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방안와 경로에 관한 연구 (I)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국가 연합 수립론

남(한국)의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을 막론하고 그 정권들까지도 무력 통일과 흡수 통일을 모두 부인하고 평화적, 호혜적, 남북 대등적 통일을 표방하고 있다. 그것은 두 분단 국가의 역사성을 서로가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김영삼 정부의 통일 정책과 관련하여 얼마만큼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묻는 물음은 김영삼 정부는 과연 흡수 통일 의사를 부인하고 있는가, 과연 평화적, 호혜적, 대등적 통일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가, 북(조선)의 역사성을 인정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기까지에는 김영삼 정부의 통일 방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요구된다. 김영삼 정부의 통일 방안을 살펴보면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김영삼 정부의 통일 방안은 3단계론이다. 화해·협력 단계 → 남북 연합 단계 → 완전 통일로 이어지는 단계적, 점진적 통일 방안이다. 이 구도로 보자면 지금 시기는 '화해·협력 단계'의 입구에 다가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3단계 통일 방안의 핵심은 통일 경로의 중심부에 남북 연합 단계를 설정한 데 있다. '남북 연합'의 기본 성격은 국가 연합이다. 남(한국)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서 이러한 국가 연합 개념을 복지 공동체(commonwealth)라고 정리한 바있다. 사실 화해·협력 단계도 결국 국가 연합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화해와 협력이라는 개념은 '국가 연합'이라는 개념에서 도출된 부속 개념이다. 화해·협력은 남북 관계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는 특수 개념은 결코 아니며,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적용해오고 있는 바, 한 나라의 국제 관계를 표현하는 일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 3단계 통일 방안에서 '화해·협력'이라는 개념이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까닭은 그것이 국가 연합의 수립이라는 특정한 통일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 단계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 연합 수립론의 기본 성격을 이해하면 그 전 단계인 화해·협력 단계의 기본 성격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검토를 김영삼 정부의 국가 연합 수립론에 집중시켜 보기로 하자. 국가 연합이라는 개념은 복수의 국가 권력과 그 권력을 행사하는 복수의 국가 기구를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한 대답으로 정리된 것이다. 낱말뜻을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국가 연합이란 복수의 주권국들이 공동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어 결합한 국가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국가 연합은 복수의 주권국들이 동맹적으로 결합한 공존 관계다. 지금 유럽 연합(EU)의 틀 안으로 엮어진 유럽 여러 나라들은 새로운 국가 형태인 국가 연합의 단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연방이 해체된 뒤로 지난 날 소연방에 결합되었던 구성국들이 느슨한 형태로 '독립 국가 연합(CIS)'을 구성한 것은 국가 연합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유럽 연합이나 독립 국가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나라들은 별개의 주권 국가들로서 국가의 이해 관계에 기초하여 국가 연합을 구성한 것이지, 단일 민족성에 바탕을 둔 단일 주권국의 수립이나 연합 국가(연방 국가)의 수립로 발전하기 위한 과도 체제로서 국가 연합을 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 연합에 대한 일반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① 외교권(조약 체결권, 사절권 등)에 관련하여 국가 연합에 속한 구성국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다. 국가 연합의 구성국들은 제3국과 외교 관계를 맺거나 별도로 국제 기구에 가입할 수 있으며, 조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국적 문제와 자국민 보호권에 관련하여 국가 연합의 구성국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다. 국가 연합의 구성국 인민들은 공통의 국적이 없다. 인민은 각기 자기가 속한 구성국의 인민일 뿐이며 국가 연합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 연합의 구성국은 다른 구성국의 인민들에 대하여 자국민 보호권을 행사할 수 없다.

③ 내정권에 관련하여 국가 연합의 구성국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다. 국가 연합의 중앙 정부는 구성국 인민들에 대한 행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국가 연합 중앙 정부는 구성국 정부에 대한 관계에서도 명령권이나 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국가 연합의 중앙 정부는 구성국들의 정부에 종속된다.

④ 국가 연합의 중앙 정부는 화폐 주조권이 없다. 따라서 구성국들은 각기 다른 화폐를 사용하게 된다.

⑤ 국가 연합은 자체 군사력을 갖지 않는다. 만일 구성국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란이 아니라 국제법상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취급한다. 국가 연합의 중앙 정부는 군사권, 선전권(宣戰權), 강화권(講和權)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러한 권한은 구성국에게 고유한 권한으로 남는다.

⑥ 국가 연합의 해체는 법적 절차 없이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가 연합은 완전히 통합된 단일 주권국이 아니라 '동맹'이다. 국가 연합에 속한 복수의 주권국들은 오로지 동맹 관계의 계약 범위 안에서 제한된 통합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 연합을 국제법상 완전한, 단일한 인격 주체라고 할 수는 없으며, 통일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영삼 정부가 국가 연합 단계론을 통일 방안의 핵심으로 내놓으면서, 이를 추구하려는 의사를 표명하게 된 근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① 김영삼 정부의 국가 연합론은 국가 연합 단계에 가서 남(한국)과 북(조선)의 상호 국가 승인을 성사시키려는 데 첫째 가는 목적이 있다. 분단 뒤로 지금까지 남(한국)과 북(조선)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국가 연합 단계에 들어간다면 남(한국)과 북(조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게 된다. 남(한국)의 견지에서 보면 국가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에서 북(조선)이 분리되어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신생국이 생기면서 남과 북은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국가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한국)이 갈라져나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이 생기면서 남(한국)과 북(조선)은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남북 당국이 상호 국가 승인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때에는 남(한국)과 북(조선)이 통일 국가를 이루지도 못한 채 서로를 별개의 국가로 승인하게 되는 것으로, 결국 한 민족 안에 두 개의 분열된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민족 내부에서마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남북 당국의 상호 국가 승인 문제에 관련하여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가 남(한국) 정부는 "앞으로의 대북한 정책 실현을 위해 북한 정권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현재의 상태를 잠정적인 2개 국가 관계로 굳혀놓으려 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1948년에 한(조선)반도의 남과 북 두 지역에 각각 '정부'가 수립된 이래 분단 질서를 유지해 온 사실상(de facto)의 분단이 법리상(de jure)의 국가적 분열로도 확정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김영삼 정부의 국가 연합 수립론은 민족 내부에서 남(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상대방을 국가로 승인하여 단일한 민족 공동체의 분열을 법리적으로 확정짓는 분단 영구화의 길로 가게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② 김영삼 정부의 국가 연합론은 남(한국)과 북(조선)의 상호 교류·협력이 지금보다 한층 심화·확대될 국가 연합 단계에 가서 지금보다 더욱 막강해질 자본주의 경제력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 경제를 점진적으로 변질·종속시켜나가면서 종국에 가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단일한 경제권으로 전 한(조선)반도를 흡수통합하려는 데 둘째 가는 목적이 있다. 남(한국) 정부는 대북 관계에서 언제나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를 선행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지적해야 할 문제는 김영삼 정부의 흡수통합 의지는 '주관적인 범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객관 현실이 과연 흡수통합을 가능하게 하느냐 가능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따로 검토해야 한다. 여기서는 흡수통합의 객관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의하지 않고 우선 흡수통합의 주관적 의지가 내포하고 있는 논리 구조만을 다루려고 한다.

③ 앞으로 만일 남(한국)정부가 국가 연합 단계에 들어가서도 자본주의 경제력으로 북(조선)을 흡수통합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남(한국)의 자본주의가 안팎의 어려운 조건에 떠밀려 경제력을 순조롭게 성장시킬 수 없는 경우라든지, 또는 북(조선)의 사회주의가 계속 강화·발전되는 경우에 남(한국)과 북(조선)의 힘이 팽팽한 균형으로 맞서게 되는 상황에서 생기게 될 문제를 말한다. 남북 관계의 앞날을 내다볼 때, 이러한 균형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남북 균형 상태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남(한국)과 북(조선)이 국가 연합 단계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사실상으로만 확정되었던 분단 질서를 법리상으로도 확정시켜놓아 결국 분단 질서를 합법화·영구화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3단계 통일 방안이 3단계 분단 영구화 방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뒤에서 따로 살펴보기로 한다.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이른바 국가 연합 수립론은 이처럼 대북 흡수통합이 아니면 민족 공동체의 영구 분열이라는 양자 택일의 지향성을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연합 수립론에 대한 비판 의식은 우리의 논의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을 요구한다. 여기서 대안 모색이란 모든 형태의 흡수통합론을 비판하는 한 편, 단일한 민족 공동체의 영구 분열을 확정짓는 남북의 상호 국가 승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서도 통일 국가를 건설해나가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의 방안와 경로를 찾아내는 일이다.

(2) 연합 국가 수립론

남북의 상호 국가 승인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통일 국가를 이?堧犬?미합중국이 연합 국가로 현존하는(또는 현존했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소연방이나 미합중국이 연합 국가의 모범적 원형은 결코 아니다. 연합 국가 수립 방안은 민족적, 지역적 특수성을 따라서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조절·변형할 수 있다.

③ 연합 국가는 복수의 주권국들이 결합하여 단일한 국짊 ?인격체를 형성한 국가 형태다.

④ 연합 국가의 중앙 정부(또는 연방 정부라고도 부른다)는 구성국들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지위와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대외 문제에 관해서도 주권(외교권, 군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연합 국가 구성국들은 독립 국가로서 가지고 있던 국가 주권을 연합 국가의 중앙 정부에 이양하고 국제법상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⑤ 연합 국가 구성국들의 주민은 공동의 국적을 가진다.

⑥ 연합 국가 구성국들 사이의 분쟁은 내란으로 취급한다.

⑦ 연합 국가의 해체는 중앙 정부의 승인에 의해서만 연방 결합으로부터 분리되어 실현될 수 있다. 구성국이 떨어져나가는 경우 분열이 아니라 분리 독립이 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통일 조국의 미래상을 국가 형태의 시각에서 내다볼 때 우리의 통일 논의는 국가 연합 수립론이 아니라 연합 국가 수립론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합 국가 수립론은 지금까지 이른바 연방제 통일안이라는 개념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연방제 통일 방안은 북(조선)이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완결된 형태로 제시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만일 남(한국)에서 누가 이 제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주장하면 국가보안법을 적용 받게 되어 이른바 '이적 행위'로 형법의 단죄를 받거나, 아니면 '친북 활동'으로 사회적 규탄을 받게 된다. 그것 뿐아니다. 이러한 조건은 남(한국)에서 연합 국가 수립론에 관련한 논의는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분석이 아니라, 부정적인 선입관과 이데올로기적 편견,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와 의도적인 폄하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연합 국가 수립론은 이처럼 '불우한 운명'을 안고 있는 논리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어떻게 통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곧 통일의 방안와 경로를 논의할 때, 연합 국가 수립론을 무조건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남(한국)의 '보수적인' 학계에서도 연합 국가 수립론(또는 넓은 의미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완전히 무시·배제하면서 통일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게 되었고, 어떤 형태로든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한 편으로 연합 국가 수립론은 남(한국)과 해외의 진보적 민간 통일운동 세력이 서로 표현은 다르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한 통일 방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연합 국가 수립론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 기구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정치 통합의 문제다. 정치 통합이란 국가 주권의 3요소인 내정권, 외교권, 군사권을 단일한 정치 구조 안으로 통합하는 통일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외교권과 군사권의 통합이란 주권국의 대외 주권의 통합을 말하는데, 이것을 민족 자주권으로 부르기도 한다. 연합 국가 수립론은 이러한 민족 자주권을 연방 정부(또는 중앙 정부)의 관할 아래서 단계적 절차를 통해 차츰 단일화하고 기구적으로 통합하여 확립해 나간다는 것이다.

연합 국가 수립론은 단계론적 접근을 자기 논리 안에 받아들인다. 그것은 곧 연합 국가의 초기 단계에서는 한 나라 안에 있는 남과 북 두 지역의 자치 정부(또는 지역 정부)에게 어느 정도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종전처럼 유지하도록 허용한 뒤에 점차 연방 정부(또는 중앙 정부)에 그 권한을 모두 넘겨주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정권은 주권국의 대내 주권을 말하는데, 이것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통합, 곧 넓은 의미의 '사회 통합'에 직결된 권한이다. 따라서 내정권의 통합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현재 서로 다른 제도를 인정하고 유지하려는(또는 유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남북의 자치 정부(또는 지역 정부)가 각각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연합 국가 내부의 상호 협력 체제를 수립해가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 나라 안에 있는 남과 북의 두 지역에 각각 현존하는 제도를 유지·발전시키는 고도의 자치권을 확립하는 원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3) 정치 통합론과 사회 통합론

연합 국가 수립론의 핵심 부분은 정치 통합이다. 여기서 정치 통합이란 사회 통합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 권력(또는 그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인 정치 기구)의 물리적 통합을 말한다. 이것은 두 개로 분열된 정치 권력을 단일한 연합 국가 권력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통합시켜나가는 것이다.

정치 통합과 대비될 수 있는 개념으로는 사회 통합이 있다. 이 글에서는 넓은 의미의 사회 통합을 경제, 사회(좁은 의미), 문화를 비롯한 비정치적인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통합을 뜻하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사회 통합이란 장기간에 걸쳐 사회의 기본 성격을 단일한 것으로 동질화하는 사회 성격의 화학적 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통합은 그 동안 냉전적 대결 구도 속에서 뿌리 깊게 이질화되어 있는 경제 제도, 문화 생활, 의식 등 사회의 전반적 요소들의 갈등 관계를 조정하여 단일한 것으로 융합시키는 통합 과정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조국통일의 통합 과정은 정치 통합과 사회 통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한국) 정부측에서는 통일이라는 개념을 '국가 통일'과 '민족 통일'이라는 개념으로 나누어서 쓰고 있다.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가 펴낸 『2000년에 열리는 통일시대』라는 책에서 이 두 개념을 정리해 놓았다. 그들이 말하는 민족 통일이란 민족 구성원들의 생활권 통합과 의식 통합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고, 국가 통일이란 전 영역, 전 구성원을 대표하는 하나의 정부가 대외 주권과 대내 주권을 가지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국가 연합은 주권자가 복수가 되므로 국가 통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남(한국) 정부는 국가 통일이라는 개념보다는 민족 통일이라는 개념을 더 우선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 김영삼은 통일 경로에 관하여 말하면서 민족 통일 우선론을 이렇게 밝힌 바있다.

"통일은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느냐 보다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줄임) 통일은 가공적인 국가 체제의 조립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 공동체 건설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국가 통일이란 정치 통합과 같은 개념이고, 민족 통일이란 사회 통합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남(한국) 정부의 통일 방안은 사회 통합 우선론으로, 북(조선)의 통일 방안은 정치 통합 우선론으로 각각 풀이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회 통합 우선론을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정치 통합 우선론을 연방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접합론자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논리적 상충 관계에 놓여있다.

통일 조국의 체제, 이념, 제도를 포함한 사회의 기본 성격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어쩔 수 없이 사회 통합에 관한 물음에 결부된다. 반면에 통일 조국의 국가 형태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정치 통합에 관한 물음에 결부된다.

남(한국)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은 통일 조국의 체제, 이념, 제도를 단일한 것으로 통합하려는 점진적 사회 통합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 논리는 남북의 상호 국가 승인을 지향하는 국가 연합 수립론에 직결되어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다. "정치 체제가 상이한 동안은 정치 통일을 유보하고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경제 공동체'를 우선 구축하고, 가능하다면 '문화 공동체'도 이루어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 북한 체제가 역사적 진화를 거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때가 되면 '정치 공동체'도 결성해보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가 정리한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다.

반면에 북(조선)의 연방제 통일 방안은 통일 조국의 국가 형태를 단일한 연방 국가로 만들려는 점진적 정치 통합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 통합은 다음 세대에게 넘기자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이다.

연합 국가 수립론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은 통일 문제를 보는 관점에서 적어도 특정 사상과 특정 제도의 자기 중심성, 자기 절대성을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국가 연합 수립론과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은 자기 중심성과 자기 절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가 연합 수립론과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은 특정한 사상·체제·이념·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자기 중심주의와 독선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이것은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 합리적인 통일 방안으로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겨우 북(조선)에 대한 경쟁적 제의라는 차원에 머무르고 말게 하는 요건이 되고 있다.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에 대한 비판은 '진보적' 학계나 민간 통일운동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보수적' 학계 일부에서도 제기되었다. 남(한국)의 현 정권과 독점 재벌이 자유 민주주의라는 특정 정치 제도와 자유 시장이라는 특정 경제 제도를 절대선으로,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고 이를 북(조선)에까지 침투·확장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보이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보아서, 사회 통합은 매우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루어질 것이다. 연합 국가가 아니라 완전히 단일한 주권 국가로 통합된 베트남의 경우처럼 흡수통합을 이룩한 분단국들의 사회 통합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이 문제에 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베트남은 흡수통합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회 통합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분단의 장기화, 내면화가 이루어졌던 분단국일 수록 사회 통합은 매우 힘들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보도들이 눈길을 끈다.

"베트남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베트남전 종전 20돌을 맞아 현장을 찾은 서방 언론들은 아직도 남북 갈등의 골이 깊다고 전하고 있다. 지난 달 30일 호치민시에서 열린 승전 기념 행사 때 일반 시민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한 것은 이를 의식한 처사로 비쳐졌다. 실제로 내부 모순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베트남은 정치는 하노이, 경제는 호치민(옛 사이공)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통일 후의 사회 통합 문제를 살펴보면, 분단의 고착화가 심했던 베트남과 독일은 체제간 이질성의 심화로 인해 국민 통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예맨의 경우 내전 등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사회 통합은 지금도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통일 이전 남북 예맨 사회는 전반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남북 주민들은 가족 문제, 여성 문제, 생활 습성에 따른 이질감 등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 교류 협력을 유지했던 독일의 경우에도 동독 주민들이 아직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에 적응하지 못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고, 일부 청소년층에 신나치운동이 전개되는 등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사회적 문제는 정권의 억압으로 크게 노출되지 않았지만 남베트남 주민들의 사회적 심리적 고통은 막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줄임) 독일의 경우 국경 붕괴와 함께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대거 이주해 통일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나, 통일 후에는 동서독 간의 발전 격차와 정책상의 오류로 실업, 물가 등귀, 주택 부족 등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와 같은 흡수통일의 사례는 분단 체제의 이질성과 경제력 격차가 크면 클수록 통일의 정치, 경제, 사회적 후유증이 심각하게 대두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상이할 뿐아니라, 대립적인 제도와 이념, 사상의 동질화를 추구하는 사회 통합의 방식에는 흡수통합 방식과 수렴통합 방식이 있다. 지금 남(한국)과 북(조선) 처럼 서로 자신의 제도와 이념, 사상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조건에서는 상대방을 변질·와해시키는 흡수통합 방식이 아니고, 남북이 각기 스스로 변화되어 상호 유사성과 동질성을 확대해가는 수렴통합 방식도 아니라면, 그 어떤 사회 통합도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두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사회 통합이 이처럼 오랜 과정을 요구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 통합이 우리 나라의 현실적 조건에서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통일 포기론이나 통일 불가능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을 통한 조국통일(흡수통합이나 수렴통합)이 아니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통한 조국통일을 합리적인 대안으로 추구하여야 한다. 일부 학자들의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연방주의론은 정치제도적인 면과 이념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고,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이념을 창출하여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상이한 집단의 결합도 가능하다는 논리"라고 본 임용순 교수의 해석이나 그 이론을 "두 국가 체제 간의 권력 투쟁을 통제할 수 있는 초국가적 중앙 정부를 설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이른바 급진적 통합 방안"이라고 본 김병로 씨의 해석은 모두 서구의 고전적인 연방주의론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해석이다. 우리가 말하는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은 이러한 서구의 고전적 연방주의론과는 다르다.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은 정치·군사적 분야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통합을 성취해나가자는 것이고, 이와 더불어 비정치적인 교류·협력도 병행하자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렇지만 이 병행론은 정치·군사적 협상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남(한국)정부가 교류·협력 추진을 명분으로 삼아 자본주의적 사회 통합을 시도하려는 저의에 대해서 경계·반대하고 있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4) 접합론 비판

오늘 남(한국) 사회에서는 남(한국)과 북(조선)의 대립적 통일 정책을 접합하려는 시도도 있다. 김대중 씨의 통일 방안이 대표적인 접합론이다. 그가 내놓은 통일 3원칙은 평화 공존, 평화 교류, 평화 통일이며, 3단계 통일 방안은 공화국 연합 방식의 통일→연방제 방식의 통일→완전 통일의 실현이다. 크게 보아서 이러한 접합론의 범주에 들어가는 또 다른 경우로는 통일 문제에 관하여 진보적 견해를 발표하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는 1995년 5월 『한겨레신문』과 학술 단체 협의회가 공동주최한 '한반도 통일 국가의 체제 구상'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능주의는 상호 거래와 정보 교류를 통해 기능적 상호 의존 관계를 높여 부분적 통합(sectoral integration)이나 공동체의 형성으로 나아가고, 이 한 부분의 통합이 다른 부문으로 전파되어 확산 효과(spill-over)를 가져와 전체 통합이나 공동체 형성으로 발전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연방주의의 단점인 연방국가에 이르는 과정의 제시라는 점에서 연방주의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고 이 점에서 서로 접목(articulation)의 여지가 있다."

강정구 교수의 논리를 보면, 연방주의는 연방 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기능주의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편 기능주의에도 '단점'이 있는 데, 그것을 그는 "파급 효과가 강한 부분에서 약한 부분으로 흘러가 일방적인 강요의 형태로" 나타나는 '역류 효과'(spill-back)가 생길 수 있으며 이로써 "반공동체적 결과"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역류 효과에 의한 반공동체적 결과는 독일 통합 과정에서 실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기능주의적 단점을 보완하는 길을 연방주의에서 찾고 있다. 그의 말을 옮겨보자.

"연방주의는 기능주의가 초래하기 쉬운 이러한 역기능적인 일방적 강요나 역류 효과를 목적의식적인 정치적 지도력과 정치적 협상 및 타결에 의해 저지시켜 통합이나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또한 연방주의는 기능주의의 한계인 기능적 상호 의존성과 그 변화에 국한되는 점을 넘어 구조적 변화까지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 형성에 가속제 역할이 기능주의보다 우세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연방주의가 연방 국가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강정구 교수의 평가를 읽으면서, 우리는 연방주의와 연방제 통일론을 구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만일 그가 연방주의와 연방제 통일론을 구분하여 연방주의에 대해서만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 통일방안은 연방주의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면서 기능주의를 배제하는 '편협한 통일론'이 아니라, 연방주의를 기본 성격으로 삼고 거기에 기능주의를 보조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통일론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남(한국)의 기능주의적 통합론은 한결같이 연방주의적 통합론을 배제하고 있다.

강정구 교수가 연방주의와 기능주의의 접합에 대한 전략 구상이 "단순한 산술 평균적 결합이 아니라 현재 남북의 역학 관계를 주어진 조건(given conditions)으로 두고 이 바탕 위에 공동체 구성 요소인 동질적 가치관의 공유와 자발적 협조에 의한 기능적 상호 의존성을 담보하는 전략이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타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연방주의적 접근법을 기본으로,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보조적으로 결합시키는 전략"을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내용은 연방제 통일 방안과 동일하다. 그는 자신의 접합론을 "공동체 형성의 접근법", 또는 "주 연방주의 보 기능주의 접합 전략"이라고 불렀다. 연방제 통일론은 연방주의를 중심으로 하고 기능주의를 보조 역할로 삼은 형태로 발전되어왔다. 강정구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긴요주의를 중심으로 삼고 점진주의를 보조 역할로 삼은 접합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도 또한 연방제 통일론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강 교수의 접합론은 용어만 달리 쓰고 있을 뿐, 연방제 통일론의 기본 성격과 논리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접합의 논리적 근거로 제시한 세 가지 전제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그의 접합론에 들어다다.

① 현재 남북의 역학 관계가 심한 불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고, 북(조선)이 열세에 있으므로 양 접근법의 접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가 북(조선)이 남(한국)에 비하여 열세에 있다는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경제력, 인구 수, 군사비 지출액, 수교국 수자 등 물량적인 수치들이다. 이러한 산술 평균적 비교를 통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은 현실을 단순한 수치로 파악하려는 경향이다. 또한 북(조선)이 남(한국)보다 열세에 있다고 해서 왜 접합론을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북(조선)이 물량적으로 열세에 있으므로, 기능주의적 접근만 하게 되면 남(한국)의 우세한 힘에 밀려 흡수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대북 흡수통합의 위험에 대한 예방 조치로 연방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뜻인가? 모호하다.

② 북(조선)이 국가 사회주의의 전형이므로 시민 사회가 제대로 발전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시민 사회 수준의 자발적 교류·협력이 연방주의적 접근을 요구하는 부문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북(조선)을 국가 사회주의의 전형이라고 보는 평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는 뒤에서 따로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북(조선)에는 시민 사회가 발전되지 못했기 때문에 연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교류·협력을 추진하려면 연방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인가? 남(한국)에는 시민 사회가 발전되었다는 뜻인가? 시민 사회의 교류·협력과 연방주의적 접근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얼른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③ '남북 기본합의서'가 접합론의 모범적인 선례라고 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따로 검토하기로 한다.

김대중 씨와 강정구 교수는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을 접합한다는 점에서 모두 접합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김 씨는 단계적 접합론이고 강 교수는 동시적 접합론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김 씨의 단계적 접합론은 남(한국)이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단계인 국가 연합 단계(김대중 씨는 이것을 '공화국 연합'이라고 부른다)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추구하는 단계인 연합 국가 단계(이것을 '연방제'라고도 부른다)보다 먼저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의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과 크게 다를 바없다. 남(한국) 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만일 국가 연합 단계에 가서 사회 통합이 실현된다면 연합 국가 단계(연방제)를 구태여 통과할 필요가 없이 곧바로 자본주의적으로 완전히 통합된 완전 통일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씨의 '공화국 연합'이란 개념과 남(한국)정부의 '국가 연합'(또는 남북 연합)이란 개념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과 성격은 같다. 김대중 씨는 자신의 공화국 연합이란 개념이 남(한국) 정부의 국가 연합이란 개념과 내용적으로 동일한 개념이라는 점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내가 국가 연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제1단계 통일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조치이고 남북한이 영원히 갈라서 있을 독립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단계 공화국 연합제 단계의 법률적 성격은 국가 연합과 같다. 공화국 연합제란 남북 양측이 각자 가지고 있는 외교·국방·내정에 대한 권한을 그대로 가지고 각기 독립 국가를 유지한채 구속력이 약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줄임) 공화국 연합의 임무는 평화 공존, 평화 교류, 평화 통일의 3원칙 실현에 집중된다."

문제는 어떤 이름을 쓰느냐가 아니라, 내용과 성격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남(한국)과 북(조선)이 분단의 합법화를 추구하여 서로를 주권 국가로 상호 승인하고 분단을 법리적으로도 확정짓느냐, 아니면 분단의 합법화를 배제한 상태에서 통일 방안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김대중 씨의 공화국 연합 수립론이 남(한국) 정부의 국가 연합 수립론과 내용적으로 일치하는 한, 그의 구상은 분단의 합법화를 추구하는 영구 분단론으로 흐를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다른 한 편으로 강정구 교수는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중심에 놓고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을 보조적 위치에서 동시적으로 접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김 씨의 논리에 대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별성 때문에 그의 논리는 김대중 씨의 논리보다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접합론자들의 주장이 지니고 있는 논리적 맹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접합론자들은 어떤 형식이든지 남(한국) 정부의 통일 방안인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을 논리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수용은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이란 접합론자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남(한국)과 북(조선)의 '시민 사회'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교류와 협력에 국한되는 통합 방식이 아니다. 남(한국) 정부가 내놓은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의 근본 목표는 남북 '시민 사회'의 교류와 협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권력과 자본주의 경제력이 결합하여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송두리째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변질·와해시키려는 공세적 사회 통합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시대의 통일 논의에서 기능주의는 민족 내부의 갈라진 두 지역이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공동 번영의 이론적 기초가 아니라, 승공 통일의 야망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대북 사회 통합론의 이론적 기초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남(한국) 정부가 북(조선)의 정치·군사적 협상 제의와 그에 의한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을 회피·거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씨의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을 가지고서는 김영삼 정부의 자본주의적 흡수통합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며,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을 주장하면 할 수록 그것은 도리어 흡수통합론을 강화해 주고 있는 결과를 빚는다. 김 씨의 통일관이 대북 교류를 통해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변질시켜 보려는 남(한국)의 적극적인 흡수통합론자들의 통일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논리가 장기적인 평화 교류를 통해 북(조선)이 스스로 자본주의적으로 변질될 것임을 상정한 '온건성'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한 그가 남(한국) 정부의 3단계 통일론과는 달리 화해·협력 단계를 설정하지 않고 첫 단계부터 국가 연합(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공화국 연합)을 수립한다는 단계 설정만이 다를 뿐이다. 그는 말한다.

"이렇게 양쪽이 한 10년쯤 해나가면 그 사이에 북한도 많이 변화해 마침내 다당제 민주주의를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의 중국처럼 시장 경제 체제를 적극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편 강정구 교수는 남북 기본합의서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과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이 접합된 '모범적 선례'로 꼽고 있다. "남북이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수용하고, 상대편의 핵심적 의제를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교착 상태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겉으로 훑어보면 남북 기본합의서는 마치 정치 통합론과 사회 통합론을 무리없이 접합한 좋은 선례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이 두 상충되는 논리의 접합은 매우 불안정한 형식으로, 그리고 각기 자의적인 확대 해석을 허용하는 모호한 범위에서 이루어진 '이어붙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남북 기본합의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남(한국)과 북(조선)의 고위급 회담에서 남(한국) 정부는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북(조선) 정부는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를 먼저 체결하자고 각각 제의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치 통합론과 사회 통합론의 대립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논란 끝에 결국 두 제의를 모두 포함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이러한 불안정한 형식으로 접합되었으므로, 자연히 남북이 각기 자의적인 확대 해석을 허용하는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리하여 남(한국)은 "기본합의서에는 남북 간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이 강조됨으로써 정치·군사 문제 해결 우선론을 고집하여 온 북한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민족 내부의 교류·협력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총괄하여 볼 때, 기능주의적 사회 통합론과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론을 절충하거나 접목할 수 있는 접합론이 설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연합 국가론과 국가 연합론의 '단계적 접합'은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오늘 남(한국)과 해외의 통일운동 세력들, 또는 정치인들 가운데 일부는 연합 국가의 단계적 수립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분단 반세기 동안 굳어질대로 굳어진 분열상태를 한꺼번에 없애고 연합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인 관념에 가깝다. 따라서 연합 국가를 세우는 데도 단계적 접근 방안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연합 국가의 단계적 수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연합 국가의 수립을 최종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향해 출발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국가 연합 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김대중 씨가 내놓은 3단계 통일 방안에서도 국가연합 수립 구상과 연합국가 수립 구상을 절충·접합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계론은 국가 연합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중앙 정부(또는 연방 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해 나가면 나중에 가서는 연합 국가로 변화·발전하게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연합 국가라는 전체 개념 안에 국가 연합이라는 부분 개념을 포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연방제론을 주장하고 있는 남(한국)의 통일운동권 일각에서는 연방제론의 기조 위에서 남(한국) 정부의 국가 연합 구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연합 국가의 개념 안에 국가 연합 개념을 포괄시키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포괄론적 발상을 보면, 한결같이 국가 연합과 연합 국가가 그 뿌리부터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국가 연합이라는 개념은 흡수통합을 지향하는 사회 통합론에 바탕을 둔 개념이며, 연합 국가라는 개념은 연방주의를 지향하는 정치 통합론에 바탕을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회 통합이 실현된다면, 정치 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기능주의적 국가 연합론·사회 통합론이 말하는 사회 통합이라는 것은 사회주의의 점진적 해체와 자본주의로의 점진적 통합을 뜻하는 것이므로, 북(조선)은 이러한 사회 통합을 결코 받아들이지 아니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 통합에 바탕을 둔 국가 연합 수립론은 정치 통합에 바탕을 둔 연합 국가 수립론과 절충되거나 포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남(한국)과 북(조선)에 현존하고 있는, 서로 다를 뿐아니라,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조국통일 3대 원칙 가운데 민족 대단결 원칙에 충실하게 서서 통일 문제를 인식한다면, 기능주의적 국가 연합론·사회 통합론이 아니라 연방주의적 연합 국가론·정치 통합론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5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