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방안와 경로에 관한 연구 (3)



7. 급진적 흡수 통합과 안정적 흡수 통합

남(한국)의 흡수 통합론자들은 대북 흡수 통합을 성취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하나는 급진적 흡수 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안정적 흡수 통합이다. 급진적 흡수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일 북(조선)에서 경제난 또는 내부 갈등이 심화·표출되어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위기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남(한국)이 북(조선)을 흡수 통합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한국) 정부는 이른바 '통일 비용'(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흡수 통합 비용'이다)과 급진적 변화가 몰고 올 수 있는 전한(조선)반도적 불안정을 생각하여 급진적 흡수 통합은 되도록 피하려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한국) 정부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급서 직후 북(조선)의 '수령 중심 체제'가 안으로부터 무너지면서 북(조선)의 역량이 급속히 약화되어 곧 불가피하게 급진적인 흡수 통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시기'가 오는 게 아니냐 하는 예감을 한 때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 예감은 남(한국)의 통일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통일원은 1994년 8월 31일 국회 외무통일위원들을 초청한 '워크숍(workshop)'을 밤 10시까지 8시간 동안 비공개로 개최했는데, 이 날 모임에서는 대통령 김영삼이 그 무렵 "예측할 수 없는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 지시를 따라 통일원이 기존의 대책안을 새로 보완한 '급변 사태 발생시 통합 계획'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통합 계획'은 말할 것도 없이 북(조선)이 갑자기 무너져, 불가피한 흡수 통합을 실현하게 되었을 때 북(조선)을 남(한국)에 동질화시키고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흡수 통합 청사진이다. '정부 2급 비밀'이라는 이 흡수 통합 계획은 「남북한 경제 통합의 정책 과제」라는 정부 보고서로 정리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북(조선)의 붕괴 가능성을 흡수 통합의 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남(한국) 정부는 이미 1990년대 이후 흡수 통합 대비 계획을 만들어놓았다고 하는데, '정부 비상계획위원회'가 주관하는 '충무 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은 '충무 1000'이라는 기본 계획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그 집행 계획을 세워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것으로, "북한 남침시 이를 격퇴하고 북한에 자유 지구를 만드는 등 무력에 의한 북한 수복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합에서 시작된 '북(조선) 멸망 임박론'과 대북 흡수 통합론은 '한·미·일 공조 체제'의 핵압력 사건을 거치면서 더욱 맹위를 떨치더니,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급서하자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남(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일부 통일운동 진영은 그동안 북(조선)이 통일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안마저 포기하고 체제 수호로 돌아섰으며, 이제는 오히려 남(한국)의 정부가 자신이 그토록 반대해오던 연방제 통일안을 공세적 흡수 통합의 한 단계로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기까지 하는 등 극도로 혼란한 정세 인식에 휘감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한국)의 진보 진영 일부의 '불안감'은 기우로 판명되었고, 남(한국) 흡수 통합론자들의 '예감'은 빗나가고 말았다. 저들의 기대와 예감을 무색하게 하듯 북(조선)은 사회·정치적 안정 상태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남(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때 북(조선)의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조·미 협상 과정에서 오히려 북(조선)의 대내외적 안정성, 견고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는 '역설의 논리'가 성립되었다. 김일성 주석의 급서를 계기로 흡수 통합의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오판했던 것은 흡수 통합론자들이 북(조선)에 대한 정보 부족과 무지의 공백,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운 자신들의 주관적 의사가 만들어낸 판단 착오였다. 그리하여 1994년 10월 20일 민자당 정책위원장 이세기는 흡수 통합의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며 흡수 통합론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대변했다.

"이번 북-미 협상 과정을 지켜보니 미국이 '분단 고착'을 선호하는 것이 확실하다. 남북 대결을 고정시켜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가지려는 것이다. 북한에만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간 것이다. 통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다른 한 편, 안정적 흡수 통합이란 북(조선)에까지 점진적, 단계적으로 자본을 침투·확장하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제도를 변질·와해시키고, 마지막에 가서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유도·편입·흡수해 버린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은 북(조선)의 경제가 파탄 직전의 상태에 빠져있다고 보는 주장이 전제된다.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이 북(조선) 경제 파탄의 현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남(한국) 당국이 유도·편입을 통한 흡수 통합 의도를 버리지 않는 한, 북(조선) 경제난에 대한 주장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동구의 몰락 때문에 사회주의 시장이 무너졌고, 그 여파 때문에 북(조선)의 경제가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며, 북(조선)도 이러한 현실을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고 있다. 북(조선)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난관과 북(조선)의 붕괴 가능성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북(조선)의 식량, 에너지, 외화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미 오랫동안 그러한 부족 상태에서 살아오면서 국가 경제를 움직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내부 조건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 수해 문제로 더욱 악화되었다고 하는 식량 문제도 결국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면 풀릴 수 있으며,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조·미 관계 개선에 따른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조치 완화, 일본의 배상금 문제의 해결, 중국의 대북 지원 등에 힘입어 수력 자원 개발,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으로 전연 가망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북(조선)의 주장이다. (이러한 해결 전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근거 제시를 통한 더 자세한 논의와 검토가 요구되나, 이 글에서는 지면 제약상 생략하고 다른 기회로 넘기기로 한다)

김영삼 정권이 내놓은 이른바 3단계 통일 방안 가운데서 제2단계인 국가 연합 단계는 사회주의 제도가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자본주의 제도로 점진적으로 변질·동화되어가는 안정적 흡수 통합의 본격적 추진 단계로 보아야 한다. 미국도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하여 북(조선)을 개방하고, 자국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안정적 흡수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연착륙 정책'이다. 주한미대사 제임스 레이니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개방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줄임) 우선 양국(미국과 남[한국]을 뜻함-인용자 주)은 대북 군사 억제력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동결이 계속 유지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바탕 위에 우리는 아주 점진적인 대북 조치를 취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 정부는 빠르면 올 연말 또는 내년 초께 북한에 적용되는 교역 제한과 자산 동결 등 대북 경제 제재 조치 중 일부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된 한반도는 안정된 한국이 될 것이며, 동북아 전체의 균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우방으로 남아있겠지요. 그 이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안정적 흡수 통합론은 소련·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한 독일학계의 통합 이론을 한(조선)반도의 통일 논의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북(조선)을 시장 경제권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이른바 안두순 교수의 '유도적 시장 경제론'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가 남긴 파멸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체제 전환이라는 점과 이러한 의미에서 체제 전환이란 시장 경제의 도입이며 이는 마치 하나의 파산 기업을 정리하는 절차와 같음을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줄임) 결국 북한의 경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시키면서 남한의 경제 체제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보완하되 이때 북한이 가지고 있는 체제적인 장점이 있으면 이를 어떻게 시장 경제적 체제 요소로 변화시켜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남(한국) 정부의 3단계 통일 방안이 3단계 분단 체제 유지 방안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영삼 정권의 3단계 통일 방안은 한(조선)반도의 3단계 분단 체제 유지 방안과 맞물려있다. 3단계 분단 체제 유지 방안이란 유엔 동시 가입→남북에 대한 주변 4개국의 교차승인 완결→남북 상호 승인에 의한 국가 연합 수립으로 이어지는 예상 경로를 정리한 개념이다. 지난날 미국과 남(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던대로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 한(조선)반도의 상황은 조·미 관계 개선과 조·일 관계 개선을 통하여 남북에 대한 교차 승인을 완결하는 단계에 차츰 들어서고 있다. 북방 2개국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국)에 대한 국가 승인을 먼저 실현하고, 남방 2개국 미국과 일본이 북(조선)에 대한 국가 승인 구도를 완성해가는 경로를 밟고 있다. 지난 시기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론과 주변 4개국의 남북 교차 승인론은 유엔과 주변 4개국이 남(한국)과 북(조선)이라는 두 국가적 실체를 법리적으로 승인하고 그에 기초하여 남(한국)과 북(조선)이 '분단 국가의 평화 공존'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분단 체제 유지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분단 체제 유지론을 '두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3단계 분단 체제 유지 방안의 마지막 단계인 남북 상호 승인에 의한 국가 연합 수립은 곧 김영삼 정권이 전망하고 있는 안정적 흡수 통합의 본격 추진 단계와 완전히 겹쳐진다는 사실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그렇지만 한·소 수교와 한·중 수교 성사 이후, 남방 2개국의 대북 승인은 남북의 외교적 균형을 이루게 하는 현실 조건으로 전화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 남(한국) 정부는 남방 2개국의 북(조선)에 대한 국가 승인과 외교·통상 확대 조치가 결국 북(조선)의 자본주의적 변질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남(한국) 자본의 집중적인 대북 진출이 편승하게 되면, 그만큼 북(조선)의 자본주의화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남방 2개국이 북(조선)을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통상 관계를 맺는 것이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약화·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느냐, 아니면 강화·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냐 하는 문제는 결국 조·미, 조·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북(조선)의 자주 역량과 그에 기초한 체제의 견고성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남(한국) 정부가 남방 2개국의 북(조선) 국가 승인에 대해 자꾸 제동을 걸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남(한국) 정부는 교차승인이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 강화에 유리한 외교·통상의 해결점을 보장해주기만 하고, 자신이 바라고 있는 자본주의화 촉진의 기대값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어쨋든 교차 승인 구도의 완성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판단하고 있는 김영삼 정권은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에서 출발하여 교차 승인 완결을 거쳐 남북 상호 승인에 의한 국가 연합 설립단계 직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대북 교류·협력을 추구하면서 이른바 3단계 통일 방안에 내포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사회 통합을 실현하려는 원래의 구상대로 밀고나가는 길 밖에 다른 선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정권은 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를 '한국형 경수로'라고 보고 있다. 김영삼 정권이 이른바 '한국형 경수로'를 고집했던 까닭은 경수로 건설·관리·운영을 통하여 남(한국)의 자본·기술·인력·정보를 북(조선)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면 자본주의적 사회 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주관적 타산'을 했기 때문이다.

1993년 2월 4일 대통령 자문기관인 '21세기 위원회'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낸 마지막 보고서 '국가·사회 발전 구상'을 보면, 남(한국)의 흡수 통합론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면 조국통일은 편입 또는 점진적인 흡수 통합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국)은 남북 공존의 안정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추진해야 할 정책을 그들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고 부른다. 그 다음으로는 남북의 군사적 신뢰를 조성하고, 부분적인 사회·경제 교류 및 통합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 통합을 이룬 뒤 완전한 통합을 달성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들은 이러한 단계적, 안정적 흡수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한(조선)반도 주변 4강과 남북의 쌍무적 혹은 다자간 안보 협력 관계를 활용하는 고도의 군사·외교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있다. 그들은 동북아 시대에 대비한 국토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평양→서울→대전을 중핵 지역으로 잇고 청진을 거점으로 하는 서울→함흥→청진→두만강 하구를 잇는 동북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이것은 흡수 통합을 전제로 하는 국토 개발 정책의 전환이다. 그들은 정치 통합을 위해 남(한국) 정당들의 조직 및 활동 범위를 북(조선)에까지 연장하려고 시도해야 한하다고 주장하면서, 흡수 통합이 이루어진 뒤 북(조선) 주민의 생계 유지 및 구호 사업을 위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경제를 자유 시장 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북(조선)의 경제 복구 건설을 위해서 남(한국)이 흡수 통합 비용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남(한국)의 민간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은 정보력을 갖추었다고 하는 삼성 물산이 발표한 '미래 환경 전망표'의 끝부분에는 독점 재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흡수 통합의 '원대한 구상'이 이렇게 적혀 있다.

"2000년 뒤에는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떠오른다. 남북과 중국의 동북 3성을 묶는 인구 1억6천만 명의 거대한 '코리아 경제권'이 생긴다. 통일 한국의 행정 수도는 개성 부근으로 옮긴다."


8. 안정적 흡수 통합과 무제한 군비 증강

남(한국)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안정적 흡수 통합에는 언제나 '민족 화합'이라는 명분이 동원된다. 그렇지만 남(한국) 정부는 실제로는 자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조선)에 대한 무제한 군비 증강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민족 화합'의 명분과 '군비 증강'의 현실 사이에 드러나는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남(한국) 정부의 군비 증강은 북(조선)의 이른바 '무력 도발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실제 내막을 알아보면 현재 북(조선)의 군사력으로는 남(한국)과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서 전쟁을 일으킬 수 없으며, 오히려 남(한국)의 군사력과 주한미군의 군사력으로 편성되어 있는 한·미 연합군의 군사력이 훨씬 더 우세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는 북(조선)과 남(한국)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교적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실을 살펴보면서 남(한국)의 군비 증강 실태를 알아보기로 한다.

1) "한국이 매년 미국에 넘겨주는 무기 수입 대금은 자그마치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미국의 방위 산업 전문지 『디펜스 뉴스(Defense News)』 1994년 8월 10일자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 미국 정부는 남(한국)과 대만에 스팅어 대공 미사일을 판매하도록 승인했으며, 다른 동남아 나라들에 대해서도 승인이 잇따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대만에 기당 6만-9만 달러에 6백 기의 스팅어 미사일을 판매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3) 1994년 9월 26일 국회의원 임복진은 "한국 국방부가 1994년 4월 중기 국방 계획을 변경하여 3천3백억 원의 율곡 예산을 전용해 미국 무기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중기 국방 계획을 따르면 원래 이 미국 무기들은 1995년 뒤에 사들이게 되어 있음.) 이에 따라 전반기에 이미 1천8백억 원이 배정되었고, 1994년 말까지는 나머지 1천5백억 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이같은 긴급 구매는 미국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강조하면서 무기 구매 압력을 가중시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율곡 예산 전용을 결재한 1994년 4월 17일 직전인 3월 25일 미 국방장관 페리가 워싱턴에서 특별 기자 회견을 갖고 한국 정부에 대응 포격 체계 강화 등 지상군 무기를 증강하도록 강력히 요청한 바있다. 더구나 이번에 미국에서 사들이는 무기는 주로 대포병 레이더(AN/TPQ37), 코브라 헬기용 야간 사격통제 장비, 155밀리 사거리 연장탄 등 탄약 8 종과 적외선 방해 장비(IRCM), 차기 FM 무전기 등 페리 국방장관이 거론한 무기들과 일치한다. 그런데 코브라 헬기와 야간 사격 통제 장비는 1990년 중기 국방 계획에서 성능에 문제가 있어 제외했던 장비다. 한국 국방부는 신국방 정책에서 무기 수입 다변화 목표를 표방했으나 미국 무기 구매율은 1993년 86.7%로 1992년의 74%, 1991년의 79%로 계속 높아져 대미 의존도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한·미 군사 동맹 체제의 확고한 유지와 대미 의존의 심화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 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한국) 국방부는 "이같은 무기를 구입한 것은 한반도의 불확실한 안보 상황을 고려, 현지 야전 지휘관들로 하여금 전쟁 수행 태세 완비에 꼭 필요한 초전 즉응 긴요 전력을 판단토록 한 결과였다. 해외에서 사들이는 무기가 대부분 미국 무기인 것은 사실이다. 해외에서 사들인 무기 규모가 전용액 3천3백억 원이 아니라 그 10%인 3백36억 원이다. 나머지는 포탄 등 전쟁 비축용 국내 방산 물자를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고 해명했다.

4) 1994년 9월 28일 국방부와 합참본부를 대상으로 한 국정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현재 미그 29기 15 대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은 1989년과 1992년 사이에 러시아 기술자의 지원을 받아 미그 29기 2 대를 조립·생산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면 미그 29기 2백 대를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의 항공기 보유율은 전투기 47%, 폭격기 5%, 수송기 19%, 헬기 18%, 훈련기 11%의 수준이다. 우리측의 F16기 생산 목표는 1백20 대다.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의 일환으로 UH60 헬기를 1990년부터 1995년까지 81 대를 구입키로 하고 대한항공이 미국 시코스키사로부터 기술 면허를 받아 생산하여 모두 50 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있다.

5) 1994년 9월 12일 미 국방부는 미 의회에 대한 보고에서 남(한국)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국산 전투기용 부품 9천만 달러어치를 포함해 1억1천5백만 달러 상당의 미 군사 장비 구입 의사를 밝혔다고 보고했다. 이 부품들은 F16 전투기를 포함해 현재 남(한국) 공군에서 사용되고 있는 각종 항공기와 레이더 항법 체계를 위한 것들이다. 미 국방부는 또한 남(한국)이 2천5백만 달러 상당의 구축함용 수직 발사 유도탄 체계와 코브라 공격용 헬기에 쓰일 대전차 토우 미사일 1천2백83 기를 구입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6) Defense News는 미 해군 정보 기관의 「94년 동태 보고서」에서 남(한국)이 독일의 디젤 동력 잠수함 기술 이전 및 그에 따른 자체 제조를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7) 남(한국)의 국방부가 펴낸 『1994년도 국방백서』는 한 대당 2백62억 원인 F16 1개 대대(18대 기준) 창설에는 4천5백45억 원이 들어가며, 미사일 '현무'가 1 기당 14억 원이고, 한국형 구축함(KDX)은 2천1백억 원, 잠수함은 1천4백억 원, 중형 수송기는 1백18억 원, K1 전차는 23억 원, 하푼 함대 미사일은 13억3천만 원, 한국형 장갑차는 2억7천만 원, 자주포는 9억6천만 원이라고 밝혔다.

8) 1995년 2월 24일 미 국방부는 남(한국)에 함정 및 레이더망 파괴 미사일을 1억 달러어치 이상 판매할 계획이라고 미 하원에 통보했다. 여기에는 지대공 미사일 레이더망을 파괴할 수 있는 AGM 88B 미사일 1백36 기(6천4백만 달러)와 하푼 대함 미사일 32 기(4천8백만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9) 1995년 3월 21일 남(한국)의 국방장관 이양호는 '군용기 개발 사업 통합 방안'에 대한 연구 검토 지시를 내려, 국방부가 항공 산업 투자 및 개발 효용을 극대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항공 산업 기획단 설립, 항공사 간 컨소시엄 구성 및 공동 연구소 설립, 엔진 기체 등 생산 분야를 항공사별로 전문화, 계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은 보도했다. 현재 군용기 개발 사업은 삼성항공의 차세대 전투기(KFP) 및 고등 훈련기 (KTS2), 대우 중공업의 초등 훈련기(KTX1), 대한항공의 UH60 헬기 등 업체별로 나뉘어져 있으며 10여개 중소 기업체가 부품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10) 1995년 3월 24일 미 국방부는 미 의회에 통보를 통해 남(한국)이 휴즈 미사일 시스템이 만든 1백 기의 신형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AMRAAM)을 모두 7천만 달러어치를 사겠다고 했음을 알렸다.

11) 미 국무부가 1995년 4월 28일 유엔에 제출한 재래식 무기 수출입 보고서는 남(한국)이 1994년 모두 2백14 기의 미사일 및 미사일 발사대와 전투기 4 대를 미국에서 사들인 것으로 밝혔다. 미사일 수입량은 남(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로 밝혀졌다.

12) 미 국무부의 「96 회계연도 대외 활동 보고서」는 '추산된 대외 군사 판매(FMS) 규모'란 항목에서 미국의 1994, 95, 96 회계연도의 대외 군사 판매 규모 또는 추정치를 도표를 통해 전 세계의 해당 나라별로 비교하면서 1996 회계연도 중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18억2백말 달러의 군장비와 서비스를 미국에서 대외 군사 판매 형태로 도입할 나라는 남(한국)이라고 밝혔다. 이 추산액은 전체 대외 군사 판매액 95억 달러의 20%에 해당하며, 사우디 아라비아 15억6천2백만 달러, 이집트 14억7천만 달러, 이스라엘 6억7천2백만 달러, 쿠웨이트 6억 달러, 일본 3억6천9백만 달러, 타이완 2억7천8백30만 달러로 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1994 회계연도 중 남(한국)이 미국에서 모두 4억3천3백16만 달러어치를 도입했으나, 1996년도에는 이같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13) 1995년 6월 1일 남(한국) 국방부는 동시 다발로 발사하는 포진지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미국의 최첨단 무기인 대포병 탐지 레이더 AN/TPQ-37 5 대(도입가는 대당 67억여 원)를 올해 안에 사들이기로 최종 확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무기는 1994년 4월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을 빌미로 군사 긴장이 높아졌을 때 미국이 남(한국)의 지상군 전력 강화를 위해 사가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국이 이와 함께 사가라고 요구한 것은 대박격포 탐지 레이더인 AN/TPQ-36 10여 대인데, 이 무기는 지난 해 사들인 바있다.

14) 1995년 6월 1일 남(한국) 국방부는 한국 전투기 사업(KFP)으로 추진하고 있는 F16C/D 전투기 국내 조립 생산 목표(목표 연도는 1997년까지) 36 대 가운데(1999년말까지는 모두 72 대를 생산할 계획임) 1호기가 지난 달 말 공군에 인도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전투기는 KFP 사업의 주계약 업체인 삼성항공이 미국 록히드사의 기술 지원을 받아 조립한 것으로 제2단계 국내 조립 생산 사업의 1호기에 해당한다.

15)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최근 제출된 보고서를 따르면 지난 1993년 1백21억 달러에 달한 남(한국)의 군사비는 아시아 주요 나라들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은 것(일본 군사비의 3분의 1)으로 나타났다. 지난 1987-1993년 남(한국)의 군사비 증가율은 35.9%로 말레이시아 89.6%, 싱가포르 53.6%보다는 낮으나, 대만 24.1%, 일본 16.8%, 중국 6.4%, 호주 1.9%에 비해서는 크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16) 남(한국) 국방부는 1996년부터 수년에 걸쳐 최신 대전차 미사일인 토우-2A 미사일과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암람(AMRAM) 미사일을 미국에서 들여오기로 한 것으로 1995년 8월 13일 알려졌다. 토우-2A 미사일 도입에는 2백억원, 암람 미사일에는 3백억 원의 예산이 책정되었다. 토우-2A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토우-1을 개량한 것이며, 전방위 미사일인 암람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KFP)으로 배치되는 F-16기에 장착될 것이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잠수함, 구축함 등에 장착할 신형 경어뢰를 2000년대 초까지 국내에서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7) 남(한국) 국방부는 1995년 8월 17일 주한미군이 전쟁 예비 물자로 비축하고 있는 장비와 보급품 가운데 전차 2백75 대와 탄약 4만여 t 등 6천7백만 달러 어치 상당의 무기를 미군측으로부터 인수하는 내용의 '한·미 장비 및 보급품 합의 각서'를 체결했다. 국방부는 이들 장비를 넘겨받는 대신 그동안 남(한국)군이 이들 물자를 저장·관리해준 비용으로 받아야 할 같은 액수의 저장·관리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한 달 안에 M48A5 전차 2백75 대와 8인치 자주포 13 문, 탄약 4만여 t을 넘겨 받을 예정이며, M48A5 전차는 곧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위에서 살펴본 남(한국)의 무력 증강 실태를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무기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해군과 공군의 무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한국)이 군비를 계속 증강하게 되면, 북(조선)도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조선)의 경제력을 끊임없이 군비 증강에 소모하게 만들려는 전략이며, 이 전략은 북(조선)이 결국 일어설 수 없는 경제 파탄에 빠져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는 '필망론' 또는 '자동 붕괴·소멸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 초 레이거노믹스를 추구했던 미국이 옛 소련에 대해 무제한 군비 증강 경쟁을 벌여, 옛 소련의 경제력을 군비 소모에 묶어두었던 전략을 한(조선)반도 상황에 옮겨놓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시도를 우리는 이른바 '율곡 사업'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 암호명 '율곡 사업'에 관한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① 율곡 사업이란 1973년 '방위 산업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한 뒤, 곧바로 1974년에 시작한 무기 증강 사업임. 1990년까지 모두 2백10억 달러가 들어갔음. 1993년도 예산은 2조9천억 원임.

② 1970년대말 M16 자동 소총, 한국형 미사일 국내 생산, 5공 때는 88 전차와 경훈련 항공기 F5 제공호 국내 생산에 성공함.

③ 1991년 3월 F16C 기종으로 최종 선정되어 이미 40 대가 들어온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사업, 대잠수함 초계기 P3C기 도입 사업, 대·중·소형별로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헬기사업, 해군의 구축함 건조 사업, 잠수함 도입 사업, 육군의 한국형 K1 전차 사업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주요 사업임.

④ 국제 무기상이 남(한국) 정부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 터졌는데, 지난 1987년 12월 남(한국)의 국방부가 미국 보잉사로부터 CH47D 헬기 6대(대당 1천2백35만 달러, 모두 7천4백10만 달러)를 사들이기로 하면서 중간상이 3백73만 달러를 챙긴 것으로 알려짐. 지난 1986년 미국 노드롭사가 F20기 도입과 관련,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에게 6백25만 달러를 뇌물로 주었다고 국제 중재 재판소에 제소한 사건도 있음. 1995년 6월 15일 미 법무부는 F16기 등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해상 초계기 구매 등 남(한국)의 '율곡 사업'과 관련해 미국 군수 산업체를 상대로 뇌물 수수 여부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 남(한국) 법무부에 관계 자료를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짐. 1994년 10월부터 남(한국) 정부와 F16기 1백20 대 판매 계약을 체결한 제너럴 다이내믹사와 해상 초계기(P3C) 8 대의 판매 계약을 체결한 록히드사에 대해 남(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와 업체에 뇌물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는 것임.

⑤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

가장 규모가 큰 사업으로 1989년 12월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F18A기로 낙착했으나, 1년 4개월만인 1991년 3월 갑자기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C기로 기종이 바뀌었음. 지금까지 40 대를 들여왔고, 1999년까지 모두 1백20 대를 들여올 이 사업 예산은 적어도 50억 달러임.

⑥ 대잠수함 초계기 도입 사업

지난 1991년 미국 록히드사와 도입 계약을 맺음. 차세대 전투기 사업 다음으로 규모가 큰 이 사업은 오는 1996년까지 P3C기 8 대를 대당 1억3천만 달러를 주고 모두 10억4천만 달러어치를 사들이는 계획임.

⑦ 차세대 헬기 공동 생산 사업

지난 1990년 10월 대한항공과 미국 시코스키사가 공동 생산하기로 한 UH60 (다른 이름은 블랙 호크) 대형을 선정한 뒤로 아직까지 중형과 소형은 선정하지 않았음. 이들 대·중·소형 헬기들은 각각 80 대씩 생산할 계획인데 각 기종별로 예산은 4천억-5천억 원선임.

⑧ 해군은 지난 1987년과 1989년 독일의 HDW사가 개발한 잠수함 3 대씩을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값은 대당 1천1백억 원선임.

⑨ 이 '율곡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 차례도 감사를 받지 않았음.

'율곡 사업'으로 알려진 남(한국) 정부의 군비 증강은 일차적으로 북(조선)에 대한 무제한적인 무력 증강 경쟁이다. 이것은 민족 전체가 평화와 안정, 융성과 발전으로 나아가려는 뜻을 거스르는 출혈 경쟁이다. 앞으로 남(한국) 정부가 이러한 증강 속도로 10년 동안 무력을 증강 배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한국)의 사회 복지 수준은 후진국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을 되풀이 할 것이며, 이른바 '천민 자본주의'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북(조선)도 이에 대응하여 군비를 증강하지 않으면, 현재의 무기들이 고철 덩어리로 변하게 되는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남(한국) 정부의 군비 증강 사업은 안정적 흡수 통합 추진과 맞물려 있으며, 이것은 북(조선)의 경제력을 군비 소모에 묶어두게 만들어, 결국 '항복'을 받아내고 말겠다는 냉적 구조 유지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

9. 연합 국가론에 바탕을 둔 4단계 통일 방안

지금까지 우리는 조국통일의 방안과 경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살펴보았다. 조국통일은 누가 예상한 순서와 방식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순탄한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미리 정해진 '통일 시간표'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국통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통일의 합리적, 현실적 방도와 경로에 대해 논의하고, 차이점과 이질성의 늪을 헤치고 나아가 접촉점과 공통성의 디딤돌을 하나씩 놓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열린 논의와 실천이 '통일 시간표'를 작성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남(한국) 사회에서는 통일 방안과 경로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주장과 논의들이 나왔는데, 언뜻 보면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강조점이 다르거나 본질적 차이가 들어있는 갖가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지금은 기존의 통일 방안과 통일 논의에 대해서 무작정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만일 1990년대 후반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우리가 통일 논의를 더 진전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현실적, 합리적, 구체적인 방안과 경로를 찾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바있는 연방주의적 정치 통합을 통하여 통일 국가를 수립하는 단계적 통일 방안은 이러한 대안을 찾기 위한 한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안을 아래와 같이 4단계 통일 방안으로 정리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제1단계 - 남북 합의서 이행기

① 조·미 관계 개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계기로 하여 남(한국), 북(조선), 미국 사이에 3자 평화 회담을 추진한다. 3자 평화 회담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② 3자 평화 회담과 조·미 및 조·일 수교 협상을 병행·추진한다. 이 병행 기간은 짧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남(한국)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대해 조·미, 조·일 관계 개선의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각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또한 각 의회 내부에서 조·미, 조·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일정한 견해 차이가 제동 요인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은 조·미, 조·일 수교 협상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요 변수가 된다.

③ 남(한국) 정부는 북(조선)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한다. 남(한국) 정부는 북(조선)의 헌법 개정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대북 흡수 통합의 의사를 적어도 헌법 조문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헌법 제4조에 들어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이라는 글귀를 삭제하고, 대신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삽입함으로써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며 평화 통일 의지를 표명한다.

④ 남북 당국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협상을 재개한다.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 문제는 전민족적인 과제이므로 민간 통일운동과 당국이 함께 할 부문에서는 범민족적인 정치 협상을 추진하고, 따로 할 부문에서는 남북 당국자 회담으로 추진한다.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교류·협력을 당국이 장악·독점하지 말고, 민간 교류·협력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더욱 확대하면서 남북 사이에 민족 동질 의식을 증대시킨다.

⑤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남(한국)과 북(조선)의 당국과 당국, 민간과 민간 사이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한다. 정치·군사 문제의 해결과 비정치적인 교류·협력을 분리하여, 양자 사이의 선후 문제를 따지려는 발상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양자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정치·군사 문제가 해결되는 범위 안에서 비정치적인 교류·협력도 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협력을 더욱 확대·발전시키되 상대방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흡수 통합 의사를 서로 배제하며, 교류와 협력이 상대방의 체제를 강화·발전시키는 공존·공리·공영 원칙의 추구에 이바지하도록 한다. 남북 교류·협력 추진체의 합의를 따라 남북 사이의 통신·통행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실시·확대해 나간다.

제2단계 - 통일 협상 추진기

① 남(한국), 북(조선), 미국 3자 평화 회담의 성과로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와 군축 이행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에는 현존하는 정전 체제를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바꾸는 내용과 군비 감축을 추진하는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이미 불가침 선언을 그 내용으로 포괄하고 있으나, 불가침 선언이라는 제한적 합의에서 더 나아가서 전면적이고 공고한 평화 질서를 유지하자면 반드시 군축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한(조선)반도의 군축 문제에는 반드시 현존하는 무력 대치 당사자의 일방인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 문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②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통해 주한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고, 남(한국) 당국과 협의하여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시작한다.

③ 조·미 수교 협상과 조·일 수교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남북 교차 승인 구도가 완결된다.

④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한 통일 정치 협상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이 협상은 전민족적인 정치 회담과 남북 당국자 회담을 병행하는 이중 방식으로 추진한다. 전민족적인 정치 회담은 남·북·해외의 정당 및 사회 단체 대표자들과 당국 대표들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형식이 되며, 남북 당국자 회담은 당국의 대표들만이 참가하는 형태가 된다. 여기서 통일 정치 협상을 당국자 회담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전민족적인 정치 회담과 병행하는 까닭은 통일 논의를 당국이 독점하지 말고,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제3단계 - 정치 통합 추진기

① 평화 통일 정치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장차 통일 국가의 중앙 연방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임시 민족 의회'를 구성한다.

② '임시 민족 의회'는 조국통일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 이 특별법은 내정권의 행사 문제에 관련하여 남(한국)과 북(조선)의 지역 정부에게 각각 고도의 자치권을 주는 법적 조치를 보장하고, 외교권과 군사권의 행사 문제에 관해서는 남(한국)과 북(조선)의 지역 정부가 자신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단일화된 남북 정치 통합체(임시 중앙 연방 정부)로 점진적으로 이양하여 통합·관장하는 법적 조치를 보장한다.

③ '임시 민족 회의'의 합의를 따라 장차 통일 국가 중앙 정부의 모태가 될 과도 기구인 남북 정치 통합체(임시 중앙 정부)를 구성한다. 남북 정치 통합체는 지역 정부한테서 외교권과 군사권을 점진적으로 이양받아 이를 행사한다.

제4단계 - 통일 국가 수립기

①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따라 '민족 의회'를 구성한다.

② '민족 의회'는 통일 헌법을 제정·공포한다. 통일 헌법에 기초하여 중앙 연방 정부를 수립하며, 단일한 국호와 단일한 국기를 제정한다. 중앙 연방 법원, 중앙 연방 은행을 설립하고, 단일 화폐를 통용한다.

③ 남측 지역과 북측 지역에서는 각각 지역 의회를 구성하여 지역 자치법을 제정·공포한다. 지역 자치법을 따라 지역 자치 정부를 수립한다.

④ 중앙 연방 정부는 관련 당사국들과 함께 한·미 상호 방위 조약, 한·일 기본 조약, 조·러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 조·중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 그 밖의 나라들이나 국제 기구와 맺은 쌍무적, 다무적 조약들을 통일 국가의 이익에 맞게 개정하거나 폐기한다.

⑤ 미국과 통일 조국의 중앙 연방 정부는 합의를 통해 한·미 연합사령부를 해체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를 모두 주일 미군기지, 알래스카, 자국의 본토 등지로 분산·철수시키고, 주한미군 기지들을 중앙 연방 정부에 모두 반환한다. 중앙 연방 정부는 통일 국가를 수립한 뒤에도 남측 지역에 일정 기간 동안 계약에 의해 '상징적 의미'를 지닌 주한미군 사령부를 존치하도록 허용한다.

⑥ 남과 북의 지역 자치 정부는 중앙 연방 정부의 관할을 따라 한(조선)반도를 방위할 수 있는 적정 규모까지 남북의 군비를 축소한다. 군비를 축소한 남과 북의 군대는 곧 중앙 연방 정부의 관할을 따라 남북 통합군 체제로 개편된다.

⑦ 중앙 연방 정부는 유엔 가입국으로서 의석을 단일화한다. (1995년 8월 작성)