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방안와 경로에 관한 연구 (2)


(5) 수렴 통합은 가능한가

남(한국)과 북(조선)이 각기 대립적인 이념과 제도 위에 서 있는 현실 때문에 통일 문제 논의에서 제도 통합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게 된다. 우리 나라의 분단 현실이 50년을 지나와 이제는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와 '주체' 사회주의 체제의 대립으로 전화된 조건에서 통일 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존이냐, 통합이냐 아니면 어느 한 쪽의 소멸이냐 하는 이념과 제도에 관한 물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통일 논의에 체제 수렴론(convergency theory)을 적용하려는 수렴 통합론자들의 시도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요즈음 남(한국)에서 통일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본주의 사회의 요소들과 사회주의 사회의 요소들을 오랜 기간에 걸쳐 조정·융합하면서 자본주의의 장점과 사회주의의 장점을 추출·종합하여 사회 통합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취사 선택 과정을 통한 수렴 통합론이다. 연방제 통일론은 이념과 제도의 통합 문제를 연방제 통일이 이루어진 뒤에 다음 세대가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보면서, 통일 문제와 체제 문제를 분리하여 별개로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하여, 수렴 통합론은 통일 문제와 체제 문제를 수렴이론의 틀 속에서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수렴 통합론은 남(한국)이 자본주의적 바탕 위에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첨가·융합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발전하고, 북(조선)은 사회주의적 바탕 위에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첨가·융합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발전하는 경로를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수렴 통합론은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사회주의의 역사적 전망을 포기하거나 일정 정도 수정해야 했던 남(한국) 지식인 사회의 통일 논의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는 더 이상 역사적 발전 전망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역사적 발전 전망으로 삼을 수 없는 조건에서 사회 민주주의, 시장 사회주의, 사회 조합주의 등을 통일 조국의 대안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현대 서구의 역사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주도한, 사회주의와의 '역사적 타협'으로 생겨난 산물이었듯이, 1990년대 남(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적 경도도 일종의 체제 절충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으며, 서구 역사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변화가 아니라 결국은 자본주의의 영역 안에서 일어난 '제한적 변화'(때로는 실패한 변화의 시도)이었듯이, 오늘 남(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대안 설정 문제도 결국은 자본주의의 영역 안에서 '제한적인 개혁'을 시도해 보려는 목적에 봉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국)의 진보적 지식인 사회는 남(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전망을 사회 민주주의로 설정하려는 경향이 조국 통일 논의에까지 확대되면서, 통일 조국의 체제가 어떠한 체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수렴론의 틀로 다듬어가고 있다.

리영희 교수는 남(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닮아가고 난 뒤에 "순리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순리적 통합이란 "국민적 가치관과 신념 체계의 정면 대립으로 인해서 반란, 또는 장기적인 저항 상태로 통일 국가의 내부 질서가 붕괴의 위기에 처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순리적 통합은 반란, 저항, 혼란이 없다면 어느 한 쪽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의해서 '병합' 또는 '흡수'하는 것도 용인하는 통합이라고 한다. "상호주의적인 변혁의 요청"을 주장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한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북한은 시장 경제를 수용하여 사회의 기본적 성격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을 거부하는 한 진정한 평화적 통일은 생각할 수 없다. 현재대로의 남한에 의한 북한 통합이 북한 주민에게 불행일 만큼, 현재대로의 북한에 의한 남한 통합도 남한 주민에게 불행이다."

"남은 우선 북으로부터 민족 자주성, 민족적 긍지, 평등성과 사회주의적 정책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북은 남으로부터 개인의 권리와 자유, 기회 추구의 확대, 시장 경제의 장점 등을 받아들여 김일성 유일 사상과 경제적 낙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수렴 통합론은 남(한국)의 젊은층에게 퍼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는 남(한국)의 젊은층 가운데 39.6%에 이르는 다수가 통일 뒤의 체제로 자본주의를 바라고 있기는 하나, 순수한 자본주의 보다는 사회주의의 장점을 도입한 자본주의(36.0%)나 자본주의의 장점을 도입한 사회주의(17.7%)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수렴 통합론에는 자본주의적 수렴 통합, 비자본주의적 수렴 통합, '제3의 길' 수렴 통합이 있을 수 있다. 고 문익환 목사나 리영희 교수는 수렴 통합론에 관해서 구체적인 경로와 과정을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수렴 통합론의 '원형(prototype)'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한국)의 지식인들이 논의하고 있는 수렴 통합론 가운데서 손호철 교수의 논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통일 방안을 흡수통일, 연방제 통일, 수렴형 통일로 나누면서, 연방제란 결국 과도기적인 체제로서 종국에 가서는 수렴형 통일이 궁극적인 통일 경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방제 통일론과 수렴 통합론을 단계적으로 접속시켰다. 그런데 그는 수렴 통합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 그 경로와 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강정구 교수가 스웨덴과 유고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 남(한국)과 북(조선)이 수렴적으로 통합되는 경로와 과정을 제시한 것은 손 교수가 남겨둔 논리 공백을 채우는 수렴 통합론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손호철 교수와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연방제 통일론과 수렴 통합론을 접합시켰다는 점에서 보면, 논리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지만, 손 교수는 연방제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결국 수렴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았고, 강 교수는 수렴 접근을 통해 연방제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접근의 선후 과정을 다르게 본 것이다.

지금 우리 남(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이 논의하고 있는 수렴 통합론은 크게 나누어 보아서 '연방주의적 수렴 통합론'과 '제3의 길 수렴 통합론'이 있다. 이에 관하여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1) 연방주의적 수렴 통합론

먼저 강정구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연방주의적 수렴 통합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에서는 대략 2단계의 통합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제1단계에서는 남한이 스웨덴식의 사회민주주의로, 북한이 유고식의 자주 관리제로 서서히 개혁해 공통 분모를 만든다. 2단계에선 개인 소유를 점차 줄이는 대신 사회적 소유를 늘이고 의사 결정권을 노조나 지방 자치 기구에 넘겨 인민 권력의 지배권을 강화한다. 국가 소유나 국가 권력은 전체 인민의 총체적 이익 실현을 위한 매개자 구실을 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요컨대 통일 국가의 사회 경제 체제는 남한의 천민 자본주의와 북한의 국가 사회주의 둘 다를 지양한, 인민 권력과 사회 소유의 결합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 논의의 핵심 내용은 현재 남(한국)의 자본주의(그의 표현으로는 '천민 자본주의')가 스웨덴식의 사회 민주주의로 개혁되어야 하고, 북(조선)의 사회주의(그의 표현으로는 '국가 사회주의')가 유고식의 노동자 자주 관리제로 개혁되어야 하며, 이러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내부 개혁'을 통하여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또는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수렴 통합은 "인민 권력과 사회 소유의 결합 형태"다. 강정구 교수의 이러한 수렴 통합론은 그의 정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은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또 남한은 문민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져 시민 사회가 활성화하는 등 한반도에는 안팎으로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새로운 기운"이란 결국 남북의 수렴적 내부 개혁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이 기존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주장해온 사람들과 다른 점은 남(한국)과 북(조선)의 '내부 개혁'을 '통합의 선행 과정'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수렴 과정을 통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수렴 통합론과 연방주의 통합론의 접합이다. 그는 수렴 과정을 내부 개혁이라고 보고 있다. 내부 개혁이란 남(한국)과 북(조선)이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현존하는 상호 체제 대립성을 약화시키고 그 대신 상호 체제 친화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일종의 체제 수렴 과정이다. 만일 남(한국)과 북(조선)이 이와 같은 내부 개혁을 거치면서 상호 체제 친화성을 얻었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된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극단적인 대립 상태에 놓여있지는 아니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으므로, 지금보다는 훨씬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으로 나아가기에 수월하게 되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와같은 성급한 결론에 이르기에 앞서 우리는 이 논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근본적인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① '스웨덴식 사회 민주주의'를 재검토하는 문제다.

강정구 교수는 "대안 모델로서는 현재 스웨덴에서 진행되고 있는 탈노동 시장과 '생산 수준에서의 정치(production politics)'라는 전략을 통합 자본주의의 개혁"을 상정하고 있다. 개혁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는 이 사회 경제 질서는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진전시켜서 생산 수단의 소유 관계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장과 자본가 계급에 집중되어 있는 일방적인 결정 권한을 축소·분산"시키는 새로운 질서라는 주장이다.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유럽형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 고찰은 어떠한가를 살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일반적으로 사회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란 생산력의 발전을 기반으로 삼아 완전 고용을 추구하는 동시에 노동 계급의 소비 수준을 상승·발전시키고, 자본과 노동의 대립 관계를 국가가 조정하여 자본가 계급과 노동 계급 사이에서 생긴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축소하려고 했던 전후 서구 자본주의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 민주주의에서 자본가 계급은 노동 계급의 소비 욕구를 충족해 주면서 그들을 '동반자'로 끌어당기게 되었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일정 정도 타협 구도가 형성되었다. 황병덕 씨는 이러한 사회 민주주의적 발전을 포드주의적 생산 양식과 자본 축적 양식이 거둔 역사적 성과라고 보고 있다. 요컨대, 사회 민주주의란 사회 경제적 토대가 안정되어있는 자유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자본과 노동이 일정한 타협을 통하여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정치 제도를 말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같은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에서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을 자본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대등한 동반자로 끌어들이고 자기 계급의 기득권 가운데서 일부를 포기·양보하거나 심지어 사회 민주주의를 수립하려는 정당들이 한때 집권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 민주주의로 넘어간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자본가 계급은 자신의 주도권을 관철하고 있으며, 사회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는 일정하게 통제력을 발휘하여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회 경제의 총체를 소유·생산·분배·소비라고 할 때, 사회 민주주의는 소유·생산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단지 분배와 소비의 영역에서만 일정한 변화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발전되었다고 하는 스웨덴의 경우, '공동 결정법'과 '임금 노동자 기금'을 입법화하기는 했으나, 그 '실험 결과'는 빈약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 민주주의란 자본가 계급이 노동 계급을 더욱 정교하게 통제하는 체제며,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형 사회 민주주의의 청사진과는 달리 현실 사회 민주주의는 얼마 가지 않아서 장기 불황과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원인은 생산 기술의 고갈, 노동 생산성과 이윤율의 저하, 민족 국가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 관계가 낳은 자본의 과잉 축적과 정체 현상, 그리고 이에 따른 보호 무역주의 및 지역 블록화 현상 등 때문이다. 사회 민주주의의 쇠퇴는 1979년 영국 노동당의 선거 패배, 1981년 덴마크 사민당과 노르웨이 노동당의 선거 패배, 1982년 독일 사민당의 재집권 실패, 1987년 오스트리아 사회당의 단독 정부 수립 실패, 1991년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경제적 측면에서는 신포드주의(neo-Fordism)가, 정치적 측면에서는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가 서구 자본주의를 휩쓸게 되었다. 신포드주의란 전자 산업이나 유전 공학 같은 첨단 과학 기술을 생산 과정에 도입하는 경향을 말하며, 신보수주의란 사회적 생산의 장기 불황과 위기에서 비롯되는 온갖 불이익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개인과 집단들에게 떠넘겨 경제 위기가 사회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그러나 신포드주의는 고용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아 실업률을 높히게 되었고, 신보수주의는 국가의 강제 기능을 동원하여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통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권위주의적 정치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 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민주주의의 쇠퇴 원인에 대한 서구 학자들의 최근 분석은 주로 외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쇠퇴 원인을 생산직 노동자 계급의 축소에서 찾는 이론(Prezeworski와 Sprague), 대량 생산의 쇠퇴에서 찾는 이론(Pontusson), 국제 자본 이동의 증가에서 찾는 이론(Steinomo), 유럽 연합(EU)이라는 단일 시장에 가입하여 다른 나라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된 사회 민주주의 나라들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사회 민주주의적 재정 정책과 조세 제도 등을 다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되돌려놓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이론(Karl Ove Moene과 Michael Wallerstein)이 있다.

한편 내인론으로는 "사민당 정권이 계급 타협을 유도하고 노동 계급(및 모든 임금 취득 계층)으로 하여금 자본주의를 수용하게 하기 위해 제공해 온 물질적 기초, 즉 포괄적·보편적 사회 보장 제도는 '고과세·고복지 지출·고재정 적자'라고 하는 '3고 구조'의 모순을 초래함으로써 사민주의의 위기를 촉진"하였다는 분석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자라난 세대들이 사회 민주주의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사회 보장 정책 및 제도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생겨나게 된 것으로 사회 민주주의의 쇠퇴 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 존 로머(John E. Roemer)는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조직화된 노동운동과 고도로 단일화된 노동력이 보장되어야 하는 조건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의 말을 따르면,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는 스웨덴 전국 노총(LO)이 전국적으로 합의한 임금 협상 결과를 따르도록 노동조합들을 훈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훈련을 하지 않게 되자 스웨덴의 자본가들은 스웨덴 전국 노총과 협상할 필요가 없어졌고, 사무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노조에 들어오게 되자 이러한 훈련을 유지하는 노총의 능력이 사라져 버렸으며, 노총의 분산 현상이 일어나 결국 스웨덴식 사회 민주주의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최장집 교수는 사회 민주주의적인 케인즈 이론이 뒷받침해온 복지 국가의 정책이 실제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적 질서와 계급적 불평등을 얼마나 개선했느냐고 물으면서, 1980년대에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대처리즘(Thatcherism)의 출현은 "사회 복지 국가의 원리와 노동자 대중의 사회 경제적 권리 실현의 심대한 후퇴"며, "이른바 '공급 중심 경제 이론'에 의한 케인즈주의의 대체, 자본가·노동자간 계급 타협의 종언"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더라도, 스웨덴의 현실 사회 민주주의가 전후 최악의 장기간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하여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한다. 스웨덴의 공공 지출은 국내 총생산(GDP)에 대한 공공 지출 비율로 보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 회원국들이 평균 41%인데 비해, 67%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채무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하여 현재 1천2백5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1970년에만 해도 국가 채무는 4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경제 성장은 멈추었고, 실업자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세금 수준도 더 이상 인상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② 현재 남(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고 있는 세력이 스웨덴식 사회 민주주의(social democracy)의 역사적 전망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가? 남(한국)에 사회 민주주의적 변화·발전의 객관적 조건이 과연 마련되어 있는가? 남(한국)에 사회 민주주의적 변화·발전을 이끌어갈 사회·정치 세력이 과연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 앞서 남(한국)사회에서 사회 민주주의와 통일 논의를 연결시키는 경향이 최근에 들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북한 연구센터'가 국내외 코리아 문제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장차 통일 국가는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대답을 한 사람이 44%로 가장 많았다는 보도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현재 남(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한국)사회는 자유 민주주의 제도와 시장 경제 제도를 확립·완성하기 위한 변화기에 들어서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겪은 뒤로 남(한국) 사회는 지배 구조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남(한국) 사회는 지난 시기 독점 지위에 올라있던 재벌 기업과 강력한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동맹 체제의 기반 위에 세워진 천민 자본주의 단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권력을 장악했던 군부 세력의 후퇴와 자본가 계급의 조직화 및 정치적 진출이라는 연동 현뻗렇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 사회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석은 남(한국) 사회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 가운데서 자본가 계급이 사회·역사적 발전을 주도하게 되고, 자본가 계급의 헤게모니가 확립되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남(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자본가 계급은 천민 자본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바꾸어가면서, 밑으로부터 일어나는 민중의 정치적 도전과 변혁 운동의 진전을 막아내고 자신이 구축한 체제를 지키기 위한 방벽을 쌓아가는데, 이 방벽을 '중간 계급'이라고 부른다. 자본가 계급은 중산층을 자신들의 하위 동맹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중간 계급과 결탁한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자유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가? 최장집 교수의 견해를 따르면, 그것은 반공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하는 정치 제도의 확립, 사적 소유 관계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제도의 확립,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선거 제도의 확립, 다양한 계급, 계층이 서로 경쟁, 타협하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보장하는 정치 제도의 확립을 뜻한다.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해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묻게 된다. 중간 계급과 결탁한 자본가 계급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립해가고 있는 남(한국) 사회에서 사회 민주주의적 발전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확실히 부정적이다. 이 물음에 대한 성경륭 교수의 답변을 들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현 단계에서 사회 민주주의적 접근은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바람직한 대안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우 노동 계급의 조직화 정도가 매우 낮고, 또 1989년을 기점으로 그것이 더욱 약화되는 추세에 놓여 있다. 또한 한국의 경우 1987년 이후 진보 정당의 의회 진출 시도가 모두 좌절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사회 민주주의 대안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전혀 성숙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 민주주의 대안은 현 단계에서 가능한 대안은 아니다. (줄임) 소유-생산-분배-소비의 근원적 단계부터 경제 민주화를 시도하지 않고 계급 갈등의 비용을 분배와 소비 단계에서 세금과 복지 지출 등으로 외화(externalization)하는 사회 민주주의 대안은 그렇게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만일 우리가 강정구 교수의 규정을 따라서 현재 남(한국)의 자본주의가 아직 '천민 자본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면, 천민 자본주의가 자유 민주주의의 최고 발전 단계인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로 도약할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최장집 교수는 남(한국) 사회가 과연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로 발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는 "계급간 타협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 민주주의적 모델이 가능하기까지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는가" 하는 물음과 "지배 블록이 체제 도전 세력인 노동자 계급의 집권을 허용하면서까지 체제 운영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의 많은 부분을 포기할 결의까지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남(한국)의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이 한결같이 사회 민주주의와 그 이상적 구현인 스웨덴의 복지 사회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실을 볼 때, 이러한 평가와 찬사는 남(한국)의 현실을 왜곡하는 수사며, "책상머리에 앉아 자유로이 어떤 모델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 결정자가 정책 홍보용 또는 모의 프로그램의 작성과 같은 정도로 생각하는 기술관료적 발상"이라고 혹평했다.

③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국가 사회주의(state socialism)라고 보는 인식에 대하여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존 사회주의를 국가 사회주의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국가 사회주의란 국가가 사회를 전적으로 지배하고, 사회적 생산·유통 관계에서 국가 소유제가 발달한 사회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국가 소유제란 국가 권력의 '자의적 결정'이 지배하는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강정구 교수의 말을 빌리면, "관료주의, 비능률, 생산성 저하, 소비자의 자유 선택권 제한, 개인과 당의 독재, 공급 부족 등의 부정적인 측면이 특히 현존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민 소유는 수식어와는 달리 근본적으로 국가 소유와 등치되고" 있으며, "인민적 소유물에 대한 인민과 사회의 통제권이 확보되지 못하고 당과 국가의 독점적 통제권으로 귀결되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국가 사회주의의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들도 다양하지만, 서구 지식인들의 견해는 대체로 현존 사회주의가 아시아적 전제 정치의 전통인 중앙집권적 정치 문화를 청산하지 못했다고 보는 전근대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황병덕 씨는 이러한 현존 사회주의를 '반봉건적 국가 사회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사회주의 사회야말로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 이전의 봉건 사회와 단절하고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전 사회의 전통과 인습이 혁명과 건설의 오랜 과정을 거친 뒤에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고 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북(조선)은 "정치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계급적 성격을 띄고 있고 소수의 자산 계급에 의해서 국가 정책이 좌우되는 '형식적' '부르조아 민주주의'에 대하여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사회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민대중에 의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로서 '집단주의'의 우월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가 사회주의론은 소련·동구를 중심으로 한 스탈린식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서구 지식인들이 내놓은 것인데, 남(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그 개념을 북(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남(한국)에서 북(조선)을 국가 사회주의라고 보는 논자들 가운데는 이종석 씨 같은 연구가가 대표적인데, 그는 북(조선)을 국가 사회주의라고 전제하면서, '유일 체제'라는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외국에서는 개번 맥코맥(Gavan McCormack),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와다 하루끼등이 이러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보아넘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북(조선)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재 상황과 이데올로기적 금압 조치에 묶여있는 제약 속에서 북(조선)에 대한 논의는 남(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직 깊이 있게 진척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짚고 넘어갈 문제는 북(조선)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비교 사회주의적 분석 방법에 의존하면서, 사회주의의 일반적 특징인 사회에 대한 당과 국가의 지배라는 관점에서만 북(조선)을 평가하여 국가 사회주의로 일반화하는 논리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가 사회주의론이 과연 북(조선) 사회주의의 성격을 올바로 해명하고 있는 논리인가 하는 물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음은 국가 사회주의론이 '인민 주권'과 '당의 영도'라는 두 기본축의 상호 결속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론이 전체주의론이나 권위주의론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 차별성을 밝혀주고 있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국가 사회주의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선과 악으로 구별하는 전체주의론의 이분법적 인식 한계를 벗어났는가 하는 물음도 생긴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앞으로 통일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따라서 이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소련·동구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북(조선)에 그대로 적용할 게 아니라, 북(조선)에서 나오는 사회과학적 성과를 충분히 검토하면서 논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리라고 본다.

④ 그 다음으로 우리의 관심은 유고형 노동자 자주 관리제(worker self-management)에 대한 재검토에 쏠리게 된다. 강정구 교수는 국가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 관리 형식의 시장 사회주의 모델의 일부를 수용하는 길"을 구상했다. 그는 "국가 사회주의에서의 중앙 독점 내지 지배 형태와는 달리 유고형 자주 관리제는 의사 결정 및 통제 과정이 각 공장이나 지역 평의회에 민주적으로 분권화했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평가한다.

서구 학자들은 1950년 뒤로 생겨난 유고형 노동자 자주 관리제를 사회주의의 질적 변화, 곧 오랜 기간 동안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로 변화되어온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1968년 헝가리가 새 경제 구조(New Economic Mechanism)를 도입한 역사적 경험, 1978년부터 중국에서 시작된 농업 부문에서의 탈집단화 현상과 후속 개혁 조치들, 1981년에서 1989년 사이의 폴란드 경험, 그리고 1985년 옛 소련에서 시작된 고르바쵸프 시기의 경험 등이다. '우파 분석가'로 분류되는 로머(Roemer)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가격 자유화를 이루지 못했고, 국유화된 기업들에게 경쟁권을 허용하지 못했으며, 국내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지도 못했다는 점을 들면서 '미완의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유고를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의 시장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에 대한 '우파적' 분석을 살펴보면, 그 나라들이 정치적 다원주의를 실현하지 못한 것, '연성 재정 강제책(soft budget constraint)'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국가 기관의 재정 보조정 책을 병행한 것 때문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우파 분석가'들은 유고의 노동자 자주 관리제가 실패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도 자본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았고, 기업들이 기업의 희소 가치에 근거하여 자본을 획득하는 풍토가 아니었으며, 당과 국가 기관의 권력이 노동자의 자주 관리권을 여전히 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졌던(관념 속에서 구상했던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주 관리제에 대한 강정구 교수 자신의 평가도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에 의하면 "실제적인 자주 관리는 노동자의 교육 수준, 무정부주의적 특성을 가진 시장의 통제 미흡, 권력과 자원 통제력의 지나친 분권화, 집단 이기적 동기 표출, 개인 이익과 전체 이익의 상충 등으로 인해서 사회주의 기본 가치의 상실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을 더 옮겨보자.

"그러나 실제로 유고의 자주 관리제는 마르크스가 이상적으로 그렸던 개인과 전체가 조화되는 민주적인 공동체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사회화하지 않은 시장(unsocialized market force)의 무정부적 기능에 의해서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회적 결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곧, 시민 사회 내의 조그만 사업장이나 협동조합 수준에서의 민주화 실현이 유고 사회 인민 전체의 총제적 민주화 실현, 특히 전체 인민 다수의 이익 실현이라는 하위 차원 3(여기서 그는 자신이 그린 도표를 지적하고 있다 - 인용자 주)에서 심각한 비민주성을 야기하고 있다. 실업, 빈부 격차, '새로운 관료와 새로운 엘리트충' 형성, 집단적 이기심, 지역 격차 등의 사회주의적 원리와 사회주의적 가치에 상충되는 현상들이 집중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작동하는 시장은 사회적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화한 시장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무정부주의적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과 다를 바가 없다. (줄임)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서 유고의 자주 관리제가 일부 사회주의에서 수정주의나 자본주의 복귀라는 비난을 받았다."

강 교수 자신이 이러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유고의 자주 관리제를 "가장 민주적인 모델이었다"고 높히 평가하며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유고식 자주 관리제의 부정적 측면을 교정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치유책으로 제시한 것은 "통제된 사회주의적 시장 기제의 도입, 사상 혁명, 교육 등"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러한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나 자주 관리제가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그 구분선이 모호해진다. 오늘 사회주의는 물론 국가 사회주의라고 표현한 병폐를 안고 있는 사회주의 나라도 있지만,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특수성과 독자성이 나라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가 비판했던 것처럼 "국가의 배타적 소유권과 관료와 당과 소수 엘리트에 의사 결정권(점유권?)이 집중되어 있는 국가 사회주의의 모델"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유고의 노동자 자주 관리제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제도와 근본적인 차별성을 두지 않고 있는 '변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강정구 교수의 통일론은 '개혁된 사회주의 체제'로 남북이 통합될 전망보다는 '개혁된 자본주의 체제'로 남북이 통합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 자본주의 체제'를 조국통일의 현실적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실적으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통일 체제가 된다 하더라도 그 자본주의 체제를 개조하여 위의 통일 모델로 지향하고 가까이 가는 실천이 민족사적으로나 인류보편사적으로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나 북(조선)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제도에 대해 거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조건에서 볼 때, 북(조선)이 유고형 노동자 자주 관리제를 도입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인 기대 전망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이끌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유고형 노동자 자주 관리제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의사와 능력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제3의 길 수렴 통합론

그 다음으로 제3의 길 수렴 통합론을 살펴보자. 남(한국)의 자본주의와 북(조선)의 사회주의가 장차 제3의 길로 수렴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한국)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북(조선)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통합하고, 자본주의적 폐해와 사회주의적 폐해를 극복하는 새로운 제3의 이념과 제도를 창조해야 한다(또는 할 수 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이들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서로 합의하여 단순 통합을 이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수렴 과정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연방주의적 수렴 통합론자'들과 같은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 수렴 과정을 절충·통합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3의 체제를 창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완연한 구분선을 긋고있다. 우리는 김대환 교수, 장원석 교수, 황병덕 씨의 논리에서 그러한 수렴 통합론의 전형을 본다. 황병덕 씨는 "통일을 위해 남북이 모색하는 이념 체계는 단순히 수렴론적 입장에서 양 체제의 장점만을 취사 선택하는 하나의 평균적 결합 형태가 아니라 양 체제가 지닌 모순과 갈등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이념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수렴론적 입장에 입각, 합의에 의한 이념 통합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 체제가 지니고 있는 이념적 갈등이 수렴론적 절충주의의 추상적 관념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절충·통합된 이념 체계가 구체적 체제 수준에서는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없고 단지 이데올로기로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 볼 때, 황병덕 씨나 장원석 교수 같은 사람들은 현존하는 남(한국)과 북(조선)의 양 체제의 장점을 취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길'을 찾고 있다. 김대환 교수의 논리는 혼합 경제 체제의 창출을 겨냥하고 있는데, 그는 "통일 경제 체제는 소유의 측면에서는 국가 소유, 공동 소유, 사적 소유가 공존하는 일종의 혼합 경제 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서, 이러한 체제는 "시장과 계획의 조화로운 결합 속에서 운영되고 발전하는 경제 체제"이며, 이를 "기존의 체제 모델로 정형화하기 보다는 '시장 플러스(Market Plus)' 체제 정도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병덕 씨는 두 체제의 대립·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이념은 최근 가장 발전된 어느 체제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가 성립되는 요건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다.

①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국가 사회주의가 몰락했다는 사실.

②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가 결합된 서구형 복지 국가도 발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장원석 교수는 "통일 이후의 사회 경제 체제는 현존하는 경제 체제 중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독일식 시장 경제, 즉 사회적 시장 경제를 한반도 실정에 맞도록 원용하고, 우리의 전통적 물질 구조와 정신 구조를 가미한 제3의 체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사회적 시장 경제(soziale Marketwirtschaft)를 "서독의 기민당(CDU)이 추구한 체제이지만,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서독의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수상이 채택하여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체제라고 칭송하고 나서, 이것은 "자본주의의 자유 이념과 시장 경제에 사회주의의 평등 이념과 사회적 형평을 접목시킨 것이므로 양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 사회적 시장 경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효율과 형평을 조화시킬 수 있는 체제라는 것 이외에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한국)과 북(조선)이 함께 추구해야 할 체제를 "(1) 사회적 시장 경제, (2) 소유 공개념, (3) 국가 공동체, 사회 공동체 건설을 위한 제3세대 협동조합 운동 방식(cooperative economy)이 통일적으로 이루어진 경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회적 시장 경제에 가미해야 할 민족적 요소로는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이며 삶의 바탕인 "협동 문화와 공동체 문화, 협동 경제와 공동체 경제,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생 문화와 공생 경제", 곧 "협동 문화 경제(cooperative cultural economy)"를 말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장원석 교수의 논리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 그가 통일 조국의 체제로 제시한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역설하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는 '제3의 길'이 아니라, 명백히 자본주의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변종 시장 경제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흡수통합을 이룩한 독일의 경우, 1990년 7월 1일 발효된 '국가 조약' 제1조에는 '사회적 시장 경제'를 독일 전역의 공통적 경제로 실현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3의 길'에 관한 통일 논의가 사실은 자본주의적 흡수통합론의 분식이라는 점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통일 조국의 사회 경제 제도가 왜 하필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그 논리적 근거가 미흡하다.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제도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남(한국)과 북(조선)의 시장 경제 제도가 과연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로 바뀔만한 가능성이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 그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협동주의 문화'라는 것도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천민 자본주의'로 질적 변화를 겪어온 남(한국) 사회 안에 과연 이러한 민족 문화 전통이 존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빛바랜 과거 유산인지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막연하게 협동주의 문화가 개인 이기주의 문화보다 좋으니까 그런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처럼 들린다. 통일 뒤에 남(한국) 사회의 개인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대안을 논의하면서도 북(조선) 사회에서 근로인민의 협력과 단결을 이끌어가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이 없는 것도 통일 논의와 관련한 주장으로서 미흡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재 남(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렴적 통일 논의가 결국 국민(인민) 경제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개입, 국가의 중앙집중적 통제와 독점적 지배 경향을 배제하려는 근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논의는 대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올바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① 국민(인민)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그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또는 단위 사업의 자기 중심주의에 얽매여 관료주의적으로 국민(인민) 경제에 개입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 따라서 국가의 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료주의적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국가 개입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점.

② 앞으로 통일 경로를 전망해 볼 때, 지난 분단 시기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었던 남북의 경제 제도가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민족 경제의 통일적 발전에 대한 전략 수립은 통일 국가(그 국가 권력의 집행자인 정부)가 떠맡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임이라는 점. 다시 말해서, 통일 국가의 경제 발전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발전 전망을 제시할 뿐아니라, 남북의 두 지역 사이의 균형과 각 부문 산업들 사이의 균형을 원만하게 조절·보장하는 과업을 수행해야 할 주체는 결국 통일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점.

분단 이후 50년 동안 남(한국)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고, 북(조선)은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 21세기 통일 시대에 들어서서 남(한국)과 북(조선)은 어떤 형태·경로로든 각기 변화·발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변화와 발전은 역사의 보편성이며 역사의 필연이다. 수렴 통합론은 바로 이러한 변화·발전의 필연성에 대한 일반론을 우리의 통일 논의에 도입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강화하는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국)과 북(조선)이 변화·발전할 것이라고 해서, 그 변화·발전이 곧 수렴 통합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 또는 전망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그 까닭은 남(한국)의 변화·발전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틀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변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조선)의 변화·발전도 사회주의 체제라는 틀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변화가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남(한국)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발전시키기를 바라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며, 북(조선)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주체 사회주의'를 옹호·발전시키기를 바라고 있는 조선로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그리고 그 인민이다. 따라서 남(한국)과 북(조선)의 변화·발전은 어디까지나 현존 체제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남(한국)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대로, 북(조선)의 현존 체제는 외부에서 들어가는 외적 요인이나 압력, 영향력 때문에 비주체적으로 변화될만큼 불안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남(한국)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현재의 자본주의를 변화·발전시켜서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또는 북구형 사회 민주주의, 또는 복지주의와 다원주의)로 나아가려는 주관적 의사와 요구가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 물음이 뒤따른다. 이러한 물음은 북(조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북(조선)의 당과 정부, 그리고 인민들이 현재의 '주체 사회주의'를 변화시켜서 독일형의 사회적 시장 경제(또는 유고형의 노동자 자주 관리제)로 나아가려는 의사와 요구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된다. 이 두 물음에 대한 대답은 확실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남(한국)의 정부는 자본주의에 대해 매우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남(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 동조·지지하고 있다. 남(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우월감과 자긍심, 절대적 가치 부여는 특히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를 다룰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온 북(조선)은 '경제 파국'에 이르렀고,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남(한국)은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발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의 표현을 따르면,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은 북한을 경제적 파국에 직면한 작은 나라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북(조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북(조선)의 당과 정부, 인민은 '주체 사회주의'에 대해 남(한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자기의 자본주의에 대해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21세기의 변화와 발전은 어디까지나 '주체 사회주의'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주체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북(조선)의 구호는 아마도 "변화도 발전도 혁신도 주체의 요구대로" 같은 내용이 될 것이다.


(6) 편입 유도에서 흡수 통합까지 이어진 논리

1) 남(한국)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

남(한국)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은 화해·협력 단계→평화 공존 단계→민족 통일이다. 1989년 9월 11일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국회 특별 연설에서 발표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서 시작하여 현재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3단계 통일 방안에 이르기까지 남(한국) 정부의 통일 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지적하자면, 정치 통합을 피하고 사회 통합을 먼저하자는 사회 통합 우선론이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서 제1단계로 설정된 이른바 '남북의 신뢰 회복 단계' 또는 '민족 동질성 회복 단계'란 3단계 통일 방안의 첫 단계인 교류·협력 단계와 일맥상통하는 논리로서 이것은 한결같이 사회 통합 우선론에 입각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물자, 정보의 무제한적이고 자유로운 대북 진출을 통한 자본과 시장의 전한(조선)반도적 확대로 이어진다. 남(한국) 정부는 자신의 자본주의 체제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미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면서, 장기적인 대북 진출을 통한 자본주의적 사회 통합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북 흡수 통합론의 핵심이다. 최장집 교수는 북방 정책(Nordpolitik)을 핵으로 하는 흡수 통합론을 주도한 세력이 과거에는 통일 문제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세력들인 관료, 군, 상층 부르조아 등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이 정책이 소연방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고 남(한국)에서 민중적 통일운동 세력이 일어나는 데 대한 보수 세력의 '공세적 대응'이었다고 평가한다.

남(한국) 정부는 3단계 통일 방안의 제1단계인 화해·협력 단계에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제2단계인 평화 공존 단계에 가면 남(한국)과 북(조선)이 상호 국가 승인을 통해 국가 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북 기본합의서' 협상 과정에서 남(한국) 정부는 '남북 기본합의서' 가운데 북(조선)이 주장하여 포함된 남북 불가침에 관한 문제, 곧 정치·군사적 협상 문제는 지금 제1단계에서는 논의하지 말고 앞으로 제2단계인 평화 공존 단계에 가서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있다. 이것은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고 남북 사이에서 국가 대 국가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국가 간의 평화 공존 상태를 확립해놓고,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대북 진출을 추구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주장이다. 남(한국) 정부는 국가 연합 단계에서 남북 두 나라 사이의 평화 공존 체제를 보장하는 법적 조치를 '민족 공동체 헌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동서독의 경우 남(한국) 정부의 '민족 공동체 헌장'에 해당되는 것이 '동서독 기본 조약'인데, 이 조약을 체결한 뒤에 동독은 이 조약 체결을 통하여 서독을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승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있다. 동독이 서독을 국가로 승인하려 했던 것은 동서독 간의 분단을 차라리 합법화·영구화함으로써 동독에 대한 서독의 자본주의적 사회 통합이 날로 심화·확대되는 것을 법적으로 차단하고 자신의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수세적 자기 방어책이었다.

그런데 오늘 남(한국) 정부는 국가 연합 단계를 통하여 남북 상호 간의 국가 승인으로 나아가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대북 진출을 꾀하면서 장기적인 목표로 사회 통합을 추구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서독이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동독 진출을 통해 사회 통합을 추구하면서도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와 다르다. 서독의 흡수 통합론은 분열주의를 내포하지는 아니했다. 그런데 남(한국) 정부의 통일 정책은 흡수 통합론과 분열주의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북(조선)은 이러한 남(한국)정부의 통일 방안을 흡수 통합론과 분열주의의 합작품이라고 규정하고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1992년 1월 서울에서 나오는 한 일간지에 실린 대담 기사에서 당시 통일원 장관 최호중은 안정적 흡수통합 방안이 교류·협력 문제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정부는 물적 교류를 확대하면서 경제 협력을 추진하되 궁극적으로는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하나의 경제권을 이룩, 통합을 실현해간다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흡수통합론자들의 논리는 분명하다. 북(조선)에 대해서 무제한 개방을 요구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북(조선)을 자본주의 질서 안으로 편입·유도하는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흡수 통합 전략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체제 통합', '국토 통합', '실지 회복', '반국가 집단 궤멸', '자유 민주주의의 완전 승리', '시장 경제의 전한(조선)반도적 확대' 등의 개념이 이러한 전략 추구에 연결되어 있다. 그 개념 뒤에서는 언제나 '승공 통일 실현의 야망'이 불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흡수 통합론자들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흡수 통합을 전략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사와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주관주의적 흡수 통합론자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객관적 정세가 흡수 통합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객관주의적 흡수 통합론자가 있다. 우선 주관주의적 흡수 통합론자들의 논점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남(한국)의 한 연구소가 주최한 통일 문제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아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될 것이다.

"결국 보수적·진취적 입장을 절충하면서 명분적으로는 합의 통일, 실질적으로는 흡수 통일을 추구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 객관주의적 흡수 통합론자들은 북(조선)에 대한 남(한국)의 절대적 우위가 확립되었고,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로 북(조선)은 고립 상태에 빠져 있으며, 북(조선)의 정치·경제·사회는 구조적으로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흡수 통합이 불가피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종말론적 기대(eschatological expectation)'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한국)의 사회과학원장 김경원은 이 문제에 관하여 차라리 솔직담백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흡수 통일이란 용어도 자제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흡수 통일을 먼저 말한 쪽은 북이다. 흡수 통일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다. 흡수 통일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우리가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당위적으로도 그래서는 아니된다."

이종오 교수는 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하고 있는 남(한국)의 진보적 통일운동이 객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임박한 흡수 통합을 향한 자신의 '종말론적 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남한의 진보 진영은 연방제론의 당위성에 더이상 얽매이지 말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을지 모르나 그러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흡수 통합의 가능성과 흡수 통합 이후의 한국 사회에 대비하여야 한다. 진보 진영 중 통일운동이 계속하여 연방제론에 집착할 때에 이 운동은 연방제론의 파산과 운명을 같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시점은 그리 먼 미래도 아닌 것이다."

남(한국)의 대북 흡수 통합론은 헌법 조문에서도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란 자유 민주주의 정치 제도와 자유 시장 경제 제도를 뜻한다. 이 말뜻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 위에서 평화적으로(다른 말로 하면 안정적으로)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2년 4월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는 1972년 12월 27일 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5조의 "전국적 범위에서"라는 글귀를 삭제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대남 흡수 통합의 의사를 적어도 헌법 조문에서는 배제하였다. 원래 그 조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 민주주의적 기초 우에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며 완전한 민족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자주·평화통일·민족 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조선로동당의 현재 규약 전문에는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남(한국)의 이종석 씨는 이 내용도 앞으로 제7차 당대회가 열리면 헌법과 보조를 맞추어 수정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조선)이 대남 흡수 통합 의사를 배제하고, 평화 통일의 의지, 또는 그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연방제 통일 방안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만일 남(한국)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위해 대북 흡수 통합론을 적어도 헌법 조문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헌법 제4조에 들어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이라는 글귀를 삭제한다면, 그것은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는 평화 통일 의지의 표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김영삼 정부는 자신의 통일 정책 기조를 공식적으로는 평화 통일론에 담아 내놓고 있다. 이러한 평화 통일론은 1993년 3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당시 국방장관이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도발 양상에 따라 이를 통일 전쟁 수행의 기회로 연계시킨다는 전략 개념을 수립하고 있다"고 주장한 이른바 '통일 전쟁론'과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지만, 통일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만을 생각한다면 김영삼 정부의 평화 통일론은 전쟁의 참화를 피한다는 점에서 남(한국) 군부의 '통일 전쟁론' 보다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한국) 정부가 말하는 평화적 통일은 무력을 동원한 북진 통일이 아니라 경제력을 동원한 북진 통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 자문 21세기 위원회'는 이러한 북진 통일을 '새로운 동반자의 편입'이란 부드러운 외교적 수사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표현에 상관없이 이러한 주장이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편입·유도를 통한 안정적 흡수 통합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1993년 7월 6일 대통령 김영삼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제6기 출범 회의에서 '새 정부의 통일 정책 기조'를 밝히면서 "통일된 조국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복지와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남(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가 통일 뒤에도 보장되지 않는 통일은 배격하겠다는 강력한 흡수 통합 선언이었다. 그 무렵 남(한국) 정부는 이른바 3단계 통일론을 내놓으면서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여 화해·협력 단계를 설정하고, 그 다음으로 남북 연합 단계를 설정하였다. 이 남북 연합이란 개념은 원래 노태우 정권이 내놓았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에 들어있는 것인데, 이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 임기 안에 남북 연합 단계를 이룩하겠다고 밝히면서 성급한 통일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을 꼼꼼히 따져보면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주관주의적 흡수 통합론자의 '호언장담'으로 들리기도 한다. 김영삼 정권은 남(한국)과 북(조선)의 무조건적인 공존이 아니라 공동 번영으로 이어지는 공존을 강조하면서 '공존·공영의 정신'은 제1단계와 2단계에 적용할 원칙이라고 보았다. 또한 김영삼 정권은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복지와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통일 민주국가, 곧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흡수 통합으로 수립되는 통일 국가를 지향한다는 '민족 복리의 정신'은 제3단계, 곧 통일 국가 수립 단계에서 적용할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공존·공영의 정신과 민족 복리의 정신에 대한 언급은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로 북(조선)을 흡수통합하겠다는 발언 내용과 논리적으로 모순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김영삼 정권의 통일 정책 기조는 어디까지나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가 아니면 민족 복리를 구현할 수 없다는 확고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인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Unification Formula for the Korean National Community)'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을 추진하는 우리의 기본 철학은 자유와 민주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통일은 계급이나 집단 중심의 이념보다도 인간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은 가공적인 국가체제의 조립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 공동체 건설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이 3단계 통일 방안 발표는 역대 남(한국) 당국의 통일 정책 수립사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3단계 통일 방안이 자유 민주주의 및 자유 시장 경제로 흡수 통합하겠다는 주장을 이전보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놓음으로써 특정 이념과 특정 체제를 통일 정책의 근본으로 공식화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특정 이념과 특정 체제보다는 민족 전체의 융성과 발전을 우선으로 보아야 한다는 조국통일의 대원칙을 버린 것이다. 이것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상과 제도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흡수 통합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공존·공영의 원칙을 버렸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3단계 통일 방안은 실제로 3단계 흡수 통합 방안과 다르지 않다. 이 흡수 통합 방안을 작성하는 데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당시 통일 부총리 이홍구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정종욱은 "대통령은 한반도 남쪽에서 민주화 투쟁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한 데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북쪽에까지 확산시키겠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한국) 정부는 한국(조선)전쟁 뒤로 지금까지 힘으로 북(조선)을 흡수하여 통일을 달성해보겠다고 하는 흡수 통합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남(한국) 정부의 흡수 통합론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력 통합론 보다는 이른바 실력 통합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력'이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경제력, 그리고 한(조선) 반도의 문제에 깊은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여 얻는 외교력을 말한다. 경제력을 중심으로 흡수 통합론을 파악하는 세력들은 통신·통행·통상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3통 개방'을 통한 북(조선)의 전면 개방을 촉구하고 있으며, 외교력을 중심으로 흡수 통합론을 파악하는 세력들은 이른바 '한·미·일 공조 체제'를 강력하게 가동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계열의 흡수 통합론자들이 일치하여 그린 '통일 상상도'는 북(조선)이 자동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자동 붕괴의 개연성 위에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들의 상상도는 이렇다.

"통일의 방식으로서는 (1) 일방의 내부 변화에 따른 타방으로의 편입 (독일식), (2) 협상에 의한 수렴식 합류 (예맨식), (3) 국가 연합의 형태 속에서 별개의 체제로 공존 (고려연방안)을 들 수 있다. 이 중 제2안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제3안은 실제로 그것이 실현되더라도 진정한 통일이라고 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통합의 과정 도중 어느 단계에서 남북한이 급속히 합류할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줄임) 통일이 빨리 올 것이라고 예언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남북 정부 간의 협상과 타협, 그리고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조기 통일을 예견하는 근거는 주로 북한의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고 그것은 북한 체제의 와해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통일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독일 통일의 과정을 눈여겨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만하다."

여기서 우리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남(한국)의 자본주의는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자신의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편입·유도하여 흡수할만한 능력이 과연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물론 남(한국)의 자본주의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주의와 이른바 '국제 공조 체제'를 이루어 북(조선)에 대한 편입·유도 공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남(한국)의 단독적인 편입·유도 공략보다 그 힘이 더욱 강력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사회주의는 과연 이러한 '국제 공조 체제'의 대북 공략에 맥없이 무너질만큼 허약한가? 김대중 씨는 1994년 한 월간지와 한 대담에서 북(조선)을 '상처 입고 붸기는 짐승'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남(한국)의 흡수 통합론자들이 말하고 있는 '북(조선)의 자동 붕괴·소멸론, 몰락 임박론'을 과연 얼마만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도 역시 부정적이다. 북(조선)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와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인식 주체의 주관적 의지를 개입시킬 여지를 넓혀놓는 것이지만, 북(조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충분하게 성숙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집요하고 강렬한 반북 선전으로 얼룩져 있어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을 가누기조차 어렵다는 것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통일 논의는 통일의 대상이며, 남(한국)과 함께 통일의 한 주체가 되는 북(조선)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포괄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우리의 통일 논의는 북(조선)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태도로 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

만일 흡수 통합론자들이 옛 서독의 자본주의가 옛 동독의 사회주의를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변질·유도하여 결국 흡수 통합을 이루었던 역사적 경험을 무조건 한(조선)반도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발상은 옛 서독의 자본주의와 현재 남(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러한 발상은 또한 옛 동독의 사회주의와 현재 북(조선)의 사회주의가 얼마나 다른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도 된다. 서진영 교수의 말대로 이러한 판단은 남(한국)의 역량을 과대 평가하고 북(조선)의 역량을 과소 평가하는 데서 오는 착오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발상은 동서독 관계와 남북 관계에서 분단 상황이라는 공통점만을 생각한 나머지, 다른 모든 요인들을 평면적으로 등치시키는 인식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 만일 남(한국)의 흡수 통합론자들이 북(조선)을 흡수 통합하기 위한 조치로 대북 교류를 강력하게 추진하기만 하면 북(조선)이 오래 가지 않아서 현재 중국의 시장 사회주의처럼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 통합하기에 아주 쉽게 변질·유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주관주의적 조급증에서 나온 성급한 기대인 것같다. 중국의 법정대학장 강 평은 남(한국) 일간지가 한(조선)반도의 통일 전망에 대해 묻는 물음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중국과 북한은 다르다고 보아야 하며 동독의 교훈을 새기는 북한으로서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고 남한과의 자유로운 교류를 허용하기 전에 먼저 부작용과 압력 등을 고려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려 할 것이다."

송두율 교수도 북(조선)이 동독,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식 사회주의'는 '동독 색깔'의 '사회주의'와 비교해서 일찍부터 자주성을 강조했고, 중국의 '특색있는 사회주의'에 비하여 사상적 요새 점령 문제를 물질적 요새 점령 문제 이상으로 사회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고리로 여기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오늘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남(한국) 정부가 북(조선)을 무제한 개방시켜 체제 변질을 유도하려는 대북 흡수 통합 전략과 북(조선)이 추구하는 제한 개방을 통한 주체 사회주의의 발전 전략 사이에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교류·협력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더라도 남(한국)의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듯이, 북(조선)의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도 자유 민주주의 제도나 시장 경제 제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남(한국) 정부와 북(조선)이 이러한 역사적 전망을 공유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 화해를 이룰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는 무한 경쟁의 궤도를 따라서 분단 질서를 영구히 유지할 수 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게 된다. 무한 경쟁의 궤도 안에 들어간 이상, 대립과 충돌의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있게 될 것이다. 사회 통합을 통한 편입·유도론과 안정적 흡수 통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도했건 아니했건 간에 남북의 불가피한 충돌과 대결을 불러일으키고, 자본주의 체제의 무제한적인 확장을 노리고 있다. (1995년 7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