성취하게 될 민족사의 발전과 진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물음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민족 자주성 확보와 민족 동질성의 회복에 바탕을 둔 전민족적인 발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조국이 통일되면 국제 사회에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며, 경제력이 향상되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보는 남(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기대는 결국 민족 자주성의 확보와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민족 중심주의적 관점은 아래와 같은 논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① 사회·역사 발전의 실체는 분단 국가가 아니라 '민족'이며, 민족은 국가보다 상위의 개념이라는 점.

② 분단 질서는 민족이라는 실체가 대립적 성격의 두 국가 체제로 분열·손괴된 상태, 곧 민족적 실체의 자기 부정이며, 통일 실현은 두 개의 국가 체제로 분열·손괴된 민족적 실체를 다시 살리는 역사적 당위, 곧 민족적 실체의 자기 긍정이라는 점.

③ 근대적 민족 국가 건설을 향한 우리 민족사의 발전·진보가 일제 침략과 식민지화로 좌절되었고, 8·15 뒤에는 외세의 분할 점령과 분단 질서의 장기화·고착화로 다시 좌절되었다고 하는 점. 따라서 통일 문제는 분단 질서의 해체·극복만이 아니라, 근대적 민족 국가 건설의 지향을 가로막아온 외세의 규정력에서 벗어나는 민족 자주성 확립의 문제며, 이것은 자주적이고 통일된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민족사의 당위적 요구와 지향이라는 점.

이에 비하여, 통일 문제를 사회적·국가적 이해 관계로 파악하는 국가 중심주의적 관점은 아래와 같은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① 사회·역사 발전의 실체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분단 국가)라고 인정한다는 점. 국가 개념은 상수고, 민족 개념은 변수라고 본다는 점.

② 통일 문제를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적 실체를 회복·완성하는 민족 문제, 곧 민족사의 완성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분단 국가의 체제 대립 관계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체제 이질성을 융화·통합하는 사회 통합 문제, 국가 통합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

③ 분열·대립 관계에 놓여있는 두 국가 체제가 대립 관계를 청산하고 교류·협력 관계로 나아가, 국가 대 국가의 통합을 이루는 역사적 경로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 두 국가 체제가 상호 대립하고 있는 분단 질서가 지속되면, 국가 역량의 소모·낭비가 너무 크게 되고, 따라서 동북 아시아에서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르러 국가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낙후한 3등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에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점. 그런데 만일 국가 통합 과정에서 분단 상태보다 되레 국가 역량의 소모·낭비가 더 크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국가 통합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

위에서 살펴본대로, 국가 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통일 당위론은 민족 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통일 당위론보다 취약할 뿐아니라, 분단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국가 통합으로 얻게 될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될 때는 현존하는 분단 질서를 '평온하게'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반통일론으로 돌아설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통일 논의는 국가 중심주의적 관점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넘어서 민족 중심주의적 관점의 확실성과 안정성을 지녀야 한다.

(3) 냉전 질서의 해체와 통일 실현의 기회

"미 소 양국이 군사상 필요로 일시 설정한 소위 38선을 국경선으로 고정시키고 양 정부 또는 양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 남북의 우리 형제 자매가 미·소 전쟁의 전초전을 개시하여 총검으로 서로 대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니 우리 민족의 참화가 이에서 더할 것이 없다. (줄임) 미·소 양국의 세계적 대립으로 말미암아 전세계 인류가 거의 다 고통을 받되 양국의 분할 점령 하에 있는 민족이 더욱 심각한 고통을 받으니 서에 덕국인(독일인-인용자 주)이 있고 동에 우리 한인이 있다. 덕국은 연합국의 적국이었으나 우리는 적국이 아니었고 덕국은 동서가 양단된 채 각각 정부를 가지게 되더라도 동족상잔할 우려가 우리와 같이 크지 않다."

위의 글은 분단 질서가 고착화되고 민족 분열이 심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던 1948년 3월 11일 남(한국) 단독선거를 반대했던 통일민족주의자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창숙, 조완구, 홍명희, 조성환이 남북 협상으로 민족 자결과 조국 통일을 실현하자는 내용으로 발표했던 성명의 일부를 다시 옮긴 것이다. 분단 질서를 거부하고 통일 국가 건설을 위하여 힘썼던 분단 1세대 통일민족주의자들의 생각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문제 의식은 그들이 분단 질서의 형성 원인을 민족 내부의 자의적인 자기 분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냉전 질서가 외부에서 강제한 지역 분할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분단 질서를 반세기가 넘게 장기적으로 유지·고착시켜온 것은 결국 냉전 질서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 말은 독일, 베트남, 중국과 같은 분단국들의 성립은 냉전 질서가 낳은 '불행한 산물'이었다고 보는 단순 논리를 넘어서서, 한(조선)반도의 분단사 반세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세계를 분열해놓았던 세계적 규모의 냉전 질서가 집중적으로, 그리고 가장 참혹한 전쟁과 대결의 형태로 전개된 냉전 질서의 민족 내부화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50년동안 한(조선)반도에서 맹위를 떨쳐온 냉전 질서의 규정력, 강제력 앞에서 민족 공동 이익은 완전히 희생당했으며, 민족 의식은 실종되었고, 민족 공동체는 자기 부정의 벼랑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세계적 규모의 냉전 질서가 적어도 한(조선)반도 외부 지역에서는 거의 해체되고, 세계사적으로는 이른바 탈냉전 시대라는 연대기적 개념 규정이 정당한 것으로 용인되고, 냉전 질서의 해체기라는 시대 정신이 확산되고 있는 데도, 아직 한(조선)반도는 냉전 질서의 빙하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냉전 질서의 외적 규정력이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를 강제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냉전 질서의 해체 현상은 한(조선)반도 분단 질서의 해체를 강제하는 외부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난 날 냉전 질서 형성기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확장과 강화,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의 재편이 일어났지만, 오늘 냉전 질서 해체기에는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 진영의 약화와 몰락, 그리고 미국·일본·유럽연합의 삼극 체제 형성으로 인한 자본주의 진영의 재편, 곧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상대적 위축이라는 질적 구조 변동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 진영의 약화·몰락이라는 현실 변화는 사회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 북(조선)에게는 불리한 외적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남(한국)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전략 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남(한국)은 한때 이른바 '북방 정책(Nordpolitik)'을 추구하여 한·소 수교, 한·중 수교를 성사시키고 나자 외교 고립에 빠진 북(조선)을 곧 흡수 통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삼극 체제 형성으로 인한 자본주의 진영의 재편과 미국 지배력의 상대적 약화라는 구조 변동 때문에 미국은 한(조선)반도 냉전 질서의 한 축이었던 한·미 동맹 관계를 어쩔 수 없이 재편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받아안게 되었다. 한·미 동맹 관계의 재편은 조·미 관계 정상화, 조·일 수교 협상,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중국·일본의 영향력 재편 때문에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냉전 시기 북(조선)에 대한 옛 소련의 영향력은 1960년대 이후 중·소 분쟁으로 일어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 때문에, 그리고 북(조선)이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자주 외교 전략' 때문에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냉전 질서 해체기에 이르러 소련의 해체가 북(조선)에게 미친 영향력도 그것에 정비례해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북(조선) 사회주의가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에 비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월등히 강한 체제 내구성과 지구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소련·동구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 발전 전략을 수행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이후 사회주의 몰락기에 미국이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북(조선)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이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1994년 10월 조·미 기본 합의서 체결과 1995년 11월 경수로 타결로 귀결되었고, 북(조선)과 협상하는 자리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조선)반도의 외교 지형은 조·미 관계 개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재편되고 있다. 이 재편은 이 지구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것은 곧 분단 질서의 해체, 탈분단 질서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금 이러한 세기적 격동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미 관계 개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재편되고 있는 세기적 격동기를 통과하면서 북(조선)은 분단 질서의 해체를 촉진하여 궁극적으로는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보장 체계를 수립하고 통일 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에 반하여 미국은 한(조선)반도에 드리운 자국의 기존 이해 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안으로 분단 질서의 해체과정을 유도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분단 질서 해체 과정에서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 목표는 한(조선)반도를 중심 고리로 삼고 있는 동북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자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현재 수준에서 위축시키지 않고, 도리어 북(조선)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한(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그로써 중국의 지역 패권화를 억제하고 일본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보겠다는 매우 장기적인 관여·개입 전략(enlargement-engagement strategy)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이 냉전 시기 내내 지금까지 적대 관계에 묶어두었던 북(조선)에 대한 봉쇄·대결 전략(containment-confrontation strategy)을 점진적으로 수정해 가면서 대북 관계 개선을 추구하게 되자, 지난 냉전 시기 봉쇄·대결 전략 수행의 최전선이었던 남(한국)은 그 역할이 감소되었으며, 미국은 일본을 관여·확장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용인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일정하게 확대될 것이며, 일본은 자국의 군사적 관여·확장 전략을 수행할 최적지로 한(조선)반도를 점찍어 놓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한·미 동맹 관계를 '일정 정도' 이완시켜, 결과적으로는 한·미 동맹 관계를 미·일 동맹 관계의 하위 구도 속으로 내려놓고, 미·일 동맹 관계를 중심으로한 동아시아 관여·확장 전략을 수립하게 된 것은 21세기에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경쟁 상대로 떠오르게 될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하는 예방 전략(preventive strategy)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한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북(조선)에 대한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까닭은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199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외교 부문의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조선)반도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사전에 차단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확장하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한국)은 뚜렷한 대응 방도를 찾지 못한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전략 구상'에 대하여 북(조선)은 '새로운 평화 체계 수립안'을 제안하여 대응하고 있고, 일본은 '새로운 방위 대강'을 확정하여 대응하고 있는데, 남(한국)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한국)이 조·미 관계 개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 앞에서, 그리고 미·일 안보 동맹 관계의 확대와 성격 변화가 몰고오는 한(조선)반도 주변 정세의 질적 변화 앞에서 불안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난 냉전시기 남(한국)이 한·미 동맹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자주적인 외교·안보 역량을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적 변화에 대처할만한 외교·안보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남(한국)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동북 아시아 열강의 각축전에 밀려나 외교적 고립과 안보 무력화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날 북(조선)이 조·소 동맹 관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인 외교·안보 역량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한·소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조·소 동맹 관계가 약화되었을 때도, 부정적 영향을 덜 받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남(한국)은 조·미 협상이 진전되면서 한·미 동맹 관계의 변화 전망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매우 높은 강도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술어는 남(한국)이 요즈음 느끼기 시작한 안보 불안감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한(조선)반도 주변 정세의 질적 변화가 과연 통일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한(조선)반도에서 냉전 질서가 해체된다고 해서 곧 통일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냉전 질서 해체 이후의 한(조선)반도는 냉전 시기의 극단적인 남북 대결 상태에서는 벗어나 일정한 범위에서 남북의 대화·교류·협력이 진행되는 '새로운 분단 질서'의 성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냉전 질서가 해체되고 나서도 남북의 당국이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주체적인 의지와 역량을 지니지 못한다면 분단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게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분단 질서'란 냉전 시기의 대결적 분단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일국가 수립도 아닌 분단과 통일 사이의 '완충기적 중간 상태'가 될 것이며, 이러한 완충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 완충기를 지나면서 남북 관계는 냉전 대결 구조에서 탈냉전적 경쟁 구조로 전환될 것이다. 탈냉전적 경쟁 구조 위에 성립된 새로운 남북 관계는 통일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체제 경쟁, 상대방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체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만일 남북 당국에게 통일의 주체적 의지와 역량이 없다고 한다면, 완충기의 남북대화·교류·협력은 남북의 상호 합의에 의한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탈냉전적 체제 경쟁의 산물로 등장할 것이다.

(4) 통일의 방안과 경로에 대한 인식

통일 당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중대한 문제는 통일의 방안과 경로에 관한 문제다. 여기서 통일의 방안에 대한 탐구, 통일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전망이 핵심 문제로 나오게 된다.

위에서 논의한대로 분단-통일 사이의 '완충기적 중간 상태'가 반드시 거쳐야 할 경로라고 한다면, 이 경로를 국가연합 단계로 규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연방국가 단계로 규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국가형태론의 시각에서 평가하자면 국가연합 단계나 연방국가 초기 단계는 서로 차별성이 없는 거의 동질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분단 국가가 상호 실체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상호 국가 승인 문제에서 드러난다. 국가연합 단계는 남북이 정치적으로 합의하여 두 개의 국가로 갈라서는 분단 국가 실체의 상호 인정 과정을 거쳐서, 두 독립 국가를 특수한 관계로 결합한 단계를 말한다. 연방국가 초기 단계란 남북이 서로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고, 현존 분단 질서를 변화시켜 특수한 관계로 결합한 단계를 말한다. 앞으로 완충기적 중간 상태가 만일 국가연합 단계로 확정된다면, 한(조선)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영원히 갈라서고마는 분단의 영구화·합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남북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서로를 국가적 실체로 상호 인정하게 된다고 해서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되레 민족 내부에서도 법리적으로 분단 질서를 인정하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남북의 당국자들이 진정으로 통일을 실현하려 한다면, 남북 당국이 상대방을 국가적 실체라고 인정하여 분단 질서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야 할 필요는 없으며, 국가연합 단계와 그 형식 및 결합 수준이 동일한 연방국가 초기 단계로 들어가면 될 것이다.

통합성격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기능주의적 통합, 연방주의적 통합, 수렴적 통합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다. 기능주의적 통합은 정치·군사적인 통합은 뒤로 미루고 우선 사회·경제적 통합을 추진하자는 논리고, 연방주의적 통합은 정치·군사적 통합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경제적 통합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수렴적 통합은 상이한 두 체제의 장점을 수렴하는 통합을 말한다. 남(한국) 당국의 '3단계 통일 방안'은 통일 조국의 체제, 이념, 제도를 단일한 것으로 통합하려는 점진적 사회 통합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 논리는 남북 상호 국가 승인을 지향하는 국가연합 수립론에 직결되어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다. "정치 체제가 상이한 동안은 정치 통일을 유보하고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경제 공동체'를 우선 구축하고, 가능하다면 '문화 공동체'도 이루어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 북(조선) 체제가 역사적 진화를 거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때가 되면 '정치 공동체'도 결성해보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가 정리한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다.

반면에 북(조선)의 연방제 통일 방안은 통일 조국의 국가 형태를 단일한 연방국가로 만들려는 점진적 정치 통합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 통합은 다음 세대에게 넘기자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이다. 요즈음 통일 방안에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견해들이 있다.

① 기능주의적 통합을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

② 기능주의적 통합을 먼저 하고 나중에 연방주의적 통합을 추진한다는 '단계론'을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 김대중 씨의 통일 방안이 대표적인 단계론이다. 그가 내놓은 통일 3원칙은 평화 공존→평화 교류→평화 통일이며, 3단계 통일 방안은 공화국 연합 방식의 통일→연방제 방식의 통일→완전 통일의 실현이다.

③ 연방주의적 통합을 주된 방안으로 하고 기능주의적 통합을 보조 방안으로 삼은 '접합론'을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 강정구 교수의 접합론이 대표적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연방주의는 연방 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기능주의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편 기능주의에도 '단점'이 있는 데, 그것을 그는 "파급 효과가 강한 부분에서 약한 부분으로 흘러가 일방적인 강요의 형태로" 나타나는 '역류 효과(spill-back)'가 생길 수 있으며 이로써 "반공동체적 결과"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역류 효과에 의한 반공동체적 결과는 독일통합 과정에서 실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기능주의적 단점을 보완하는 길을 연방주의에서 찾고 있다. 그의 말을 옮겨보자.

"연방주의는 기능주의가 초래하기 쉬운 이러한 역기능적인 일방적 강요나 역류 효과를 목적의식적인 정치적 지도력과 정치적 협상 및 타결에 의해 저지시켜 통합이나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또한 연방주의는 기능주의의 한계인 기능적 상호 의존성과 그 변화에 국한되는 점을 넘어 구조적 변화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 형성에 가속제 역할이 기능주의보다 우세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연방주의가 연방 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강정구 교수의 평가를 읽으면서, 우리는 연방주의와 연방제 통일론을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만일 그가 연방주의와 연방제 통일론을 구분하여 연방주의에 대해서만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 통일방안은 연방주의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면서 기능주의를 배제하는 '편협한 통일론'이 아니라, 연방주의를 기본성격으로 삼고 거기에 기능주의를 보조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통일론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남(한국)의 기능주의적 통합론은 연방주의적 통합론을 배제하고 있다.

강정구 교수가 연방주의와 기능주의의 접합에 대한 전략 구상이 "단순한 산술 평균적 결합이 아니라 현재 남북의 역학 관계를 주어진 조건(given conditions)으로 두고 이 바탕 위에 공동체 구성 요소인 동질적 가치관의 공유와 자발적 협조에 의한 기능적 상호 의존성을 담보하는 전략이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타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연방주의적 접근법을 기본으로,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보조적으로 결합시키는 전략"을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내용은 연방제 통일 방안과 동일하다. 그는 자신의 접합론을 "공동체 형성의 접근법", 또는 "주 연방주의 보 기능주의 접합 전략"이라고 불렀다. 강정구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긴요주의를 중심으로 삼고 점진주의를 보조 역할로 삼은 접합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도 또한 연방제 통일론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강 교수의 접합론은 용어만 달리 쓰고 있을 뿐, 연방제 통일론의 기본 성격과 논리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접합론과 연방제 통일론은 모두 연방주의를 중심으로 하고 기능주의를 보조 역할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④ 기능주의적 통합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양 체제의 장점을 수렴적으로 통합하는 '수렴론'을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 연방주의 통합론은 이념·제도의 통합 문제를 연방주의 통합이 이루어진 뒤에 다음 세대가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보면서 통일 문제와 체제 문제를 분리하여 별개로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하여, 수렴통합론은 통일 문제와 체제 문제를 수렴론의 틀 속에서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수렴통합론은 남(한국)이 자본주의적 바탕 위에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첨가·융합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발전하고, 북(조선)은 사회주의적 바탕 위에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첨가·융합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발전하는 경로를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수렴통합론은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사회주의의 역사적 전망을 포기하거나 일정 정도 수정해야 했던 남(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로 제기하고 있다. 남북 체제의 "상호주의적인 변혁의 요청"을 주장한 리영희 교수는 "남은 우선 북으로부터 민족 자주성, 민족적 긍지, 평등성과 사회주의적 정책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북은 남으로부터 개인의 권리와 자유, 기회 추구의 확대, 시장 경제의 장점 등을 받아들여 김일성 유일 사상과 경제적 낙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고 지적한 바있다. 다른 한편, 손호철 교수는 수렴형 통일 모델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일단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더라도 결국 중장기적으로 두 개의 체제를 구성하는 '하위 사회' 간의 교류 속에서 두 사회가 체제 수렴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는 수렴통합론은 남(한국)의 젊은층에게 퍼지고 있다고 하면서, 남(한국) 젊은층 가운데 39.6%에 이르는 다수가 통일 뒤의 체제로 자본주의를 바라고 있기는 하나, 순수한 자본주의 보다는 사회주의의 장점을 도입한 자본주의(36.0%)나 자본주의의 장점을 도입한 사회주의(17.7%)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5) 사회 복지권의 실현과 통일 국가의 선택

지금까지 남북의 두 체제는 남북 대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막대한 국가 역량을 소모해야 했기 때문에 각기 발전 속도에 제동이 걸려있었다.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서구형 선진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도 높은 발전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두 체제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외연 성장의 한계에 부딪혀 있으며 내포 성장을 추구하지 않으면 현재 이상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없는 할 시점에 이르렀다.

위에서 논의한대로 분단-통일 사이에서 완충기적 중간 상태가 지속되면서 남북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것과 더불어서, 남북 사이에 체제 경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경쟁이란 한(조선)반도에서 '한국형' 자본주의와 '주체형' 사회주의의 경쟁이다. 이 경쟁은 결국 어떤 체제가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느냐 하는 '사회 복지권'의 실현 문제로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 복지권의 실현을 논의할 때, 생산력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 하는 물질 생산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산된 사회적 재부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분배하여 그들의 생활 욕구를 충족시키느냐 하는 분배와 소비의 문제, 사회 구성원의 의식 발전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현행 사회·경제 제도를 어떻게 사회 복지권 실현에 부합하는 선진적인 제도로 개조·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남북의 체제 경쟁은 바로 이러한 사회 복지권 실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사회 구성원의 사회 복지권 실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는 물가 안정 문제, 조세 문제, 사회 보장 제도 확립 문제 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핵심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보장 제도의 핵심은 소득 보장 제도와 의료 보장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 총생산(GNP)에 대한 사회 보장 복지 부문 예산 비율에 관한 남(한국)의 통계청 자료를 보면, 스웨덴은 1992년도에 24.1%, 미국은 같은 해에 6.9%, 말레이지아는 1993년도에 1.5%, 남(한국)은 1994년도에 2.0%(1985년도에는 1.0%였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다른 한 편으로 중앙 정부가 사회 복지 부문에 지출하는 예산은 미국이 28.1%, 영국 34.3%, 스웨덴 51.3%에 비해, 남(한국)은 9.9%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남북의 사회 복지 문제에 관련한 연구 결과들 가운데는 남북은 사회 복지의 운영 원리, 제도의 형태, 재원 조달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로 파악할 수 없고, 제도의 완비성, 적용 인구의 포괄도, 급여 수준의 적절성 등을 비교틀로 정하고 이를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해놓은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급여와 제도' 아홉 가지를 비교 범주로 사용한 분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분석을 따르면, 북(조선)에서는 질병, 산재, 부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노동력을 잃어버리면 '사회 보험제'를 통하여 단기(6개월 기준) 현금 급여를 받게 되고, 6개월이 넘으면 '사회 보장제'를 통해 연금을 받게 된다. 북(조선)의 '사회 보험제'는 단기 급여(short-term benefit)를 지급하는 제도고, '사회 보장제'는 연금 같은 장기 급여(long-term benefit)을 지급하는 제도다. 북(조선)은 1985년에 와서 '협동농민에 대한 사회 보장제'를 실시하여 사회 보장 급여의 적용 범위를 전체 취업 인구로 확대하였고, 이로써 국가 예산에 의한 사회 보장의 보편주의적 실현을 달성했다고 한다. 반면에 남(한국)은 농어민 연금제와 30인 이상 고용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고용 보험을 실시하고서도 도시 자영업자,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비롯한 남(한국) 인구의 약 절반이 아직도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어서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남(한국)은 노령, 폐질, 사망 등의 사회적 사고가 생겼을 때 소득을 유지시켜 주는 연금 제도가 4개의 제도로 나누어져 있고, 연금 제도들 사이에 기여·급여 체계의 통일성도 없어서 소득 보장 제도의 계급·계층적 불평등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제도의 완비성, 적용 인구의 포괄도를 비교하자면 북(조선)은 1백점, 남(한국)은 52점이라고 한다. 남(한국)은 가계 수입 가운데 사회 보장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2%에 지나지 않는데, 북(조선)은 사회적 소비 기금을 통하여 받는 가계 지원이 가계 수입 전체의 2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통일원의 발표에 의하면, 북(조선)에서는 곡물 수매 가격이 쌀의 경우 kg당 60전인데 반해 공급 가격은 그 13% 수준인 8전이며 정부가 그 차액을 보전하는 이중 곡가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따른 정부 부담금은 해마다 15.3억원(북[조선]돈, 약 7천6백50만달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 보장 제도를 보면, 북(조선)에서는 '인민 보건법'을 통해 무상 치료제의 급여 범위를 외래 입원의 처방약, 진단, 실험 검사, 치료, 수술, 왕진, 입원, 식사, 그리고 근로자의 요양 의료 봉사 및 왕복 여비, 해산 방조, 건강 검진, 건강 상담, 예방 접종, 교정 기구 이용비, 보철 비용에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1976년에 제정된 '어린이 보육 교양법'의 후속 조치로 1993년 초에 제정된 '어린이 보육 교양법 세칙'을 보면, 근로 여성에게 산전 60일, 산후 90일의 유급 휴가(1978년에 제정된 사회주의로동법에서는 산전 35일, 산후 42일의 유급 휴가로 규정되어 있음)를 주며, 탁아소별로 아동 병동을 설치하며, 온천, 약수터, 바닷가에 어린이 요양 시설을 각각 설치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물론 북(조선)은 사회 보장 급여의 질을 놓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남(한국)은 보험 적용 기간의 180일 제한, 건강 검진 및 예방 급여의 미흡, 입원시 50%가 넘는 본인 부담금의 비율 등 때문에 급여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한다.

남(한국)은 빈약한 사회 복지와 공공 서비스, 환경 오염, 부의 편재와 경제력의 독점 같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사회 복지권의 고도 실현에 대한 전망이 밝지 못하다. 국민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은 개인의 생활 수준을 높히고 개선하는 문제에 집중되면서, 사회·정치적 안정을 요구하게 되며, 저임금을 바탕으로 하는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정책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사회 구성원의 문화비 지출이 늘어나고 건강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진다.

남(한국)의 경우는 경제 성장에 따르는 환경 문제, 교통 문제, 주택 문제, 의료 문제 등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사회 복지권을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크게 늘어나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가로막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할 수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국가 경쟁력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산업 구조의 비중이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옮겨질 경우, 부르스 커밍스 교수가 걱정하고 있는대로, 남(한국)은 중남미 나라들처럼 선진 자본주의로 발돋움하지 못한채 좌절하게 될런지 모른다.

통일국가 건설에 이르는 역사적 경로에서 남북의 체제 경쟁은 제원 조달과 급여 체계를 완전히 사회화시킨 사회주의적인 사회 보장 제도와, 재원 조달은 보험 방식을 통해 일부 사회화하였지만 급여 체계는 시장 경제 체제에 묶여 있는 자본주의적인 사회 보장제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으로 전화될 것이다. 이처럼 상이한, 그리고 상호 절충할 수 없는 두 제도의 경쟁 사이에서 21세기의 민족 통일 국가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체제 선택'의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체제 경쟁은 자기 지역 주민에게 사회 복지권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게 하는 전민족적 공리·공영의 체제, 전체 사회 구성원의 삶을 평등하고 행복한 삶의 질로 높혀주는 체제를 지향하여 전환·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제는 사회 구성원의 삶을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남북 대결 상태)를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문제, 군사력 증강에 쏟아붓는 사회적 재부를 어떻게 사회 복지권 실현에 돌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존 분단 질서가 그대로 유지·관리되는 한, 남북의 정치·군사적 긴장 상태는 의연히 지속될 것이며, 따라서 사회 복지권의 고도 실현은 멀어질 것이다.

분단의 장기화는 전민족적인 공멸·공망을 재촉하지만, 통일의 성취는 전민족적인 공리·공영을 추구한다. 통일은 남북의 군비 경쟁을 동결하고, 군비와 병력을 감축하여 전체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질높은 사회 복지권을 실현하는 민족 공동 이익의 추구 과정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다. 평등하고 질높은 사회 복지권이 실현되지 않는 통일은 통일(reunification)이 아니라, 단순한 지역 통합(regional integration)일 뿐이다. 통일을 민족사의 발전과 진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6년 2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