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다시 생각한다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당위성을 다시 검토해야 할 이유

오늘 많은 사람들이 조국 통일 문제는 이제 당위론의 차원을 넘어서서, 현실주의적으로 논의·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일의 당위성은 지난 1980년대 후반기부터 남(한국)의 통일 운동 내부에서 되풀이하여 논의했고, 대중들에게도 그만하면 충분하게 알렸으니, 이제는 그만 접어두고 통일 문제에 대한 현실주의적, 방법론적 접근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늘 남(한국)의 통일 운동 내부에서 통일 문제를 현실주의적으로, 방법론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더 이상 토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대중에게 더 이상 전파·선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이한 발상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이한 발상은 당위성(론)과 현실성(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면서, 당위성 논의의 단계와 현실성 논의의 단계를 시기적 선후 문제로 보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이 이분법적 논리는 통일 문제를 변화하는 통일 정세에 맞게 포괄적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주관주의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우리가 통일 정세를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주객관적 요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통일의 현실론은 말할 것도 없고 통일의 당위론도 정세 변화의 객관적 요구에 맞게 그때마다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고,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야 할 능동적인 임무 수행을 떠맡게 된다. 남(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은 변화·발전하는 통일 정세에 발맞추어 반통일론의 당위성이나 흡수통합의 당위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줄기차게 선동·선전하고 있다. 통일 운동은 이에 대한 논리적, 실천적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에게 당면 통일 정세에 맞게 통일의 당위성을 올바로 선전할 수 있고, 반통일론과 흡수통합론을 반대·배격할 수 있는 이론적 형식과 내용을 갖추게 된다. 오늘 우리가 통일의 당위성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교차 승인 구도의 완성과 조국 통일의 당위성

1) 올해 1995년은 해방·분단 50돌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조국 통일에 대한 전민족적인 관심과 열의가 여느 때와 달리 높아졌다. 여기에 더하여 이른바 '핵문제'가 경수로 합의로 돌파구를 찾게 되면서 조·미 관계 개선, 조·일 관계 개선이 현실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조·미, 조·일 관계 개선은 남(한국)과 북(조선)에 대한 주변 네 나라의 교차 승인 구도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냉전 질서 해체기 초입에 북방 두 나라(중국과 러시아)가 남(한국)을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통상을 증대시킴으로써 생겨난 남북의 외교적 불균형 상태를 남방 두 나라(미국과 일본)가 북(조선)을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통상을 증대시킴으로써 균형 상태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 주변 정세의 불균형, 불안정한 상태가 힘의 균형을 찾는다는 말은 남(한국)·북(조선) 관계의 분단 유지적 균형과 안정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게 되며, 그만큼 분단 체제를 장기화, 고착화시키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작용은 조국 통일 운동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 정세가 불안정한 분단 체제에서 안정된 분단 체제로 차츰 전환되는 국면으로 들어서면 결국 조국 통일의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지리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안정된 분단 체제는 남(한국) 사회에서 통일 불가론, 또는 통일 회피론의 반통일적 명분, 곧 분단 영구화의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강화시켜주는 객관적 조건으로 탈바꿈하면서 통일 운동의 진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교차 승인 구도의 완결로 인해 형성되는 안정된 분단 체제에 대응하는 조국 통일 운동의 당면 임무는 통일 불가론, 또는 분단 영구화 불가피론의 반통일적인 명분을 배격하고 대중에게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제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3)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 흡수통합 불가피론, 분단 체제 안주론에 대한 대응

1) 오늘 남(한국) 사회에서는 북(조선)이 이른바 외교적 고립, 정치적 불안정,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체제 방어를 최우선적인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체제 방어에 전력을 쏟고 있는 북(조선)에게는 사실 조국 통일에 기울일 역량이 없으며, 북(조선)이 이른바 한·미·일 공조 체제의 '개방 공략'에 힘겹게 맞서서 자신의 불안정하고 허약한 체제를 유지하려면 통일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피하고 차라리 분단의 고착화, 영구화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소한' 북(조선)이 '강대한' 남(한국)의 흡수통합 공세 앞에 빗장을 걸고 '조국 통일의 문'을 잠그고 있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러한 대북관, 대북 인식에서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이 나온다. 통일의 대상이며, 조국 통일의 한 주체인 북(조선)이 실제로 통일을 추구할 수 없는 탈진 상태에 있으며, 또한 통일을 추구할 의사조차 포기했는데, 우리가 조국 통일 운동은 해서 뭐하냐 하는 허무주의적 관점, 패배주의적 관점이 스며드는 것이다. 설사 이러한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대북관과 대북 인식 때문에 조국 통일 운동의 앞길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과 불안감은 북(조선)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부족과 연구 성과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 공간 속으로 교묘하게 파고 들어온 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왜곡 선전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보수 세력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지난 반세기 동안 확대 재생산해 오면서, 전파력, 설득력을 발휘하며 조국 통일 운동에 도전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의식 속에서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탈취해 가고 있다.

2) 다른 한 편으로는 북(조선)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약해졌기 때문에, 머지 않아 와해·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정치인은 북(조선)의 현실을 '상처 입고 붸기는 짐승'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남(한국)은 날로 강성해지고 있고, 북(조선)은 날로 쇠잔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북 관계의 현실을 극단적인 대비의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발상이다. 이 발상은 독일의 흡수 통합,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중국 사회주의의 혼란, 미·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군사적 우위,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의 분열과 침체 현상 등을 배경으로 삼고, 이러한 외부 변화를 남북 관계에 여과 없이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다. 반북론자들은 날로 강대해지고 있는 남(한국)이 현재 북(조선)을 흡수통합할 의사가 없거나 또는 아직 그렇게 할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어차피 무너져가는 북(조선)을 자신의 체제 안에 점진적으로 유도·편입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상상도를 그리고 있다. 이것이 흡수 통합 불가피론의 중심 주제다. 이 논리는 사실 따지고 보면, 흡수통합론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기대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저들은 대중에게 흡수 통합 불가피론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흡수통합론자들은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흡수 통합의 불가피성으로 왜곡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이나 불안감, 흡수 통합 불가피론은 언제나 북(조선)이 지금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이 전제가 어디까지 사실인가를 검토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검토 ① : 탈냉전 시기의 외교적 고립에 관해 말할때, 우리는 북(조선)의 외교 노선이 자주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탈냉전 시기의 북(조선)은 독일의 흡수 통합,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한·중 수교와 한·소 수교라는 외부 변화로부터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외부 충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 이후 30년 동안 축적해온 자주 외교의 정당성을 더욱 확인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조선)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미·일 공조 체제의 드센 압력에 자주적,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결국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들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탈냉전 시기에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진영의 강력한 냉전적 봉쇄 조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북(조선)의 자주 외교는 지금 고립·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화·발전되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검토 ② : 김일성 주석의 '급서' 때문에, 후계 체제가 정치적 불안정을 겪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급서 직후 일부 서방 언론은 북(조선)을 "머리 없는 야수(headless beast)"라는 선정적인 비유로 모욕했고, 남(한국)의 반북론자들은 '조문 파동'을 일으켜 최고 지도자를 갑작스럽게 잃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북녘 동포들을 크게 자극했다. 우리는 급서 직후 얼마 동안 이른바 쿠데타 발생설 같은 유언비어가 남(한국)과 서방의 언론에서 버젓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급서 이후 1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이러한 억측과 선정적인 유언비언들은 결국 북(조선)이 정치적 불안정에 빠지기를 바라는 반북론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기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서방 관측통들과 북(조선) 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일 '영도자'를 정점으로 한 혁명 2세대가 이끌고 있는 후계 체제는 안정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대체로 동감을 표시하고 있다. 외부 관측통들은 북(조선) 후계 체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혁명 2세대는 지하 공작 경험과 군사 경험이 많았던 항일 유격대 출신 혁명 1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정치 경험과 전문 지식이 더 풍부하다고 보고 있다.

검토 ③ : 에너지난과 식량난이 몰고온 경제난과 사회주의 제도의 내부 모순에서 비롯되는 경제난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북녘 동포들은 지금 '하루 한 끼 먹기 운동'으로 휘청거리고 있다는 강명도·이찬삼 류의 '악성 유언비어'가 남(한국) 사회의 대북 인식을 혼란에 빠드리고 있다. 식량 폭동설이 드물지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경제난 발생설은 곧 체제 붕괴 임박론, 내부 와해 임박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조선)에서 에너지 사정과 식량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인데, 현재 반북론자들은 에너지·식량의 상대적 부족이 아니라, 절대적 부족을 주장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의 상대적 부족을 절대적 부족이라고 왜곡하면서 이제 북(조선)은 사회 전체가 무너져가는 총체적 위기에 몰려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역시 북(조선)이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반북론자들의 '이데올로기적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북(조선)의 에너지난과 식량난에 대하여 말하자면, 지난 전후 복구 시기가 오늘보다 더욱 심각했다. 전후 복구 시기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회주의 건설에 땀을 흘렸던 세대들이 오늘 북(조선)을 이끌고 있는 주도 세력이기 때문에, 그리고 북(조선)인민에게 전후 복구 시기와 냉전적 봉쇄 조치의 기나긴 난국을 헤쳐온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강인한 사회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에너지·식량의 부족은 총체적 위기로 전화될 수 없다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기대를 벗어난 자리에서 북(조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들은 에너지·식량의 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지난 반세기 동안 북(조선)이 겪어온 일로서, 북(조선)의 체제는 에너지·식량에 대한 봉쇄 조치와 상대적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자립 경제의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조국 통일 운동 무용론이나 흡수 통합 불가피론이 의존하고 있는 전제들에 대하여 결론을 맺는다면, 북(조선)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 조국 통일의 과업을 포기하거나 무기한 뒤로 미루어 둘 만큼 체제 유지력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한미군 즉각 철수론에 대한 유보 의사 표명, 한·미 군사 동맹 조약 즉각 파기론에 대한 유보 의사 표명 등으로 조·미 평화 조약 체결을 이끌어내려고 힘쓰고 있으며, 국가보안법 철폐 촉구,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전민족적 합의 촉구 등 정치·군사적 현안에 관련된 당면 통일 과업을 변화된 환경에 맞게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전제를 놓고 보자면, 통일 운동 무용론과 불안감은 반북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공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조국 통일 운동은 통일운동 무용론과 흡수 통합 불가피론의 침습을 배격하고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명백하게 정리·선전해야 할 임무를 지닌다.

3) 남(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통일 비용'이 그처럼 많이 든다고 하고, 또한 통일 과정에서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조국 통일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불안정한 통일보다는 차라리 안정된 분단을 바라면서 현재의 분단 체제에 안주하려는 통일 포기론이다. 반통일 세력은 대중의 통일 염원을 증발시키거나 통일 의지를 꺾고 그들을 분단 체제 안주론, 통일 포기론으로 몰아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한국)의 조국 통일 운동은 분단 체제 안주론과 통일 포기론을 비판·배격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조국 통일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설명해야 하고, 조국 통일의 당위론을 전파해야 한다.

(4) 민족의 공동 이익과 조국 통일의 당위성

조국 통일의 주체는 '민족'이다. 조국 통일은 어느 특정한 지역, 계급, 계층의 이해 관계를 넘어서 (또는 그러한 이해 관계를 모두 포괄하는) 전민족적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이요, 최고 목표다. 한(조선)반도가 어느 특정 계급이나 계층, 어느 특정한 지역 주민이나 사회 집단의 생활 공간이 아니라, 칠천만 민족 전체의 생활 공간인 것처럼, 조국 통일은 어디까지나 민족 '전체'의 장래 운명을 결정짓는 민족사적 사건이다. '8·15 해방 공간'이 어느 특정한 지역, 계급, 계층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압제의 고통과 치욕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에 나섰던 우리 민족 전체에게 사회·역사 발전의 비약적 계기가 되었듯이, 21세기의 통일 공간(만일 21세기에 통일 공간이 형성된다고 예상할 때)도 조국 통일을 염원하고 추구해온 우리 민족 전체에게 사회·역사 발전의 비약적 계기로 다가올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이 '해방 공간'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민족사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분늄첵척肉?우리 민족은 '통일 공간'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적 발전이건, 사회주의적 발전이건 간에 민족사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끝장내고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웠던 민족 해방 운동이 전민족적인 운동이었듯이, 오늘 분단 시대를 끝장내려는 조국 통일 운동도 전민족적인 운동이다.

분단은 '민족'이라는 사회·역사 발전의 주체 역량를 압살·파괴하려고 압박해오는 반민족적인 현실이다. 따라서 조국 통일은 '민족'이 자기를 되찾고, 되살려, 더욱 높은 발전 단계로 진전시키는 최고·최상의 도덕적 가치요 이상이다. 어떤 사람은 조국 통일 과업을 민족 자주, 민주주의, 평화·군축, 환경, 인권, 경제 성장 같은 가치, 과제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면서 조국 통일 과업도 다른 여러 가치, 과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평면적인 것이다. 그러한 모든 가치들과 과제들은 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분단 질서 아래서는 진정한 실체를 얻을 수 없으며, 오로지 조국 통일을 통해서 진정한 실체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흔히 기능주의 통합론자들이 해오고 있듯이, 통일의 의미를 분리·격폐되어 있는 두 지역을 하나로 만드는 지역 통합의 관점에서만 해석하게 되면, 그것은 통일의 내용은 보지 못하고 단지 형식만을 거론하는 것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 동질성론자들이 해오고 있듯이, 통일의 의미를 분열·대립되어 있는 민족 공동체를 하나로 단결·단합시키는 민족 공동체 통합의 관점에서만 해석하게 되면, 그것도 역시 통일의 내용은 보지 못하고 단지 형식만을 보는 것이다. 통일의 진정한 의미는 형식에 관한 담론과도 불가분리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형식 안에 어떠한 가치, 과제들을 담아내고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다. 자주화와 민주화라는 통일의 내용이며, 지역 통합은 통일의 형식이다. 지역 통합과 민족 공동체 통합이라는 형식이 없으면 자주화와 민주화라는 내용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까지 우리는 비변증법적인 형식 논리에 매달려 자주·민주·통일의 3대 과업들을 병렬적으로 늘어놓고, 그 실현 가능성의 선후 시열을 따지며 소모적인 논쟁에 말려들오기도 했다. 이른바 '선민주 후통일론', 또는 '선통일 후민주론', '기능주의적 통합론', 또는 '민족 공동체 통합론' 같은 따위의 비변증법적인 형식 논리는 접어두어야 한다. 조국 통일론에서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인식의 변증법적인 통일이 요구된다. 분단을 예속·독재(내용), 그리고 지역 분단·민족 분열(형식)을 모두 내포하는 최고 개념이라고 본다면, 거꾸로 통일은 자주·민주(내용)와 지역 통합·민족 공동체 통합(형식)을 모두 내포하는 최고의 변증법적인 개념이다. 조국 통일의 당위성은 변증법적 인식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사회·역사 발전의 최고 개념이다. 통일 운동이 "조국은 하나다"라고 외칠 때, 그 구호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지역 통합이나 민족 공동체 통합으로 국한되어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지역 통합과 민족 공동체 통합 속에서 자주와 민주가 실현되는 그러한 하나의 조국을 갈망하고 실현하려는 민족적 의지의 표출로 해석되어야 한다. 남(한국) 당국의 '한민족 공동체 통합 방안'을 비변증법적인 형식 논리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는 까닭은 그것이 '알맹이'(자주와 민주)가 없는 '틀'만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역사 발전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듯이, 통일도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실현될 것이다. 조국통일은 사회·역사발전을 전망하는 이 시대의 변증법적 사고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개념이다. 이러한 최고 개념으로서의 통일을 생각하고 추구하지 않는 한 조국 통일 운동은 더 이상의 발전 궤도로 진입할 수 없게 되었다.

조국 통일의 당위성은 '민족'이라는 사회·역사적 실체를 인식할 때, 또한 민족의 공동 이익이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비로소 그 이론적, 실천적 의미를 얻게 된다. '한국형'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남(한국)의 동포들과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북(조선)의 동포들은 '민족'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길에서 만나서 대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전민족적인 단결·단합을 이룰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비교해서 민족적 동질성의 기반이 매우 강하다고 보면서, 이것이 민족 대단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 김진균 교수의 말에 우리의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역사의 통일성' 기반이다.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자연성이 강하다. 그것은 1천년 이상으로 민족 구성의 종족이 동일하다는 가상이 강하며, 단일 종족이 장구하게 한정 범위의 지역(한반도 중심)에 거주해 왔으며, 언어가 같으며,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사이에 종족, 언어, 종교, 거주 지역의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자연적 기반 위에서 민족 구성원은 일체성 또는 통일성이 일찍이 유별나게 발전하였다. (이 점은 동북 아시아의 '민족 국가 형태'의 기반과 그 관계가 다른 문명권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일 것이다. 또한 종교 전쟁이 발생할 만큼 민족 사이에 종교적 분쟁이 격심했던 적도 없다. 이러한 '자연성' 기반은 민족의 통일성에 대한 강력한 회귀성의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처럼 반만년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민족 공동체가 반세기 동안의 분단·분열에 시달리며 대립·갈등을 빚고 있다. 단일하고 공고한 역사·문화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 민족이 분단·분열을 극복하고 민족사의 발전을 성취하는 길은 통일 밖에 다른 길은 없다. 분단·분열의 고통과 비극 속에 살아오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최대, 최고의 공동 이익은 조국 통일이다. 조국 통일의 당위성은 민족 공동 이익 추구의 당위성이다.

(5) 통일 민족주의와 조국 통일의 당위성

모든 사회·정치 운동은 이념적 기초를 발판으로 삼고 움직인다.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의 민족 해방 운동사를 보더라도, 다양한 이념적 분화 현상이 일어났지만, 그 가운데서도 한 가지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 분화 현상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항일 민족주의라는 이념적 기초가 깔려있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건대, 항일 민족주의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대립·차이를 넘어서서 민족 해방 운동의 주체 역량을 단결·단합시키는 공고한 보루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 남·북·해외 칠천만 겨레의 조국 통일 운동이 다양한 견해와 이념의 차이를 안고 있지만, 분산된 조국 통일 운동의 역량을 하나로 통일·단결시킬 수 있는 조국 통일 이념의 공분모를 발견해햐 하는 중대한 임무를 제기하고 있다. 조국 통일의 이념적 기초는 어느 특정한 지역, 계급, 계층의 이해 관계에 관련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또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모두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공동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념적 기초를 '분단 체제주의'를 극복하는 통일 시대의 이념적 대안, 곧 통일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통일 민족주의는 반공주의와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를 핵으로 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이념적 대안이다. 분단 시대를 거쳐오면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남(한국)에서 이에 대항했던 "대항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적 내용이나 기층 민중의 실질적인 이해를 거의 담지 못한 채 자유 민주주의의 형식적·절차적 내용만을 주로 반영"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이념적 대안으로 나서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통일 민족주의는 통일 시대의 이념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남(한국)에서 조국 통일 운동의 사상사적 맥락은 일제 식민지 시대 항일 민족주의의 맥락을 분단 시대 이후 통일 민족주의로 계승·발전시켰던 네 사람 민족주의자들, 김구 → 조봉암 → 장준하 → 문익환으로 이어진다. 냉전 질서의 첫 시기였던 1948년 삼팔선을 넘어 남북 협상의 길에 나섰으나 끝내 반통일 세력의 흉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 이른바 '북진 무력 통일'만이 판을 쳤던 1950년대 후반 민족 문제를 재발견하고 평화 통일론을 주장하다가 희생된 죽산 조봉암, 냉전 대립의 격동기였던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를 보면서 민중 주체의 자주 통일을 외쳤으나 끝내 유신 독재의 칼날 아래 쓰러지고만 장준하, 광주 민중 항쟁 이후 1980년대 남(한국)의 민족민주 운동이 이룩한 성과를 냉전 질서 해체기의 조국 통일 운동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1989년 홀연히 방북길에 나섰던 문익환, 이들이 남(한국)사회에서 통일 민족주의의 커다란 줄기를 이었던 분단 시대의 걸출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21세기가 통일 시대로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면, 통일 시대의 사상적 지표는 마땅히 분단 체제주의를 극복한 통일 민족주의가 되어야 한다. 분단 체제를 합리화하는 반민족적인 민족 파멸의 논리를 분단 체제주의라고 한다면, 조국 통일의 당위성을 밝혀 대중들의 통일 의지를 고취하는 민족 재생의 논리는 통일 민족주의가 되어야 한다. 통일 민족주의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조선)의 사회주의자와 자주·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남(한국)의 민족주의자가 '적대자'가 아니라 '동족'으로 서로 만날 수 있는 열린 이념 공간이다. 그것은 연방제 통일론의 이념적 기초다. 연방제 통일론을 안받침하고 있는 민족 대단결과 공존·공영의 대원칙을 따라서 이루어질 조국 통일 운동의 이념은 통일 민족주의가 되어야 한다. 통일 민족주의는 통일 시대의 한 복판에 나부낄 이념적 기치요, 조국 통일을 앞당길 이념적 기초다. (1995년 8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